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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541 - Chapter 550

556 Chapters

제541화

서 태후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손을 뻗어 이연령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지나간 일은 굳이 다시 꺼낼 것 없다. 네가 남이로 시집가면 어엿한 태자비가 될 터이고, 훗날 한 나라의 국모가 될지도 모르지. 이는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 아니냐."이연령은 잠자코 듣기만 할 뿐 반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남이 태자가 단명할 팔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변덕스럽고 난폭한 자가 그저 왕후 소생의 적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태자 자리에 올랐을 뿐이었다.불과 이삼 년 안에 남이 태자는 중병으로 숨을 거둘 것이다.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남이는 배현준의 손에 토벌되어 망국의 길을 걷게 될 운명이었다.그런 혼사가 어찌 경사라 할 수 있을까."남이 태자에게 첩실이 한둘 있다 들었다마는, 다행히 슬하에 자식이 없어 네게 별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다. 듣자 하니 남이 태자는 기골이 훤칠하고 제법 미남이라더구나."서 태후는 손을 거두고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인 뒤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연령아, 네가 출가하는 길에 내 결코 섭섭지 않게 챙겨주마."이연령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내 널 위해 남이의 법도에 정통한 상궁을 하나 모셔 오라 일러두었다. 내일부터 측전에서 그 상궁에게 예법을 배우도록 하거라."말투는 부드러웠으나, 실상은 이연령에게 거절할 명분도 주지 않는 일방적인 통보였다.이연령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태후 마마, 며칠 뒤 열리는 만수절 연회에 소녀도 참석할 수 있겠습니까?"이연령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청했다.서 태후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소 상궁이 먼저 나섰다."연령 공주, 이번 만수절 연회는 흠천감에서 폐하와 상극인 띠 네 가지를 점쳐냈습니다. 쥐, 토끼, 호랑이, 용띠를 가진 자들은 만수절 당일에 얼굴을 내밀어선 안 된다고 합니다."기구하게도 이연령은 토끼띠였다.용띠인 유지영 역시 연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어, 어찌 그런... 저는 지금까지 그런 법도가 있다는 말씀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이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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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2화

왕부에서 이틀간 요양한 민경주는 부모의 상을 치르고 돌아온 직후, 방비원 문 앞에 꿇어앉아 유지영을 뵙게 해달라 통사정을 했다.그렇게 거의 한 시진을 꼬박 꿇어앉아 있은 뒤에야 유지영은 방비원 문가로 가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 민경주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내게 볼일이 뭐가 있지?""요 며칠 깊이 반성하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어리석음 탓에 사사건건 형님을 헐뜯고 미워하다 기어코 제 부모님까지 사지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민경주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형님. 앞으로는 민씨 가문을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몰지 말아주십시오. 두 번 다시 형님께 불경한 마음은 품지 않겠다고 약조하겠습니다."영당 앞에서 사흘을 꿇어앉아 있으면서 민경주는 자신이 누군가의 꼬드김에 넘어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유지영은 손짓으로 시녀를 시켜 민경주를 일으켜 세우게 하고는 싸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애초에 그대와 나 사이에 피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질 이유는 없었다. 명색이 무장 가문의 여식이라는 자가 번번이 남의 이간질에 홀려 내게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느냐. 그대가 더 이상 내게 칼을 겨누지 않는다면, 나 역시 구태여 그대를 해칠 생각은 없다."민경주는 고개를 들어 유지영을 바라보았다."형님께서는 이 일의 배후가 이연령이라는 걸 진작부터 알고 계셨습니까?"유지영은 굳이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민경주는 단박에 뜻을 알아채고 다시 털썩 무릎을 꿇었다."형님, 그 계집이 저를 감쪽같이 속였습니다. 조원금이 진짜 조씨 가문 핏줄이 아니라고 귀띔하며 뒷조사를 하라 부추겼지요. 확실한 증거만 잡으면 조원금을 내쫓을 수 있다고 꼬드겼습니다. 심지어 훗날 현왕께서 반드시…….""닥치지 못할까!"유지영은 매서운 호통으로 민경주의 말을 잘랐다. 이로써 확신할 수 있었다. 이연령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회귀자임이 틀림없었다!유지영은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꾸짖었다."이연령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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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민경주가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예의 주시하거라. 아울러 왕부 내 하인들의 동태도 샅샅이 살펴라. 솎아낼 자들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치워버려야겠다."유지영은 차분하게 지시를 내렸다.운청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받들었다.유지영은 입술을 꾹 깩물었다. 전생의 기억이 맞다면, 곧 변방에 석 달 내내 폭설이 쏟아져 양나라 장병들이 극심한 고초를 겪게 될 것이다."동금!"동금이 황급히 다가왔다."예, 마마. 부르셨습니까.""현재 인주 쪽 표국의 벌이는 어떠하냐?""한 달에 대략 십여 건 정도 의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동금이 사실대로 고했다.유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인주로 내려가 표국 사람들에게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라 이르거라. 사방을 돌며 식량과 건초, 의복 지을 옷감을 사들이라 해. 나는 양주 일대에 장원을 하나 매입할 계획이다. 사들인 식량과 옷감, 그리고 땔감은 모조리 그곳에 비축해 두거라. 남들의 이목을 끌어선 아니 되며, 물자는 다다익선이다. 일이 잘 성사되면 그들에게 매달이 은자 삼십 냥을 챙겨주겠다고 이르거라."동금은 상황의 중대함을 깨닫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하겠습니다, 마마."지시를 마친 뒤에야 유지영 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미약한 힘이나마 변방의 비극을 막는 데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로부터 이틀 뒤는 건양제의 탄신일인 만수절이었다. 마침 전장에서 승전을 거두었다는 경사까지 겹쳤기에 건양제는 크게 기뻐하며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각지의 번왕들은 일찌감치 전갈을 받고 축하인사를 올리기 위해 입궁했다.건양제는 연회장 상석에 자리했다.전각 안에는 화려한 가무가 펼쳐지고 경쾌한 관현악 소리가 귓가를 즐겁게 하는 가운데, 축하의 술잔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이윽고 서 태후가 행차했다. 짙은 자줏빛 장포 차림의 서 태후는 이마에 커다란 옥장식을 두르고, 화려한 금비녀를 머리에 꽂았다.머리부터 발끝까지 황실의 묵직한 귀티가 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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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4화

상 내관은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했다."모두 이 늙은 것이 눈이 먼 탓이옵니다! 소인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상 내관은 양손을 번갈아 들어 올리며 스스로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짝, 짝! 아찔한 파열음이 관현악 소리마저 집어삼킬 만큼 대전을 쩌렁쩌렁 울렸고, 순식간에 연회장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건양제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없이 술잔을 들어 천천히 목을 축일 뿐, 제지할 기미가 없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도는 사이, 서 태후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황상, 오늘은 만수절인 데다 현왕이 변방에서 첫 승전보를 가져온 경사스러운 날이 아닙니까. 겹경사가 난 마당에 굳이 불필요한 자 때문에 흥을 깰 필요가 있겠습니까."서 태후는 곧바로 상 내관을 향해 가볍게 턱을 까닥였다."그만하거라. 앞으로는 눈치껏 처신하도록 해."벌벌 떨던 상 내관은 그제야 겁에 질린 얼굴로 손을 멈추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망극하옵니다, 태후 마마!"건양제는 본래 서 태후의 말이라면 거스르는 법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사람을 칠 듯 굳어 있던 황제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풀렸다."태후께서 친히 선처를 구하시니, 이번 한 번만은 네놈의 목숨을 살려주마."모친과 아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눈치 빠른 이들은 단박에 상황을 간파했다. 상 내관을 벌하는 척했지만, 실은 호성 이황자를 향한 경고였다. 자칫 잘못하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역시나 호성 이황자의 안색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방금 이황자는 무슨 말을 하려던 참이었지?"건양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서 호성 2황자를 바라보며 물었다.수많은 시선이 쏠린 가운데, 호성의 황제를 위해 태후를 화친으로 모셔가겠다는 오만방자한 청은 이미 목구멍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황제의 위압감에 짓눌린 호성 이황자는 황급히 꼬리를 내리고 말을 주워 담았다."이 야명주는…… 태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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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5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정하던 황제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니, 사람들도 혼란스러웠다.곧바로 태의가 당도했다. 건양제의 맥을 짚어본 태의는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태후 마마, 폐하의 옥체가 갑작스레 까닭 없이 쇠해지셨습니다. 사악한 기운이 깃든 듯합니다."사악한 기운이라는 말에 남궁연의 표정은 어둡게 가라앉았다.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황제는 그녀가 축하무를 올린 직후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남이 오공주의 띠가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는가?"서 태후는 남궁연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물었다.남궁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역시나 그녀를 겨냥한 소란이었다.그녀는 서러운 표정으로 남이 삼황자를 바라보았다.침묵을 지키고 있던 삼황자가 입을 열었다."제 누이는 토끼띠입니다.""토끼띠라니!"서 태후가 헛숨을 들이켰다."며칠 전 흠천감과 남희 대사께서 황상의 운세를 보시고는, 이번 만수절에 네 가지 띠와는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네. 오공주는 어찌 그걸 알면서도 연회장에 불길한 기운을 끌어들인단 말이오!"서 태후의 얼굴에는 원망의 기색이 가득했다.남궁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남이 삼황자는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저희는 화친을 맺기 위해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이런 황당한 핑계로 저희를 홀대하려 한다면, 참으로 무례한 처사라 생각됩니다."서 태후는 묵묵히 궁인들을 시켜 건양제를 편전으로 모시게 했다. 사악한 기운을 피해야 한다는 명목이었다.황제가 자리를 뜨자, 서 태후는 남이 삼황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남희 대사는 우리 양나라에서 명성이 자자한 분이오. 대사의 점괘는 매번 신통하게 맞아떨어져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지. 정 못 믿겠다면 삼황자가 직접 시험해 보시게."그 말을 들은 남이 삼황자는 코웃음을 치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이때, 남궁연이 끼어들었다."오라버니, 저도 그 남희 대사라는 분을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그 말에 삼황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얼마 지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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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6화

사방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자 남궁연은 얼굴을 붉히며 남이 삼황자를 바라보았다."오, 오라버니.""연아, 오늘은 우리가 경솔했다. 먼 길을 떠나 남의 나라에 왔으니 응당 양나라의 법도를 따라야지."남이 삼황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남궁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다시 면사포를 뒤집어쓴 채 대전을 빠져나갔다."누이에게 악의는 없었으니, 부디 태후 마마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남이 삼황자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서 태후는 즉답을 피한 채 창밖의 하늘만 묵묵히 응시했다. 그때 태후의 시선을 받은 대신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남희 대사께서는 양나라 만인이 우러러보는 덕망 높은 분이십니다. 대사께서는 진작에 폐하와 상극인 띠를 점쳐 경고하셨건만, 남이국 사절단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그 오만함 탓에 폐하의 옥체가 상하셨는데, 어찌 사죄 한마디로 가볍게 넘기려 하십니까!"그제야 서 태후의 굳었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또 다른 대신이 가세하여 목소리를 높였다."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남이 오공주가 폐하의 옥체를 상하게 한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나, 화친을 위해 온 신분을 감안하여 참는 것일 뿐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엄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대신들은 앞다투어 나서서 남궁연의 무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서 태후의 눈치를 살피며 공주가 경박하고 처신이 가볍다며 노골적으로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었다.온 연회장이 남이 오공주를 성토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방금 전까지 무희의 춤사위에 넋을 잃고 감탄하던 자들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태세 전환이었다.남이 삼황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서 태후는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정리했다."경들은 말을 삼가게. 삼황자는 대의를 아는 사리에 밝은 자이고, 공주 역시 축하하려는 좋은 마음으로 나선 것이 아니겠는가. 그저 의욕이 앞서 실수를 범한 것뿐인데, 명색이 주인 된 도리로 어찌 손님의 허물을 물고 늘어져서야 되겠는가."서 태후가 나서서 체면을 세워주자, 그제야 남이 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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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7화

소 상궁은 즉시 궁인들을 거느리고 대전을 빠져나갔다.이윽고 텅 빈 전각에 발소리가 울렸다.등 뒤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용연향이 느껴지자 서 태후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폐하, 옥체는 좀 어떠하십니까.""어마마마께서 심려하실 일이 아닙니다. 짐은 괜찮습니다."건양제는 서 태후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선선한 밤바람이 불어와 부드럽게 뺨을 스쳤다."어마마마의 안목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군요."건양제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그 말에 숨은 뜻을 알아챈 서 태후는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황제를 마주 보았다."황상께서는 내가 배현준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차가워진 말투를 듣고 건양제는 자신이 태후의 심기를 건드렸음을 깨닫고 황급히 말했다."현준이는 짐이 친자식처럼 지켜봐온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황위를 이어받는다면…….""황상!"서 태후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현왕이 뛰어난 재목인 것은 맞으나, 폐하께서는 이제 겨우 서른이십니다. 후사는 생각지 마시고, 옥체만 생각하세요. 훗날 현왕이 황위에 오르는 날이 오더라도, 내 바람은 그게 앞으로 삼십 년 뒤의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달빛 아래 비친 서 태후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고, 눈동자에는 황제를 향한 걱정이 가득했다.건양제는 헛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짐이 실언을 하였습니다. 고정하십시오, 어마마마."밤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자 서 태후는 건양제의 앙상한 몸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바람이 차갑습니다. 이만 침전으로 돌아가 쉬시지요."건양제는 말없이 옅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서 태후가 자녕궁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야심한 시각이었다.소 상궁의 부축을 받으며 처소에 든 서 태후는 궁녀가 끓여 온 해장탕을 반 그릇쯤 비우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황상의 옥체가 씻은 듯이 낫는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마, 폐하께서는 성군이시니 하늘이 돌봐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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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8화

다음 날 아침.유지영은 만수절 연회에서 일어난 소동을 전해 들었다. 홍주는 신이 나서 생생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오늘 아침 거리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어제 전하께서 또 승전보를 올리셨다지 뭡니까."귀를 기울여 듣던 유지영은 건양제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는 대목에서 미간을 찌푸렸다.전장 상황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아버지 대신 할머니의 상을 지킨다는 핑계를 대고 변방으로 내려가 배현준을 돕고 있었고, 안창준도 힘을 보태고 있으니 승산은 충분했다.다만 건양제의 병세가 마음에 걸렸다.상념에 잠겨 있을 때, 밖에서 남이국 오공주가 뵙기를 청한다는 전갈이 왔다."오공주가 나를 웬일로 찾아온 거지?"유지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영문을 몰라 고심하는데, 유영 현주도 함께 왔다는 보고가 이어졌다.유지영은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을 안으로 모시게 하고 차를 내오라 일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하고 당돌한 인상의 남궁연과 유영 현주가 나란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남궁연은 유지영을 보자마자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현왕비의 미모가 가히 경국지색이라 칭할 만큼 뛰어나다더니,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군."유영 현주가 다가와 웃으며 소개했다."지영아, 이분이 바로 남이국에서 오신 오공주셔. 어제 연회에서 선보인 춤사위가 어찌나 요염하고 아름답던지, 네가 그 광경을 보지 못한 게 아쉽구나."갑작스러운 남궁연의 방문에 유지영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전생에도 그녀와는 접점이 없었다.유지영은 유영 현주의 말에 호응하며 차분하게 대답했다."저도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훌륭한 춤을 직접 보지 못해 참으로 아쉽습니다."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남궁연은 유지영을 빤히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했다."그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 그대와 이연령이 서로 기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태후의 분노를 샀고, 그 탓에 이연령이 화친으로 내몰리게 되었다면서.""오공주께서는 연령 공주를 아십니까?"유지영은 차분히 되물었다.갑작스러운 질문에 남궁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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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9화

"가, 감히!"남궁연은 운청의 맹랑한 말대꾸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뺨을 후려칠 듯 손을 번쩍 치켜들었으나, 운청은 가볍게 몸을 틀어 피했다.운청은 꼿꼿하게 서서 따져 물었다."소인은 현왕비 마마의 사람입니다. 공주께서 무슨 자격으로 소인에게 매질을 하려 하십니까."남궁연은 분통이 터져 한참을 씩씩거렸다.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도 유지영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히 찻잔을 기울였다. 곁에 있던 유영 현주 역시 말릴 기색은커녕, 오히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남궁연을 흘겨볼 뿐이었다.남궁연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쯤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현왕비, 이게 그대가 아랫사람을 가르치는 방식인가? 참으로 버르장머리가 없군!"남궁연이 비난의 화살을 유지영에게 돌리자, 운청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다시 받아쳤다."소인이 제아무리 버르장머리가 없다 한들, 임자가 있는 사내를 뻔뻔하게 탐내지는 않습니다. 저희 왕비 마마께서 홑몸이 아니신 걸 뻔히 알면서도 제 발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시다니, 공주께서는 대체 무슨 꿍꿍이십니까!"일개 시녀가 자신의 체면을 짓밟자 남궁연은 화가 치밀어 주먹을 꽉 쥐었다.탁!유지영이 찻잔을 탁자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우아하게 입가를 닦은 뒤, 차가운 눈으로 남궁연을 마주 보았다."공주께서 오늘 기어이 시비를 걸러 오신 것이라면, 현왕부에서는 더 이상 손님으로 모실 이유가 없습니다. 여봐라, 당장 손님을 배웅하거라.""지금 나를 내쫓겠다는 건가?"남궁연이 두 눈을 부릅떴다.유지영은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공주께서는 화친을 맺으러 오신 분입니다. 양나라에서 평판이 바닥에 떨어지면 혼처를 구하기 어려우시겠지요. 제가 알기로 화친의 사명을 가지고 온 공주가 혼약을 맺지 못한 채 본국으로 돌아가면 큰 벌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어제 만수절 연회에서 공주가 저지른 무례를 양나라가 불문에 부친 것은, 공주의 거듭된 방자함을 무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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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0화

생각에 잠긴 유지영은 마음 한구석이 영 개운치 않았다. 남궁연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어 어디서부터 뒷조사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이연령에 관해서라면, 훗날 배현준이 패업을 이룰 것이라 여러 차례 장담한 바 있었다.하지만 유지영은 전생에 너무 일찍 목숨을 잃은 탓에 그 이후의 일은 전혀 알지 못했다.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미간을 짚었다.문득 뇌리를 스치는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운청을 바라보며 물었다."배준형의 동태는 파악된 것이 있느냐?""전장에 나간 이후로 정세자는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운청이 대답했다.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지영은 일찍이 배현준에게 배준형을 철저히 경계하라 신신당부했다. 칼질과 화살이 난무하는 험난한 전장이니, 배현준은 결코 그에게 섣불리 틈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유지영은 전생에 배준형이 결국 황위에 올랐을지 내심 궁금해졌다.그날 오후.유영 현주가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다시 현왕부를 찾았다."그 공주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 네 심기를 긁어놓을 줄은 몰랐어. 폐하께서 화친 상대를 골라보라 허락하신 건 맞지만, 마음에 드는 이를 제멋대로 고르라 하신 건 아니거든."혼자서 막무가내인 두 화친 공주를 감당하려니 유영 현주도 여간 고역이 아닌 듯했다."저는 괘념치 않습니다."유지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오전 유영 현주가 태후를 뵈러 입궁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이연령의 안부를 물었다.유영 현주는 유지영에게만큼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요 며칠 황실 예법을 배우느라 태후 마마의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어. 아마 화친을 떠나기 전까지는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 힘들 거야."겉보기에는 태후의 총애를 받는 연령 공주였지만, 실상은 쓸모를 다한 버림받은 패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그런 비참한 꼴을 당하는 것도 모두 그녀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참, 한 가지 소식이 더 있어."유영 현주가 은밀한 목소리로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였다."어머니께 얼핏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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