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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421 - Chapter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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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1화

그 시각, 자녕궁.서 태후는 이연령의 손을 꼭 쥔 채 그동안 어찌 지냈는지 물으며 한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반년 만에 훌쩍 야위었구나. 이씨 집안사람들이 널 박대라도 한 게냐?" 서 태후가 걱정스레 물었다.이연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삼촌과 숙모 모두 제게 아주 잘해주십니다. 그저 소녀의 마음속에 늘 태후 마마를 향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어, 이리 서둘러 돌아온 것입니다.""녀석...." 서 태후는 사랑스럽다는 듯 이연령의 손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마침 건양제가 걸음을 했을 때도 태후는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황제 앞에서 연령을 한참이나 칭찬했다. 이연령은 수심이 가득한 건양제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폐하, 혹여 귀비 마마의 일로 심려가 크신 것이옵니까?"그 말에 건양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소녀는 어릴 적부터 황궁에서 자라며 숙비 마마께 큰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혹여 이번 일에 어떤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니옵니까?" 이연령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건양제에게 철저한 조사를 간청했다.건양제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얼굴에 띠고 있던 미소가 옅게 변했다."황상, 연령의 말도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숙비와 연령은 모두 장군 가문의 적녀로서 심성이 맑고 고우니, 그토록 독한 짓을 저질렀을 리 없습니다." 서 태후가 이연령의 말에 힘을 실어주며 황제에게 물었다. "숙비가 갇혀 있는 며칠 동안 무어라 하던가요?"건양제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폐하, 소녀가 숙비 마마를 뵙게 윤허해 주시옵소서. 어쩌면 작은 단서라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옵니다." 이연령이 자진해서 나섰다.서 태후가 이연령의 손을 놓고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일 때였다. 소 상궁이 다가와 태후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순간 서 태후의 눈빛이 탁하게 가라앉았다. 불쾌한 기색이 스쳤으나 그녀는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짐짓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연령에게 물었다."오늘 입경할 때 네 마차가 놀라 날뛰었다지?"그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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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급하게 왕부로 돌아온 경왕의 시야에 마당 가득 깔려 있는 예물이 보였다.그는 즉각 미간을 찌푸렸다. 배영준이 마중을 나오며 말했다."아버지, 왕비께서 독단적으로 이 혼사를 허락하셨습니다. 심지어 길일마저 정해버리셨습니다.""왕비는 어디 있느냐?""대청에 계십니다."경왕은 걸음을 재촉해 대청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원금은 한가로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간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곁에 있는 시녀에게 무어라 귓속말을 나누는 중이었다.시녀가 눈치를 채고 귀띔했다."마마, 전하께서 돌아오셨사옵니다."조원금은 그제야 웃음기를 거두고 경왕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전하.""어찌하여 멋대로 이 혼사를 허락한 것이오?"경왕이 굳은 얼굴로 따져 물었다."내 분명히 말하지 않았소. 유리 그 아이는 지금 명성이 나빠져 당씨 가문에 시집보내기엔 적절치 않으니, 멀리 타향으로 출가시킬 것이라고 말이오.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리 굴었소?"그 질책에도 조원금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이 혼사는 태후 마마 앞에서도 거론되었던 일이고, 경성의 수많은 부인들이 증인입니다. 헌데 전하께서 유리를 멀리 시집보내려 하시다니요. 대체 무슨 명분이 있으십니까?""어머님께서는 오늘 어찌하여 첩부인이 얼굴을 내밀어 몇 마디 거들게 두지 않으셨습니까…."배영준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조원금은 배영준을 매섭게 쏘아보았다."일개 첩실 주제에 어찌 왕부 아가씨의 혼사에 함부로 끼어든단 말이냐? 체통 없이!"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배영준은 말문이 막혔다.경왕이 말했다."본왕이 분명 주의를 주었거늘, 당신은 어찌 충고를 듣지 않소?""당 대인이 예를 갖춰 예물을 가지고 왔는데, 제가 그 사람들을 내쫓기라도 했어야 합니까? 전하께서 정 이 혼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지금 당장 저 예물을 돌려보내시지요. 이 혼사는 무려 조령 장공주께서 중매를 서신 것입니다!"조원금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경고했다."정왕부 일족은 조서 없이 무단으로 경성을 떠날 수 없거늘,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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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왕비께선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른 적이 없으시니, 어미 된 자가 딸을 걱정하는 이 애끓는 마음을 어찌 아시겠습니까."여씨가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 뺨에 난 붉은 손자국이 유독 선명했다.그녀는 울고불고 매달리는 대신, 그저 경왕이 이 혼사를 윤허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그만두어라!"마침 임 태비가 걸음을 했다."혼사는 이미 정해졌다. 더는 왈가왈부할 것 없이, 넌 남은 며칠 동안 유리 그 아이에게 예법이나 단단히 가르치거라."여씨는 임 태비마저 말을 바꾸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방금 조원금이 한 말들이 태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분명했다.경왕부가 고작 배유리 하나를 감싸겠다고 사방에 적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배유리는 결국 버려진 것이다.조원금이 곁눈질로 경왕을 힐끗 보며 말했다."말씀대로 저는 아이를 낳아본 적도, 혼사를 치러본 적도 없지요. 그러니 유리의 혼사는 여씨에게 맡기겠습니다. 제가 맡았다가 유리를 박대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상대가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사주단자를 탁자 위에 내려놓더니, 시녀들을 거느리고 훌쩍 자리를 떠버렸다.대청 안에는 숨 막히는 어색함만이 감돌았다.임 태비가 첩실 여씨를 향해 말했다."여씨, 네가 참으로 주제를 넘었구나. 감히 왕비를 향해 말대꾸를 하다니, 예의를 밥 말아 먹은 게지. 오늘 일은 왕비를 탓할 수 없다."그 말은 여씨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억울해도 하소연할 데가 없어진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소첩은 그저 유리 그 아이가 타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까 지레 겁을 먹고 걱정하는 마음에, 잠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예법을 잊었습니다. 부디 태비 마마와 전하께서 용서해 주십시오."오랫동안 임 태비와 경왕을 모셔온 여씨는 재빨리 판세를 읽어냈다.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상 입을 열어봐야 득 될 것이 없으니, 속이 쓰려도 억지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여씨가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자 두 사람도 물러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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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조령 장공주는 경악하며 당 부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 부인은 태후의 속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 그저 기장훈의 뛰어남을 순수하게 칭찬할 뿐이었다.그녀 역시 기장훈이 당윤과 막역한 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훤칠하고 영준한 사내이긴 하나, 옥에 티라면 요 몇 년 사이 평판이 썩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태후 마마께서 고르신 인물들이니 만 명 중 으뜸가는 이들이겠지요. 너무 황송스러워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입니다. 짚어주신 세 사람은 저도 돌아가 조금 더 알아본 뒤, 유영이 마음에 들어 하는 이가 있는지 물어보겠습니다."조령 장공주는 서 태후 앞으로 다가가 장공주로서의 체면을 다 내려놓고 몸을 낮췄다.과거 조령 장공주는 뭇 공주들 중에서 가장 총애받는 여식은 아니었다. 그저 서 태후의 눈에 든 덕분에 황궁에 남을 수 있었고, 선황이 붕어한 뒤 건양제가 그녀에게 장공주의 신분을 내려준 것이었다.다른 공주들과 비교해 보면, 조령 장공주는 단연코 모든 공주 중에서 가장 풍족한 대우를 누리고 있었다.서 태후가 조령 장공주의 손등을 토닥였다."유영이 그 아이는 영리하고 철이 일찍 들었지. 아이에게 잘해주는 지아비를 골라 장차 고명을 받아 당당하게 사는 편이, 타국으로 화친을 가 평생 얼굴 몇 번 못 보고 사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그 말에 조령 장공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애써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태후 마마의 말씀이 백번 지당하십니다."자녕궁을 나서자 눈부신 태양이 쏟아져 내렸다. 조령 장공주는 순간 현기증이 일어 당 부인의 팔을 덥석 붙잡고서야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장공주 전하?" 당 부인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어디 불편하신 겝니까?"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조령 장공주는 고개를 저었다."요 며칠 잠을 설쳐서 그런 모양이니 괜찮네."그녀의 안색이 점차 본래대로 돌아왔다.그때 귓가에 맑고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장공주 전하!"조령 장공주가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보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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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무심코 뱉은 말이었으나 듣는 이에게는 달리 들리는 법. 조령 장공주는 뇌리가 번쩍하며 방금 전까지 품고 있던 의문을 다시 곱씹었다.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때로는 겉으로 드러난 총애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지."곁에 있던 시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조령 장공주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공주부로 돌아온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장훈, 온주빈, 그리고 유관성 세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었다."이들 중 네 낭군이 될 사람을 하나 고르거라. 내일 어미에게 알려주면, 되도록 빨리 혼사를 매듭지을 것이다."조령 장공주가 단호하게 말했다.유영 현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어머니, 너무 갑작스럽습니다.""어미가 널 해코지라도 하겠느냐."조령 장공주는 유영 현주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신신당부했다."지금부터 혼사가 결정될 때까지 절대 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얌전히 머물도록 해라."다행히 유영 현주는 영리하고 눈치가 빨라,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공주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어머니께서 입궁하신 사이, 고모님께서 어머니를 뵙겠다며 몇 번이나 다녀가셨습니다."류씨의 이름이 나오자, 조령 장공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유영아, 그 여자는 일개 첩실일 뿐이다. 네가 고모라 부르며 예우할 상대가 아니지."예전에는 부마의 체면을 보아 류씨 모자가 남들에게 괄시라도 당할까 봐 남몰래 뒤를 보아주곤 했다. 허나 이제 그 일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 윗분들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었으니, 장공주로서도 마땅히 쳐낼 것은 쳐내야 했다."낭군감은 찬찬히 생각해보거라. 어미는 처리할 일이 좀 있구나."조령 장공주가 유영 현주를 향해 다정하게 말했다.딸의 처소를 나선 조령 장공주가 곁의 시녀를 힐끗 보며 물었다."류씨는 어디 있느냐?""대청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하를 뵙지 않고서는 절대 물러가지 않겠다면서요."그 말에 조령 장공주의 안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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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장공주 전하, 정말 류씨를 도와주실 생각이십니까?"시녀가 물었다.조령 장공주는 미간을 짚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내 기억에 당응성에게 타향으로 시집간 친동생이 하나 있었지. 그쪽에 서신을 보내 이 혼사를 도맡아 달라 이르거라."그 말에 시녀는 잠시 멈칫했다."나도 이 일에 엮이고 싶진 않지만, 어찌 되었든 이 혼사는 내가 중매를 선 것이 아니냐. 그러니 모른 척 내버려 둘 수는 없지."조령 장공주가 말했다.당씨 가문으로 돌아온 류씨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말끔한 얼굴에는 방금 전의 애통함이라곤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곧장 당씨 노부인의 처소로 향했다.당씨 노부인은 요 며칠 고질병이 도져 앓아누운 참이었다. 사당이 불탄 이후로 줄곧 몸을 가누지 못하던 그녀는 류씨가 들어오자 물었다."어딜 다녀오는 게냐?"류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지어냈다."장공주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 학이의 혼사를 논의하자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 커가는 걸 지켜보신 터라, 그 애정이 남다르시니까요."그 말에 당씨 노부인은 책망하려던 말을 쏙 집어삼키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오? 그래, 장공주께선 뭐라 하시더냐?"혼례까지 고작 여드레밖에 남지 않아 확실히 촉박하긴 했다."장공주 전하께선 학이가 서운할 일은 없게 하겠다 하셨습니다."류씨는 조령 장공주가 예전처럼 당학의 일을 모두 떠맡아 잘 처리해 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당씨 노부인도 한시름 놓았다는 듯 말했다."장공주께서 친히 혼사를 주관해 주신다면 학이에게도 큰 영광이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류씨가 미소를 지었다.이어 당씨 노부인이 소문을 입에 올렸다."어제 연령군주가 돌아왔다지. 그런데 마차가 날뛰는 바람에 하마터면 경 세자비가 다칠 뻔했다더구나."어제 일어난 소란은 이미 장안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시녀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노부인 역시 몹시 놀란 터였다."저도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연령군주는 태후 마마께서 직접 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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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잠시 후, 곽운연이 황급히 달려와 위아래로 그녀를 살폈다."장원에 갔다가 이제 막 돌아오는 길에 소식을 들었어. 다친 덴 없니?""운연 언니, 전 괜찮습니다."그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곽운연은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시녀들을 시켜 장원에서 가져온 과일과 육포들을 방비원 시녀들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었다."내 명의로 된 장원이 몇 곳 있는데 과일이 제법 열렸더구나. 덩그러니 나 혼자뿐인 곽씨 가문에서 그 많은 걸 어찌 다 먹겠니."그 말에 시녀들이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유지영은 그녀를 이끌어 의자에 앉혔다."혼례가 이십여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저택에 준비할 것들은 좀 있습니까?""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황상께서 내무부의 상 공공을 보내 혼사를 주관하게 하셨으니, 친척들도 감히 손을 뻗지 못하고 있어."곽운연의 부모는 전장에서 전사했고, 그녀는 홀로 남은 혈육이었다. 만에 하나 혼사에 작은 차질이라도 빚어졌다가는 건양제가 그 일족들을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그러나 유지영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혼례를 치르기 전까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무공을 할 줄 아는 시녀를 곁에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입씨름을 꽤나 해야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곽운연은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유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숨기지 않고 말하마. 나 역시 내 명성에 흠집을 내려는 자들이 있을까 싶어 남몰래 무공을 아는 시녀를 찾고 있었어. 마땅한 이를 찾지 못했을 뿐이지.""언니만 괜찮으시다면, 제게 마침 적당한 아이들이 있습니다."유지영은 예전 배현준이 곁에 붙여주었던 네 명의 시녀를 가리켰다.곽운연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네 안목이야 당연히 믿지. 넌 여러 번이나 날 위기에서 구해주지 않았니. 게다가 지금 넌 홀몸도 아닌데 곁에 사람이 없으면 어떡해. 내가 어찌 네 시녀들을 데려가겠어.""괜찮습니다. 한 달만 빌려드리는 거라 여기세요."유지영의 거듭된 권유에 곽운연은 감격하며 인사를 건넸다."고마워, 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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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지영아, 지금은 섣불리 움직여 적을 자극할 때가 아니다." 배현준이 유지영을 부축하며 낮게 말했다. "당윤이 찾기 전에, 이미 누군가 먼저 그를 찾아가 진짜 신분을 알렸다는구나. 북신 쪽에서도 눈치를 챘으니 호락호락하게 내어주진 않을 거다."유지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가 오라버니를 찾은 겁니까?"사실 배현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지영은 짐작할 수 있었다. 배준형이 틀림없었다!예상대로 배현준이 답했다. "배준형이다."그 말을 들은 유지영은 가슴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살기가 치솟았다. 그녀가 주먹을 꽉 쥐자 배현준이 말을 이었다."당윤이 유관성에게 자초지종을 분명히 설명했다 하더군. 버려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납치되었던 것이며, 장인어른께서도 수년 동안 남몰래 그를 찾는 일을 포기하신 적이 없다고 말이다. 그가 당장 돌아오지 않으려는 건 유씨 가문에 화가 미칠까 염려해서라고 한다. 우선은 양쪽이 은밀히 연락을 취하며 다음 계획을 도모해야지."점차 이성을 되찾은 유지영의 뇌리에 번뜩이는 계획 하나가 스쳤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만약 두 나라가 화친을 맺는다면요. 우리 양나라가 콕 집어 북신의 육공주의 화친을 요구한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일입니까?"배현준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미간을 찌푸렸다."북신과 양나라가 마지막으로 화친을 맺은 게 벌써 육십 년 전 일이다. 갑작스러운 화친 제의를 북신이 선뜻 받아들일 리 만무하지.""아니요, 북신은 반드시 동의할 겁니다!" 유지영이 단호히 말했다. "배이수는 현재 동량의 유일한 황자입니다. 그를 미끼로 던지는 겁니다. 배이수가 훗날 황제가 될 것을 안다면, 북신이 어찌 흔들리지 않겠습니까?"육공주가 온다면, 오라버니도 따라올 것이다.백번 양보해서 오지 않는다 쳐도 육공주가 인질이 될 터였다!배현준은 침묵했다."배이수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 역시 황위에 오르려면 배후 세력이 필요하니까요. 단 귀인은 지금 옥에 갇혀 있고, 숙비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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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이연령은 점차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곁눈질하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의아함과 함께 은근한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군주님, 경세자께선 지금껏 군주님께 이리 매정하게 구신 적이 없거늘, 오늘은 대체 왜 저러실까요?" 영옥이 의아한 듯 작게 속삭였다. "혹여 그 마차 사건을 두고, 경세자비가 세자께 무슨 험담이라도 한 것 아닐까요?"그 말에 이연령도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럴 만도 하지. 경세자비가 회임을 했고, 현준에게도 첫 아이니 이리 예민하게 구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원래대로라면 배현준은 그녀의 지아비가 되어야 마땅했다.지난 십여 년간 배현준의 곁을 지킨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도성 사람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던 난봉꾼에서 결단력 있는 장군으로 거듭나고, 빼앗긴 땅을 수복하고 네 나라를 멸망시켜 새로운 국가인 운연국을 세워 만국의 우두머리로서 천하를 호령하기까지 함께했던 것이다.그런데 어째서… 유지영을 부인으로 맞이한단 말인가?불과 그녀가 조상께 제를 올리러 고향에 내려간 반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이연령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나는 그 사람 성정을 잘 안다. 그저 우연히 수구를 받았으니 어쩔 수 없이 책임지는 것일 뿐, 결코 연정이 아니야. 게다가 경세자비의 마음속에 품은 이도 현준이 아니니, 현준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두 사람은 반드시 갈라설 것이다!"다만… 유지영이 낳은 아이가 훗날 제 눈앞에서 알짱거릴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졌다."관두자. 우선 할 일부터 해야지."이연령은 영옥을 데리고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어둡고 축축한 데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고, 간간이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감옥 안의 죄수들 몇몇은 그녀를 보자 다투어 손을 뻗으며 살려달라 울부짖었다.이연령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궁녀들이 갇힌 곳까지 곧장 걸어가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곁에 있던 간수에게 물었다."방금 경세자비가 이곳에 와서 누굴 만났느냐?"간수가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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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양종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배현준이 눈짓을 보내자 곁에 있던 호위 무사들이 조용히 물러났다.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자, 양종은 소매에서 반쪽짜리 철패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세자께서 숙비 마마를 이 위기에서 구해주십시오. 허 귀비를 유산시켰다는 억울한 누명만 벗겨주신다면, 훗날 저희 양씨 가문은 세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허 귀비가 유산한 지 제법 시일이 지났건만, 건양제는 조사를 더 진척시키지도 않고 이도 저도 아닌 태도로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 탓에 오히려 양씨 가문의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그러다 이연령 군주가 도성으로 돌아오자, 황제는 이 사건을 덜컥 군주에게 맡겨버린 것이다.배현준은 탁자 위의 영패를 힐끗 보더니,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냉소를 흘렸다."이연령이 나를 찾아가라 하던가?"양종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과연 예상대로 이연령이 양종을 꾀어 배현준에게 보낸 것이 맞았다. 배현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결국 그가 쥐고 있는 권력을 제 입맛대로 이용하려는 얄팍한 속셈 아니겠는가?배현준의 마디 굵은 손가락이 찻잔을 꽉 틀쥐었다. 눈빛이 묘하게 가라앉았으나,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방 안에는 팽팽한 침묵이 맴돌았다.그때, 갑자기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대인!"양종의 호위 무사였다. 양종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자 호위 무사가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고, 양종의 미간이 단박에 구겨졌다.그사이 평안도 방으로 들어와 포권하며 아뢰었다."세자, 오늘 이연령 군주가 심문하던 궁녀 두 명이 감옥 벽에 머리를 박고 자진했다고 합니다. 죽기 전 혈서를 남겼는데, 양 숙비와 단 귀인이 결탁해 허 귀비를 해친 거라고 합니다."크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한 글자 한 글자가 뇌리에 또렷하게 박혔다.양종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배현준은 쥐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훌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입가에 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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