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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431 - Chapter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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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1화

다음 날.궁녀 두 명이 혈서를 남기고 자진했다는 소문이 온 황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침 조회에서조차 이 일이 입방아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자녕궁의 서 태후는 곧장 이연령을 불러들였다.처음 소식을 접한 이연령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분명 두 궁녀와 조건까지 다 맞춰두었거늘, 어째서 갑자기 감옥 벽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렸단 말인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연령아, 대체 어찌 된 영문이냐. 지금 바깥에서는 네가 그 두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 죽였다고 난리도 아니구나." 서 태후의 얼굴에 은근한 질책이 서려 있었다.이연령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털썩 무릎을 꿇었다."태후 마마, 소녀는 어제 감옥에 갔을 때 그 어떤 협박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던졌을 뿐인데, 분명 중간에 뭔가 꿍꿍이가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서 태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양 숙비와 같은 무장 가문 출신이라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것은 내 잘 안다. 나서서 숙비의 억울함을 씻어주고 싶어 마음이 급한 것도 알겠으나, 지금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진실은 단 하나다. 숙비가 허 귀비를 질투하여 독을 써서 해치려 했다는 것. 그러니 이 일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말거라.""태후 마마…." 이연령은 억울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소녀는 그 두 궁녀가 어제 소녀를 만나기 전후로 또 누구를 만났는지 알아야겠습니다. 소녀는 결코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았습니다."그녀는 애꿎은 증인들을 핍박해 죽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싫었거니와, 무엇보다 양씨 가문의 미움을 사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았다.이연령이 하도 끈질기게 매달리며 애원하자, 결국 서 태후도 고집을 꺾고 그녀가 다시 옥에 가서 조사하는 것을 허락했다.이연령이 물러가자마자 서 태후는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꼼꼼히 닦아내더니, 불결한 것이라도 만진 양 미련 없이 휙 내던졌다. 소 상궁이 재빨리 새 손수건을 대령했다."내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지. 현준이 그 녀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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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유정혁이 눈을 깜빡였다.이연령은 곁에 있던 간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두 물러가거라."간수들은 감히 그녀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허리를 굽히며 물러났다.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이연령은 허리를 굽혀 쭈그리고 앉았다. "유지영이 한 짓이냐?"유정혁은 두 눈을 부릅뜨고 눈을 깜빡이려 했으나, 돌연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입에 하얀 거품을 물더니 이내 얼굴이 검붉게 변하며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이연령은 안색이 굳어지며 다급하게 소리쳤다.잠시 후 간수 몇 명이 달려오자, 이연령이 유정혁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어서, 어서 의원을 불러와 이 자의 상태를 보게 하라."간수가 황급히 의원을 청하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반 시진쯤 지나 의원이 당도했다. 그는 채 다가가기도 전에 질겁하며 외쳤다. "이, 이건 중독입니다!"그 말을 들은 이연령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가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멀쩡하던 자가 어찌 중독된단 말이냐?"게다가 하필 이리 공교로울 수가.그녀는 유정혁이 막 눈을 깜빡이려던 찰나를 분명 똑똑히 보았었다.왈칵!끈적한 핏물이 한가득 뿜어져 나왔다.유정혁은 눈을 부릅뜬 채 사지가 빳빳하게 굳더니, 이내 고개를 툭 떨구며 숨을 거두었다."구, 군주님. 숨이 끊어진 것 같습니다." 영옥이 조심스레 알렸다.이연령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간수를 향해 따지듯 물었다. "오늘 유정혁을 면회하러 온 자가 있었느냐?"간수가 공손히 엎드리며 답했다. "군주님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그 말에 이연령의 미간이 한층 더 깊게 패였다. 머릿속에 유지영의 얼굴이 번뜩 떠오르자, 그녀는 영옥을 돌아보며 명했다. "검시관을 불러오거라. 유정혁이 언제 독에 당했는지, 무슨 독인지, 또 무엇을 먹었는지 낱낱이 살피게 해. 그리고 당장 태후 마마께 사람을 보내 유정혁이 독살당했음을 알려라."영옥은 명을 받들고 몸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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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이연령은 채찍을 쥔 손을 허공에 든 채,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숙비를 구하려는 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배현준은 한 손을 뒷짐 진 채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그 몸놀림이 어찌나 날랜지, 이연령에게 쫓아갈 틈조차 주지 않았다.그의 인영은 순식간에 멀어졌다.이연령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손에 쥔 채찍을 옥죄는 힘이 점점 강해지더니, 이내 손끝까지 하얗게 질렸다."양씨 가문은 대대로 군권을 장악하며 수많은 위망을 쌓아왔다. 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면 녀석에게도 큰 득이 될 텐데."이연령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했다."아직은 진중함이 부족하군. 하필이면 또 저리 성질 급하고 경솔한 처를 얻어, 곁에서 일깨워 주기는커녕 도리어 부추기기나 하니 말이야."이연령은 갈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군주님, 경세자께선 옛정을 생각지도 않으시는데, 어찌 군주님께서 세자를 위해 애를 쓰십니까. 경세자께서는 은혜를 전혀 모르십니다."영옥이 제 주인을 대신해 분통을 터뜨렸다.이연령이 영옥을 흘기며 꾸짖었다."녀석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옥돌이다. 훗날 반드시 크게 될 재목이니, 지금은 그저 진득하게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어. 됐다, 네가 이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지.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그녀는 서둘러 자녕궁으로 향했다.하지만 소 상궁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군주님, 태후 마마께서는 지금 불공을 드리고 계십니다."그 말을 들은 이연령은 문 밖에 선 채로 기다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떠한 동요도 비치지 않았다.한편, 유정혁의 시신은 둘째네 거처로 보내졌다.유정랑과 유원랑 두 사람은 얼이 빠져 있었다. 관아 사람들은 시신을 내려놓자마자 훌쩍 떠나버렸고, 텅 빈 뜰에는 두 형제만이 덩그러니 남았다."혀, 형님?"유원랑은 겁에 질린 채 유정랑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유정랑은 계단 위에 서서 바닥에 누운 유정혁을 내려다보았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에 입가에는 핏자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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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분이라 하였느냐?" 유정남은 손수 유정혁을 갈가리 찢어놓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이었다.그는 유정랑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쏘아붙였다."지영이는 어릴 적부터 어미의 보살핌도 없이 자라며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게다가 관성이는 행방불명되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상상도 가지 않지. 반면 네 부모는 장장 십여 년을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고 살았다. 이 분노가 어찌 풀리겠느냐?"유정랑은 말문이 막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몇 번이나 입을 뻐끔거리며 반박하려 했으나,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단한 유정남의 눈빛과 마주치자 도로 삼키고 말았다."부고는 전했으니, 그만 돌아가거라."유정남이 손을 휘저었다.부관이 유정랑을 밖으로 내보냈다.유정랑이 돌아간 후, 유정남은 여전히 뜰에 선 채 노부인의 곡소리를 듣고 있었다."노부인, 노부인!" 이씨 어멈이 비명을 질렀다.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결국 이씨 어멈이 직접 노부인의 인중을 꽉 눌러 깨워야만 했다. 노부인은 간신히 몸을 지탱해 바닥으로 내려왔고, 비틀거리며 문가로 다가갔다. 뜰에 서 있는 유정남을 발견한 그녀는 다급하게 외쳤다."큰애야, 네가 둘째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 감옥에서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영문도 모르게 죽다니, 이건 우리 유씨 가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짓이야!"곡소리는 처절했다.듣는 이의 머리끝이 쭈뼛해질 정도였다.특히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채 부들부들 떠는 노부인의 모습은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유정남은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그자가 그런 몹쓸 짓들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날 이런 말로를 맞았겠습니까?"너무도 평온한 말투에 노부인은 극도로 분노했다."그래도 너와 한 어머니 배에서 나온 네 친동생 아니냐!"유정남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명백했다. 노부인은 문득 깨달은 바가 있는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뻗어 그를 가리켰다."너, 너 이 녀석, 아직도 그 옛날 일에 앙심을 품고 있는 게냐? 사람은 이미 죽었고, 담혜정은 진작에 한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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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둘째네 집안은 또다시 초상을 치렀으나, 사람들이 하나같이 꺼리며 발길을 끊는 바람에 뜰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유원랑은 상복을 입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붉게 충혈된 눈으로 형을 올려다보았다. "큰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정말로 아버지를 버리신 걸까요?"그는 셋째 삼촌의 초상이 치러졌을 때의 북적거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큰아버지가 줄곧 곁을 지키며 뒤를 봐주었기에, 많은 이들이 셋째네 집안을 살뜰히 챙겼었다. 그런데 왜 그들의 초상에는 향 한 대 올리러 오지도 않는 것일까?유정랑 또한 유정남의 가슴속에 형제간의 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람이 죽으면 빚도 다 탕감되는 법인데, 오셔야 마땅한데…."안타깝게도 사흘이 지나도록 국공부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거대한 뜰에 두 형제만 덩그러니 남겨진 상황에 유정랑의 안색은 갈수록 흉하게 일그러졌다."형님." 유원랑이 울먹이며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큰집을 모함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분가할 일도 없었을 텐데요."그는 평생 인주에 머물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하인들이 자신을 도련님이라 불러주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멸시와 서러움을 당하는 처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둘째네의 일거수일투족은 유정남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호위 무사에게 엄명을 내렸다. "두 사람을 절대 성 밖으로 내보내지 말거라."아들 관성이 밖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저들도 똑같이 남들에게 짓밟히는 수모를 겪어봐야 하지 않겠는가!부모의 빚을 자식이 갚는 것은 천지불변의 이치였다.눈 깜짝할 사이에 이틀이 또 지났다.건양제는 모처럼 배이수를 불러들였다. 예상치 못한 부름에 배이수는 감격하여 그에게 예를 행했다."아바마마!" 건양제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짐이 너에게 혼처를 하나 정해주려 한다."배이수는 멈칫했으나,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아바마마의 뜻을 따르겠나이다."건양제는 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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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배현준의 호령이 떨어지자, 양종은 입이 틀어막힌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오십 대의 장형이 쏟아졌고, 양종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형 집행이 끝나자 배현준이 물었다."양 대인, 폐하께서 체면을 세워주어 멸문지화는 면하게 해주셨소. 그러니 오늘은 이만 순순히 병권을 내놓으시오."음산한 말투에는 위협과 경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양종은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아, 아닙니다. 폐하께서 어찌 이리 매정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선황 폐하를 모시고 전장을 누볐던 사람입니다!"배현준은 코웃음을 쳤다."허 귀비 마마께서 어렵사리 회임하시어 폐하께서 이번 태아를 애지중지하시거늘, 황실의 핏줄을 해치려 한 것은 반역이나 다름없소. 어찌 폐하께서 양씨 가문을 용서하시길 바라는 게요?"양종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오늘은 내가 양 대인을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소."배현준이 눈짓을 하자 호위 무사들이 들것을 가져와 양종을 싣고 일어났다.바닥에 남은 핏자국은 어린 내관들에 의해 금세 깨끗하게 닦였다. 뜰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끔한 모습을 되찾았다.밖의 소란은 안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건양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배현준의 결단력 있는 일 처리가 퍽 마음에 든 기색이었다."세자의 과감한 일 처리가 젊은 시절 폐하의 풍모를 닮은 듯하옵니다."상 내관이 아부했다.건양제가 눈을 치켜뜨며 명했다."어명을 전하라. 숙비를 서인으로 폐한다!"배현준이 금군을 이끌고 양종을 옮기며 궁을 빠져나가려던 참이었다. 회랑을 지날 무렵 이연령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들것에 실린 양종을 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질책하듯 말했다."배현준, 어찌 이리 어리석게 양 대인을 건드린 것이야?"그녀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터였다.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화친 사절단이 곧 방문할 텐데, 양종을 회유하기는커녕 감히 형벌을 가하다니?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 아닌가!배현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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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배현준이 양종을 대동하고 나타나자, 양씨 저택은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 노인부터 아이 할 것 없이 일가친척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문앞에 줄지어 선 수많은 금군을 보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걱정과 경악,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기괴한 빛이 떠올랐다.배현준은 문앞에 버티고 서서 느긋하게 양종을 내려다보았다. 그 의미는 명확했다. 양종은 고개를 치켜들고 애원했다."세자, 한 번만 봐줄 수 없겠습니까?"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싸늘한 비웃음뿐이었다.이 거대한 양씨 저택에 있는 이들이 모두 핏줄인 이상, 양종에게 선택지란 애초에 없었다. 그는 극심한 고통을 억누르며 병권을 내놓았다. 병부 한 쌍이 배현준의 손에 떨어졌다.배현준은 그제야 턱짓으로 양종을 내려놓게 했다. 그리고는 금군을 이끌고 거침없이 자리를 떠났다.등 뒤로 양씨 일가의 통곡 소리와 소란스러운 외침이 뒤엉켜 들려왔다. 하지만 임무를 완수한 배현준은 금군을 물린 뒤 곧장 경왕부로 향했다.저택에 들어서자, 온통 붉은 장식이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마침 배영준과 민경주 두 사람도 저택으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둘은 팔짱을 낀 채 유난히 다정한 체를 하고 있었다."방금 양씨 저택을 지나쳐 왔는데, 형님께서 아주 위풍당당하시더군요."배영준이 비아냥거렸다.배현준의 뒤로 뭇 별이 달을 떠받들 듯 금군이 호위하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그러나 민경주는 콧방귀를 뀌었다."무과 장원 선발일에 서방님께서 다리만 다치지 않으셨어도, 오늘 저리 위세를 떠는 건 서방님이셨을 텐데요. 그저 심보가 잔혹하여 제 친동생에게까지 마수를 뻗친 자가 운이 좋았을 뿐이죠."배영준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입으로는 치켜세웠지만, 두 눈에는 질투와 증오가 이글거렸다. 제게 속해야 할 모든 것을 배현준이 빼앗아 갔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배현준은 눈을 치켜떠 나불거리는 두 사람을 힐끗 보더니, 배영준의 다리에 시선을 멈췄다. 그리고 무심하게 물었다."다리는 다 나았느냐?"그의 시선이 다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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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배현준이 말했다."그 노인네는 본디 이기적인 사람이야. 배유리야 그저 애완동물 대하듯 자애롭다는 명성을 얻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지."혼사를 앞둔 경사스러운 분위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경왕부처럼, 당씨 가문 역시 마찬가지였다.첩실 류씨는 이레가 넘도록 기다렸지만 조령 장공주 측에서는 일손을 보태러 오지 않았다. 혼례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애간장이 탔다.정실인 당 부인은 의용후부에 머물며 모른 척하고 있으니, 일개 첩실인 그녀가 밖으로 나돌며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명문가 귀족들은 첩실인 류씨의 체면을 세워줄 리 만무했다. 청첩장을 받아도 시큰둥했고 마지못해 받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탓에 류씨는 숱한 눈총을 받아야 했다."장공주께서 친히 혼사를 주관해 주실 거라더니, 어째서 아직도 기별이 없는 게냐?"당씨 노부인이 불쾌한 기색을 띠며 류씨을 닦달했다.노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류씨는 몇 번이나 장공주부를 찾아가 뵙기를 청했다. 하지만 문지기는 장공주가 며칠 전 산으로 불공을 드리러 가 비웠다고만 했다. 다급해진 류씨는 별수 없이 의용후부로 발길을 돌렸다.후부 대문을 들어서기 직전, 불현듯 이성을 되찾은 류씨는 곁에 있던 시종을 보내 당응성을 불러오게 했다."첩부인, 어찌하여 곧장 들어가지 않으십니까?" 시종이 묻자 류씨가 대답했다."내 처지가 미천하여 부인께서 체면을 봐주실 리 만무하다. 조금 기다려보자꾸나."반 시진 후, 당응성이 도착했다."나으리, 번거롭게 해드린 줄은 아오나 저로서도 도리가 없었습니다. 학이의 혼례가 코앞인데 저택 내에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라 소첩은...."류씨는 애가 타 눈물을 뚝뚝 흘렸다.당응성은 안쓰러운 듯 류씨를 품에 안았다."고생이 많았다. 이 일은 본디 정실인 우지유가 감당해야 할 본분이거늘. 내 당장 가서 따져 물으마."우지유는 당 부인의 이름이었다.마침 근처를 지나다 그 말을 듣게 된 당 부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문 앞을 막고 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당응성은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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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당 부인조차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시누이는 결코 만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당씨 어르신이 살아계실 적, 온갖 애를 쓴 끝에야 겨우 멀리 시집보낼 수 있었던 골칫거리였다.그 후로 당응혜는 한 번도 상경한 적이 없었지만, 서신 왕래만큼은 끊이지 않았다. 잦을 때는 한 달에 서너 번씩 서신이 날아들었다.내용은 뻔했다. 울며 하소연하거나 불평을 늘어놓거나, 그도 아니면 당응성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며 상경하고 싶다고 조르는 통에 당응성은 골머리를 앓아왔다.핏줄이 무서운지라 그저 꾹 참아 넘길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그 골칫거리가 기어이 상경을 한 것이다!그것도 조령 장공주가 친히 불러들였다니!당응성은 즉시 류씨를 쏘아보았다. 조금 전의 다정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짜증과 초조함만 가득했다."장공주 전하께서 친히 학이의 혼사를 주관해 주실 거라더니,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이냐!"류씨 역시 어안이 벙벙했다.그녀 역시 당응혜가 얼마나 끈질기고 표독스러운지 잘 알았기에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나으리, 소첩은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모른다고?"당응성은 처음으로 류씨의 천박한 밑천을 깨달았다. 평소 사소한 일을 처리할 때나, 애교를 부리며 얕은수를 쓰는 데는 그럭저럭 쓸만했다.하지만 막상 중대한 일이 닥치자 넋을 잃고 눈물만 짤 뿐이었다.사실 오늘 류씨가 굳이 들먹이지 않았더라도, 당응성은 혼사를 주관하게 할 요량으로 당 부인을 찾아올 참이었다. 혼례일은 코앞이고 당씨 가문의 청첩장도 이미 뿌려진 후였다.조회를 마치고 마주친 동료들은 하나같이 그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보며 혀를 찼다. 그나마 가까운 지인 한 명이 넌지시 귀띔을 해 주었다."당씨 가문은 명색이 백 년 세가인데, 어찌 장자의 혼사를 일개 첩실에게 맡긴단 말이오. 안방에서야 예뻐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그런 천한 것을 내세우면 대체 누가 체면을 챙겨 주겠소? 스스로 가문의 격을 깎아내리는 꼴이오."그 말에 번쩍 정신이 든 당응성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그저 오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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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당응성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당응혜는 류씨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저택에 일손이 부족하다니 고모인 내가 당연히 거들어야지. 오늘부터 저택의 손님맞이는 내가 맡으마."그 말을 들은 류씨는 당장 울 것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혼사를 마치면 돌아가거라."당응성이 불쑥 내뱉었다."이미 출가한 몸이 어찌 당씨 저택에 계속 머물려 하느냐. 남들이 비웃을 게다.""비웃다니요? 어머니께서 이미 허락하셨는걸요. 기회만 닿으면 저희도 경성에 뿌리를 내릴 작정입니다."당응혜는 오라비가 자신을 아껴 부군 앞에서 그리 말하는 줄 알고 서둘러 변명했다."오라버니, 염려 마세요. 방씨 가문 사람들도 그리 꽉 막힌 이들은 아니니까요."당응혜의 부군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일가족 넷을 보는 당응성의 마음엔 누이를 다시 만난 기쁨 따위는 없었다. 그저 초조함과 짜증만 치밀어 오를 뿐이었다.혼례를 목전에 두고 류씨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혼사가 끝날 때까지만 꾹 참자며 당응성을 달랬다."학이가 경왕부의 규수를 부인으로 맞는다니, 참으로 대견하네요."당응혜는 영문도 모른 채, 왕부의 규수가 서자에게 시집온다는 건 그만큼 당학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뜻이라 여겼다.류씨는 억지웃음을 지었다."고모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우선 눈부터 좀 붙이시지요. 다른 일은 나중에 천천히 얘기해도 늦지 않습니다."당응혜가 고개를 끄덕였다."처녀 적에 쓰던 청우원에 머물면 되겠군."그 말에 류씨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청우원은 이미 용도를 바꾼 지 오래였다. 당응성은 당응혜가 돌아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거처를 마련해 두지도 않았거니와, 혼사 청첩장조차 보내지 않았다. 노부인의 체면만 아니었다면, 당응성은 이 여동생을 아예 모른 척하고 싶었을 터였다!"그게…."류씨가 난색을 표했다.당응혜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왜? 저택에 내 거처 하나 안 치워 뒀는가?""고모님, 그럴 리가요. 청우원은 좁은 감이 있어, 좀 더 넓은 강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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