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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61 - Chapter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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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한씨의 말에 수치를 느낀 유선주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그 공로는 원래 지영 언니의 것이고, 저는 지영 언니와 피를 나눈…….”“그건 그렇다 쳐도, 지영이는 정왕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느냐! 그런데 어찌 염치도 없이 지영이에게 정왕부 일에 나서달라고 할 수 있단 말이냐? 네 어미가 지영이의 혼수를 가로챘다가 태후마마의 연회에서 망신당한 일은 벌써 잊은 모양이지?”한씨는 진작부터 유선주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와 시비까지 거니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유선주는 당황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이건 유지영이 이미 예상한 전개였다. 북명대사가 담혜정에게 은혜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친딸인 그녀도 가만히 있는데 유선주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단 말인가.그러니 한씨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한씨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배준형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제 태후마마께서는 제 시어머니의 병환을 봐달라며 북명대사께 부탁하셨습니다. 정왕께서 먼저 나서 우리 담씨 가문과 연을 맺고자 하신 것이지요. 태후마마께서도 우리 집안이 오랜 세월 지영이를 돌봐준 일을 생각해 정왕부 노태비의 병환도 함께 봐달라 부탁하셨고요. 북명대사께서는 내키지 않으셨지만, 태후마마의 명이라 마지못해 받아들이신 겁니다. 세자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이 일이 지영이 삼촌네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자초지종이 다 밝혀졌는데도 염치없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배준형은 굳은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담 부인, 저는 그저 이 댁 노부인의 문병을 온 것입니다.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오해요?”한씨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유선주가 찾아와 시비를 걸며 우리 담씨 가문이 큰 이득이라도 챙긴 것처럼 몰아세우는데, 저 아가씨는 과거 유씨 가문과 정왕부의 구두 혼약이 어떻게 맺어진 것인지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 혼약은 돌아가신 시아버지께서 홀로 남은 지영이가 가엾다 여겨 정왕 전하와 상의해 정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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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배준형이 부탁하자 한씨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유선주와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자니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아직 혼인도 하기 전인데 벌써부터 이간질에 여우 짓을 해대니 예뻐 보일 리가 없었다.하지만 배준형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훗날 딸에게 불이익이 갈까 염려되어, 한씨는 고민 끝에 표정을 풀었다.“세자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오해가 맞겠지요.”유선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노부인께서 약을 드시고 잠드셨다는 한씨의 말에, 배준형은 시간이 늦었다는 핑계를 대고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사람들이 돌아가자 한씨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쾅!그녀는 홧김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내던졌다.“간사한 것!”결국 분을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시녀를 불러 귀에 대고 무언가를 지시했다.한편, 유국공부로 돌아온 유선주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유지영은 피곤함을 참고 홍주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유지영!”뒤에서 배준형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유지영은 싸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배준형은 이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오늘은 내가 너를 오해했구나. 네가 내게 앙심을 품고 태후께 담시령을 정왕부로 시집보내 달라 청한 줄 알았다.”더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었기에, 유지영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배준형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아직도 내게 화가 많이 나 있구나.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순결하지 않은 너를 더는 받아줄 수가 없는걸.”말을 마친 그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왕부로 돌아가자.”한편, 먼저 대청에 도착한 유선주는 과장된 말로 오늘 일의 책임을 모두 유지영에게 돌리고는 유씨 노부인의 팔을 붙잡고 애교를 부렸다.“할머니, 지영 언니는 오해인 줄 알면서도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서 제가 하마터면 담 부인께 큰 오해를 살 뻔했잖아요.”앞뒤 사정은 빼고 애매한 말 몇 마디와 서러운 표정만 보이니, 모두가 유선주를 피해자로 여겼다.“어머니,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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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하필 유선주가 다녀간 직후 병세가 깊어졌으니, 유씨 노부인은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유지영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한씨는 원래 당한 만큼 돌려주는 성격이었다. 유선주가 찾아가 모멸감을 주었으니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편히 잠들 수 없게 된 유씨 노부인은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남은 사람들도 감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조용히 기다렸다.다행히 저녁 즈음 담씨 노부인이 고비를 넘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유씨 노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피곤하다며 사람들을 물렸다.하루 종일 바쁘게 보낸 유지영은 처소로 돌아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다음 날, 홍주가 불러서야 그녀는 잠에서 깨어났다.“군주님, 태후께서 정왕 전하와 담 부인을 궁으로 불러들이셨습니다. 노부인께서는 그 소식을 듣고 쓰러지셔서 방금 의원을 불렀습니다...”역시나 이 일은 결국 태후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잠이 싹 달아난 유지영은 멍하니 배를 어루만졌다.홍주가 말했다.“주방에 닭죽을 해두었으니 소인이 지금 가져오겠습니다.”배불리 음식을 먹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진 것을 느꼈다. 그런데 아직 유수각을 나서지도 않았을 때, 태후가 담시령을 정왕 세자비로 책봉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그게 정말이니?”유지영은 놀란 얼굴로 동금에게 물었다.동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예. 소식을 들은 선주 아가씨는 화가 나서 기절하셨답니다.”이번 일은 유국공부에 잘못이 있었고, 한씨는 교활한 사람이니 분명 이 기회에 담시령을 위해 이득을 챙기려 했을 터였다.결국 세자비의 자리는 담시령에게 돌아갔다.유지영은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고 노부인의 처소로 향했다.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안에서 유선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니, 이 혼사는 원래 제 것이었는데 어찌 담시령이 저보다 우위에 서게 된 거예요?”울음 섞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유지영은 기분이 더 상쾌해졌다.돌을 들어 제 발등을 찍은 기분이 어떠니?송씨도 돌아앉아 눈물을 훔쳤다.유씨 노부인은 인삼 조각을 입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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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어찌 이럴 수가! 북명대사는 이미 노태비의 치료를 해준다고 약조하지 않았습니까?”유씨 노부인도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그럼 담씨 노부인은요?”배준형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담씨 노부인의 치료는 예정대로 진행한답니다.”“왜요?”그 말에 유씨 노부인은 깜짝 놀랐다.“이미 약속한 일인데 어찌 함부로 물린단 말입니까?”“북명대사께서 노태비의 치료를 거부하였으니 담씨 가문의 장녀와 정왕부의 혼사도 없던 일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배준형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어제 아버지께 여쭤보았는데 아버지께서 태후께 담시령과의 혼사를 청한 이유는 돌아가신 담씨 어르신과 아버지 사이의 약조 때문이었답니다. 하지만 저와 장녕군주는 인연이 아니니, 혼사는 자연스럽게 담시령에게로 넘어간 것이지요.”“어찌 이럴 수가!”그 말에 송씨가 다시금 경악했다. “북명대사께서 할머니의 치료를 수락하신 이유는 저와 혼인하려는 처자가 국공 부인의 딸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답니다. 어제 뒤늦게 진실을 아시고 유씨 가문과 담씨 가문에서 생명을 구혜준 은혜를 두고 누구의 공적이니 다투는 바람에 기분이 나쁘시다며 약속을 철회한 거고요.”그 말인즉, 어제 유씨 가문에서 공로를 두고 담씨 가문으로 찾아가 시비를 다투어 담씨 노부인이 병환이 깊어지지만 않았어도 아무 일도 없었을 거란 얘기였다.그리고 이 얘기는 결국 태후에게 전해지고 화가 난 태후가 담시령을 세자비로 봉하라는 명을 내림과 동시에 북명대사도 약속을 철회한 거였다.노태비는 어제 북명대사가 자신을 치료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기대에 차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약속이 철회되었으니 정왕은 물론이고 배준형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결국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아침 일찍 유지영을 찾아온 것이었다.“군주는 국공 부인의 유일한 자식이니 군주께서 나서주신다면 북명대사도 분명히 수락하실 겁니다.”배준형은 다시 한번 정중하게 부탁했다.유선주가 유지영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언니, 사람 목숨이 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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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송씨도 덩달아 재촉했다.“너도 참, 가족끼리 어찌 그런 심한 장난을 칠 수가 있니? 어서 가서 세자께 사죄드리고, 잘못했다고 하거라!”당연하다는 듯 몰아붙이는 그녀의 태도에 유지영은 실소를 터뜨렸다.“숙모님, 생각해 보세요. 나중에 우리 집안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더는 북명대사께 부탁드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할머니께서도 근래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고 하셨지요? 그동안 귀한 약재를 수없이 드시고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으셨고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씨 노부인에게 다가갔다.“할머니, 노태비께서는 지금까지도 정정하신 걸 보면 굳이 북명대사가 아니어도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저를 길러주신 분이잖아요. 그 은혜는 나중에 꼭 갚고 싶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억울한 듯 눈물을 글썽였다.그 말을 들은 유씨 노부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아무리 손녀가 좋은 곳에 시집가고 예물이 산처럼 들어온다 해도, 제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지영이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한결 분노가 누그러진 노부인이 다시 물었다.유지영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조급해진 송씨가 끼어들었다.“하지만 노태비처럼 존귀한 분을 어떻게 적으로 돌리겠어요. 앞으로 어머니께서 어디 아프시면 그때 다시 북명대사께 사정하면 되지요. 지금은 그게 우선이 아니잖아요.”유지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북명대사가 그렇게 쉽게 부탁을 들어주는 분이었다면, 노태비께서도 십여 년 전에 이미 대사의 치료를 받으셨겠지요. 담씨 가문도 마찬가지고요!”말문이 막힌 송씨는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유지영을 노려보았다.이 계집애, 일부러 이러는구나!유씨 노부인은 이내 유지영의 손을 잡고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렇긴 하지만 세자에게 무례하게 군 것은 잘못이다.”“세자께서 계속 압박하시는데 제가 별수 있나요. 포기하시라고 일부러 심하게 말한 겁니다.”경성에서는 태자의 자리를 두고 다툼이 한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배준형이 삼 년이나 경성을 떠나 있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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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유지영이 부탁을 거절하자 정왕부 일가 모두 분을 참지 못했다.정왕비는 저런 화상을 며느리로 들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길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앉은 노태비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문밖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곧 연회의 계절이 오니, 가서 그 계집애가 오만방자하고 피도 눈물도 없다는 소문을 퍼뜨리거라. 누가 감히 그 계집을 연회에 초대하는지 내 똑똑히 지켜보겠다!”배준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유지영이 오늘 노태비의 치료를 거절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경성에서 감히 그녀를 집으로 초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이제 매운맛을 좀 보여줄 때가 되었지요.”배준형은 정왕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아버지, 할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유지영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정왕은 미간을 찌푸렸고, 노태비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안 된다! 내가 이러고 지낸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리 급할 것 없다. 오히려 경성의 시국이 언제 변할지 모르니 너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정왕비에게 말했다.“그 계집애의 말을 그대로 담씨 가문에 전하거라. 준형이의 앞길이 앞으로 3년이나 막힌다면, 그쪽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게다.”그러자 정왕비가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담씨 노부인께서 편찮으시다니 장차 사돈이 될 사람으로서 문병을 가봐야겠습니다.”담씨 가문과 다시 혼약을 정한 것은 최근 배준형이 약혼녀를 바꾼 일로 세간의 시선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왕은 아들의 평판을 되돌리기 위해 먼저 태후를 찾아가 담시령을 며느리로 맞이하겠다고 청했고, 양가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정왕부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이었다.“너는 네 어머니와 함께 가서 시령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거라. 내 기억에 그 아이는 예전부터 너를 연모해 왔다.”정왕은 배준형을 바라보며 간곡히 말했다.“네 신분에 훗날 첩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선주가 복덩이라고는 하나, 어제 보니 행동거지가 경솔하더구나. 앞으로 집안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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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저택에 도착하니 역시나 한씨가 음침한 얼굴로 따지듯 묻기 시작했다.“듣자 하니 네가 정왕 세자에게 사찰로 들어가 네 어미를 위해 삼 년 동안 불공을 드려야 북명대사께 노태비의 치료를 부탁하겠다고 했다지?”오늘 정왕비가 집으로 왔을 때, 담시령은 병풍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분노에 사무쳤다. 그때 쌓인 분노가 유지영을 보자마자 터져 나온 것이었다.“태후께서 조금 예뻐해 주신다고 왕부의 세자를 그런 식으로 짓밟다니! 당장 가서 북명대사께 노태비를 치료해 달라고 해!”한씨도 옆에서 거들었다.“지영아, 참으로 무례한 요구를 했구나! 어찌 양갓집 규수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니?”유지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반박했다.“외숙모께서는 하나만 알고 속사정은 모르고 계세요. 제가 세자의 부탁을 거절한 건 우리 할머니의 건강도 좋지 않아서, 나중에 북명대사께 부탁드릴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서는 지금까지 저를 길러주신 분인데, 제가 왜 아무 연고도 없는 노태비를 위해 그 기회를 써야 하나요?”“게다가 그날 외숙모께서도 저와 정왕부는 아무 연고도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한씨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날 밤 홧김에 유선주에게 했던 말이 이렇게 되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난 네 언니야!”“언니가 우리 할머니보다 중요하단 말인가요?”담시령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유지영이 되물었다.담시령은 얼마나 화가 난 건지 얼굴마저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일단 가서 북명대사께 부탁을 드리고, 나중에 유씨 노부인께서 편찮아지시면 그때 다시 방법을 생각해 봐도 되잖니?”“언니,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언니가 뭐라고 했는지 잊으셨나요? 북명대사는 황족의 부탁도 내키지 않으면 거절하는 분이에요. 외할머니도 십여 년 동안 병으로 고생하셨지만 이제야 겨우 태후마마께서 나서주셔서 북명대사를 모셔올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또 도와주신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요?”유지영은 담담한 어투로 맞섰다.담시령은 화가 나 이를 갈았다.경성에 의원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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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담씨 노부인은 화도 나고 유지영이 안타까워서 울먹였다.“지영아, 네 외삼촌은 경성에 없지만 이미 사람을 보내 네 사정을 전했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리 치료 같은 건 받지 않는 건데, 할미가 경솔했어.”유지영은 가슴이 먹먹해져 고개를 저었다.“외할머니, 저도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니, 이번 일은 제가 직접 해결할 수 있어요. 나중에 다리가 나으시면 저와 함께 산에도 가고 산책도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약속은 지켜주셔야지요!”담씨 노부인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외할머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외할머니께서는 그저 요양에만 신경 쓰시면 돼요.”자신만만한 유지영을 보고 있자니, 담씨 노부인은 그저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었다.복성당을 나오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담시령이 재촉했다.“마차는 준비해 두었으니 당장 가서 북명대사를 찾아.”말투에서는 더는 기다리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정왕부에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담시령을 보며, 유지영은 그저 웃음만 나왔다.어쩜 이렇게 유선주와 똑같을까.“언니, 정말 제가 북명대사를 찾아가길 바라나요?”유지영의 물음에 담시령은 불쾌한 얼굴로 재촉했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기나 해!”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곧이어 덧붙였다.“나도 같이 갈게!”유지영은 실소를 터뜨렸다. 북명대사는 지금 궁에서 황제의 병을 돌보고 있었으니, 그녀는 곧바로 그러자고 했다.마차에 오르자 담시령이 입을 삐죽이며 빈정거렸다.“진작 이렇게 했으면 평판이 나빠질 일도 없었잖아. 멍청하기는.”궁에 도착하자, 유지영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고 상궁이 친히 마중을 나와 있었다. 담시령은 앞장서서 고 상궁에게 다가가 말했다.“고 상궁님, 북명대사를 만나러 왔습니다.”“그러신가요. 소인은 담 상서의 적장녀라 하여 예의를 아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만. 궁에 오셨으면 태후마마께 문안드리는 것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태후마마께서 아가씨의 혼사도 하사해 주셨는데 말입니다.”고 상궁의 말에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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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서 태후는 정왕비의 사정은 깔끔히 무시했다.그렇게 네 사람은 자녕궁 문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담시령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한 태도였지만, 지금만큼은 할 수만 있다면 땅굴이라도 파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잠시 기다리는 사이, 담시령은 유지영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따가 태후마마께서 화를 내시면 말 잘해. 네가 굳이 나까지 끌고 온 거라고.”그녀는 모든 책임을 유지영에게 떠넘길 속셈이었다.하, 나를 바보로 아나?유지영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유지영, 어서 태후마마께 가서 이번 일은 준형이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거라.”정왕비가 유지영에게 눈치를 주었다.“이번에 정왕부가 네게 신세를 진 셈 치고, 나중에 꼭 갚겠다!”염치없는 인간이 또 있었네?그녀의 평판을 깎아내릴 때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단 말인가?유지영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한편, 배준형은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고 상궁을 따라 자녕궁에 도착한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과 깨진 찻잔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준형아.”정왕비가 울먹이며 아들을 불렀다.황실에 시집온 뒤로 늘 순탄하기만 했는데, 태후의 심기를 건드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자녕궁 밖에 무릎을 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배준형은 유지영을 힐끗 보고 이를 갈며 물었다.“이제 만족합니까, 군주?”유지영은 대꾸도 하지 않고, 시녀와 함께 밖으로 나온 태후에게 예를 올렸다.“태후마마를 뵈옵니다.”자색 궁복을 입고 머리에는 화려한 진주 비녀를 꽂은 태후가 위엄 있는 모습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사람들이 일제히 예를 올렸지만, 서 태후는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준형, 네 아버지가 너 대신 담 상서의 장녀와 혼인을 청해 네 평판을 되돌리고자 했다. 허나 너는 내가 내린 혼사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구나?”그 압박감에 배준형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답했다.“제가 어찌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겠습니까.”“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서 태후는 손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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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유지영은 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렸는데, 노태비가 잔뜩 초조한 얼굴로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자색 궁복을 입고 얼굴에는 두껍게 분을 발랐지만, 깊게 팬 주름까지 가릴 수는 없었다.그에 비하면 서 태후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신첩, 태후마마께 인사 올립니다.”노태비가 허리를 숙이며 예를 행했다.서 태후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노태비를 아래위로 훑었다.“숙태비, 자네가 궁을 나갈 때만 해도 그리 나이가 많지는 않았는데, 굳이 북명대사의 치료가 왜 필요한가 했네.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이 늙었군.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그 말은 노태비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다.선대 황제가 붕어하기 전, 숙비였던 노태비는 황후인 서 태후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그래서 지금도 서 태후는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노태비는 오히려 할머니뻘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사람은 언젠가 나이가 드는 법이지요.”노태비는 질투 어린 눈으로 서 태후의 얼굴을 노려보며 답했다.서 태후는 더 이상 이 늙은이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그래도 할머니라 손자가 아까운 줄은 아나 보군. 병세를 숨기더라도 준형이가 경성을 떠나는 건 끝까지 반대하다니.”그 말을 들은 노태비는 바닥에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마마. 신첩은 아직 북명대사의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몸이 나쁘지는 않습니다.”서 태후는 유지영을 향해 손짓했다. 유지영은 앞으로 나가 노태비 앞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멀리서 보면 노태비가 유지영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노태비는 또 한 번 화가 치밀어 이를 악물었다.“지영이는 효심이 지극한데, 어떤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서 태후는 유씨 노부인을 힐끗 보고 말을 이었다.“이만 돌아가서 기다리거라. 정왕부에서 네게 만족할 만한 답변과 사죄를 하도록 내가 처리하마.”유지영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떠나기 전, 서 태후는 담시령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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