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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을 거슬러의 모든 챕터: 챕터 301 - 챕터 310

324 챕터

제301화

유지영이 경계하는 인물은 정왕이 아니라 바로 배준형이었다!배준형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전생의 기억을 가진 회귀자였다. 회귀한 이래로 연달아 쓴맛을 본 이상, 그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리 없었다. 전생의 그녀는 배준형보다 일찍 죽었기에 그가 아는 것이 훨씬 많았다.하지만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그 서생들의 신분과 정체를 낱낱이 캐보거라." 그녀가 명했다.정왕이 아무런 까닭 없이 서생을 셋씩이나 저택에 거둘 리 없었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동금은 조용히 명을 받들었다.유지영이 문득 인주 표국의 진척 상황을 묻자, 동금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아저씨들 모두 세자비 마마께 깊이 감사하고 계세요. 지난달에는 항주로 가는 첫 임무도 맡았습니다. 차츰 수익도 늘어날 것입니다.""그건 참 잘된 일이구나." 유지영도 동금과 사람들의 성취에 진심으로 기뻐했다.그때 밖에서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쾅쾅쾅!"유지영, 당장 나오지 못해!"민경주의 목소리였다.유지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눈치 빠른 운청이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이내 짤막한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밖이 다시 조용해졌다.잠시 후 돌아온 운청이 보고했다."둘째 부인께서 예물이 스무 함밖에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마마께서 중간에서 농간을 부린 줄 착각하여 따지러 왔더군요. 소인이 마마를 대신해 따끔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민경주가 무장 가문 출신이라 평범한 규수들보다 쌈박질에 능하다 해도, 실전에서 피 튀기며 훈련 받은 운청과 운민 자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유지영은 피식 코웃음을 쳤다."지난번 낙마 사고 이후에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구나."운청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마마, 안심하십시오. 마마의 허락 없이는 둘째 부인은 방비원 문턱도 넘지 못할 것입니다."지난번 궁중 연회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해 놓고, 혼례날까지도 소란을 피우다니 정녕 눈에 뵈는 게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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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이날 밤 배현준은 왕부로 돌아오지 않았다.다음 날, 새신부가 어른들께 차를 올릴 시간이 돌아왔다.유지영이 간밤의 일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리자, 동금이 말했다."아침 일찍부터 경왕비 신변의 소월이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차를 올리는 자리에 세자비 마마께서도 꼭 참석하셔야 한다면서요. 어젯밤 왕비 마마께서 둘째 부인을 단단히 혼내셨으니 앞으로는 마마를 윗사람으로 깍듯하게 모실 거라 하더군요.""가자."대청에 도착해 보니, 경왕과 경왕비를 비롯해 임씨 가문 친척 몇몇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전하, 왕비 마마."유지영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경왕은 무심하게 고개만 끄덕였다.경왕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경주가 성격이 불같고 입이 거칠어서 그렇지,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란다. 내가 이미 호되게 꾸짖었으니 네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다오.""어젯밤 저는 동서를 보지도 못했는걸요." 유지영은 덤덤히 답했다.방비원 문고리조차 잡아보지 못하고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는데, 굳이 마음에 담아둘 이유는 없었다.마침 그때 배영준과 민경주가 안으로 들어왔다.배영준은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여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고, 안색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곁에 선 민경주 역시 마찬가지였다.경왕비에게 거듭 질책을 받은 탓인지, 오늘은 감히 헛소리를 늘어놓지는 않았다.이윽고 민경주가 유지영에게 차를 올릴 차례가 되었다.민경주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형님, 차를 드시지요."유지영이 손을 뻗자, 그녀는 찻잔을 건네며 입가에 싸늘한 비웃음을 머금더니 일부러 손을 슥 놔버렸다.하지만 민경주의 예상과 달리, 운청이 재빨리 다가와 바닥에 떨어지려던 찻잔을 낚아채듯 받아냈다. 그러고는 찻잔을 유지영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넸다."지난번에 낙마 사고로 다쳤다더니, 아직 부상이 채 낫지 않은 모양이군."유지영은 찻잔을 받아 마시지도 않고 탁자에 내려놓으며 싸늘히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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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경왕비는 골치가 아픈 듯 미간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민경주 그 멍청한 것…."눈치가 없고 어리석어 배현준의 짝으로 점찍은 아이였다.경왕비 입장에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어머니, 오늘 인사 때 형수님이 낙마 사고를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혹여 그 일이 형수님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요? 예전에 경주가 형수님 심기를 거스른 적도 있으니까 말입니다."배영준이 의구심을 드러냈다.경왕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제 와서 진실이 무엇이든 중요치 않다. 들쑤셔 본들 확실한 물증도 없으니, 지금은 꾹 참는 수밖에."한편, 방비원.유지영은 장부를 훑어본 뒤, 시종들을 시켜 배현준이 입을 의복을 몇 벌 지으라고 일렀다. 옷감과 수놓을 문양은 그녀가 손수 정성들여서 골랐다.경왕비가 민경주를 사당에 가두고 무릎을 꿇게 하는 벌을 내렸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녀는 얘기를 듣고 그저 가볍게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세자비 마마, 둘째 나으리께서 풀려나셨다 합니다. 그리고 선주 아가씨는 인주로 내려가더니 옥패를 들고 전당포를 찾아가 자그마치 십만 냥의 은표를 받아갔다고 합니다."하나는 안 좋은 소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좋은 소식이었다."유선주를 잡아 목을 쳐서 가져오거라.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유지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이 일은 운민이 맡기로 했다.명을 받은 운민은 즉시 길을 떠났다.유정혁이 옥사에서 풀려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성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일단 감시만 하거라. 참, 국공부에도 은밀히 소식을 전해라. 유정혁이 풀려났다는 사실을 굳이 할머니께 숨길 필요 없다."그녀는 이미 시집을 온 몸이라 더 이상 눈치를 보거나 거리낄 것이 없었다.유씨 노부인이 국공부에 버젓이 남아 있다면 훗날 필히 화근이 될 것이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썩은 뿌리까지 완벽하게 제거하는 편이 나았다.운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받들었다.한편, 유정혁은 너덜너덜한 옷차림에 뼈만 남은 초췌한 모습으로 옥사에서 풀려났다.석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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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그날 저녁.공무를 끝내고 돌아오던 유정남은 대문 앞에서 가로막혔다."형님!"유정혁은 여전히 너덜너덜한 옷차림에 수염이 덥수룩한 꼴로 유정남의 앞을 가로막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예전에는 제가 백번 잘못했습니다! 지영이를 소홀히 대하고, 송씨가 지영이를 구박하는 것을 방관했습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부디 형제간의 정을 보아서라도 정랑이와 원랑이에게 기회를 주십시오.""그 아이들은 아직 어립니다. 저와 함께 고생시킬 수는 없습니다.""형님께서 거두어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유정혁은 바닥이 울릴 정도로 머리를 찧으며 큰절을 올렸다.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정남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한 시진 전, 유지영이 일부러 그를 찾아와 서옥혜의 진짜 정체를 알려주고 갔다.서옥혜는 전사한 부하의 부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경성 토박이로, 예전부터 유정혁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명백한 증거가 바로 허옥혜의 호적이었다. 호적을 위조해 준 이가 다름 아닌 유정혁이었고, 그 위에는 유정혁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유력한 증거 앞에 유정남은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유지영은 돌아가기 전, 한마디 덧붙였다."둘째 삼촌은 교활한 사람입니다. 분명 겉으로 동정을 구걸하며 아버지께 정랑이와 원랑이를 거두어달라 매달릴 것입니다. 그 모든 건 그저 국공부로 들어오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입니다.""그러니 아버지, 절대 그들의 얄팍한 수에 속아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역시나 유지영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유정남은 복잡한 심정으로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후, 그는 장남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피땀을 흘렸다.그런데 동생인 유정혁은 뒤에서 그를 사지로 몰아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형님?"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유정혁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유정남을 바라보았다.그러나 그 순간 마주친 상대의 싸늘한 시선에 그는 멈칫하고 말았다.이렇게까지 매달리는데도 형님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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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유씨 노부인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호통쳤다."지영이가 예전에 홀대 좀 받았다고, 형제의 처지를 모른 척하며 모질게 구는 것이냐! 정녕 내가 화병으로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다른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오늘 당장 둘째와 아이들을 국공부에 들여라!"유정혁도 옆에서 거들었다."형님,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눈물 콧물 쥐여짜며 매달리는 유정혁을 보고도 유정남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오히려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 뿐이었다."그만하십시오!"그는 목소리를 높여 두 사람의 말을 끊어버렸다.유씨 노부인의 질책이 순간 멎었다. 그제야 노부인은 장남의 얼굴에 짙게 깔린 싸늘한 분노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둘째가 국공부로 들어올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아무리 억지를 부리셔도 제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년 뒤 정랑이가 과거를 치러야 하는데, 혹여 상을 치르느라 과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 가서는 그 아이의 박복함을 탓할 수밖에요."뼈 있는 말에 유씨 노부인은 아연실색했다."너, 너 정녕 이 어미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단 말이냐?"유정남은 냉정한 얼굴로 답했다."어머니와 저 사이의 모자의 정은, 어머니께서 지영이를 이용하려 하셨을 때 이미 사라졌습니다!""큰애야…."유씨 노부인은 망연자실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유정남은 유정혁을 손가락질하며 쏘아붙였다."서옥혜에 관한 일도 내가 일일이 다 까발려야 하겠느냐?"갑작스레 서옥혜의 이름이 거론되자 유정혁은 사색이 되었다. 그는 황급히 변명하려고 입을 열었다."혀, 형님,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신 듯합니다."유정남은 쥐고 있던 호적 증명서를 유정혁의 얼굴에 던졌다.문서를 확인한 유정혁은 숨이 턱 막히며 종이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유정남은 다시 유씨 노부인에게 시선을 돌렸다."어머니께서 둘째가 그리도 안쓰러우시다면, 함께 거처를 옮기셔도 좋습니다. 소자는 두말하지 않겠습니다."한참을 머뭇거리던 유씨 노부인은 이를 꽉 깨물었다."그래, 나가마! 너처럼 매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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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유씨 노부인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챙겨 유정혁의 거처로 갔다.작은 마당에 방 두 개짜리 가옥은 본디 비좁고 궁핍하여 네 사람이 머물기에도 벅찼고 짐을 부릴 공간조차 마땅치 않았다.유정랑과 유원랑은 노부인을 보자마자 달려와서 품에 안겼다."할머니!"그간 고생을 한 탓에 두 아이는 까맣게 타고 바짝 말라 있었다.그 모습을 본 유씨 노부인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눈물을 쏟으며 아이들을 끌어안았다."오냐, 내 새끼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이 순간 유정남을 향한 유씨 노부인의 불만과 원망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어머니,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선 넓은 집부터 새로 구해야겠습니다."유정혁이 제안했다.유씨 노부인도 주위를 둘러보니 짐을 풀 곳조차 없어, 즉시 사람을 시켜 집을 알아보게 했다.하지만 날이 저물어가는 탓에 마땅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얼마 안 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제법 널찍한 저택 하나를 오천 냥을 주고 매입할 수 있었다.유씨 노부인은 귀하게 쟁여둔 사유 재산을 꺼내며 속이 쓰렸다."할머니, 제가 앞으로 더욱 학문에 매진하여 기필코 호강시켜 드리겠습니다."유정랑은 노부인의 소매를 잡고 호언장담했다.예전부터 유정랑을 유독 아꼈던 유씨 노부인은 그 말을 듣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오냐! 우리 정랑이가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낼 날만 기다리마!"밤 늦게까지 바쁘게 돌아친 끝에 둘째네는 겨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데려온 시종이 턱없이 부족해서 안팎으로 살림을 장만하고 청소하는 일이 여간 고된 것이 아니었다. 자연히 그들의 입에서는 불만 소리가 터져 나왔다.연일 저택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구비하느라 적지 않은 은자가 빠져나갔다.새 저택의 모든 살림은 오롯이 유씨 노부인의 사유 재산에 기대고 있었는데, 불과 며칠 만에 만 냥이 훌쩍 넘는 은자가 사라졌다.유씨 노부인도 서서히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한창 자랄 나이라 먹고 마시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었고, 입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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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유지영은 고개를 들어 그쪽을 흘끗 보고는, 의아한 얼굴로 부관에게 물었다."저 사람은 누구인가?""세자비 마마, 어제 오후 제주에서 당도한 방 공자입니다. 국공 나으리의 오랜 벗의 아드님으로, 이 년 뒤에 있을 과거를 준비하고자 국공부에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부관이 대답했다.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사내가 다가와 유지영을 향해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었다."세자비 마마를 뵙습니다."예의가 바르고 올곧은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이 결코 반감을 살 만한 인상이 아니었다.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로 대신했다.반 시진쯤 기다리자 유정남이 돌아왔다.그녀는 국공부에 머물고 있는 사람에 대해 물었다.유정남이 답했다."저 아이의 아버지는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벗이었다. 안타깝게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저 아이만 홀로 남았지. 아비가 임종 직전 무인의 길을 버리고 문인의 길을 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저 녀석은 내 손에서 자라다시피 했는데 품행이 아주 바른 아이란다."유지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묻지 않고 유씨 노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유정남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지영아, 이 아비는 너와 네 어미에게 참으로 많은 빚을 졌다. 안심하거라. 이제 절대 네 할머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결코 마음 약해지지 않으리라 단단히 결심을 굳혔다.국공부를 떠나기 전, 방 공자가 불쑥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더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조금 전 부관에게 듣자니, 경세자와 혼인하셨다고 들었습니다."유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경세자는 제 은인이십니다. 소주에 있을 때 제 목숨을 구해주셨지요." 방온이 조심스레 말했다. "세자비 마마께 꼭 알려드려야 할 일이 있어 이리 결례를 무릅썼습니다."유지영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몇 달 전, 정세자께서 저를 찾아와 제가 이 년 뒤에 반드시 장원급제할 것이라며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라고 하였습니다."방온은 유지영이 믿지 않을까 염려되어 품에서 옥패를 꺼내 보여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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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시녀가 황급히 지원을 청하러 갔다.민경주가 유지영에게 채찍질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경왕비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방금 뭐라고 하였느냐?""둘째 부인께서 정원에서 채찍 연습을 하시다가 그만 실수로 세자비 마마를 치고 말았습니다."민경주의 시녀이기에 당연히 진실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고했다.경왕비는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쏘아붙였다."정말이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구나!"그녀가 급히 정원으로 달려갔을 때 유지영은 이미 자리를 뜨고 민경주만 남아 있었다."세자비는 어디 있느냐?" 경왕비가 다그치며 물었다.민경주는 얄밉게 입을 삐죽였다."어머님, 형님 눈치 보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겁나서 도망치더군요.""도망이라?"경왕비는 이가 갈렸다. 영지에 머물던 시절에는 민경주가 이 정도로 어리석은 줄 미처 몰랐다.민경주는 의기양양하게 손에 쥔 채찍을 흔들어 보이며 입꼬리를 올렸다.짝!경왕비의 손이 가차 없이 민경주의 뺨을 내리쳤다."지금 당장 세자비에게 가서 사죄하거라!"매서운 손찌검에 민경주의 하얀 뺨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항변했다."어머님, 형님이 세자비랍시고 위세를 부리기에, 저는 단단히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어 앞으로는 꼬리를 내리고 살게 하려는 것뿐이었습니다.""입 닥치지 못할까!"경왕비의 표정이 무섭게 차가워졌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민경주의 목을 조르고 싶은 심정이었다."당장 방비원으로 가서 사죄하지 못할까!"서늘하게 가라앉은 경왕비의 눈빛에 민경주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그러나 속으로는 시어머니를 은근히 경멸하고 있었다.'이리 위엄이 안 서니 유지영이 기어오르지!'한편, 방비원.동금은 조심스레 소매를 걷어올렸다.피가 낭자한 상처를 보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헉 하고 가쁜 숨을 들이켰다.길게 그어진 채찍 자국은 살점이 짓물러 있었다.“세상에! 채찍에 상처를 썩게 만드는 혼단즙을 발라놓았습니다!”유지영이 시선을 내려보았더니 역시나 상처 주변의 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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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경왕비가 자신을 편들지 않자 민경주는 미간을 찌푸렸다."어머님, 저는 다 어머님의 위신을 세워드리려 한 것인데…."애초에 경왕비는 민경주의 말에 대꾸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 유지영이 오해할까 두려워 황급히 해명했다."네가 믿든 안 믿든, 이 일은 나와 무관하다.""어머님! 대체 왜 그러십니까? 어찌 형님에게 변명을 하십니까! 어머님은 엄연한 윗사람이십니다!"민경주는 속으로 어리석다며 욕을 퍼부었다. 명색이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다니, 밖으로 소문이라도 나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유지영은 무심하게 대꾸했다."문초가 끝나면 자연스레 밝혀질 일입니다."진실 여부는 단지 아니라고 해서 가려지는 것이 아니었다.마비되었던 왼팔에서 점차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며, 매섭게 민경주를 노려보았다.잠시 후, 정원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민경주는 그것이 자신의 시녀가 지르는 비명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순간 머리털이 곤두섰다. 처절한 비명 소리에 분노한 그녀는 당장 밖으로 뛰쳐나갔다.이번에는 호위들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정원에서는 두 시녀가 긴 형틀에 엎드려 있었다. 호위들이 묵직한 곤장을 연거푸 내리치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두 시녀는 민경주를 발견하고 다급히 살려달라 애원했다."부인, 제발 살려주십시오!""당장 그만두지 못할까!"민경주가 다가가려 했으나, 호위들이 즉각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꼬박 반 시진 동안 매질이 이어졌다. 결국 시녀 중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유지영! 감히 내 시녀를 쳐죽이다니!"민경주는 독기를 품고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마침 한 호위가 민경주의 처소에 숨겨져 있던 채찍을 찾아 들고 왔다. 채찍을 눈앞에 들이밀자, 기세등등하던 민경주는 순식간에 풀이 죽었다."세자비 마마, 의원의 확인을 마친 결과 이 채찍에 홍단즙이 묻어 있었습니다." 호위가 고했다.민경주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채찍을 준비하여 사람들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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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모르는 자가 보았다면 유지영이 경왕비의 적친 며느리인 줄 알았을 법한 태도였다.유지영은 의구심이 들었다. 민경주는 경왕비가 손수 거둔 사람이고, 처음 얼굴을 내비쳤을 때만 해도 무척 흡족해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은 이토록 싸늘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지영아, 내 당장 입궁하여 태후 마마께 네 억울함을 풀어달라 청하마!"경왕비는 왠지 기다렸다는 듯이 민경주가 불효하다며 연신 비난을 퍼부었다.유지영은 경왕비의 의도를 대략 눈치채고 손을 뻗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왕비 마마, 제가 이미 동서를 훈계하였으니 입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그게 무슨 소리냐. 너는 왕부의 세자비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불경한 짓을 저질렀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지."경왕비는 기어코 입궁을 고집했다.유지영은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태후가 이 상처를 알게 되면 절대 민경주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경왕비가 이대로 입궁하여 소문이 퍼진다면, 유지영 역시 별것도 아닌 일에 고자질이나 하는 옹졸한 자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게다가 민경주는 배현준과 잠깐 혼담이 오갔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여차여차 배영준에게 시집을 갔고 부상을 당해 회임조차 불가능해졌다.배영준의 혼례를 준비할 때 경왕비가 유독 건성으로 대했던 것을 고려해 봤을 때, 유지영은 금세 상황을 간파했다.경왕비는 지금 유지영의 손을 빌려 민경주를 내쫓을 작정인 것이다."왕비 마마, 집안의 치부를 밖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 일은 이쯤에서 덮으시지요. 어찌 되었든 동서는 왕비께서 친히 가르쳐 키운 아이가 아닙니까. 오늘 일에 왕비께서 관여하지 않으셨음을 믿습니다. 무고한 사람까지 끌어들일 생각은 없습니다."유지영은 손을 들어 경왕비를 단호히 제지했다.친히 가르쳤다는 말에 경왕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표정이 차갑게 굳어 버렸다."동서가 철이 없으니 예법은 천천히 가르치면 됩니다. 형님으로서 그 정도 아량은 있습니다."유지영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굳이 모든 걸 보이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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