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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Author: 레몬과 향수
유정남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서 낭자는 내 부장의 부인이란다. 사 년 전, 그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기 전에 부인과 아들을 내게 부탁했지.”

그 말을 들은 서옥혜의 얼굴이 확 변했다.

유씨 노부인도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듯 표정이 싸늘하게 굳더니, 잡고 있던 동이의 손을 슬며시 놓았다.

유지영은 서옥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서 낭자는 국공부의 손님이시네요.”

손님이라는 말 한마디로 서옥혜의 신분은 분명해졌다.

‘이번 생에는 우리 집안과 엮일 생각하지 마.’

서옥혜는 어색한 얼굴로 동이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송씨는 유지영을 곱지 않게 흘겨보더니, 곧바로 유정남에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서 낭자는 부군도 없이 아들을 데리고 아주버님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미 사람들 눈에는 좋게 보이기 어려운 상황인데, 국공부에서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지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송씨의 말을 잘랐다.

“아버지는 정직한 분이십니다. 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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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764화

    건양제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고는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허비는 용기를 내어 간청했다."신첩이 듣기로 팔공주는 의술에 능하다 들었습니다. 신첩은 그저…… 아이를 갖고 싶습니다."허비는 새빨간 얼굴을 하고서도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고요한 익곤궁 내전에는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달그락.건양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허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신첩은 입궁한 이래 줄곧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핏줄을 원했습니다. 그저 아이에게 시와 서화를 가르치며 곁에 두고 싶을 뿐, 딴 마음은 없습니다. 부디 신첩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건양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허비를 부축해 일으켰다."그건 내가 조금 더 생각해 보마."그때 상 내관이 안으로 들었다."폐하, 조회에 드실 시간입니다."건양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비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밤을 새웠으니 푹 쉬거라."말을 마친 건양제는 밖으로 나갔다.허비는 무릎을 굽혀 황제를 배웅했다. 건양제가 멀어진 뒤에야 그녀는 궁녀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마마, 너무 직설적인 요구인데 폐하께서 승낙하시겠습니까?"허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녀 역시 건양제가 허락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북영주를 데려올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 일개 후궁이 북신의 팔공주와 무슨 연관이 있겠는가.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 나았다.건양제는 익곤궁을 나선 뒤,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고는 상 내관에게 툭 던졌다."어선방에 일러서 어마마마께서 좋아하시는 장미떡과 부용떡을 올리고 보양식도 달여 올리라 하거라."상 내관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연회가 끝난 뒤, 자녕궁에 들렀언 건양제가 딱딱하게 굳은 다과를 맛보고 미간을 찌푸리던 모습이 떠올랐다.*오시.조회를 마친 건양제는 다시 자녕궁으로 향했다. 하지만 반 시진쯤 머물다 쫓겨나고 말았다

  • 피안을 거슬러   제763화

    조령 장공주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허씨 노부인에게 쏠렸다.내로라하는 가문에서 후대의 혼담을 꺼낼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법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몸이 허약한 것은 기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허씨 가문은 오히려 몸이 약한 육가의 적장녀와 굳이 혼약을 맺으려 하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허씨 노부인."조령 장공주가 재촉하듯 불렀다.허씨 노부인은 입을 달싹이며 망설이다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저희 가문은 육 소저가 재색을 겸비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몸이 병약한 줄은 미처 몰라 이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노부인은 건양제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폐하, 비록 그렇다 해도 저는 손자를 위해 육 소저를 손주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습니다!"바닥에 머리를 거듭 찧은 탓에 노부인의 이마는 금세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허비도 치맛자락을 쥐고 바닥에 꿇어앉아 눈물을 쏟았다."폐하, 그저 사소한 오해일 뿐인데 어찌 장공주와 현왕 부부까지 나서서 신첩을 이리 몰아세우는 것입니까."허비는 고개를 든 채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며칠째 은총을 입고 있는 터라, 건양제가 현왕을 어디까지 감싸고도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속셈도 있었다."신첩이 먼저 혼사를 청한 것이 이런 식으로 곡해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허비는 서러운 얼굴로 건양제의 옷소매를 붙잡았다.건양제는 허비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고 미간을 찌푸린 채 허씨 노부인을 내려다보았다."방금 노부인이 말한 그 소문이라는 게 무엇인지 말해보라."군왕의 싸늘한 위압감에 허씨 노부인은 숨이 막혔다. 노부인은 마른침을 삼키며 건양제의 곁에 앉은 서 태후를 힐끗 쳐다보았다.서 태후는 싸늘한 눈빛을 하고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순간 노부인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제가 우연히 듣기로 육씨 가문과 현왕비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막역한 사이라고 합니다."하지만 자세한 관계에 대해서는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그럴듯한 변명으로 적당히 얼버무린 것이다.이를 본 건양제는 속을

  • 피안을 거슬러   제762화

    말을 마친 허비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훌쩍이며 애처롭게 건양제를 바라보았다.건양제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말이 없었다.허비는 시선을 돌려 배현준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예전에 현왕비는 신첩을 이리 홀대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오늘 현왕이 대승을 거두고 돌아니……."허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씨 노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폐하, 저는 허비 마마 앞에서 육 소저가 훌륭하다고 몇 번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규수가 훌륭하면 여러 가문에서 혼처를 묻는 것이 당연한 이치거늘, 현왕비가 뜻을 곡해할 줄은 몰랐습니다. 현왕비의 태도를 보니, 얼마 전 경성에 떠돌던 소문이 떠오르는군요."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대전에 정적이 감돌았다.사람들은 숨죽인 채 눈치만 살폈다. 경사스러운 연회가 순식간에 기싸움의 장이 되어버린 것이다.허씨 노부인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지영을 흘끗 바라보았다.그때 정씨가 연회석에서 나와 바닥에 엎드렸다."허비 마마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육씨 가문의 장녀는 몸이 약해 오랜 세월 탕약을 달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혼약을 맺지 못한 것인데, 어찌 감히 허 공자의 앞길을 막겠습니까."정씨는 대전에 꿇어앉아 바들바들 떨었다.허비는 육씨 일가를 비웃듯 힐끗 바라보고는 도발적인 시선으로 서 태후를 쳐다보았다.서 태후는 담담한 눈빛을 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폐하."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배현준이 입을 열었다."신은 허비 마마께서 어찌하여 저렇게까지 서럽게 눈물을 흘리시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설마 신이 승전보를 울린 것이 잘못이란 말씀이십니까?"허비는 미간을 찌푸리며 배현준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막 입을 떼려는 찰나, 배현준은 한발 앞서 말을 이었다."경성에는 훌륭한 규수들이 차고 넘치거늘, 허씨 가문은 왜 굳이 육씨 가문의 적녀만을 고집하며 억지를 부리는 건지도 이해할 수 없군요. 설마 허씨 가문은 후궁에 계신 허비 마마의 총애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사람을 억압하려는 겁니까."배현준의 말은

  • 피안을 거슬러   제761화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허비와 서 태후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눈치챘다.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건양제는 이따금 술잔을 들어 목을 축이며 배현준을 칭찬할 뿐, 허비의 제안은 모른 척하며 어느 쪽도 편들지 않았다.하지만 허비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평소의 단아하고 우아한 자태는 온데간데없이, 건양제의 팔에 찰싹 매달리며 귓가에 속삭였다."폐하, 신첩에게 약조하신 일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건양제의 귓가를 간질였다.건양제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으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오늘은 경축 연회이니, 사혼은 짐이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폐하, 신첩은 싫습니다."허비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건양제에게 매달렸다.허비가 입궁한 지 수년이 지났으나, 이런 모습은 다들 처음이었다. 평소 허비는 말수가 적고 언행이 단아하여 무관 가문의 적녀다운 기품이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그저 총애를 믿고 기고만장한 후궁의 교태였다. 보는 눈이 많은데도 건양제에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태후 마마께서 시비를 가려주십시오. 얼마 전 신첩은 폐하와 바둑을 두어 겨우 한 판을 이겼습니다. 그때 폐하께서 신첩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마 약조하셨습니다."허비는 건양제의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내밀고 서 태후를 쳐다보았다.마치 시어머니에게 억울함을 토로하는 철없는 며느리 같은 모양새였다.서 태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허비를 힐끗 바라보았다."제왕의 약조는 천금과도 같지. 허나 나는 허비가 분수를 알아 폐하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리라 믿는다."풋!허비는 소매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지당하신 훈계입니다, 태후 마마. 신첩과 폐하가 부부의 연을 맺은 지가 몇 해인데, 어찌 제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 들겠습니까."허비는 서 태후의 경고를 가볍게 넘기고 하고 싶은 말만 이어갔다."최근 허씨 가문에 불운한 일이 잦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점을 쳐보니 가문에 좋은 혼사를 들여야 액운을 깰 수 있다 하더군요. 하여, 신첩이 친히 조카에게

  • 피안을 거슬러   제760화

    최씨 노부인은 계속해서 말했다."우리 가문은 현왕부 쪽에 줄을 대려 그토록 애를 썼건만, 저쪽에서 틈을 주지 않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공을 들여 얻은 것이 무엇이냐."이전까지 최씨 노부인은 철저히 안정을 추구했다.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차라리 이 기회에 모든 것을 걸어보는 편이 나았다. 성공한다면 최씨 가문은 제왕을 옹립한 일등 공신이 될 것이다.실패한다 해도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었다.설령 훗날 현왕부가 권력을 쥔다 해도, 이번 전란에서 최씨 가문이 세운 막대한 공로를 모조리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공신을 매몰차게 내친다면, 천하의 어느 상단이 훗날 현왕부를 위해 발 벗고 나서겠는가."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꾸나."최씨 노부인이 당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서 태후와 건양제, 허비, 덕비가 차례로 대전에 들어섰다.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폐하와 태후 마마를 뵈옵니다."건양제는 용상에 다가가 앉았다. 우측에는 서 태후가, 좌측에는 허비가 자리를 잡았다."모두 일어나거라."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성은이 망극하옵니다!"자리에 앉자 가무가 서서히 잦아들었다.건양제는 술잔을 치켜들고 배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현왕은 이 년간 출정하여 북신을 함락하고 나라의 영토를 넓혔으며, 변방을 안정시켰으니 짐은 실로 기쁘기 그지없구나!"배현준은 허리를 굽히며 겸손하게 답했다."신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 공로는 군의 장병들이 피땀 흘려 얻어낸 것이지, 결코 신 혼자만의 공이 아닙니다."건양제는 그 말을 듣고 호탕하게 웃었다."공은 공이지. 응당 모두에게 상을 내릴 것이다."그는 즉석에서 조서를 내렸다. 삼군의 장병들을 포상하고, 명부에 기록된 장병들의 자제는 경성 내 어떤 서당이든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하며 그 비용은 전액 조정에서 부담하겠다고 선포했다.자식이 없는 자들 역시 명부만 지참하면 각 성의 의원에서 무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약값은 관

  • 피안을 거슬러   제759화

    날이 어둑해지자, 황궁에서는 성대한 경축 연회가 열렸다.대전에서는 화려한 가무가 이어졌고, 감미로운 악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배현준과 유지영이 전각에 들어서자, 수많은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배현준은 그녀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유지영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장공주 전하께 가보겠습니다."두 사람은 각자 흩어졌다.유지영은 여인들이 모인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조령 장공주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곁에서 담소를 나누던 안면 있는 부인들도 유지영을 깍듯하게 맞이했다."현왕비 마마는 참으로 복 받으셨습니다. 방금 두 분이 나란히 들어오시는 모습을 뵈니, 선남선녀가 따로 없더군요.""제 생각도 같습니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부인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조령 장공주는 피식 웃고는 유지영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방금 어화원을 지나다 폐하와 허비를 보았다. 허비는 허씨 가문 차남에게 육씨 가문 가주의 적녀인 육안희와 맺어달라 청하고 있더군."유지영은 겉으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으나, 눈가의 웃음기는 싸늘하게 식었다."폐하께서는 윤허하지 않으셨어."조령 장공주가 이 일을 귀띔해 준 것은 유지영이 마음의 준비를 하길 바라서였다.그녀는 술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는 의아하다는 듯 덧붙였다."폐하께서 요즘 무슨 영문인지 부쩍 허비를 총애하시는구나."그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유지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세상에 까닭 없는 일은 없습니다. 폐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그 말에 조령 장공주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유지영은 조용히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육씨 가문 사람들도 연회에 참석했다.허씨 가문, 최씨 가문을 비롯해 낯익은 얼굴들이 연회장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그녀는 눈길을 돌려 최 부인을 힐끗 살폈다. 최 부인은 두껍게 분칠을 하고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몹시 지쳐 보였다.그럴 만도 했다. 최씨 가문은 청하에서 권세를 누리

  • 피안을 거슬러   제5화

    주향은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나머지 셋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당황한 채 무릎을 꿇고 빌었다.“부관, 저들의 입을 틀어막고 모조리 끌어내세요!”유지영은 저 꼴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혔다.‘배은망덕한 것들 같으니!’장 부관은 하는 수 없이 하인들을 불러 넷을 모두 끌어내게 하고 중개 어멈을 부르라고 일렀다.유지영은 그것마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중개인은 필요 없으니 이만 나가 보세요.”게다가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 성년례가 끝난 뒤 차차 처리할 생각이었다.그렇게

  • 피안을 거슬러   제4화

    측문으로 나와 마차에 오른 둘은 거리를 따라 서북쪽으로 향하다가 골목을 지나 취선루에 도착했다.홍주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문앞에서 잘록한 허리를 씰룩이며 호객하는 여인들을 바라보았다.“아… 아가씨, 저희가 올 곳이… 아닌 것 같은데요.”유지영은 이곳에서 만날 사람이 있었다. 이틀 전에 그가 왔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 들었다. 전생에 그녀가 배준형과 혼약을 정한 뒤, 그는 찾아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커다란 야명주만 선물로 보내고는 홀연히 사라졌다.만약 배현준이 도와준다면 앞으로 반드시 그 은혜를 갚을 생각이었다.유지영은 품에서

  • 피안을 거슬러   제3화

    옥신각신하는 사이, 유씨 노부인이 소식을 듣자마자 대전으로 달려왔다. 송씨는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부축해주었다.“지영이는 다 좋은데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에요. 분명 마음속에 세자를 품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못해 세자에게 심통을 부리고 있지 뭐예요. 내일 혼사가 정해지지 않으면 우리 유씨 집안은 온 인주의 웃음거리가 될 텐데 말이에요.”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다.유씨 노부인은 불쾌한 눈으로 유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지영아, 세자께 사죄드리거라.”양모가 돌아가신 뒤, 유씨 노부인은 유지영을 슬하에 두고 보살

  • 피안을 거슬러   제2화

    종령각 이층 누각.유지영은 부스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유난히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회랑 아래에서는 하인들이 정원을 단장하며 내일 있을 성년례가 떠들썩할 거라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아픔이 몰려왔고, 곧바로 이 모든 게 꿈이 아님을 직감했다.그녀는 죽임을 당한 뒤 성년례 하루 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이때 밖에서 고씨 어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부인께서 대전으로 들라 하십니다. 경성에서 사람이 온 듯합니다.”전생의 배준형도 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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