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임 태비는 분이 풀리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입만 열면 배현준을 두고 인정도 없는 놈, 끝내 사람 구실도 못 하는 짐승이라며 거듭 저주를 퍼부었다.그럼에도 이튿날 아침, 경왕은 입궁해 교지를 청할 준비를 마쳤다.“전하.”여씨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경왕이 지나갈 길목을 막아섰다.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이었다. 그녀의 뒤에는 민경주와 배영준, 배옥준, 배유리까지 모두 따라와 있었다.털썩.네 사람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아버지, 어머니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배영준은 허리를 곧게 세운 채 간절히 청했다.배옥준도 뒤이어 입을 열었다.“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수년 동안 이 집안을 위해 애쓰셨습니다. 공이 없다 해도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잠시 판단을 그르쳐 잘못을 저지르셨을 뿐입니다. 이미 깊이 뉘우치고 계십니다. 아들인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부디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그러게요,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늘 온 집안을 돌보느라 마음을 다하셨습니다. 순간 화를 이기지 못해 실수하신 것뿐이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세 사람은 연달아 머리를 조아렸다.반면 민경주는 조용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님께서 이번에 물러서시면 다음에 또 어떤 일을 요구할지 알 수 없습니다. 고작 오해 하나로 어머님께서 왕비 자리를 잃게 되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처사입니다.”모두가 한마디씩 거들며 경왕을 설득하자, 경왕은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그때 마침 배현준이 지나갔다.한 번 흘끗 바라본 뒤 그대로 지나치려 했지만, 배영준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형님께서는 이미 세자이신데, 어찌하여 아직도 어머니를 놓아주시지 않는 겁니까?”“형님, 이번 한 번만 어머니를 용서해 주십시오.”배옥준도 거들었다.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배현준에게 쏠렸다.배현준은 혀를 차며 비웃었다.“어제 그 계략이 성공했다면 이모님은 첩이 되거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까지 끊으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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