Semua Bab 피안을 거슬러: Bab 41 - Bab 50

100 Bab

제41화

유정혁은 들것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다. 관복에는 피로 흥건해져 있었고,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 그는 송씨를 죽일 듯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깜짝 놀란 송씨가 물었다.“나… 나으리,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유씨 노부인마저 당황해 벌떡 일어났다.“경성에 올라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곤장형이라니!”“어사가 집안 단속을 제대로 못하고 조카딸의 혼수를 탐냈다며 탄핵 상소를 올렸습니다. 예전에 형님과 가깝게 지내던 관원들마저 조정에서 저를 나무라는 바람에, 폐하께서 유국공부가 지영이를 홀대한다고 오해하신 모양입니다.”유정혁은 당장이라도 어리석은 송씨를 쳐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진작 돌려주라 했을 때 시간을 끌지만 않았어도 이 꼴은 나지 않았을 것을.“정왕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까? 정왕께서 나서서 두둔해 주시면 무마될 일 아닌가요?”송씨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정왕 얘기가 나오자 유정혁의 표정도 더욱 험하게 일그러졌다.“정왕께서도 이번 일로 훈계를 들으셨소! 어리석기도 하지! 고작 재물 때문에 내 체면을 구긴 것도 모자라 정왕께까지 폐를 끼치다니!”송씨는 숨이 턱 막혔다. 경성에 올라온 뒤로 모두가 유지영의 혼수만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조정 대신들이 그리도 한가하단 말인가!“언니, 사람들에게 해명도 안 했어요? 언니 때문에 우리 아버지까지 오해를 받고 계시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유선주가 불만을 터뜨렸다.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유지영에게로 쏠렸다. 송씨는 그녀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핀잔을 주었다.“지영아, 태후께서 이토록 너를 총애하시니 지금 당장 입궁해 해명을 드리는 게 맞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의 오해가 언제 풀리겠니? 웃어른으로서 고생만 하고 감사는커녕 유국공부의 명성만 더럽히게 생겼잖니!”그 말에 유씨 노부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혼수도 이제 돌려받았고, 남은 점포와 수익은 네 숙모가 돌려주겠다고 약조했으니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네가 나서서 해명하는 게 맞다.”유지영을 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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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마차에 오른 홍주가 작게 유지영에게 물었다.“군주님, 소인이 보기엔 어쩐지 노부인께서 태후마마를 두려워하시는 것 같습니다.”홍주마저 눈치를 챈 것이다.유씨 노부인은 태후 얘기만 나오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피하기에 급급했다.유지영은 태후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가 바라던 상황이었다.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차는 어느새 담씨 저택 문 앞에 이르렀다.홍주가 사정을 설명하자 부관이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소식을 전했다.“너는…… 유지영?”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마차에서 연청색 비단치마를 입은 소녀가 뛰어내렸다. 앳된 얼굴의 소녀는 왠지 모르게 못마땅한 눈으로 유지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유지영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자, 담시령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입꼬리를 올렸다.“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귀하신 군주께서 우리 집까지 다 오셨을까? 경성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아 태후의 총애를 등에 업고 이름을 날린 장녕군주잖아?”담시령은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참으로 얄미운 존재였다.“누구신지요?”유지영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그러자 담시령의 안색이 확 변했다.“너, 나를 몰라?”유지영은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네 사촌언니, 담씨 가문의 적장녀 담시령이라고!”담시령은 비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었다.“인주에 다녀오더니 머리라도 다친 거야? 어째 어릴 때보다 나아진 게 하나도 없이 이렇게 멍청할까?”전생에 배준형에게 시집가겠다는 담시령의 청을 거절한 일로 그녀가 앙심을 품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성인이 된 뒤 첫 만남인데, 왜 이렇게까지 악의가 넘치는지 의문이었다.유지영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느긋하게 말했다.“선주가 말하던, 정왕 세자에게 시집 못 가서 안달 난 내 사촌언니가 바로 언니였군요?”담시령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그게 무슨 헛소리야!”“언니는 아직 모르시나 보네요. 오늘 외숙모께서 유국공부에 오셔서 그 얘기를 꺼내셨는데… 그 일로 지금 유국공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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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유씨 가문은 경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처리할 일이 많겠지. 어차피 이미 올라왔으니 때가 되면 문안을 올리러 오지 않겠느냐. 너도 매일 그 댁에 드나들던데, 혼수 일은 잘 처리했느냐? 절대 지영이가 그 집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담씨 노부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지영이 성격에 누가 감히 그 아이를 무시하겠어요?”한씨가 비웃듯 말했다.유지영은 문밖에 잠시 서 있었다. 전생에서 태후를 제외하면, 그녀를 진심으로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 바로 담씨 노부인이었다.유씨 가문이 좌천되어 인주로 떠날 때, 담씨 노부인은 유씨 노부인을 찾아가 유지영을 자신이 데리고 있겠노라 청한 적이 있었다. 훗날 담혜정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다시 찾아가 유지영을 데려오겠다고 했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했다.그동안 담씨 노부인은 여러 차례 인주에 사람을 보내 그녀가 잘 지내는지 살피게 했다.그러나 중간에 한씨가 있었기에 담씨 노부인의 귀에는 좋은 소식만 들어갔을 뿐, 진실은 전해지지 않았다.“노부인, 지영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시녀가 조용히 아뢰었다.유지영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상에 힘없이 누워 있는 백발의 노인을 보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다가갔다.“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외할머니.”담씨 노부인은 유지영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찬찬히 살펴보았다.“지영이니?”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왔으면 됐다.”노부인은 울먹이며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그때 담시령이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한씨에게 소리쳤다.“어머니, 유지영이 그러는데 오늘 어머니께서 유국공부에 가서 제 혼사를 의논하셨다던데, 그게 사실인가요?”한씨의 안색이 확 변하더니 곧장 담시령에게 눈치를 주었다.“너는…… 그게 무슨 소리니?”“어찌 된 일이냐?”담씨 노부인은 유지영의 손을 잡은 채 한씨에게 물었다.“지영이 혼수 문제를 해결하라고 유국공부에 보냈더니, 왜 시령이 얘기가 나오는 게냐?”한씨는 노부인 몰래 유씨 가문에 가서 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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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노부인의 호통에 한씨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잔뜩 움츠러들었다.유씨 가문에 거절당해서 화가 나긴 했지만, 이 일이 알려지면 담시령의 평판만 나빠질 터라 그저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담시령도 당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다 유지영이 멍청해서 혼약도 지키지 못하고 빼앗긴 탓이죠. 애초에 할아버지께서 유지영 그 계집애를 편애해 먼저 혼약을 정하신 것부터가 잘못이에요. 제가 유지영보다 한 살 더 많단 말이에요!”그 말을 들은 담씨 노부인은 또다시 격하게 기침했다.한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애초에 혼약을 시령이와 정했더라면 진작 혼례를 올렸을 텐데, 저도 그게 아쉬워서 한마디 꺼낸 것뿐이에요.”“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담씨 노부인은 화가 나 부들부들 떨었다.“감히 혜정이의 혼수를 빌미로 사돈댁을 협박하다니! 세상에 사내가 없어 굳이 정왕 세자에게 시집을 가야 한단 말이냐!”담시령은 여전히 억울한 듯 서럽게 울었다.노부인은 듣고만 있어도 머리가 지끈거려 들고 있던 탕약 그릇을 바닥에 내던졌다. 놀란 담시령은 울음을 멈추고 서러운 눈으로 노부인을 바라보았다.“지영이는 어린 나이에 어미를 여의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데, 너는 사돈댁에 가서 쓸데없는 소리를 해 애를 곤란하게 만들었구나!”담씨 노부인은 가슴을 두드리며 한탄했다.그 모습을 본 한씨도 겁에 질려 다급히 사죄했다.“진정하세요, 어머니. 제가 어리석었습니다.”한씨는 억울했지만 참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최대한 빨리 시령이의 혼처를 알아보겠습니다.”일이 더 커지기 전에 얼른 혼약을 정하는 수밖에 없었다.담시령은 여전히 불만을 토로했다.“이 일을 아는 사람도 몇 없고, 우리만 인정하지 않으면 그 댁에서 뭘 어쩌겠어요? 담씨 가문도 백 년 역사를 지닌 세가인데, 우리가 그 집 눈치를 봐야 하나요?”마음을 가라앉힌 담씨 노부인이 물었다.“듣자 하니 그 댁 차남이 조회에서 엄벌을 받았다던데, 사실이냐?”한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오늘 조회에서 어사가 유 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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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방 안에서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은 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한참 뒤, 기다리다 지친 한씨가 찾아왔다.“어머니, 지영이도 이제 계속 경성에서 있을 테니,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셔도 늦지 않아요.”그제야 담씨 노부인은 손을 놓았다.그렇게 마차로 돌아가는 길, 담성국은 한씨에게 자초지종을 듣고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난처해진 눈빛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유지영이 먼저 한씨를 찾아가 유씨 가문과 협상을 부탁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전생에 한씨는 그녀를 압박해 담시령을 정왕부의 평처로 들이라고 했지만, 유지영이 거절하자 그 일을 밖으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그 바람에 외할머니와 외삼촌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지냈고, 훗날 한씨의 주선으로 담시령은 비왕 세자와 혼인했다.한씨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에게 유지영과는 말이 통하지 않고 뜻도 다르다며 왕래를 끊었고, 유지영이 부군의 황권 다툼을 위해 담씨 가문과의 왕래를 거부했다고 말해 두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이번 생에는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외삼촌에게 담시령이 오래전부터 배준형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과, 한씨가 황권 다툼에 발을 들일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전생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기에 담씨 가문이 훗날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태후는 비왕 일가가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고 의심하며 일찍부터 비왕의 세력을 잘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렇기에 그녀는 비왕부의 끝이 좋지 않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비왕이 황권 다툼에서 패한다면 담씨 가문 역시 피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지영아, 외삼촌이 네게 미안하구나.”담성국은 얼굴을 붉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평생 떳떳하게 살아온 그였지만, 조카딸 앞에서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유지영은 고개를 저었다.“그런 말씀 마세요, 외삼촌. 저는 한 번도 외삼촌과 담씨 가문을 원망한 적 없어요. 외삼촌이 아니었다면 어머니의 혼수도 이렇게 쉽게 돌려받지 못했을 거예요.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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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유씨 노부인은 불안한 마음에 연월에게 물었다.“둘째 부인이 점포 수익은 지영이에게 돌려주었다고 하더냐?”“노부인, 둘째 부인께서는 지금 병환 중이십니다.”태후가 자신을 궁으로 부른 이유가 송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유씨 노부인은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곧장 송씨의 처소로 향했다.평상에 기대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던 송씨는 고개를 들자마자 살기 어린 얼굴로 들어오는 시어머니를 보고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어… 어머니?”“지영이에게 차용증을 써주거라. 나는 즉시 송씨 가문에 사람을 보내 은자를 마련하라 재촉하겠다.”유씨 노부인은 사람을 시켜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했다.조급해진 송씨가 말했다.“조정에서 담 상서가 이미 해명해 주셨잖아요. 굳이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나요?”“멍청한 것 같으니라고!”유씨 노부인은 다짜고짜 송씨의 뺨을 때리며 호통치기 시작했다.“조정 일은 해결되었다지만 태후께서 면밀히 지켜보고 계시는 걸 모르느냐? 이번 일을 깔끔히 마무리하지 못하면 정혁이에게 말해 당장 너를 내치게 할 것이다!”송씨는 어떻게든 버티며 이 상황을 넘길 속셈이었다. 그런데 유씨 노부인이 끝까지 물고 늘어질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얼얼한 얼굴을 만져보니 입가가 찢어진 듯했고 귀까지 먹먹했다. 송씨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할머니.”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선주가 송씨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할머니, 뭔가 오해하신 것 아닌가요? 태후께서 꼭 혼수 일 때문에 할머니를 궁까지 부르셨겠어요? 그래도 걱정되시면 차라리 지영 언니와 함께 가서 태후께 잘 말씀드리는 게 어떨까요?”유선주 역시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그저 유지영이 나서서 받았다고 한마디만 하면 해결될 일이라 믿는 것이다.유씨 노부인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만약 소 상궁이 와서 장부를 들추면, 태후마마를 기만한 죄를 우리 집안에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유선주는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태후가 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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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점포 문서와 부족했던 혼수 은자까지 모두 유지영의 손에 들어왔다.집안 사람들이 불만을 품든 말든, 그녀의 기분은 몹시 좋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다리가 불편해 방 안에만 갇혀 지내는 외할머니였다.다리를 치료해드려야겠어.셋째 부인 정씨가 옷 한 벌과 초대장을 들고 찾아왔다.“지영아, 노태비께서 다음 달에 생신을 맞으신다는구나. 마침 부광 비단옷도 다 지어져서 가져왔다. 경성에서 가장 유행하는 양식으로 지었으니, 어디 몸에 맞는지 한번 입어보거라.”은은한 빛이 감도는 긴 비단치마가 눈앞에 놓였다. 감촉은 부드러웠고, 위에는 유지영이 가장 좋아하는 오동꽃이 수놓여 있었다.탐스러운 꽃무늬와 화려한 비단 빛이 어우러져 무척이나 정교한 옷이었다.정씨가 이 옷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유지영의 눈빛에 싸늘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모르는 척 웃으며 옷을 받았다.“챙겨주셔서 감사해요, 셋째 숙모.”“가족끼리 당연한 일이지. 노태비께서는 생기 넘치고 어여쁜 처자를 유난히 예뻐하시잖니. 성품도 온화하셔서 분명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실 게다. 네가 비록 정왕 세자와의 혼약은 취소되었다지만, 그래도 앞으로 우리와 한 가족이 될 분들이니까.”정씨의 말에 유지영은 전생에 납치당했다 돌아온 뒤, 의원도 불러주지 않은 채 낙태약 한 그릇만 던져주던 노태비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이를 잃은 그녀에게 싸늘하게 자결을 권하고, 배준형에게 새 부인을 맞이하라 명하던 그 얼굴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정왕부에서 삼 년을 지낸 그녀가 그 집안 노태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리 없었다.노태비는 평소 화려한 붉은색을 가장 싫어했다.노태비는 선제의 숙비로, 십여 년 동안 공을 들여 귀인에서 숙비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서 태후가 나타나기 전까지 모두가 그녀가 황후가 될 것이라 믿었다.그랬기에 서 태후에게 앙심을 품었고, 태후가 아끼는 유지영을 알게 모르게 짓밟고 괴롭혔다. 뒤에서는 서 태후가 파렴치한 수단으로 황후의 자리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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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배준형은 혼약을 파기한 뒤로 오래도록 고민했다. 비록 유지영을 부인으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배현준 같은 망나니에게 시집가 어영부영 인생을 허비하는 꼴도 보고 싶지 않았다.전생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반면 유지영은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 흘겨보고는 마차로 향하자, 배준형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세자!”뒤에서 유선주의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대문 앞에 서서 유지영을 힐끗 흘겨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세자, 아버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배준형은 유선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유지영에게 말했다.“지영아, 일단 집으로 들어가 있어. 네게 긴히 할 말이 있다.”그는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유지영의 앞을 가로막은 채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전생에 삼 년이나 한 이불을 덮고 산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유지영은 배준형에게 낯설기만 했다. 예전의 그녀는 언제나 자신만 바라보았고, 그의 무심한 미소 한 번에도 감격해 수줍게 웃던 여인이었다.유지영은 피식 웃고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처형이 될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이 사람은 수치심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그러자 배준형의 안색이 확 변하더니 따지듯 말했다.“지영이, 너는 언제부터 이렇게 무례해진 것이냐? 좋은 마음으로 충고한 것인데, 역시 너는 사적으로 배현준과 정을 통하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성격도 그 녀석을 닮아 오만방자해졌어!”말을 마친 배준형은 씩씩거리며 돌아섰다.유선주는 분노에 찬 눈으로 유지영을 노려보다가, 배준형이 다가오자 곧장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군주님, 세자 전하께서도 참 너무하십니다. 조용히 지나가려는 사람을 붙잡고 저게 무슨 행패인가요?”홍주가 발을 동동 구르며 불만을 터뜨렸다.유지영도 집을 나설 때의 좋았던 기분이 사라져 표정이 좋지 않았다.“소인이 듣기로 세자께서 며칠 전 둘째 나으리께 드린다며 은 십만 냥이나 가져오셨답니다. 선주 아가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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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시령아!”담씨 노부인은 불쾌한 목소리로 담시령을 나무랐다.“지영이를 곤란하게 하지 말거라. 이 병이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고, 이제는 익숙해져 아무렇지도 않다.”담시령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할머니, 저도 하루빨리 북명대사를 찾아 할머니 다리를 고쳐드리고 싶죠. 하지만 제게는 그럴 능력도, 인맥도 없는 걸 어떡하나요. 유지영이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준 것뿐이에요. 그동안 담씨 집안에서 의원을 안 부른 게 아니라고요.”유지영은 담씨 노부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할머니, 북명대사에 관해서는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청해볼게요.”“네가?”담시령이 피식 비웃었다.“북명대사는 아무나 치료해 주는 분이 아니야. 게다가 세간에 그분의 얼굴을 본 사람도 없다는데, 대체 무슨 수로 모신다는 거야?!”유지영은 담시령과 입씨름하고 싶지 않아 담담히 말했다.“되든 안 되든 한번 찾아는 봐야죠.”“지영아…….”“할머니, 이 일은 제게 다 생각이 있어요.”유지영은 담씨 노부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배준형이 돌아갔는지도 알 수 없어, 그녀는 남아 담씨 노부인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식탁에는 채소 위주의 밥상이 차려졌다.담씨 노부인은 유지영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봐 주방에 고기반찬 몇 가지를 더 내오라며 일렀다.그러자 담시령이 또 시비를 걸었다.“할머니께서는 십여 년 동안 채식을 해오셨는데, 지영이가 왔다고 특혜를 주시면 안 되죠.”과거 담혜정이 중병에 들었을 때, 담씨 노부인은 부처님께 평생 채식을 고수하며 성심껏 불공을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훗날 담혜정은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담씨 노부인은 그 후로도 줄곧 채식을 지켜왔다.“외할머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도 채식이 좋아요.”노부인이 있는 자리라, 유지영은 담시령이 괘씸해도 꾹 참았다.식사가 끝나자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유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고, 담씨 노부인은 담시령에게 그녀를 배웅하라 일렀다.담시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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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유지영은 곧바로 시녀를 시켜 별채를 준비하게 했는데, 소 상궁이 이를 말렸다.“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군주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소인은 오늘 밤 군주님의 처소에 머물고 싶습니다.”“당연히 괜찮지요.”그렇게 유지영은 유씨 노부인에게 저녁 인사를 올린 뒤, 소 상궁과 함께 유수각으로 돌아왔다.소 상궁은 정교하게 꾸며졌으나 어딘가 텅 비어 보이는 처소를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십여 년 전에도 소인이 유수각에 와본 적이 있는데, 예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군요. 군주님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도 너무 적어 보입니다.”“시녀를 시켜 괜찮은 아이들을 알아보라 했습니다.”유지영이 말했다.소 상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군주님, 저와 잠시 따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전생과 마찬가지로 소 상궁은 그녀의 진짜 신분에 관해 털어놓았다. 그것이 바로 소 상궁이 유국공부까지 찾아온 이유였다. 유지영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놀란 척 연기했다.“군주님, 그때는 태후마마께서도 달리 방법이 없으셨습니다. 처음 황후로 입궁하셨을 때는 입지가 안정되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이 마마를 지켜보고 있었지요. 태후께서는 군주님이 공주라는 허울뿐인 칭호만 지닌 채 남에게 이용당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하신 겁니다. 오늘날에야 비로소 유국공부를 경성으로 불러들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요…”소 상궁은 혹여 유지영이 태후를 원망할까 봐 눈시울을 붉히며 절절하게 말을 이어갔다.“마마께서는 한순간도 군주님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권력을 잡기 전에는 감히 군주님 가까이에 다가가지도 못하셨지요. 남들이 군주님을 이용하고 해칠까 염려되어, 친우였던 국공 부인 담씨에게 군주님을 부탁하신 겁니다.”소 상궁은 울먹이다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전생이든 이번 생이든, 유지영은 서 태후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소 상궁, 태후마마의 어려움은 저도 이해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견디셨겠어요. 어쩐지 태후마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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