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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411 - Chapter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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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1화

운청의 한마디에 배현준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말이 믿기지 않는 듯 유지영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너무 벅찬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지, 지영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다.”유지영 역시 얼떨떨했다.전생에는 아이 하나를 갖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탕약을 마시고, 사방을 떠돌며 신에게 빌었다. 그렇게 사 년 만에 어렵사리 아이를 품었지만, 끝내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잃고 말았다.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하늘이 자신을 이토록 후하게 보살펴 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배현준은 기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채 연신 당부했다.“지영아, 이제부터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푹 쉬거라. 필요한 게 있으면 전부 나한테 말하고. 들으니 여인은 아이를 가지면 몸이 몹시 약해져 무엇보다 조심해야 한다더구나.”유지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옆에서 홍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방금 약선에 누가 손이라도 댄 줄 알았습니다. 세자비 마마께서 회임하신 거였다니......”운청도 웃으며 설명했다.“회임 초기에는 냄새에 유난히 예민해지는 법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증상이니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그 말을 들은 홍주는 두말없이 약탕기를 들고 나갔다. 이어 뜰 곳곳에 치자꽃 우린 물을 뿌려 약선 냄새를 걷어 냈다.배현준도 손을 크게 휘저으며 방비원의 시녀들에게 반년 치 상을 내렸다.“전하, 감사드립니다!”시녀들은 하나같이 기쁜 얼굴로 감사를 올렸다.순식간에 방비원은 축하 분위기로 들썩였다.운청은 다시 한번 태맥을 짚어 본 뒤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아이는 세자비 마마 뱃속에서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계십니다.”배현준은 믿을 만한 시녀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조금 전까지의 들뜬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얼굴에는 엄숙한 기색만이 남아 있었다.“지금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세자비의 몸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보이면 즉시 내게 보고하고,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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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조원금이 눈짓을 보내자 시녀들이 즉시 손을 멈췄다.“둘째 며느리는 사당으로 끌고 가 가법 백 번을 베껴 쓰게 하거라. 무릎을 꿇고 깊이 반성하도록 하고. 또다시 같은 일을 저지른다면 절대 가볍게 넘기지 않겠다.”조원금의 명이 떨어지자 민경주는 곧장 끌려갔다.조원금의 얼굴에서는 냉기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임 태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왕부의 자손이 무사히 태어난다면 모두에게 경사겠지요. 헌데 누군가 다른 속셈을 품는다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시녀들을 이끌고 성큼 자리를 떠났다.임 태비는 그 기세에 한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조원금의 모습이 멀어지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저 여자는 너무 독하구나.”조원금이 굳이 경고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감히 다른 마음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배현준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정말 칼을 들고 자신을 찔러 죽일지도 모를 일이었다.그날 조원금은 장공주부도 찾아갔다.조령 장공주는 조원금을 흘낏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경왕비께서 웬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그녀는 이 계비를 조금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조원금은 공손히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장공주 전하, 오늘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것은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조령 장공주는 코웃음을 쳤다. 조원금을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태도였다.그러나 조원금이 그녀의 귓가에 몇 마디를 나지막이 속삭이자, 조령 장공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정말 부마를 경성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조원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뿐만이 아닙니다. 유영현주의 화친도 막을 수 있습니다.”조령 장공주는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조원금을 찬찬히 훑어보았다.조원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그녀의 시선을 받아냈다.“장공주 전하께서는 오랫동안 첩실 류씨의 편을 들며 당 부인이라는 정실을 억눌러 오셨습니다. 헌데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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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당 부인은 조령 장공주의 뜻밖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그동안 조령 장공주가 당씨 부저를 찾을 때마다 늘 첩실 류씨가 곁을 지켰다. 그런데 오늘은 시작부터 모든 것이 예전과 달랐다.더구나 사람을 구한 일은 벌써 몇 달이나 지난 일이었다. 이제 와서 굳이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한다니, 당 부인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심이 일었다.조령 장공주는 당씨 노부인과 몇 마디 안부를 더 나눴지만, 끝내 첩실 류씨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첩실 류씨가 몇 차례 말을 붙이고 살갑게 굴어도 모두 모른 척 지나쳤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씨 노부인도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이 늙은 몸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평소 첩실 류씨가 극진히 돌봐 준 덕에 버티고 있지요.”예전 같았으면 조령 장공주는 이 말을 듣자마자 첩실 류씨를 칭찬하며 그녀가 억울한 처지라고 감싸 주었을 것이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주모를 대신해 노부인을 모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의 복이지.”첩실 류씨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조령 장공주는 화제를 돌려 당 부인을 바라보았다.“오히려 당 부인이 오랜 세월 집안을 훌륭히 이끌면서 이렇게 뛰어난 의용후까지 길러냈으니, 그야말로 당씨 가문의 영광이라 할 만하지.”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이번에는 첩실 류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배유리가 아무리 잘못했다 해도 왕부의 외동딸이다. 혼례를 미루겠다고 한 것은 분명 경솔한 처사였어.”말을 마친 조령 장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 부인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요즘 나는 한가할 때마다 경전을 베껴 쓰고 있네. 듣자 하니 그대도 이쪽에 조예가 깊다더군. 괜찮다면 장공주부에서 나와 함께 경전을 베끼며 복을 빌어 주겠는가?”당 부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조령 장공주는 당씨 노부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노부인 곁은 첩실 류씨가 익숙하게 모시고 있으니, 당 부인은 며칠 나에게 빌려주시게.”그녀의 말투는 단호했다. 거절할 틈조차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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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당학은 차분히 설명했다.“아예 관계가 없는 일은 아닙니다. 요즘 거리마다 아버지가 첩만 총애하고 정실을 업신여긴다는 소문이 자자하지 않습니까. 당윤은 태후 마마를 구한 공이 있는데 장공주 마마께서 계속 어머니 편만 드셨으니 태후 마마의 심기를 거스른 겁니다. 오늘도 당윤이 장공주 마마를 구해 드린 일을 명분 삼아 큰부인을 보살펴 주신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큰부인을 날마다 장공주부로 불러 경전을 베끼게 하실 리 없었겠지요.”그 말을 듣고서야 첩실 류씨도 하나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그깟 일 때문에 경왕비가 직접 장공주부까지 찾아갔단 말이냐?”무심코 던진 말이었지만, 오히려 당학에게는 새로운 실마리가 되었다.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당윤은 지금 북신으로 사람을 찾으러 떠난 모양입니다. 그래서 큰부인을 경세자비에게 부탁해 두었겠지요. 헌데 경세자비는 직접 나서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경왕비는 왕부에 들어온 뒤부터 줄곧 경세자비를 감싸 왔으니, 대신 움직인 겁니다.”장공주를 통해 당씨 가문을 압박한 것이야말로 가장 알맞은 수였다.“또 유지영이군!”첩실 류씨는 유지영과 직접 부딪힌 적은 없었지만,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그동안 일이 번번이 틀어진 것도 유지영이 끼어든 뒤부터였다.당학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다시 한번 당부했다.“그동안 장공주 마마께서 우리 모자를 돌봐주신 것도 모두 외숙부 덕분이었습니다. 헌데 외숙부께서 갑자기 경성 밖으로 전임된 것은 장공주 마마를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께서 지금 외숙부를 찾아가신다면 장공주 마마의 심기만 더 거스를 뿐입니다.”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첩실 류씨는 더 이상 오라버니를 찾아가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당학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할머니를 잘 모시세요. 괜히 큰부인을 괴롭히지 마시고요.”지금 그의 앞에는 더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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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복’자가 완성되자 건양제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좋습니다. 참 좋아요! 뱃속의 아이가 우리 양나라 황실의 첫 증손이든 증손녀든 상관없습니다. 분명 복이 가득한 아이로 태어날 겁니다.”건양제는 서 태후 곁으로 다가가 미소를 지었다.“장녕이 이 아이를 딸로 낳는다면 제가 이름을 지어 주고, 아들이라면 어마마마께서 이름을 내려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서 태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유지영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그러자 유지영은 황급히 몸을 굽히며 입을 열었다.“저에게는 과분한 은혜입니다.”서 태후가 웃으며 말했다.“황상께서 내려 주시는 복인데, 이 아이에게는 더없는 영광이지. 어른이 내리는 은혜는 사양하는 법이 아니다.”유지영은 다시 한번 정중히 감사를 올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배현준도 도착했다.그는 윗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차례로 예를 올렸고, 서 태후는 그를 향해 거듭 당부했다.“현준아, 나는 지영이 뱃속의 이 아이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절대로 지영이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그 말은 분명 배현준에게 한 것이었지만, 시선은 줄곧 경왕을 향하고 있었다.경왕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고개를 들자마자 서 태후의 시선과 마주쳤고, 그는 곧장 눈을 내리깔았다.“태후 마마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배현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굳게 약속했다.이어 서 태후는 건양제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제가 듣기로는 조령이 부마 일 때문에 밤잠까지 설친다고 합니다. 부부가 오래 떨어져 지내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니, 내년에는 부마를 경성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건양제는 별다른 고민도 없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어마마마의 말씀이 옳습니다.”그 뒤로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가 잠시 오갔다.그 무렵 배이수가 한 차례 들렀다.고작 두 달 된 태아를 위해 이토록 성대하게 운명을 점치는 모습을 보자, 그의 속은 점점 뒤틀려 갔다.결국 그는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 몸을 돌려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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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저를 낳아 길러 주신 분이신데, 그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배이수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단 귀인에게 숙비를 서둘러 찾아가 보라고 거듭 권했다.오후가 지나자 자녕궁은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서 태후는 입가의 웃음을 거두지 못한 채 연탑에 몸을 기댔다.어린 궁녀가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고, 소 상궁은 곁에서 포도를 정성스레 까고 있었다.“제가 보기에도 태후 마마께서 이렇게 기뻐하신 건 참 오랜만입니다.”소 상궁이 웃으며 말하자 서 태후도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우리 지영이는 참 복이 많은 아이야.”그때 궁녀가 문을 두드렸다.소 상궁은 슬쩍 눈길을 주고 밖으로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다.“배이수가 오늘 단 귀인을 찾아갔습니다. 단 귀인은 크게 노한 뒤 숙비의 처소에서 두 시진이나 머물렀고, 돌아갈 때는 비단 상자를 여러 개 들고 나왔습니다.”“숙비?”서 태후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입가에는 오히려 의미심장한 웃음이 번졌다.“결국 허 귀비의 아이를 노린 것이겠지.”그녀는 소 상궁을 가까이 불러 몇 마디를 나직이 일렀다.소 상궁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장 물러났다.이틀 뒤 저녁.허 귀비가 어화원에서 넘어졌다.순식간에 하혈이 시작됐고, 궁녀들이 그녀를 부축해 처소로 옮길 때는 치맛자락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처절한 비명 소리가 한참이나 궁 안에 울려 퍼졌고 건양제는 줄곧 침전 밖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두꺼운 겉옷을 걸친 서 태후가 급히 걸음을 옮겨왔다.“허 귀비는 어떻습니까?”건양제가 낮게 답했다.“태의 말로는 크게 넘어져 하혈이 심하답니다.”서 태후는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태아는 이미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헌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허 귀비의 시녀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태후 마마, 귀비 마마께서는 분명 누군가의 해를 입으신 겁니다. 오늘 답답하다 하셔서 바람을 쐬러 나가셨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넘어지셨습니다. 방금 살펴보니 종아리에 공격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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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폐하께서는 귀비 언니의 다리에 상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첩을 의심하실 수는 없습니다. 신첩은 입궁한 뒤 줄곧 본분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어찌 감히 귀비 언니를 해치겠습니까?”숙비는 콧물과 눈물을 쏟아내며 건양제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입궁한 뒤 지금까지 겪어 온 억울함과 서러움을 하소연하는 목소리는 처절하기만 했다.하지만 건양제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잠시 후 단 귀인도 끌려왔다.오기 전부터 허 귀비가 십중팔구 유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는 기뻐했지만, 그 일에 자신까지 엮였다는 말을 듣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그녀는 서둘러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숙비는 다급히 단 귀인을 바라봤다.“단 귀인, 어서 말해보거라. 나는 귀비 마마를 해친 적이 없지 않느냐.”단 귀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곧장 건양제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폐하, 숙비 마마께서는 본래 심성이 어진 분이십니다. 오랫동안 궁에 계셨지만 어찌 귀비 마마를 해치실 리 있겠습니까.”쾅!건양제는 그대로 단 귀인의 몸을 걷어찼다.“방자한 것! 그럼 허 귀비가 제 자식을 희생시켜 숙비를 모함했다는 말이더냐?”단 귀인은 그 발길질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힘껏 차인 탓에 허리를 제대로 펼 수도 없었지만, 이를 악물고 비명만은 삼켰다.그녀는 황급히 변명했다.“폐하, 신첩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귀비 마마를 해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서 태후가 단 귀인을 곁눈질하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허 귀비와 원한을 맺은 사람이 그리 많던가? 오히려 이번 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느냐.”단 귀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감히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서 태후는 건양제를 향해 말했다.“제가 듣기로는 요 며칠 단 귀인이 숙비와 유난히 가까이 지냈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건 현장에도 있었으니, 단 귀인 역시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건양제의 차가운 시선이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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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건양제는 서 태후를 향해 가볍게 몸을 숙였다.“분부대로 하겠습니다.”“허 귀비가 유산했다고?”경왕부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자 하나같이 얼굴빛이 변했다.그중에서도 가장 동요한 사람은 임 태비였다.“허 귀비가 아이를 잃었으니, 이제 폐하께 남은 아들은 배이수 하나뿐이다. 하필 우린 그 아이와 원한까지 맺었으니, 훗날 배이수가 황위에 오르면 우리를 가만두겠느냐.”조원금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에 임 태비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이제 네가 왕부의 안주인 아니냐. 이럴 때일수록 네가 나서서 방도를 세워야지.”조원금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배영준과 배옥준 형제가 황급히 들어왔고, 뒤이어 민경주도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배이수의 미움을 가장 크게 산 사람은 배현준과 유지영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두 사람이 직접 찾아가 사죄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 용서를 구하면 훗날 배이수가 황위에 오르시더라도 지난 일을 끝까지 문제 삼지는 않을 겁니다.”쾅.조원금이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에 무겁게 내려놓았다.날카로운 소리가 민경주의 말을 단번에 끊어 버렸다.조원금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볍게 닦은 뒤 그녀를 흘겨보았다.“네가 황제도 아닌데, 어찌 폐하께서 반드시 배이수에게 황위를 물려주실 거라 단정하는 것이냐?”그녀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게다가 폐하께서는 아직 삼십 대이시다. 허 귀비께서 회임했다면 다른 후궁들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냐.”말을 마친 조원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아니면, 폐하께서 어린 황자를 보시기도 전에 세상을 뜨시길 바라는 것이냐?”민경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그만!”임 태비는 놀란 나머지 얼굴까지 하얗게 질렸다.“그런 역모에 가까운 말을 함부로 입에 담아선 안 된다.”조원금은 몸을 돌려 임 태비를 바라봤다.“이번 유산은 단 귀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허씨 가문은 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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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붉은 비단 장포 자락이 흩날리며 마차에서 한 여인이 뛰어내렸다. 그녀는 운민이 검 한 자루로 말을 베어 쓰러뜨린 것을 보고도 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한 기색으로 다가와 물었다.“낭자,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의원을 불러 진맥이라도 받아 보시겠습니까?”운민은 검을 거두며 고개를 저었다.연령군주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쳐 날뛰던 마차에 부서진 곳곳을 살핀 그녀는 직접 앞으로 나서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고, 뒤따르던 시녀들에게 하나하나 배상금을 나눠 주도록 했다.“마차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을 놀라게 해 정말 죄송합니다.”연령군주가 백성들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이자, 사람들도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와 넉넉한 배상을 보고는 금세 노여움을 거두었다.“괜찮습니다.”“군주께서 자책하실 일은 아닙니다.”“짐승이 놀라 날뛴 것인데 군주께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다친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맞습니다.”연령군주는 옅게 미소 지었다.“혹 놀라 몸이 편치 않으신 분이 계시면 영선당의 장 의원을 찾아가십시오. 제가 미리 일러 두겠습니다. 진료비는 모두 제 앞으로 달아 두시면 됩니다.”그렇게 다시 한번 사과한 뒤 몸을 돌리던 그녀는 문득 유지영을 발견하고는 놀란 듯 성큼 다가왔다.“장녕군주?”이미 몸을 추스른 유지영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다.“괜찮은 것이냐?”연령군주는 다급히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오늘 막 경성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이 급했던 탓인지 말이 갑자기 미쳐 날뛰었다.”그녀는 유지영을 위아래로 살피며 안색을 확인했다.유지영은 조용히 손을 빼내며 말했다.“조금 놀란 것 말고는 다친 곳은 없습니다.”“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구나.”연령군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몇 마디 더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뒤에 있던 시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군주 마마, 태후 마마께서 아직 궁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연령군주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다음에 내가 직접 너에게 찾아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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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먼 곳으로 시집을 보낸다고요?”유지영은 고개를 저었다.“배유리를 멀리 시집보내면 당학에게 명문가 규수를 새로 맞아들일 기회만 만들어 주는 셈입니다. 차라리 처음 약속대로 배유리를 당씨 가문으로 시집보내는 편이 낫습니다.”적어도 정실의 자리는 차지하게 될 테니까.조원금은 그 말을 듣고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그렇구나. 그럼 내가 다시 장공주부에 다녀오마. 조령 장공주께 서둘러 이 혼사를 성사시키시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려야겠다.”경왕이 알든 모르든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혼인한 뒤로 조원금이 하는 일마다 경왕의 심기를 거슬렀고, 경왕 역시 그녀의 처소에는 발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이쪽으로 오려는 기색을 보이면 사람을 시켜 첩실 류씨에게 소식을 전했고, 첩실 류씨는 어김없이 경왕을 자기 처소로 붙잡아 두었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몸이 편치 않다는 핑계를 댔다.어쨌든 경왕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너는 푹 쉬거라. 아직 날도 이르니 나는 지금 장공주부에 다녀오마.”“고맙습니다, 이모.”조원금은 부드럽게 웃어 보인 뒤 곧장 길을 나섰다.지난번 조원금의 말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조령 장공주는 이번에는 그녀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곧바로 당씨 가문을 찾아간 조령 장공주는 당씨 노부인을 만나자마자 굳이 돌려 말하지도 않았다.“당씨 가문에도 이제는 경사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형의 혼사가 아우보다 늦어진다면 내 체면은 어찌 되겠는가?”그녀는 사람을 시켜 첩실 류씨까지 불러오게 한 뒤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첩실 류씨는 내키지 않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대놓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학이 아직 몸이 좋지 않아 지금 혼례를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합니다.”조령 장공주는 허리를 곧게 세운 채 그녀를 비스듬히 내려다봤다.“나에게는 태의가 있다. 병이라면 고치면 그만이지.”날카로운 시선이 첩실 류씨를 꿰뚫었다.“설마 내가 성사시킨 이 혼사에 불만이라도 있는 것이냐? 내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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