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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501 - Chapter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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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1화

"한 가지 일이 더 있습니다. 오늘 연령 군주가 조문을 와서는 옥패 하나를 꺼내 관 속에 함께 묻겠다고 했는데, 안 부인께서 거절하셨습니다. 제 짐작건대 연령 군주는 필시 안씨 가문 둘째 공자의 사인을 의심하는 듯합니다."운민이 아뢰었다.유지영은 손놀림을 멈추고 바늘과 실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문득 이연령 역시 자신처럼 회귀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곰곰이 따져보면 이연령이 한 말이나 행동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전생에 안창준은 확실히 죽지 않았었다.장례를 치른 지 벌써 사흘째인데, 관을 열어 안을 확인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이연령이 처음이었다."오늘 연령 군주가 안씨 저택에서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하마터면 혼절할 뻔했습니다."운민이 말했다.유지영은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가 가볍게 두 모금 축이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손가락 끝으로 톡톡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연령은 왜 안창준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그녀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내일이면 보름이었다.오라버니의 몸에 퍼진 독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한 번씩 발작을 일으켰다. 북명 대사는 지금 황제의 해독제를 짓기 위해 폐관 수련 중이라, 오라버니의 해독제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당장 급한 불을 끄려면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세자비 마마, 정군왕 세자에게 해독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운민이 조심스레 일깨웠다.유지영이 고개를 저었다."배준형은 교활한 자다. 우리가 오라버니에 대한 걱정을 내비쳤다간, 그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결코 해독제를 내어주지 않을 거야."저런 부류는 죽을 때 죽더라도 반드시 물귀신처럼 누군가를 끌고 들어갈 위인이었다.그리되면 오히려 일만 더 꼬일 뿐이었다.그에 비하면 북명연 쪽을 뚫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다음 날.유지영은 안씨 저택을 찾았다. 마차가 멈춰 서자마자, 파리한 안색의 이연령이 마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유지영을 보자 눈시울을 붉히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어젯밤 안 공자가 꿈에 나왔어. 자신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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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사람들의 질책과 경멸 어린 시선이 이연령을 향했다. 그녀는 입을 벙긋거리며 변명하려 했다."제, 제 본의는 그게 아니었습니다…."변명은 너무도 창백하고 무력했으며,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안 부인은 화가 치밀어 올라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부인!"유지영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사람을 시켜 의원을 모셔 오게 했다.이연령은 얼굴을 굳히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빈소 안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간신히 정신을 차린 안 부인은 애가 끊어질 듯 통곡했다. 그 누구라도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안타까운 모습에 유지영이 위로를 건넸다."부인, 마음을 추스르십시오."곁에 있던 이연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녀가 자리를 피하자고 권했지만, 이연령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안 부인의 곁에 바짝 붙어 있더니 급기야 이런 말을 내뱉었다."이 일의 원흉은 북명연입니다. 그 여자를 만나야겠습니다."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연령의 속셈은 뻔했다. 안창준이 진짜 죽었는지 가짜로 죽었는지 확인한 다음, 이를 빌미로 북명연을 찾으려는 것이었다."안 부인, 연령 군주 역시 부인만큼이나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차라리 군주의 뜻대로 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둘째 공자께서도 구천에서 이승의 일을 안다면 군주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유지영이 거들었다.하지만 그렇게 거들면 거들수록, 이연령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불안감이 엄습했다.그녀와 유지영은 진작에 얼굴을 붉히고 틀어진 사이였다. 유지영이 대범하게 자신을 편들어 줄 리 만무했다. 경계심이 일긴 했지만, 확실히 북명연에게 따져 물어야 할 말들이 있었다.안 부인은 간신히 기운을 내어 이불을 걷어내고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그렇다면, 군주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무려 안 부인이 직접 이연령을 안내하겠다고 나섰다.이연령이 미간을 찌푸렸다."군주, 얼른 안 부인께 감사 인사를 올리지 않고 뭘 하십니까?"유지영이 넌지시 일깨웠다.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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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유지영은 천천히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쪼그려 앉았다. 손수건을 꺼내 북명연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가볍게 닦아내며 나직하게 말했다."고작 호위무사 하나일 뿐인데, 공주에게 그리 대단한 자도 아니지 않습니까. 공주부에 거느린 남총만 서른 명이 넘는데 어찌 그 자를 놓아주지 않는 겁니까?"북명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나를 협박하는 것 말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유지영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얼굴에는 조금의 조급함도 비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북명연이 돌연 입을 열었다."해독제를 주마. 대신 나를 여기서 내보내 다오.""그건 안 됩니다."유지영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양나라와 북신의 전쟁이 코앞입니다. 공주 같은 핵심 인물을 어찌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그렇다면 너도 헛수고하지 마라."북명연이 고개를 돌리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유지영은 손수건을 북명연의 얼굴에 내던지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배준형도 해독제를 미끼로 나와 협상하려 들더군요. 나는 단지 두 사람 중 누구와 거래하는 것이 더 나은지 저울질하고 있었을 뿐입니다."배준형이라는 이름은 과연 북명연을 자극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 없어. 허튼수작 부리지 마.""어리석군요!"운민이 코웃음을 치며 욕설을 내뱉었다."배준형은 지금 하루가 멀다고 세자비 마마께 협력하자며 매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유관성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정통 핏줄을 회복하여 큰 뜻을 품으려 안달이 났단 말입니다."북명연의 얼굴에 미세한 동요가 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상체를 일으켜 세워 유지영을 바라보았다."협상을 하려거든 응당 대가를 치러야지. 네가 본궁을 찾아온 걸 보면 틀림없이 해독제를 바라는 것일 테니.""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곳으로 거처를 옮겨 연금하는 건 어떻습니까?"유지영이 물었다.북명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온몸의 상처에 더해, 신방에 갇혀 매일 만두 반 개로 연명하며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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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경왕부의 임 태비는 마지못해 짐을 챙겼다. 경왕을 찾아가 몇 번이나 하소연하고 온갖 수를 다 써보았지만, 경왕으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난데없이 무슨 꿈을 꿨다는 게냐! 필시 사람을 고의로 괴롭히려는 수작이다!"임 태비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격하게 욕설을 퍼부었다.서 태후는 선황께서 꿈에 나타나 태비들을 입궁시켜 함께 경전을 필사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는 계시를 내렸다고 대외적으로 선포했다.중요한 것은 양나라 황제가 그 말을 굳게 믿었다는 사실이다.그러니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세자비가 나서서 통사정을 해준다면 어떻게든 방도가 있지 않겠느냐?"임 태비는 서 태후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차라리 경왕부의 좁은 불당에 연금되는 편이 나았다.경왕이 머쓱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이미 교지를 내리셨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지 않겠다고 버틸 명분이 없습니다."더 이상 매달려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임 태비는 어쩔 수 없이 궁에서 보낸 마차에 올랐다.이 일은 경왕부라는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던져진 것과 같았다. 잠시 파문이 일었을 뿐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경왕부의 살림은 여전히 조원금이 맡고 있었다. 여씨 등은 기가 단단히 눌려 감히 허튼수작을 부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덕분에 유지영은 골치 아픈 일을 크게 덜었다."오라버니 쪽은 어찌 되었느냐?"유지영이 물었다.운민은 고개를 저었다.그때 문밖에서 평안이 황급히 달려와 보고했다."세자비 마마, 세자께서 이미 북신의 육공주를 잡아 옥에 가두셨습니다. 큰공자께서는 어젯밤 독 기운이 발작했으나, 다행히 제때 해독제를 써서 억눌렀습니다."그 말을 듣고 유지영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평안이 말을 이었다."세자비 마마, 소인이 궁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군왕부를 지나치다 들은 소식입니다. 정군왕 세자비에게 변고가 생겼다고 합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정군왕 세자가 살기를 타고나서, 불과 넉 달 만에 정실과 평처가 모두 제 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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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뭐라고?"정군왕과 배준형은 동시에 멈칫했다.낯빛이 잿빛으로 변한 담성국이 배준형을 바라보았다."세자께선 진정 이것이 우연이라 생각하십니까?"배준형이 손끝을 꽉 쥐었다."배현준과 유지영 짓입니다!""또 그 두 인간 짓이냐, 그야말로 안하무인이 따로 없구나!"정군왕은 길길이 날뛰며 방 안을 서성거렸다. 마음속에 초조함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머지않아 두 사람 다 출정해야 하는데, 수장은 십중팔구 유정남이 맡을 것이다. 유관성의 독이 아직 다 치유되지 않았으니, 절대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터인데."담성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아침 배현준이 안씨 저택에서 북신의 육공주와 그 호위를 데려갔습니다. 듣자 하니, 그 호위는 어젯밤에 중독을 치료했다더군요."배준형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확실히 북명연에게 서신을 보내 화친은 함정이니 반드시 명언을 곁에 두라고 경고했었다. 아울러 약처방 하나를 바치며, 명언을 쥐고 흔들어야만 북명연이 양나라에서 버틸 힘을 확보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북명연 역시 그 말대로 명언에게 독을 먹였다.해독제에 관해서라면 배준형도 그 처방을 알고 있었다.명언을 쥐고 흔들면 유지영과 유국공이 타협할 것이라 여겼건만, 유국공이 도리어 말을 바꾸어 신분을 인정하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시국이 불투명했기에, 배준형도 굳이 서둘러 해명하지는 않았다."세자, 만약 유관성이 죽기라도 한다면, 유정남의 성격상 우리 두 사람은 살아서 황성에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담성국이 말했다.배준형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유관성이 죽지 않는다 해도, 유정남은 여전히 우리를 놔두지 않을 겁니다."유씨 가문 이방의 꼴만 봐도 알 수 있었다.유정남이 눈곱만큼이라도 정을 베풀던가?담씨 가문에서는 두 사람이 죽어 나갔고, 숙태비는 궁에 불려 들어갔으며, 배준형과 담성국은 곧 전장으로 나서야 했다. 누가 보아도 수세에 몰려 반격할 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이러니저러니 해도 폐하께서 노망이 나신 게지. 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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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유지영은 향 세 개를 피워 올린 뒤,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외삼촌께서 외할머니의 이름을 빌려 저를 부르신 것이, 억지로 제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함이었습니까?"그녀의 태도가 지나치게 냉담했던 탓인지, 오히려 담성국은 의심스러웠다."나는 지영이를 믿는다."담씨 노부인이 유지영을 향해 손짓했다. 유지영이 다가가자 노부인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황성에 크고 작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지영이에게 그들 모녀를 해할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 손을 쓸 작정이었다면 어찌 지금까지 기다렸겠느냐?"담성국은 침묵했다."성국아, 네가 갓 부장으로 발탁되자마자 처자식이 연달아 변을 당했는데, 누군가 고의로 이간질한 것이란 생각은 못 해본 게냐. 지영이는 네 조카인데 어찌 가족을 의심할 수 있단 말이냐?"담씨 노부인은 유지영을 등 뒤로 감쌌다.그 모습에 담성국의 얼굴에 서려 있던 살기가 가시고, 당혹감과 의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다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정말 네가 아니란 말이냐?""당연히 지영이가 아니지!"담씨 노부인은 담성국을 매섭게 질타했다."필시 정군왕부 놈들에게 속은 게야. 너를 꼬드겨 유씨 가문을 치게 하려는 수작이란 말이다!"담성국은 반신반의했다.담씨 노부인은 유지영을 끌어당겼다."지영아, 네 외삼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할미가 좀 늙었어도 몸은 정정하니, 홀몸도 아닌데 앞으로는 담씨 가문에 오지 말거라."맞잡은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유지영의 미간이 미세하게 떨리며 마음속에 따스한 온기가 흘렀다. 담씨 가문 전체를 통틀어 오직 외조모만이 그녀의 편이었다.외조모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담씨 가문에 발조차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초상이 끝나면, 나는 시골 장원으로 내려가 조용히 여생을 보낼 참이다."이미 굳게 결심한 담씨 노부인은 손목에서 빛깔 좋은 양지옥 팔찌를 빼어 유지영의 손에 쥐여주었다."네 어미가 내 생신 선물로 구해다 준 것이다. 이제 할미가 네게 주마. 지영아, 부디 평안해야 한다."유지영의 눈시울이 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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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하지만 북명연이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무언가 실토할 것이 분명했다.그것도 하나의 골칫거리였다.다음 날.북명연은 과연 배준형이 준 독약의 성분과 해독제 약처방을 모조리 털어놓았고, 이는 배현준의 손에 들어갔다.단 하루 만에 배현준은 약처방에 따라 독약과 해독제를 만들었다. 사형수를 데려와 거듭 실험해 본 결과, 해독제에 무언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평안이 물었다."세자, 북명연이 고의로 숨긴 것은 아닐까요?"배현준이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 없다."그 지경까지 얻어맞았는데 숨길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약처방의 일부를 감춘 것은 딱 배준형이 할 법한 짓이었다. 배현준은 파렴치한 놈이라며 욕을 내뱉으면서도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이틀 뒤.병부에서 군량과 병기 준비를 마치자, 조정에서 황제는 배현준을 수장으로 임명한다는 교지를 내렸다.소식이 전해지자 백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 이건… 경세자가 수장을 맡다니, 농담이 지나치지 않소?""경세자가 예전과 달라졌다고는 하나, 전장은 장난을 치는 곳이 아니오."백관의 절반 이상이 황제에게 명을 거두어 달라고 청했다.정군왕이 앞장서서 반대했다."폐하, 배현준이 완력은 좀 있을지언정 전장에서는 모략이 중요한 법입니다. 부장 자리도 과분한 터인데 수장이라니 당치도 않사옵니다!""폐하,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통촉하여 주시옵소서!"대신들이 무리지어 바닥에 엎드렸다.황제는 노한 기색 없이 배현준을 쳐다보았다.그때 배현준은 여유롭게 등 뒤에서 은빛 반쪽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한 무관이 단박에 그것을 알아보고 소리쳤다."저건 양성장군의 가면이 아니오!""양성 장군은… 이 년 전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경세자가 어떻게....""이, 이 무슨…."누군가는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황제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성 장군이 바로 배현준이다. 수차례 전장에 나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지. 이 년 전 서관 일대에서 승전고를 울린 뒤 경성으로 돌아왔고, 짐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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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수장이 정해졌다.출정은 사흘 뒤였다.저택으로 돌아온 경왕은 배현준을 보며 몇 번이나 머뭇거렸다. 당장이라도 따져 물을 듯하던 기세가 갑자기 한풀 꺾였다."네가 양성 장군이었다니, 어찌하여 진작 말하지 않은 게냐?"배현준은 진작에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채, 경왕을 힐끗 보고는 대꾸했다."전하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셨다면, 제게 어찌 오늘 같은 성취가 있었겠습니까?"그 한마디에 말문이 막힌 경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눈앞의 아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그는 허리를 굽히며 자리에 앉았다. 시종들을 모두 물린 뒤,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레 물었다."과거에는 내가… 내가 잘못했다만, 우리 사이는 결국 부자지간 아니더냐. 나 역시 네가 잘되기를 바란다."배현준은 그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경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너를 이리도 공들여 키워주셨으니, 내게도 이제는 말 좀…."경왕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기대에 찬 얼굴로 배현준을 바라보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속내를 훤히 알 수 있었다.배현준이 긴 다리를 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경왕을 향해 쏘아붙였다."사흘 뒤 출정하기 전, 단 하나만 경고해 두겠습니다. 지영이와 뱃속의 아이가 털끝 만큼이라도 해를 입는다면, 제가 남겨둔 암위들이 경왕부를 피바다로 만들 것입니다. 단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을 겁니다."그는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경왕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설을 억지로 삼켰다. 그의 안색은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저 협박으로 들렸겠지만, 배현준이라면 참으로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내 명을 전하거라. 앞으로 방비원 사람들을 보거든 무조건 피해 다녀라! 감히 방비원 사람을 건드리는 자는, 짐짓 나와 척을 지려는 것으로 간주하겠다!"호위가 명을 받들었다.*"배현준이 양성 장군이라고?""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정군왕부 사람들 역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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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배현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경멸이 담긴 비웃음이었다.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밑에서 비난이 쏟아졌다.“저리 연약해서야 어찌 부장을 맡은 게지?”“그냥 집으로 돌아가 호강이나 누리지 뭔 전장에 뛰어들어서는.”“정작 전쟁터에 나가면 겁을 먹고 오줌이나 지리는 것 아닙니까?”도처에서 비웃음과 조롱이 터져 나왔다.술잔을 잡은 배준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결국 그는 손을 들어 잔을 비우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그 모습을 본 배현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삼 일 후 새벽에 출정할 것이다. 배 부장은 늦지 않게 오도록!”기고만장한 배현준의 모습을 보며 배준형은 불쾌감을 꾹 삼키고 이를 악물였다.“예, 장군.”군영을 벗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께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시커먼 피를 토한 배준형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세자!”호위가 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가슴을 부여잡은 배준형은 뭔가를 깨달은 듯, 나지막하게 명했다.“왕부로 돌아간다!”예상했던 대로였다.그의 증세는 명언의 것과 거의 닮았으나 역시 한 가지 약재가 빠져 있었다.“비열한 놈!”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배준형은 이를 갈았다.이는 그에게 마지막 약재를 내놓으라는 압박이었다.이 소식은 정군왕의 귀에도 들어갔다.병문안을 온 정군왕은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명언을 이용하려던 수는 이미 물 건너갔다. 정말 목숨이라도 내놓을 작정이냐?"배준형은 목숨을 내놓을 수 없었다.그는 고개를 들어 정군왕을 바라보며 결연히 말했다.“아버지, 입궁하여 폐하를 뵈어야겠습니다. 제가 수장이 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정군왕은 기가 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네가 단단히 미친 게로구나. 폐하께서 왜 너를 수장으로 세워주시겠느냐? 교지는 이미 내려졌고 머지않아 출정인데 아직도 욕심을 부리는 것이냐?”정군왕부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쇠락해 갔고 정군왕이 쥐고 있던 권력마저 여기저기 흩어진 상황이었다.한탄을 해보았지만 결국 모든 발단은 그가 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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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배준형은 멀어져 가는 이연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짙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옆에서 정군왕이 혀를 찼다."저 군주는 조용히 있을 여인이 아니구나. 품행이 바르지 못하고, 특히 최근 들어 잦은 수작질로 태후 마마의 눈 밖에 났으니 너는 속아 넘어가지 말거라."정군왕의 경고가 회랑에 울렸다.한참 뒤.전각의 대문이 활짝 열리며 상 내관이 밖으로 나왔다."폐하께서 두 분을 들라 하십니다."배준형은 시선을 거두고 전각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태화궁 정전 안 자금향로에서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용상에 앉은 건양제는 상소문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발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힐끗 보았다."신, 폐하께 문안 인사 올립니다.""신 폐하께 문안 인사 올립니다."두 사람이 예를 올렸다.건양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예는 그만두어라. 짐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폐하께 아뢰옵니다. 매우 중대한 사안이니, 신에게 따로 아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배준형은 허리를 굽히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사방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건양제는 붓을 들어 윤허를 적은 뒤, 붓을 내려놓고 상 내관에게 눈짓을 했다. 정군왕을 포함한 나머지 이들이 물러가고 태화궁에는 건양제와 배준형 둘만 남았다."신과 친분이 있는 스승 한 분이 계시는데, 천문지리에 통달하고 의술에도 능통하십니다. 다만 성격이 다소 괴팍하여 남 만나기를 꺼리는데, 신이 우연히 인연이 닿아 알게 되었습니다.""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북신과의 전쟁은 틀림없이 패배할 것이라 하였습니다."말이 끝나자 건양제의 눈빛이 묘한 기색을 띠었다. 그는 노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웃음을 터뜨리고는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턱을 치켜들며 계속 말하라는 뜻을 보였다."일 년 뒤 변관에 석 달 동안 폭설이 내려 양나라 병사들은 고립되고, 장졸들에게는 군량이 부족하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소와 양, 가축이 얼어죽을 것이며 이재민들도 속출할 테지요. 그때 운기국이 기습해 올 것이고,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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