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령은 채찍을 쥔 손을 허공에 든 채,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숙비를 구하려는 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배현준은 한 손을 뒷짐 진 채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 몸놀림이 어찌나 날랜지, 이연령에게 쫓아갈 틈조차 주지 않았다.그의 인영은 순식간에 멀어졌다.이연령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손에 쥔 채찍을 옥죄는 힘이 점점 강해지더니, 이내 손끝까지 하얗게 질렸다."양씨 가문은 대대로 군권을 장악하며 수많은 위망을 쌓아왔다. 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면 녀석에게도 큰 득이 될 텐데."이연령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했다."아직은 진중함이 부족하군. 하필이면 또 저리 성질 급하고 경솔한 처를 얻어, 곁에서 일깨워 주기는커녕 도리어 부추기기나 하니 말이야."이연령은 갈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군주님, 경세자께선 옛정을 생각지도 않으시는데, 어찌 군주님께서 세자를 위해 애를 쓰십니까. 경세자께서는 은혜를 전혀 모르십니다."영옥이 제 주인을 대신해 분통을 터뜨렸다.이연령이 영옥을 흘기며 꾸짖었다."녀석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옥돌이다. 훗날 반드시 크게 될 재목이니, 지금은 그저 진득하게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어. 됐다, 네가 이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지.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그녀는 서둘러 자녕궁으로 향했다.하지만 소 상궁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군주님, 태후 마마께서는 지금 불공을 드리고 계십니다."그 말을 들은 이연령은 문 밖에 선 채로 기다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떠한 동요도 비치지 않았다.한편, 유정혁의 시신은 둘째네 거처로 보내졌다.유정랑과 유원랑 두 사람은 얼이 빠져 있었다. 관아 사람들은 시신을 내려놓자마자 훌쩍 떠나버렸고, 텅 빈 뜰에는 두 형제만이 덩그러니 남았다."혀, 형님?"유원랑은 겁에 질린 채 유정랑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유정랑은 계단 위에 서서 바닥에 누운 유정혁을 내려다보았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에 입가에는 핏자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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