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극 로맨스 / 피안을 거슬러 / Chapter 441 - Chapter 450

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441 - Chapter 450

556 Chapters

제441화

조령 장공주는 유영 현주를 데리고 절에서 돌아왔다. 겉으로는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리러 간 것이었으나, 실상은 기씨 가문의 부인과 만나기 위함이었다.기 부인은 일 처리가 매섭고 결단력이 있어 조령 장공주의 마음에 쏙 들었다.절에 머문 지 이틀째 되던 날, 기 부인은 핑계를 대어 아들 기장훈를 불러들였고, 두 젊은 남녀는 멀찍이서 서로 얼굴을 익혔다.유영 현주도 흡족해했다.기 부인 역시 이견이 없었다. 두 가문은 암묵적으로 혼사를 맺기로 했다. 조령 장공주는 딸을 데리고 하산하여 곧장 황궁에 들어 태후에게 사혼 교지를 청할 참이었다.그때 시종이 다가와 아뢰었다."장공주 전하, 밖에서 류씨가 뵙기를 청하옵니다."류씨라는 말에 조령 장공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속 깊이 반감이 일었으나, 이내 들라 일렀다.이윽고 류씨가 들어왔다. 눈앞의 모녀가 화기애애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 속이 뒤틀렸다."소첩이 장공주 전하를 뵈러 수차례 발걸음 하였습니다. 학이의 혼사가 코앞인데 전하께서는 현주와 함께 절에 가버리시어, 소첩만 당씨 가문에서 오해를 사고 있습니다."원망 섞인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평소 성미가 온순한 유영 현주조차 참지 못하고 미간을 좁혔다.조령 장공주가 그 말에 숨은 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반문했다."부마의 체면을 보아 내 당학을 조카라 불러주긴 했다만, 어쨌거나 핏줄 하나 섞이지 않았거늘. 너희 당씨 가문의 혼사에 어찌 내가 주제넘게 나서겠느냐?""게다가, 내 이미 사람을 보내 시집간 당 대인의 여동생을 불러들여 주관하게 하지 않았더냐!"차라리 꺼내지나 말 것을, 그 말에 류씨는 눈살을 찌푸렸다."고모님은 식솔들을 죄다 이끌고 와 잇속이나 챙기려는 자라, 혼사를 제대로 준비할 위인이 못 됩니다."잇속이나 챙긴다는 말에 조령 장공주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렸다."결국, 나를 원망하러 왔다는 소리구나?"그제야 조령 장공주의 심상치 않은 어조를 눈치챈 류씨는 불안감에 휩싸여 서둘러 해명했다."전하
Read more

제442화

오늘 조령 장공주는 기분이 제법 좋았으나, 류씨가 훌쩍거리며 우는 꼴을 보자 단박에 기분이 잡쳤다.막 불호령을 내리려던 찰나, 유영 현주가 나서서 만류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유영 현주가 류씨를 보며 입을 열었다."어머니께서 이모님 모자를 감싸고도신 탓에 아버지께서 먼 지방으로 좌천되셨습니다. 계속 이리 소란을 피운다면, 다음번엔 팔려나갈 사람은 이모님일지도 몰라요."그 말에 류씨는 숨을 헉 들이켰다. 울음소리가 뚝 끊겼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아, 아닐 겁니다."유영 현주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첩이란 본디 물건처럼 사고팔 수 있는 신분이죠. 이모님도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려다 당 대인까지 좌천되게 만들고 싶진 않겠지요?"정곡을 찌르는 말에 류씨는 아연실색했고, 속으로 덜컥 겁이 났다."의용후는 적자인 데다 태후 마마께서 총애하시는 분입니다. 당학이 애초에 그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 체면이란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 남이 적선하듯 내어주는 게 아니에요."유영 현주는 허리를 굽혀 류씨를 부축해 일으켰다."마침 잘 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도 당학에게 내릴 하사품이 있으셨어요."눈짓을 하자 시종이 물건을 가져와 류씨의 손에 쥐여 주었다.최상급 옥여의 한 쌍이었다."당씨 가문의 두 공자가 모두 혼인하고 나면 큰부인은 후부로 거처를 옮길 것이니, 이모님에게도 윗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어찌 눈앞의 이득만 좇아 아등바등한단 말입니까?"사리에 밝고 상황을 꿰뚫어 본 유영 현주는 손을 저어 시종에게 류씨를 배웅하게 했다. 혼이 나간 류씨는 옥여의를 든 채 비틀거리며 물러났다.류씨가 떠나자 조령 장공주가 딸의 손을 잡았다."이 일에 네가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어머니, 그저 아버지의 체면을 보아 옥여의 한 쌍을 내어준 것뿐입니다."유영 현주는 고개를 저으며 개의치 않는다는 뜻을 내비쳤다."의용후가 혼례를 올릴 때 어머니께서 더 푸짐한 선물을 보내시면 됩니다. 그러면 남들도 흠잡을 데가 없을 것입니다.
Read more

제443화

다음 날 동이 트기도 전, 유지영은 저택 안에서 울려 퍼지는 징과 북소리 등 소음에 잠에서 깼다. 그녀가 눈을 뜨고 뒤척이자, 동금이 들어와 물었다."오늘 저택에 경사가 있어 소란스럽습니다. 세자비 마마, 기침하시겠습니까?"시끄러워서 도저히 더 잘 수가 없었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세수하고 단장을 마친 뒤 아침 식사까지 마쳤다. 배현준은 동이 트기도 전에 북대영으로 향했기에 굳이 그를 기다리지는 않았다."세자비 마마, 왕비 마마께서 한 번 와보시라 하십니다." 시종이 다가와 아뢰었다.유지영이 밖으로 나가보니, 바깥은 이미 하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따라 짙은 붉은색 의상을 차려입은 조원금이 그곳에 서서 하객들을 맞이하다가, 저 멀리서 유지영이 오는 것을 보고는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내 곁에만 꼭 붙어 있거라." 원금이 말했다.명색이 맏형수인 데다, 이런 큰 행사에서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이 얼굴을 비춰야만 했다.유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대청 안에서는 임 태비가 검붉은 자줏빛 비단옷을 입고 상석에 앉아 있었다. 이마에는 비둘기 알만 한 붉은 보석이 박힌 두관을 쓰고 있어 태비의 귀티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하객들은 임 태비에게 인사를 올린 뒤, 오히려 조원금의 뒤에 서 있는 유지영 쪽으로 다가오려 했으나 조원금이 교묘하게 그들을 막아섰다."경세자비."맑고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떤 이는 이미 그녀를 알아보고 길을 비켜주었다. 이연령이었다.진홍색 긴 치마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려 양 갈래로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귀밑머리에는 양옆으로 봉황 비녀를 비스듬히 꽂아 금빛 나뭇잎 모양의 작은 술이 드리워져 있었는데,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흔들리며 귀티와 더불어 사랑스럽고 발랄한 매력을 발산했다.얼굴 또한 작고 이목구비가 정교하여 군중 속에 있어도 단연 눈에 띄는 미모였다.이연령이 나타나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다들 앞다투어 인사를 건넸고
Read more

제444화

이연령이 조원금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머물던 웃음기가 살짝 옅어졌다. 하지만 입으로는 사뭇 여유를 가장했다."제가 어찌 마음에 담아두겠습니까."유지영은 눈을 내리깐 채, 속으로 조원금에게 열렬히 엄지를 치켜세웠다.양씨 가문 사람들도 본래 이연령에게 그리 큰 반감은 없었다. 하지만 조원금이 툭 던진 말 한마디는 그들의 머릿속에 강렬한 의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필 이연령이 감옥을 다녀간 직후, 어째서 두 궁녀가 돌연 입을 열었을까?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했다.동시에 이연령을 바라보는 부인들의 시선에도 묘한 변화가 일었다. 저리도 멀쩡하게 생긴 어린 아가씨가, 속은 어찌 저리도 독하고 매서울까."좋은 날에 어찌 그런 험한 소리를 꺼내시오."임 태비가 조원금을 흘겨보며 핀잔을 줬다. 그러고는 유지영을 향해 보란 듯이 덧붙였다."군주는 태후 마마 슬하에서 수년을 자라오며 남다른 정을 쌓은 분이다. 네가 질투하거나 시샘할 일이 아니란 뜻이다."유지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곁눈질로 임 태비의 얼굴에 번진 득의양양한 기색을 보니, 다분히 고의적인 도발이었다!"지영이 네가 태후 마마를 뵙고 싶다면, 내가 언제 한 번 데려가 줄게. 사실 마마께서도 널 꽤 마음에 두셔서 가끔 네 이야기를 하시거든."이연령이 거드름을 피우며 웃어 보였다.유지영은 가볍게 미소로 화답했다."여유가 생기면 찾아뵐 생각입니다."그때, 바깥에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밀려들었다.신랑이 신부를 맞이하러 사람들을 이끌고 온 것이다. 화려한 꽃가마가 배유리의 처소로 향했다.이윽고 두 신랑 신부가 작별의 절을 올리려던 찰나, 조원금이 돌연 임 태비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태비, 그 자리는 태비께서 앉을 자리가 아닌 듯합니다만."임 태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배유리는 여태 경왕부의 적녀로 자라왔습니다.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절을 올릴 웃어른은 나와 경왕, 그리고 자녕궁에 계신 태후 마마뿐이죠. 첩실이 상석에 앉아 절을 받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만
Read more

제445화

대청 안의 하객들 중, 미처 자리를 뜨지 못해 조원금의 호통을 고스란히 듣게 된 몇몇은 경악과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누군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연령을 힐끗 보며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선 끝에는 짙은 경멸이 서려 있었다.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이연령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그녀는 멀어지는 조원금의 뒷모습을 독기 품은 눈으로 노려보았다.그 누구도 나서서 그녀를 달래주려 하지 않았다.시녀 영옥이 분통을 터뜨리며 나섰다."군주, 경왕비 마마께서 너무하십니다! 이 일은 반드시 태후 마마께 고하셔야 합니다. 마마께서 군주를 얼마나 아끼시는데, 틀림없이 경왕비를 엄벌에 처하실 것입니다!"일부러 주변에서 다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한껏 높인 발언이었다.이연령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경왕비 마마는 현준의 이모가 아니더냐. 그저 내게 뼈가 있는 충고를 몇 마디 건네셨을 뿐이니, 호들갑 떨 것 없다.""하지만….""됐다. 경왕비께선 분명 지난번 내 마차가 경세자비를 놀라게 한 일로 앙금이 남아 저러시는 게야. 애초에 내 불찰이 컸으니, 이참에 세자비의 화가 풀릴 수만 있다면 나도 기꺼이 감수해야지."이연령은 한껏 관대한 척을 하며, 땅에 떨어진 체면을 억지로 주워 챙겼다.영옥이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군주께선 태후 마마의 금지옥엽 아니십니까. 좋은 마음으로 세자비를 위로하러 오셨다가 이런 수모를 당하시니, 제가 다 속이 상합니다."이연령은 손을 저어 영옥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자리에 남아 있던 부인들을 향해 애써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적당한 핑계를 대고 서둘러 황궁으로 돌아갔다.문밖에서는 여전히 혼례 절차가 한창이었다.당학은 붉은 혼례복을 차려입고 가슴에는 커다란 비단꽃을 달고 있었다. 훤칠하고 준수한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는 품새가 몹시 온화하고 예의 발랐다.그 기품 있
Read more

제446화

구경하느라 모인 대청 안 사람들이 일제히 바깥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꽃가마가 대문을 넘었습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복도 많으시지, 우리 가문에 왕부의 아가씨를 며느리로 들이다니요."당응혜가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당씨 노부인의 비위를 맞췄다.그 몇 마디에 당씨 노부인은 눈가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내친김에 배유리 칭찬을 늘어놓았다."왕부의 유일한 여식인데다 경왕께서 애지중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배라더구나. 생김새도 곱고 단아하며 성품도 온화하다니, 과연 우리 당씨 가문의 큰 복이지."그녀는 잊지 않고 당 부인을 힐끗 보며 덧붙였다."배유리는 왕부의 적녀라 신분도 고귀하니, 장차 네게도 지극정성으로 효도할 게다."당 부인은 옅은 미소만 지을 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이치대로라면 왕부 아가씨가 시집을 갈 때 황궁에서 으레 하사품이나 작위를 내려주기 마련인데, 어째서 유리 아가씨에게는 아직도 포상이 내려오지 않는 걸까요?"한 부인이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명색이 배씨, 황실의 성을 물려받지 않았던가.법도에 따르면 혼례를 올리기 전 최소한 옹주의 작위는 받아야 마땅했다. 총애를 더 받았다면 공주, 군주, 현주 같은 봉호를 받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배유리는 경왕부의 유일한 아가씨이니, 아무리 못해도 현주 자리는 꿰차야 정상이었다."뭘 그리 급하게 구십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포상을 알리는 교지가 당도할지도 모르지요.""그것도 그렇군요."그 말에 당씨 노부인은 저도 모르게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당응성을 쳐다보았다. 당응성은 입술을 꾹 다물더니 멋쩍은 듯 해명했다."혼례를 치른 후에 작위를 책봉받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당씨 노부인은 곰곰이 생각하다 그럴싸하다 여기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잠시 후.당학이 붉은 비단 띠의 한쪽 끝을 쥐고 나타났다. 붉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배유리가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비단 띠의 반대쪽 끝을 잡고 그 뒤를 조심스레 따랐다.사방에서 하객들의 환호와 축하가 쏟아졌다.매파가 흐름을 주도하며
Read more

제447화

당응혜는 난처한 기색을 띠며 시녀를 향해 호통을 쳤다."네가 잘못 본 것 아니냐? 그럴 리가 없다. 명색이 왕부의 유일한 적녀란 말이다!"시녀는 억지로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아가씨, 틀림없는 쉰 상자였습니다."쉰 상자의 혼수라니, 왕부 적녀의 신분에 걸맞지 않게 참으로 볼품없는 수준이었다."틀림없이 따로 챙겨둔 게 있을 것이다! 장원이나 상점의 땅문서, 은표 같은 걸 어찌 다 함에 담겠느냐."당응혜가 서둘러 수습하려 들었다.그때 누군가가 넌지시 일깨웠다."경왕부에는 경성에 남은 점포가 없을 텐데요. 십수 년 전 경왕께서 일가를 이끌고 봉지로 내려가실 때, 경왕부 저택 하나만 남기고 명의로 된 재산은 모조리 처분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있는 재산은 모두 세자께서 새로 마련하신 거고요."그 말에 당씨 가문 사람들의 안색은 한층 더 험악해졌다."설마 영지에 있는 점포나 장원을 혼수로 내준 건 아니겠지요?"누군가 분위기를 무마하려 애썼다.당씨 가문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학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당응성은 억지를 써서라도 무려 여든 상자가 넘는 예물을 보냈고, 그 안에는 진귀한 물건이 수두룩했다.이치대로라면 경왕부의 혼수가 예물보다 적어서는 안 되었다. 그런데 고작 쉰 상자라니. 이는 명백히 당씨 가문을 안중에 두지 않았거나, 애초에 이 혼사를 우습게 여겼다는 뜻이었다!당씨 노부인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신방 쪽으로 씩씩대며 걸어갔고, 당응혜도 그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뒤따라갔다.신방 근처에 다다르자마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걸어 나오는 첩실 류씨와 마주쳤다.당씨 노부인이 첩실 류씨를 멈춰 세웠다."새아기의 혼수가 정녕 쉰 상자뿐이더냐?"첩실 류씨는 경악한 얼굴을 했다. 어찌 이 일이 벌써 당씨 노부인의 귀에까지 들어갔단 말인가. 방금 전 그녀 역시 소식을 듣고 달려가 혼수를 두 눈으로 확인했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쉰 개의 궤짝. 그걸 보고는 하마터면 뒷목을
Read more

제448화

당씨 노부인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당장 배유리에게 안내하거라!""할머니....""이미 온 동네의 웃음거리가 되었거늘, 이깟 일이 뭐가 두렵겠느냐? 우리 당씨 가문이 이토록 망신을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당씨 노부인은 도저히 이 화를 억누를 길이 없었다.결국 노부인은 만류를 뿌리치고 사람들을 대동한 채 신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노기등등한 당씨 노부인의 기세에 방 안에 있던 시녀들은 혼비백산했다."노부인께 문안 올립니다."시녀와 어멈들이 황급히 예를 갖췄다.당씨 노부인은 붉은 면사포를 쓴 배유리에게 곧장 다가갔다. 참고 또 참던 그녀는 결국 당학에게 명하여 면사포를 걷어내게 했다.눈앞이 환해지며 고개를 든 배유리는 당장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당씨 노부인의 표정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할머님?"주위를 둘러보니 방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유리야, 우리 당씨 가문에는 친척 어르신들께 혼수 목록을 보여드려 안목을 넓히게 하는 풍습이 있단다."당씨 노부인은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냈다."착한 아가, 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렴."혼수를 보겠다는 말에 배유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당씨 가문에 그런 규율이 다 있습니까?""예부터 내려온 풍습이다. 대대로 새로 들어온 며느리는 다 거쳐야 하는 관문이니, 우리 집안에 들어왔으면 가풍을 따르거라. 넌 왕부의 적녀이니 왕부에서 결코 섭섭지 않게 챙겨주었을 테고, 사람들에게도 우리 당씨 가문이 얼마나 귀한 며느리를 얻었음을 알게 해주어야지."당씨 노부인의 말투는 상의가 아니라 사실상 으름장이자 재촉이었다.배유리는 제 곁에 선 어멈을 쳐다보았다.어멈이 입을 떼기도 전에 당응혜가 그녀를 한쪽으로 홱 끌어당겼다."이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는데, 조카며느리도 지체 말고 어서 내놓거라."방 안을 가득 메운 수많은 시선에 배유리는 수치심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크나큰 모욕감에 휩싸인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당학을 바라보았다.
Read more

제449화

류씨는 길길이 날뛰었다."경세자비가 도대체 왜 널 괴롭힌단 말이냐? 학아, 그 여자는 왜 번번이 우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하지만 당학은 배유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류씨가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하게 가로막고는 배유리를 쳐다보았다."네 혼사는 네 생모와 태비 마마께서 주관하셨다고 들었다. 경세자비가 나설 자리가 아니었을 텐데."혼수를 가로챘다고?유지영은 혼수 행렬이 십 리에 달할 정도로 은자가 넘쳐나는 사람이다. 배유리를 굳이 곤경에 빠뜨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배유리는 당학이 자신을 의심하자 다급해졌다."그 여자가 중간에서 훼방을 놓지 않았다면, 아버지께서 어찌 이리 적은 혼수를 주셨겠습니까? 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공금을 조금 쓰신 것조차 유지영이 기어이 쫓아가서 다시 받아냈습니다. 태후 마마께서 뒤를 봐주신다고 기세등등한데, 경왕부에서 누가 감히 그 여자 심기를 건드리겠습니까?"배유리는 그 와중에도 곁에 있는 시녀에게 눈짓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눈치 빠른 시녀가 곧장 나섰다."공자님께서 못 믿으시겠다면 사람을 보내 경왕부에 알아보십시오. 세자비는 정말 너무하십니다. 아가씨의 혼수를 떼어먹은 건 물론이고, 경왕 전하께 은자를 내놓으라 윽박지르고, 심지어 태비 마마의 체면조차 세워주지 않으십니다. 기어코 전하께 이혼하고 새 장가를 들라며 억지를 부려, 지금 왕부 전체가 세자비와 새로 올라온 경왕비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습니다."주종이 척척 입을 맞춰 그럴듯하게 떠들어대자, 류씨는 칠팔 할쯤은 믿어버렸다.당학은 침묵했다."서방님. 전, 명색이 왕부의 적녀인데 오늘 온갖 수모를 겪었습니다."배유리가 붉어진 눈으로 미안한 기색을 가득 띤 채 당학에게 다가갔다."오늘 겪은 이 굴욕, 훗날 서방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실 거라 믿습니다!"당학은 애초에 배유리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오늘 혼례에서 체면을 다 구긴 데다 배유리가 친정에서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니 마음속엔 혐오감만
Read more

제450화

배준형은 속으로 울분을 삭이고 있었다.그는 전생의 인연을 생각하여 유지영에게 어느 정도 정을 남겨두었건만, 유지영은 도리어 배현준을 도와 그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이쯤 되니, 그로서도 더는 그녀의 사정을 봐줄 까닭이 없었다."돌아가서 너희 공자에게 전해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마음 놓고 마음껏 저지르라고. 단 하나, 내게는 절대 불똥이 튀게 해선 안 될 것이다."배준형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호위 무사가 명을 받들었다.배준형은 고개를 들어 어둑한 하늘을 힐끗 보더니 덧붙였다."너희 공자에게 방법을 강구하여, 당윤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라고 해라!""예!"적막한 밤공기를 가르고 돌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배준형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호위 무사에게 눈짓해 그를 서둘러 물려보내자, 이내 담시령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세자."담시령이 보양탕을 들고 다가와 다정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리 늦은 시간까지 무공을 연마하시다니, 참으로 고생하십니다."배준형은 온화한 미소를 띠며 그녀의 손을 이끌어 곁에 앉혔다."세자, 저희가 혼인한 지도 꽤 시일이 흘렀거늘, 다 제가 못난 탓입니다."담시령이 자신의 납작한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유지영은 아이를 가졌는데 자신은 매일같이 쓴 약을 들이켜면서도 아직 아이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한탄스러웠다."경세자비가 황실의 증손을 품었으니 태후 마마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만약 당신에게도 아이가 생기면, 우리 군왕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모르는데."배준형이 실망감이 역력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안타까운 일이야. 유지영이 북명 대사에게 당신 몸을 진찰하도록 청해줄 리도 없고."배준형은 북명 대사라는 네 글자를 유독 힘주어 발음했다.담시령은 그 말뜻을 단번에 알아듣고 눈을 내리깔며 자책했다."제가 무능한 탓입니다.""부인 탓이 아니오."배준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더니, 짐짓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참, 할머님의 옥체는 좀 어떠하시오?
Read more
PREV
1
...
4344454647
...
5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