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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321 - Chapter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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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엽씨 가문 말입니다."유지영은 숨기지 않고 의혹을 털어놓았다."쉰 살이 넘은 엽 가주가 유지란에게 장가를 든다 합니다. 오늘 셋째 삼촌네는 둘째 삼촌네에 물건을 잔뜩 보냈지요. 며칠 전 정왕부의 구멍을 도와준 것도 엽씨 집안과 관련이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습니다."배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유지영은 엽씨 집안에 대해 알아낸 사실을 자세히 말했다."엽씨 집안이 그들 편으로 넘어간다면, 정왕부에 돈주머니를 내어주는 꼴이 아니겠습니까?"배현준은 실소를 터뜨렸다."이 일은 내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마. 엽씨 가문은 수년간 쌓아온 인맥이 적지 않으니,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는 없다. 서두를 건 없어."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이미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배불리 식사를 마친 뒤, 배현준은 늘 그렇듯 유지영의 손을 잡고 뜰을 거닐며 말했다."요 며칠 훈련이 잦아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구나.""괜찮습니다."유지영은 그의 거친 손바닥을 꼭 잡아주었다.손에 박인 굳은살이 뚜렷하게 느껴졌다."지영이 널 부인으로 맞이한 건 내게 있어 참으로 큰 복이다."아무리 피곤해도 그는 늘 왕부로 돌아와 그녀를 보고 싶었다. 이처럼 좋은 처자를 배필로 맞이했다는 사실이 때로는 꿈만 같았다.유지영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부군께선 일에 집중하십시오. 왕부에는 제 곁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고, 정 안 되면 아버지를 찾아가거나 입궁하면 됩니다.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배현준에게 시집온 후, 그녀는 겉보기에 실없고 놀음을 좋아할 것 같던 소년이 점차 침착하고 지혜로우며 교양을 갖춘 사내로 변모하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그는 언제나 그녀의 의견에 화답해 주었다.유지영은 그것만으로 이미 만족스러웠다.배현준은 그녀를 품에 안고 고개를 숙여 뺨에 입을 맞췄다. 유지영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보는 눈이 있습니다."배현준은 가볍게 웃었다."상관없다."다음 날 동이 틀 무렵.유지영이 눈을 떴을 때 곁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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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유지영은 두 손을 합장한 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지영아, 네가 듣고 있다는 걸 알아.""우리는 한때 부부의 연을 맺었던 사이가 아니냐."그 한마디 한마디가 유지영의 귓가에 끔찍한 소음처럼 들렸다.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증오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곳에 계신 부처님 앞에서, 세자께서는 방금 한 말에 한 치의 사심도 없으며 오직 죄책감 때문이라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배준형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세 손가락을 치켜들었다."나 배준형은....""만약 한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정왕부 전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당신이 원하는 바를 절대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맹세할 수 있나요?"유지영은 차갑게 덧붙였다.배준형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세자가 후회하는 건 지금 정왕부가 몰락했기 때문이지요. 나를 이용해 다시 일어서고 싶을 뿐이면서 어찌 이리 가증스럽게 구십니까."유지영이 정곡을 찔렀다.배준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배현준이 널 정실로 맞이한 게, 진심으로 널 연모해서인 줄 아느냐?"유지영은 코웃음을 쳤다."당신이 감히 내 부군과 비교될 자격이나 있습니까?"그 말에 배준형은 순식간에 분노를 터뜨렸다. 그가 유지영을 움켜잡을 기세로 손을 뻗자, 운청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유지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배준형을 내려다보았다. 올라간 입꼬리에는 경멸과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지 않았다면 호되게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그녀는 조용히 불당을 나섰다.배준형의 시종이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잠시 후, 배준형이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왔다. 유지영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그의 눈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다."이 일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만약 네 짓이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말을 마친 그는 소매를 떨치며 다급히 사라졌다.그때 운민이 다가와 유지영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엽 가주가 자객의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유지영은 안도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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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상단을 운영하는 곳이 엽씨 가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윤도 하고 있지. 엽 가주와는 경쟁하는 사이라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엽 가주 주변의 호위 무사 중에는 당윤의 사람이 심어져 있으니, 엽 가주를 속여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다소 위험한 일이긴 했으나, 단번에 성공을 거두었다.이후의 일은 배준형이 사건을 파헤칠 의지가 있는지에 달렸다."그럼 어제는 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유지영이 물었다.배현준이 말했다."성공을 확신할 수 없었기에, 미리 말하면 네가 걱정할까 봐 그랬다."이제 엽 가주가 죽었으니 혼사는 당연히 물거품이 되었다. 엽씨 가문이 계속해서 기꺼이 정왕부의 돈주머니 노릇을 할지는 배준형의 능력에 달린 셈이었다."엽씨 집안의 두 딸은 이미 시집을 갔으니, 그들을 다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면 꽤나 애를 먹을 테지."배현준은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한 손에 딱 들어오는 것이 만지면 기분이 좋았다.유지영도 그런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잠시 후 평안이 들어와 전갈을 올렸다. 임태비 일가족이 경성에 당도했으며, 반 시진 뒤면 왕부에 도착한다는 소식이었다."그렇게 빨리?"유지영은 내심 놀랐다. 영지에서 경성까지는 적어도 칠팔 일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는데, 이제 겨우 엿새째였다."오는 내내 말채찍을 휘두르며 쉬지 않고 달려왔을 테니 빠를 수밖에."배현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도착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배현준은 그녀가 요기할 수 있게 다과를 내오라 명했다. 유지영은 그의 권유를 받아들여 떡 몇 조각과 함께 차를 마셨다.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임태비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경왕은 모든 식구들에게 정원으로 나가 영접하라는 명을 내렸다.정문 앞.아랫사람들이 모두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 몇 대가 문 앞에 멈춰 섰다. 시종이 마차 아래에 발판을 놓자 휘장이 걷혔다.임태비는 여러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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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배현준은 유지영과 함께 방비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의 손목에서 옥팔찌를 빼버렸다.그러고는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양 손수건을 꺼내어 손목을 박박 닦았다."앞으로 태비가 네게 무엇을 주든 경계해야 한다. 그곳에 가면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 말거라."배현준의 당부에 유지영은 조심스레 물었다."부군은 임태비를 무척 싫어하시는 듯합니다."단지 혼례에 참석하지 않은 일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어머니께서 나를 회임하셨을 때, 경왕에게 첩을 들인 자가 바로 저 여자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억지로 문안 인사를 오게 하여 어머니를 괴롭혔지."배현준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폐하께 영지로 내려가겠다고 청한 것도 저 여자였다. 그러면서 나는 볼모로 경성에 남겨두었지."그 말을 들으니 유지영은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배현준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걱정 마십시오. 절대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습니다."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밖에서 평안이 들어와 전갈을 올렸다."경조 판사께서 급히 세자를 찾으십니다."유지영은 흠칫 놀랐다."아마도 엽 가주 암살 사건 때문일 거다.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할 것 없다. 오늘 밤은 돌아오지 못할 테니 푹 쉬거라."배현준은 유지영을 품에 안으며 다독였다."예."배현준이 자리를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본채에서 사람을 보내 오늘 밤 가족 연회가 열린다고 전해왔다.유지영은 문득 조원금을 떠올렸다."가족 연회인데 이모님이 빠져서야 되겠느냐. 가서 이모님도 모셔 오너라.""예."가족 연회는 총 세 상으로 차려졌다.양정화와 방현숙도 모두 돌아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그들은 유지영을 보자마자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그 광경을 본 유지영은 웃음이 나왔다.임태비가 무슨 황제도 아닌데, 왜 저렇게들 기고만장할까.안으로 들어선 유지영은 먼저 나서서 소개를 올렸다."태비 마마, 이쪽은 제 이모님이십니다. 오늘부터 운영원에 머물게 되셨습니다."조원금이 모습을 드러내자, 임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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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조원금이 말했다."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조씨 집안은 한성으로 좌천되었고 부모님은 매일 눈물로 지새우셨습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경성에 홀로 남은 현준이 걱정에 두 분께서 얼마나 속을 썩이셨는지 모릅니다. 다행히 하늘에 계신 언니가 굽어살폈는지 현준이는 무사히 자라 이렇게 참한 처자를 정실로 맞이했으니, 언니도 구천에서 편히 눈을 감았을 것입니다."유지영은 시선을 내리깔며 애써 웃음을 참았다.조원금은 말끝마다 전 왕비를 들먹이며 임태비의 아픈 곳을 찔렀고, 배현준을 버려두고 자기들만 호사를 누리러 떠난 이들의 비정함을 꼬집고 있었다.제삼자가 나서면 통하지 않을 말도, 조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가 하니 설득력이 있었다.경왕비의 손이 파르르 떨었다.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유지영을 쏘아보며 물었다."지영아, 왕부에 친척이 오셨으면 진작에 말해주지 그랬느냐?"유지영이 입을 열려는데 조원금이 그녀의 팔을 지그시 잡았다."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 제가 입단속을 시켰습니다. 마침 태비 마마께서 돌아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이 아이는 효심이 지극하여 제 뜻을 거스르지 못했을 뿐입니다. 오늘 태비 마마도 오셨으니 당연히 아랫사람인 제가 먼저 웃어른을 뵈러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조원금은 유지영에게 입을 열 틈도 주지 않고 철저히 감쌌다.경왕비는 원망 섞인 투로 말했다."지영아, 그래도 언질을 주었어야지. 자칫 이모님을 홀대하여 우리 왕부가 예의를 모른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렵구나."조원금은 웃음을 터뜨렸다."왕비 마마, 지영이를 탓하지 마시지요. 제가 오던 날 마침 장부를 대조하고 계시더군요. 형부께서 공용 장부에서 십칠만 냥을 빼돌려 친척들에게 저택을 사주지 않았습니까. 행여 제가 불쑥 나서면 무안하실까 봐 참은 것입니다."불과 며칠 전에 벌어진 낯부끄러운 일을 거침없이 사람들 앞에 까발렸다.그 은자로 혜택을 본 임씨 집안 사람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방금 전까지 경왕비를 거들려던 자들조차 매서운 눈으로 경왕비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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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조원금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지영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임씨 집안의 친척 중 한 사람이 길을 막아섰다."오늘은 가족 연회이고 태비 마마께서 아직 자리에 계시는데, 손주며느리 된 자가 먼저 가버리다니! 이게 무슨 예의 없는 짓이오?"유지영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뒤에 앉은 양정화와 방현숙 등은 얌전히 자리를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누구시지요?"조원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나는 태비 마마의 조카...."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원금은 코웃음을 쳤다."이곳은 경왕부고, 주인은 임씨가 아니라 배씨입니다. 주객을 전도하지 마시지요. 방금 전 태비 마마께서도 지영이가 후사를 위해 몸을 챙겨야 한다며 배려해 주셨는데, 그쪽이 뭐라고 내 앞을 가로막는 겁니까?"대놓고 면박을 듣자, 그 여인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가게 내버려 두거라!"임 태비가 음침한 목소리로 명했다.임 태비가 노여움을 드러내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사람들은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머쓱하게 길을 내어주었다.조원금은 유지영을 이끌고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두 사람이 떠난 후, 연회장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임 태비는 다시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오늘은 가족 연회이니 다들 너무 격식 차릴 것 없다."그녀는 말을 마치고 젓가락을 들었다.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번졌지만, 경왕비만이 임 태비가 크게 분노했다는 것을 알았다.연회의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았다. 다들 입맛이 없었기에 연회는 금방 끝이 났다.식사를 마친 뒤, 경왕과 경왕비는 임 태비를 부축하여 처소로 모셨다.사람들을 물린 후, 임 태비는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따져 물었다."저 이모라는 작자는 대체 어찌 된 일이냐?"경왕은 경왕비를 쳐다보았다.경왕비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저 사람이 언제 온 건지는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한성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겠습니다.""그럴 필요 없소. 얼굴이 전 왕비를 쏙 빼닮았으니 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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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동금과 홍주는 그녀가 씻고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왔다.반 시진쯤 지나 운청이 돌아왔다."관아에 갔을 때 평안이 밖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평안의 말로는, 누군가 사건 현장에서 세자의 영패를 발견했기 때문에 관아로 가 조사를 받으신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는 정 세자의 영패도 같이 떨어져 있었고, 현재 정 세자 역시 관아에 머물고 있습니다. 평안은 빠져나갈 방도가 있으니 세자비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유지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책을 덮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잠결에 누군가 허리를 감싸 안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눈을 뜨자 목덜미 위로 따뜻한 숨결이 닿았다."조금 더 자거라."익숙한 향기를 맡은 유지영은 안심하며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부자리를 만져보니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유지영은 목소리를 높였다."동금아!"동금이 어린 시녀 몇 명을 데리고 들어와 세숫물을 올리며 말했다."세자께서는 반 시진 전에 군영으로 가셨습니다.""간밤의 일이 꿈인 줄 알았는데."유지영은 미간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어젯밤 관아에서 있었던 일을 물었다. 동금이 답했다."평안에게 물어보니, 경조 판사께서 조사 결과 이번 일은 세자와 무관하며, 오히려 정 세자와 연관이 있다고 했습니다.""그래?"유지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묵산마을 보물 도난 사건 당시, 폐하께서 정왕부에게 그 구멍을 메우라 명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누군가 정왕이 엽 가주를 찾아가 은밀히 협박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엽 가주가 거액의 재물을 정왕부에 빌려주었는데 정왕부에서는 발뺌을 했다는군요. 관아에서는 지금 그 일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 합니다."유지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배현준은 정왕부와 엽씨 집안을 완전히 갈라서게 만들 생각인 것이다."유지란을 감시하거라. 방도를 찾아내어 그 아이가 정신을 차리고 진실을 알게 만들어야 한다."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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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두 태의가 임 태비의 진맥을 보러 왔을 때 임 태비는 이를 거부할 생각이었으나, 태의들이 서 태후의 명이라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맥을 짚어본 두 태의는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굳이 사실을 폭로하지 않고 보신 탕약 몇 첩만 처방한 뒤 물러갔다.사람들이 물러가자 경왕비가 말했다."어머니, 어제 막 경성에 당도하셨는데 오늘 곧바로 태후 마마께서 진맥을 보라 사람을 보내시다니, 참으로 공교롭지 않습니까."임 태비는 손목을 옷소매 안으로 거두고 자세를 꼿꼿이 고쳐 앉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들어 문밖의 하늘을 흘끗 바라보았다."벌써 십오 년이나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선황께서 왜 그 여자를 황후로 봉하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의 폐하도 마찬가지지. 멀쩡한 황장자를 두고 왜 유독 현준이만 편애하는지 모르겠다."임 태비가 보기에 황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이상했다. 속내를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경왕비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했다.아랫사람을 통해 소 상궁이 태의들과 함께 입궁했다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자, 경왕비는 미간을 찌푸렸다. 반면 임 태비의 안색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그 여자가 그리도 두렵더냐?""어머니, 태후 마마께서 사람에게 벌을 주시는 수단은 보통이 아닙니다."경왕비는 자녕궁 불당에서 몇 번 무릎을 꿇어본 적이 있었다. 그 고통은 곤장을 맞는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몇 번만 더 시달리면 무릎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예전 후궁에 있던 시절, 나와 그 여자는 약간의 친분이 있었다. 나를 아주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게다."임 태비가 무심하게 말했다.과거의 일에 대해 임 태비는 경왕비에게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오늘에서야 우연히 지나가듯 말을 흘렸다."그때 선황께서는 황후 자리를 두고 오랫동안 결정을 내리지 않으셨다. 그 자리 하나 때문에 수많은 비빈들이 수십 년간 피 터지게 싸웠거늘, 결국 갓 성년례를 치른 어린 계집의 차지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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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경왕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건양제는 경왕에게 호통쳤다."네가 감히 태후와 나를 기만해?""폐하, 신은...."경왕은 속이 타들어갔다. 태후가 이렇게 빨리 태의 두 명을 보내 진맥을 보게 할 줄은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임 태비가 걱정되어 살펴본 것인데, 너희는 하나같이 나를 속이고 있었구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니. 경왕, 참으로 실망이 크다!"서 태후가 싸늘한 얼굴로 호통쳤다.경왕은 우물쭈물하며 변명했다."태후 마마, 어머님은 건강 상황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어 신도 정확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요 며칠 두통이 심하셨고 또 영준이 걱정도 하셨습니다. 어제 영준이가 무사한 것을 보시고는 마음의 병이 반쯤 나으신 것입니다."건양제는 상석에 앉은 서 태후의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을 힐끗 보고는 눈썹을 치켜올렸다."병이 없는데 왜 꾀병을 부리며 현준이의 혼례에 오지 않은 것이냐? 내 기억으로는 현준이의 혼례가 먼저였고, 영준이가 낙마한 것은 그 후의 일이다.""폐하, 영준이가 낙마한 것이 먼저이옵니다."경왕이 정정했다.건양제는 즉시 경왕을 쏘아보았다. 경왕은 지레 겁을 먹고 목을 움츠린 채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그렇다면 임 태비는 영준이가 낙마한 일로 충격을 받아 현준이의 혼례에 오지 않았다는 뜻이냐?"서 태후가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다.경왕은 고개를 끄덕였다.쾅!서 태후는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헛소리! 영준이가 낙마한 날과 현준이가 혼인한 날은 고작 다섯 날 차이였다. 네가 사람을 시켜 밤낮없이 말을 달려 소식이라도 전했단 말이냐?"경왕은 흠칫 놀랐다. 왜 이야기가 다시 거기로 돌아간단 말인가?"그것이....""임 태비에게 조금이라도 뜻이 있었다면 진작에 길을 나섰어야 했다. 같은 손자인데 왜 이리 차별을 하는 것이냐!"서 태후는 단단히 화가 났다.건양제는 다시 발을 들어 경왕을 걷어찼다."이 불효자식 같으니라고! 당장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임 태비는 무엇 때문에 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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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배이수는 자녕궁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가끔 고개를 들어 안쪽의 동태를 살피던 그는 다시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다.무려 한 시진이나 서 있었건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경군자, 그만 돌아가시지요. 폐하께서는 태후 마마와 오찬을 드실 예정이라 만나주시지 않을 겁니다."소 상궁이 걸어 나와 조용히 타일렀다.배이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아바마마께서는 정말 저를 안 만나주실 생각입니까?"황자로 인정받은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는 매일같이 태화궁으로 문안을 갔다.하지만 건양제를 만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건양제의 태도가 이렇다 보니, 궁 안의 궁녀와 태감들조차 그를 무시하며 전혀 공손하게 대하지 않았다."오늘은 제가 출궁하여 부저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할마마마와 아바마마께 작별 인사를 올리러 왔습니다."배이수의 얼굴에는 억울함과 서러움이 서렸다.소 상궁이 답했다."폐하께서는 경군자께서 길일을 택해 거처를 옮기면 된다고 하셨습니다."배이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대놓고 만나기 싫다는 뜻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그는 씁쓸하게 발길을 돌렸다.한편, 궁에서 나와 왕부로 돌아가려던 경왕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급히 돌아오는 배현준과 마주쳤다. .경왕은 몇 번이나 입을 떼려다 망설였다.배현준은 그런 그를 곁눈질로 한 번 훑어보더니 미련 없이 지나쳐 갔다.'불효자식 같으니라고'분통이 터진 경왕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임 태비의 처소로 돌아오니 임 태비는 그를 힐끗 보고는 무심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태후 마마께서 무슨 일로 너를 찾으셨느냐?"경왕이 손을 저어 시종들을 물리려 하자, 임 태비가 막아섰다."남이 들으면 안 될 이야기도 아닐 텐데, 그냥 말하거라."곁에 있던 경왕비 역시 소식이 궁금하여 끼어들었다."태후 마마께서 어머님을 걱정하시어....""오늘 자녕궁에 폐하께서도 계셨습니다."경왕은 호되게 걷어차인 무릎이 아직도 욱신거려 표정이 좋지 않았다."태후께선 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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