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극 로맨스 / 피안을 거슬러 / Chapter 401 - Chapter 410

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401 - Chapter 410

556 Chapters

제401화

그 말이 떨어지자 당학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다급히 시종의 손목을 붙잡았다.“그 소식을 어디서 들었느냐?”“큰공자께 아룁니다. 육씨 어멈이 남긴 서신을 송씨 가문에서 찾아냈다고 합니다. 지금 송씨 집안에서는 육씨 어멈이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한사코 주장하고 있습니다.”정군왕부.“터무니없는 소리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준형이는 내가 열 달 동안 배 속에 품었다가 낳은 아이인데, 어떻게 유관성이란 말이냐?”정군왕비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흥분한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할 지경이었다.돌아온 배준형의 얼굴 역시 먹구름이 내려앉은 듯 어두웠다.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유정남이 직접 정군왕부를 찾아와 해명을 요구했다. 소식을 들은 배준형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정군왕비는 당당히 말했다.“들어오라 하거라. 나는 한 점 거리낄 것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 내 아들은 단 한 순간도 내 눈앞을 떠난 적이 없는데, 어찌 가짜일 수 있겠느냐?”결국 이 일은 숙태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숙태비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급히 달려왔다. 싸늘하게 굳은 얼굴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앞마당으로 가 보자꾸나!”정군왕부 대문 앞에는 이미 수많은 백성이 몰려들어 있었다. 그중 몇몇은 저마다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유정남은 말 위에 앉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정군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유국공, 분명 무언가 오해가 있네. 준형이가 어찌 유국공의 아들이란 말인가?”그러나 유정남은 정군왕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제 아들 관성의 왼쪽 무릎에는 초승달 모양의 태기가 있고, 허리 뒤쪽에는 매화꽃을 닮은 붉은 자국이 있습니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에는 저녁놀처럼 번진 흉터도 있지요. 태어날 때 실수로 붉은 초에 데어 남은 자국입니다.”그가 정확히 세 군데를 짚어 말하자 정군왕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그러나 이내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고 반문했다.“유국공, 준형이는 유관성보다 한 살이나 많네. 나이부터 다
Read more

제402화

정군왕은 지금껏 유정남을 강직하고 청렴한 무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부모에게 지나칠 만큼 효성스러운 사람일 뿐, 남의 속을 뒤집어 놓는 계략이나 교묘한 술수를 부릴 인물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그는 유정남이 얼마나 뻔뻔한 사람인지 똑똑히 깨달았다.“유국공! 내 아들이 그대가 잃어버린 아들일 리는 절대 없네. 사람을 잘못 찾아왔으니 더는 억지를 부리지 마시게!”정군왕이 이를 악문 채 호통치자, 유정남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전하께서 관성을 친아들처럼 아끼며 길러 오셨으니, 이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하를 탓하지 않겠습니다.”“유정남!”정군왕은 이를 악문 채 으드득 소리가 날 만큼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그때 뒤쪽에서 숙태비의 목소리가 울렸다.“정아.”지팡이를 짚은 숙태비는 음침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유정남을 노려보았다.“국공께서 일을 이 지경까지 키워 놓았으니, 오늘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정군왕부의 혈통이 의심받게 될 것이다.”그러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준형아!”잠시 뒤 배준형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유정남을 바라봤다. 자신과 유정남이 부자 사이라니,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관성아...”유정남이 나직이 부르자 배준형은 미간을 찌푸렸다.“유국공, 제 이름은 배준형입니다. 저는 배씨 가문의 적통이지, 유국공께서 말씀하시는 유관성이 아닙니다.”유정남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안다. 헌데 네 몸에 있는 태기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지 않느냐?”태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그러나 배준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유정남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분명 유지영에게 들었기 때문이라 짐작했다.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되물었다.“태기 몇 군데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제 곁에서 시중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Read more

제403화

정군왕은 끝까지 배준형이 자신의 친아들이라고 단언했다.“정군왕께서는 설마 제 아들을 억지로 빼앗으시려는 겁니까?”유정남이 눈시울을 붉히며 묻자, 정군왕이 당장이라도 발끈하려 했다. 그러나 배준형이 먼저 앞으로 나서 그를 가로막았다.배준형은 유정남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유국공께서는 육씨 어멈의 자백서 외에 다른 증거도 가지고 계십니까? 전각 앞에서 거짓을 고하는 것은 폐하를 기만하는 일입니다. 이는 참수형으로도 다스릴 수 있는 중죄입니다.”유정남은 코웃음을 치며 품에서 서신 한 통을 꺼냈다.“당시 아이를 받은 산파와 시중들던 이들을 모두 찾아냈다. 내 부인이 분명 세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도 확인했지.”그는 건양제를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당시 제 어머니께서는 남의 이간질에 넘어가, 제 부인이 회임 여덟 달 만에 아이를 낳은 것을 보고 부정을 저질렀다고 오해하셨습니다. 헌데 실상은 이방에서 큰방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꾸민 계략이었습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뒤 어머니께서는 깊이 뉘우치며 직접 죄를 인정하셨습니다. 신은 그 말씀을 단서 삼아 끝까지 추적한 끝에 육씨 어멈에게 이르렀고, 육씨 어멈 역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백서를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자백서에는 아이의 태기가 있는 세 곳이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신은 그 내용을 확인한 뒤 정군왕부를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군왕 세자가 네 살 되던 해 큰 병을 앓아 정군왕비께서 아이를 데리고 절에 다녀왔으며, 돌아온 뒤 병이 씻은 듯 나았다는 사실까지 알아냈습니다.”유정남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부디 폐하께서 이 일을 명백히 밝혀 주십시오.”건양제가 물었다.“정군왕비는 어디에 있느냐?”배준형은 미간을 좁혔다.공교롭게도 어머니는 외가를 찾아 먼 지방으로 떠난 터라 아직 경성에 없었다.그는 사실대로 아뢰었다.건양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정군왕을 바라봤다.“정군왕은 배준형이 친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있느냐?”정군왕은 순간 말문이
Read more

제404화

배준형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는 어릴 적 실제로 풍진을 앓았고, 그때 허리에는 작은 흉터까지 남았다. 예전 유지영이 그 흉터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는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해 준 적이 있었다.그 일이 설마 자신의 신분을 뒤흔드는 증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정군왕의 얼굴에도 의심의 기색이 스쳤다.배준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꼭 빼닮았습니다. 눈매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반면 유국공의 세 아들은 서로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괜한 말에 흔들리지 마십시오.”그 말을 들은 정군왕의 망설임은 금세 사라졌다.그는 배준형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너는 내 아들이다. 그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양측 모두 저마다의 논리와 증거를 내세웠다.팽팽히 맞선 채 누구도 한 발 물러서지 않았다.건양제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때 유정남이 앞으로 나와 머리를 조아렸다.“폐하, 신은 관성이 무사히 자라 준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신 또한 자식을 잃는 고통을 겪어 본 사람입니다. 이제 관성과 관랑, 두 아이를 모두 찾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억지로 무엇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그 말에 건양제는 정군왕을 바라봤다.“돌아가 각자 증거를 더 찾아보도록 하거라. 끝내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면, 이 일은 영영 시비를 가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대에게도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닐 테지.”유정남은 끝내 적혈인친을 요구하지 않았다.이미 의심의 씨앗은 충분히 뿌려졌다.이제 배준형의 혈통에 의문이 생긴 이상 손해를 보는 쪽은 결국 그뿐이었다.“헌데……”정군왕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배준형이 조용히 그의 소매를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정군왕은 결국 하려던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건양제는 다시 유정남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너무 갑작스럽소. 정군왕부에도 시간을 주어야 하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시오.”모두 예를 올린 뒤 대전을 나섰다.밖으로 나가기 직전, 유정
Read more

제405화

시종의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사방이 고요해졌다.잠시 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경왕에게 쏠렸다. 모두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유리 아가씨는 정말 경솔하기 짝이 없군. 얼마 전에도 큰 소동을 일으켰는데 당가네 큰공자께서 마다하지 않고 혼인해 주더니, 이번에는 혼례식장에서 또 이런 추태를 부리다니.”“어릴 때부터 너무 오냐오냐 키운 탓이지.”“서녀는 역시 서녀지. 어디를 가도 품격이 떨어진다니까.”귓가를 파고드는 비난에 경왕은 차라리 땅이라도 꺼져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이를 악문 그는 먼저 사람을 시켜 조원금을 신방으로 들여보낸 뒤, 하인에게 앞장을 서라고 명했다.앞마당에 가까워지기도 전에 수많은 사람이 둥글게 둘러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 한가운데서 배유리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둘째 공자, 어째서 저를 받아 주지 않으시는 거예요? 흐윽...... 공자......”애처롭게 흐느끼는 소리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그 광경을 본 경왕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그때 여씨가 허둥지둥 달려와 경왕의 소매를 붙잡았다.“전하, 분명 오해입니다! 유리는 누군가에게 함정에 빠진 게 틀림없습니다.”뒤따라온 어멈이 급히 배유리를 끌어내려 했지만, 배유리는 힘이 어찌나 센지 몸을 뿌리치고는 다시 한 외간 남자의 소매를 붙잡았다.술기운에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첩이라도 좋으니… 당신께 시집가고 싶어요.”그 한마디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경왕은 더는 참지 못했다.여씨를 거칠게 밀쳐 낸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온 힘을 실어 배유리의 뺨을 후려쳤다.짝!배유리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이 못난 것! 누가 여기서 이따위 추태를 부리라고 했느냐!”입가가 터져 피가 배어 나왔고, 귀에서는 윙윙 울리는 소리만 맴돌았다.여씨는 황급히 딸을 감싸 안으며 울먹였다.“전하, 유리는 이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닙니다. 분명 누군가에게 당한 것입니다. 전하께서도 유리를 어릴 적부터
Read more

제406화

“짝!”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배유리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여씨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딸의 이마를 세게 찌르며 다그쳤다.“말해 보거라.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냐?”“어머니, 어머니……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거예요. 이 아이는 당씨 큰공자의 아이입니다.”겁에 질린 배유리는 앞뒤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 채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며칠 전 춘풍루에서 당학을 우연히 만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술에 취해 감정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었다.여씨의 얼굴에 깊은 실망이 번졌다.“헌데 오늘은 어째서 당윤 공자에게 시집가겠다고 소리친 것이냐?”그 말을 들은 배유리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분명 자신을 향해 웃던 사람은 당학이었다. 그는 자신을 부인으로 맞아 평생 아끼고 사랑해 주겠다는 말까지 했었다.틀림없이 당학의 얼굴이었는데, 어찌 그 사람이 당윤 공자였단 말인가?배유리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늘 얌전하고 철이 들었다고 믿었던 딸이 목소리를 높이며 혼란스러워하자, 경왕의 얼굴에도 실망이 가득 번졌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여씨를 돌아보았다.“모두 네가 평소 아이를 지나치게 감싸고돈 탓이다. 한 번도 모자라 거듭 큰 사고를 치지 않았느냐.”여씨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눈앞의 경왕이 온몸에 붉은 혼례복을 걸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선명한 빛깔이 칼날처럼 가슴을 후벼 팠다.그러나 모녀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서럽게 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경왕은, 굳게 닫혔던 마음이 차츰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내일 당씨 집안 사람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눠 보마. 혼례 날짜를 앞당겨 유리가 하루라도 빨리 시집갈 수 있도록 하겠다.”하지만 여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안 됩니다. 그건 옳지 않아요. 유리가 시집가자마자 회임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두고두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이 아이는…… 남겨 둘 수 없습니다.”사람들의 입이 얼마나 무서운지
Read more

제407화

임 태비는 경왕이 지난밤 여씨의 처소에서 묵었다는 말을 듣자 안색이 미묘하게 변했다.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곁의 시녀를 돌아보며 곧장 명했다.“여씨를 불러오너라.”시녀가 곧바로 물러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씨가 급히 모습을 드러냈다.임 태비는 바람만 스쳐도 쓰러질 듯한 여씨의 가냘프고도 요염한 모습을 훑어보더니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어젯밤 경왕이 네 처소에서 잤다고?”여씨는 치맛자락을 살며시 걷어 쥔 채 무릎을 꿇었다.“태비 마마, 어젯밤 전하께서는 유리를 걱정하셔서 밤새 곁을 지키셨을 뿐입니다. 저는 줄곧 별채에서 불공을 드리며 경을 외웠고, 전하와 한방을 쓰지는 않았습니다.”뜻밖의 대답에 임 태비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내 어제 배유리가 저지른 망신이 떠오르자 얼굴이 다시 굳었다.“모두 네가 유리를 지나치게 오냐오냐 키운 탓이다.”“제가 잘못했습니다.”여씨는 고개를 숙인 채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본래 임 태비는 여씨를 호되게 꾸짖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나치게 공손하고 순순한 데다, 뒤에는 배영준과 배옥준까지 지켜보고 있었다.결국 그녀는 치밀어 오르던 화를 억누르고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일어나거라.”“감사합니다, 태비 마마.”여씨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조금 전 조원금이 차를 올리러 왔던 일은 이미 전해 들은 뒤였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원래부터 조원금은 성미가 불같은 사람이었다. 이제는 배현준이라는 든든한 뒷배까지 얻었으니, 임 태비를 안중에 둘 리 없었다.성미 고약한 셋이 한편이 되었으니, 임 태비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임 태비는 여씨를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은 안다. 헌데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지.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반드시 네 편이 되어 주마.”여씨는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깊이 숙였다.그사이 배영준과 배옥준도 차례로 앞으로 나와 예를 올렸다.임 태비는 두 사람을 향해 차분히 일렀다.“이제 새 왕비
Read more

제408화

경왕 역시 오늘 차를 올리던 자리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임 태비를 향해 말했다.“어머니,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황형께서 태자를 세우신 뒤에는 제가 직접 청해 우리를 봉지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겠습니다.”“폐하께서 과연 허락하시겠느냐?”임 태비는 눈가를 훔치며 다급히 물었다. 경성에 머무는 동안 억눌린 설움이 너무도 컸다. 하루라도 빨리 봉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경왕은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 일은 현준이와 현준이 며느리가 한마디만 거들어 준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저도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지만, 황형께서 번번이 몇 마디 말로 돌려보내셨습니다.”건양제의 뜻은 분명했다.배현준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부자 사이를 회복하라는 것이었지, 자신들을 봉지로 돌려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경왕은 다시 한번 임 태비를 타일렀다.“지금 배현준은 폐하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고, 현준이 며느리 또한 태후 마마의 총애가 각별합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두 사람을 더는 곤란하게 만들지 마십시오.”그 말을 들은 임 태비는 곧장 몸을 일으켜 반박하려 했지만, 경왕이 먼저 말을 이었다.“합환산을 탔던 그날 어머니께서도 보셨지 않습니까. 배현준은 앞뒤를 재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다른 사람까지 함께 끌어들이려 하는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우리가 건드릴 상대가 아닙니다.”그 말은 임 태비의 분노에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그날 배현준이 검을 뽑아 거리낌 없이 사람을 베려 하던 모습이 떠오르자, 다시 생각할수록 등골이 서늘해졌다.한참 동안 말이 없던 임 태비는 끝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알겠다.”당씨 가문.당응성은 마당에서 검을 수련하던 당윤을 찾아와 다짜고짜 호통을 쳤다.“어제 어디를 갔기에 밤새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느냐?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이냐?”질문은 연달아 쏟아졌고,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 실려 있었다.당윤은 천천히 검을 거두고 비스듬히 당응성을 바라
Read more

제409화

반쪽짜리 초상화는 곧장 배현준의 손에 들어갔다.배현준은 그것을 들고 유지영을 찾아갔다. 유지영은 초상화를 받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얼굴 전체는 그려져 있지 않았지만, 눈매만으로도 담혜정과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무엇보다 이상하리만치 정겨운 느낌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분명 큰오라버니예요.”유지영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나머지 반쪽은 어디 있습니까?”배현준은 초상화가 손에 들어오게 된 경위를 차근차근 설명한 뒤 말을 이었다.“곧바로 사람을 북신 양주로 보내겠다. 최대한 빨리 소식을 알아보도록 하지.”“좋아요.”유지영의 가슴은 더욱 벅차올랐다.하루라도 빨리 큰오라버니를 찾을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한도 풀릴 것이고, 저승에 계신 어머니께서도 비로소 마음을 놓으실 터였다.배현준은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이 초상화는 배준형이 당학에게 건넨 것이다. 지금 당학도 진퇴양난에 빠져있지. 진짜 유관성을 찾아내지 못하는 순간, 정군왕부는 언제든 황제를 속인 죄를 뒤집어쓸 수 있으니. 그동안 공들인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니다.”배준형……유지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큰오라버니만 무사히 돌아온다면,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배준형을 죽이겠다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따스한 봄기운이 완연한 삼월.배유리의 혼례까지는 아직 한 달이 남아 있었다.당씨 가문과 경왕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하기만 했고, 어느덧 당씨 가문이 납채 예물을 보내기로 한 날이 찾아왔다.그런데 당학이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기 시작했다.온몸에는 붉은 발진이 돋았고, 바람만 스쳐도 기침이 멎지 않았다.결국 당씨 가문은 직접 경왕부를 찾아와 혼인을 내년으로 미루자고 제안했다.경왕은 속사정을 모를 리 없었지만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그저 담담히 고개를 끄덕여 승낙한 뒤, 당씨 가문 사람들이 돌아가자마자 곧장 여씨를 불렀다.“당씨 가문은 시간을 끌고 있다. 이 혼사는 깨져도 아쉬울 것 없다.
Read more

제410화

당윤이 입을 열었다.“세자비 마마께서 마침 오늘 와 주셨으니, 저도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북신 쪽 일은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았습니다. 다만 상황이 예상보다 조금 복잡합니다.”유지영의 눈꺼풀이 순간 파르르 떨렸다.당윤은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그분은 북신에서 부마가 되어 북신왕의 여섯째 공주를 부인으로 맞았습니다. 아마 본인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북신과 양나라는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해마다 전쟁을 벌여 온 데다, 대대로 원수나 다름없는 관계였다.유관성이 정말 북신의 부마라면 양나라로 돌아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터였다.유지영은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옅게 미소 지었다.“후작은 인맥이 넓으니, 번거롭겠지만 자잘한 사정까지 조금 더 알아봐 주시게.”“세자비 마마께서 너무 예를 갖추시는군요. 내일 제가 직접 북신으로 가 보겠습니다. 혼례 전에는 반드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당윤은 여러 해 동안 천하 곳곳을 떠돌며 수많은 벗을 사귀었다. 어떤 일은 배현준보다도 사정을 더 훤히 알고 있었고, 경성을 떠나 움직이는 것 또한 배현준보다 훨씬 자유로웠다.“후작…….”유지영은 감격한 나머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당윤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감사 인사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경성을 비우는 동안 제 어머니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유지영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걱정 마시게.”당씨 부인은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윤이 밖으로 나도는 일은 워낙 잦았고, 한 번 떠나면 몇 달씩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기에 이미 익숙했다.다만 다 큰 자신을 다른 이에게 맡긴다는 말이 민망했는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 세자비 마마께 괜한 수고를 끼칠 필요 없다.”유지영과 당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뜻을 알아차린 듯 더는 이 일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이튿날.당윤은 경성을 떠났고 유지영도 입궁해 서 태후
Read more
PREV
1
...
3940414243
...
5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