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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피안을 거슬러: Chapter 641 - Chapter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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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1화

단번에 포상이 세 개나 내려오자, 임 국공부의 위망은 그야말로 비할 데가 없었다.임씨 가문에 비하면 서씨 가문의 처지는 무척이나 초라했다.밖에서 흉흉한 소문까지 떠돌자, 서 부인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설마 태후 마마께서 진정 임씨 가문과 최씨 가문을 이어주시려는 걸까요?"서씨 노부인은 괜한 걱정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태후가 어찌 조카를 내버려 두고 그 좋은 혼처를 임씨 가문에 넘겨주겠는가."허나 최 부인이 요 며칠 임 국공부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가깝게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어제 오후에는 최씨 가문의 큰공자도 함께 갔다고 합니다."서 부인은 예리하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최씨 가문과 임씨 가문은 본디 왕래가 없던 사이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도 없었다.분명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연회에 참석했던 부인들의 묘한 눈빛과 쭈뼛거리던 태도도 생각할수록 찜찜했다."임씨 가문은 예전부터 태후 마마를 지지해 온 공신입니다. 이 혼사를 임씨 가문에 넘긴 것은 그들을 달래고 포섭하려는 수작이 분명합니다!"서 부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지난번 영씨 가문에서 임 국공 부인이 억울하게 수모를 겪고 돌아가 앓아누웠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어쩌면 태후가 그 일을 보상해 주고자 임씨 가문의 편을 들어준 것일지도 몰랐다.혼사로 민심을 끌어안으려는 심산이었다."괜한 억측이다."서씨 노부인은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소 상궁이 제 입으로 똑똑히 말하지 않았느냐. 태후 마마께서 명주와 최씨 가문 큰공자에게 사혼을 내리실 거라고 말이다. 태후 마마를 그 오랜 세월 모신 소 상궁이 어찌 허튼소리를 하겠느냐?"노부인은 그리 말했으나, 서 부인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정말로 사혼을 명하려 했다면, 벌써 정식으로 교지가 내려왔어야 마땅했다.상궁의 입을 빌려 애매모호한 말만 흘릴 리 없었다.동네방네 소문만 무성할 뿐, 여태껏 아무런 기미가 없지 않은가.게다가 서명주가 몇 번이나 유영 군주를 뵙고자 청했음에도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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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2화

유지영은 단 한 번도 배이수를 안중에 둔 적이 없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기껏해야 평온하게 지내는 것이 고작이었다.허나 오늘 배이수의 태도는 명백한 도발이었다."수왕 전하께서 전쟁터에 나갈 능력이 되셨다면 어찌 우리 현왕 전하께 차례가 돌아갔겠습니까?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을 때 전장으로 달려가신 분이십니다."유영 군주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거침없이 쏘아붙였다. 그녀는 망토를 여미며 영슬기를 흘겨보았다."네 어미는 광화사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거늘, 너는 참으로 한가롭구나."연거푸 핀잔을 들은 영슬기는 체면이 깎여 울상이 된 채 배이수를 쳐다보았다.배이수가 헛기침을 하며 거들었다."그저 향료를 사러 온 것뿐인데 왜 그리 몰아세웁니까. 영 부인이 죄를 지은 것이 영 낭자와 무슨 상관이라고……."편을 들어주는 이가 생기자 영슬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현왕은 신하입니다. 양나라의 녹봉을 받는 신하이시니 당연히 양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셔야지요!"배이수는 비웃음을 흘리며 유지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무척이나 경박한 시선이었다.유지영는 눈썹을 치켜뜨며 서늘한 눈빛으로 배이수를 쏘아보았다.그 기세가 어찌나 매서웠던지, 배이수는 흠칫하며 시선을 피하고 딴청을 피웠다."오늘 수왕 전하의 태도만 보면 황태자라도 되시는 줄 알겠습니다."유지영이 차갑게 비웃었다. 배이수의 안색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수왕 전하께서는 유일한 황자이시니 황태자가 되시는 건 기정사실 아닙니까. 현왕비 마마께서 사사건건 날을 세우실 필요는 없지요."영슬기가 불쑥 끼어들었다.배이수는 반박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제 손바닥 안에 있다는 듯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그의 출신이 곧 미래의 지위를 보장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눈앞에서 뻔뻔하게 추파를 주고받는 꼴을 보자, 유지영은 멍청한 것들이라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다.공주와 화친해야 할 판국에 여전히 영슬기와 치근덕대다니.이곳에 올 때의 비굴하고 초라하던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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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3화

배이수가 함향루에서 천금을 쏟아부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특히 영씨 가문의 딸과 추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까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그 바람에 최씨 일가까지 연루되어 조정에서 탄핵을 받게 되었다."양나라가 전쟁 중이라 국고가 비어 수많은 백성이 굶주리고 헐벗고 있는 시국입니다. 하오나 수왕 전하께서는 향료를 사느라 천금을 물쓰듯 하시어 세간의 지탄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지요."어사는 배이수의 무책임함과 사치스러움을 비난했다.황제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배이수를 노려보았다.겁에 질린 배이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무릎을 꿇었다.“아, 아바마마…….”"현왕 전하께서는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오직 양나라의 백성을 위해 밖에서 피 흘려 싸우고 계시거늘, 수왕 전하께서는 불경한 언사로 현왕을 도발하셨지요……."어사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황제가 상소문을 집어 들어 배이수를 향해 거칠게 집어 던졌다."불경한 놈! 짐이 아직 멀쩡히 살아있거늘, 네놈이 감히 위세를 떨어!"상소문에 정통으로 맞은 배이수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감히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황제는 조회 내내 배이수를 매섭게 질타하더니, 배이수 곁을 지키던 호위들에게 수십 대의 곤장형을 내렸다.그러나 최씨 가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조회가 끝날 무렵, 황제는 배이수를 향해 호통을 쳤다."현왕은 밖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거늘, 넌 신분만 내세워 제멋대로 굴며 현왕비에게 모욕을 주다니! 참으로 천박하구나!"조금의 체면도 세워주지 않는 질타였다.배이수는 당장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감히 반박 한마디 내뱉지 못했다."궁중 법도를 백 번 필사해서 내일 정오 전까지 내 눈앞에 대령하거라!"조회가 파한 후.배이수는 붉으락푸르락해서 밖으로 나왔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는 곧장 덕비의 처소로 불려 갔다.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도 매서운 불호령이 떨어졌다."영슬기의 아비는 서인으로 강등되고 어미는 광화사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온 동네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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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4화

최 부인의 설득에 최호는 입을 다물었다."나중에 엮이지 않으려면 수왕과는 거리를 두거라." 최 부인이 당부했다.요 며칠 서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팠다.수왕의 일로 엮이기까지 하니, 가슴에 맺힌 울화가 통 가라앉지 않았다.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밖에서 서씨 노부인이 찾아왔다는 기별이 들렸다.최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긴 웬일이랍니까? 이미 교지까지 내려졌는데 감히 황명이라도 거역할 셈입니까?"최 부인은 손을 내저었다.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잠시 자리를 피하거라."최호를 내보낸 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서씨 노부인을 안으로 모시게 했다.대청.서씨 노부인의 안색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어제 교지가 내려진 직후 홧김에 기절까지 했던 그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태후를 만날 길이 없으니, 최씨 가문을 찾아와 연유라도 따져 물을 수밖에 없었다.최 부인은 서씨 노부인을 마주하고도 그저 말을 돌릴 뿐이었다. 자신은 아는 바가 없으며 전부 태후의 뜻이라는 핑계였다.철벽을 치는 대답에 서씨 노부인은 하마터면 욕을 내뱉을 뻔했다.허나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솔직히 말하자면, 어제 교지가 내려진 후 명주는 밤새 눈물을 쏟았소. 서씨 가문의 적장녀가 남의 첩실로 들어가다니, 가문의 체면이 말이 아니오."서씨 노부인은 대놓고 태후를 헐뜯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수십 번도 더 욕을 퍼부었다.그 해묵은 원한 때문에 조카의 자존심을 짓밟다니!최 부인이 대꾸했다. "교지가 내려졌는데, 최씨 가문이라고 감히 황명을 어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서씨 노부인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난 황명을 거역하라고 찾아온 것이 아니오. 우리 가문도 나름 명문가라 백 년을 이어온 최씨 가문에는 못 미칠지언정, 적장녀를 첩실로 들여보낸 전례는 단 한 번도 없었소."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을 듣고 있자니, 최 부인은 상대가 무슨 말을 꺼낼지 대충 짐작이 갔다.아니나 다를까, 서씨 노부인이 자못 의미심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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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5화

십이월 말.여전히 눈발이 매섭게 흩날렸고, 현왕부는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였다.유지영은 창문 앞에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귓가에 배진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운민이 색공을 흔들며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 진이는 공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댔다.그 모습을 보자 유지영의 심란했던 마음도 한결 누그러졌다.마당 밖에서 운청이 거센 눈보라를 뚫고 우산을 쓴 채 다급히 들어왔다.창문밖에 이르러 우산을 접은 그녀가 문 너머로 고했다. "왕비 마마, 수왕 전하께서 또 오셨습니다."배이수는 벌써 사흘째 현왕부로 찾아와 사죄를 청하고 있었다.유지영이 코웃음을 쳤다. "연극에 재미라도 들린 모양이구나. 들이거라."운청이 대신 나서서 그를 맞이했다.허나 배이수는 기어코 유지영을 만나야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날 제가 정신이 나가 말실수를 많이 한 것 같소. 깊이 반성하고 있고 반드시 형수님을 뵙고 직접 사죄하려고 찾아왔소."유지영을 보지 못하면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운청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 유지영의 의중을 물었다.유지영은 눈썹을 치켜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보다 한결 비굴해진 배이수가 서 있었다."형수님." 배이수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허리를 굽혀 사죄했다. "그날 형수님의 꾸짖음이 백번 지당하십니다. 제가 천하의 몹쓸 놈이었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유지영은 눈앞의 배이수를 가만히 응시했다. 진심으로 뉘우친 기색은 없었다. 억지로 떠밀려 온 것이 뻔했다.그녀는 굳이 그 얄팍한 속내를 들춰내지 않았다. "얼굴도 보았고 수왕 전하의 성의도 확인했으니, 이만 돌아가세요."말을 마친 유지영이 몸을 돌리려는데, 배이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형수님, 북신의 팔공주 북영주가 현왕 형님께 푹 빠졌다는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북신에서 화친을 청하며 북영주를 형님의 측실로 내어주겠다 제안했다 하더군요."북영주는 북명연의 친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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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6화

문이 열리자 배이수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섰다.그는 익숙한 듯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고, 시녀가 차를 내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이 열리더니 영슬기가 황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온몸에 한기를 매단 채였지만, 그녀는 교태로운 눈빛으로 배이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전하께서 오늘은 어쩐 일로 걸음을 하셨습니까. 마침 제가 집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절에라도 갔더라면 두 시진 내로는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배이수의 안색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영슬기는 슬그머니 웃음기를 거두었다.망토를 벗어 던진 그녀는 요염하게 허리를 흔들며 배이수에게 다가갔다."전하,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퍽이나 능숙한 교태였다.배이수는 영슬기의 허리를 낚아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지금의 나는 그저 수왕이라는 허울뿐, 손에 쥔 병권 하나 없으니 다들 나를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는구나. 내 마음에 품은 여인을 곁에 두는 일조차 사사건건 막히니 말이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배이수의 얼굴은 다시금 음침하게 가라앉았다.명색이 황실의 유일한 황자로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떠받들려야 마땅하거늘, 지금은 개나 소나 그에게 훈수를 드는 상황이었다.뭘 하든 트집을 잡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어사들의 탄핵에 시달렸다.오직 영슬기 곁에 있을 때만이 자신이 우러러보이는 존재이자 의지할 수 있는 사내임을 느낄 수 있었다."폐하께서 전하를 단련시키려 그러시는 겝니다. 엄하게 대하시는 것 또한 전하를 키우기 위함이지요. 아예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진정 매정한 처사 아닙니까. 현왕은 지금 밖에서 전쟁을 치르며 막강한 병권을 쥐고 있으니, 폐하로서는 당연히 현왕비의 편을 들어주실 수밖에요."영슬기는 배이수의 목에 팔을 두르며 속삭였다."피는 물보다 진한 법입니다. 배현준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결국 전하를 위해 좋은 판만 깔아주는 꼴이 될 것입니다."그 달콤한 위로에 배이수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방 안에 은은한 향이 피어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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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7화

서소현은 이미 엎질러진 물임을 깨닫고 영슬기의 두 손을 꼭 잡았다."슬기야, 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왕을 꽉 잡아야 한다. 훗날 네가 아들 덕에 귀해져 자녕궁의 주인이 될지 또 아느냐. 그리만 된다면 이 어미에게도 한 줄기 빛이 생기는 게야."비록 아득하고 험난한 길이 되겠지만, 적어도 희망은 보이니 말이다.영슬기는 굳게 다짐하며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니의 당부를 단단히 새긴 영슬기는 다음 날 동이 트기도 전에 산을 내려와 서씨 저택으로 향했다.명색이 서씨 가문의 외손녀인지라, 예전부터 제집처럼 드나들던 곳이었다.덕분에 아무런 제지 없이 무사히 서씨 노부인을 뵐 수 있었다.서씨 노부인은 무척이나 수척해진 얼굴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딸의 안부부터 물었다."산바람이 어찌나 매서운지요. 어머니께서는 본디 몸도 약하신데, 풍한까지 겹쳐 통 차도가 없으십니다." 영슬기가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구슬프게 말했다. "어머니를 경성으로 모셔 와 조용한 거처에서 요양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내년 봄이 되어 날이 풀리면, 그때 다시 광화사로 모셔도 되지 않겠습니까."가뜩이나 딸이 눈에 밟히던 서씨 노부인의 마음을 단박에 찌르는 말이었다.서씨 노부인은 지체 없이 시녀를 시켜 은표를 가져오게 한 뒤 영슬기의 손에 쥐여주었다."착하기도 하지. 네가 어미를 그토록 애틋하게 생각하니 네 말대로 하마."영슬기는 예의상 두어 번 사양하는 척하다가 못 이기는 척 은표를 챙겼다. 그러고는 살갑게 노부인의 안위를 살폈다.한창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 부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영슬기를 발견하자마자 미간을 꿈틀거렸다."외숙모." 영슬기가 다소곳이 인사를 올렸다.서 부인은 눈앞의 조카딸이 영 달갑지 않았다. 특히 영슬기가 올 때마다 노부인의 모든 관심은 영슬기에게 쏠리고 그녀의 딸 서명주는 병풍이 되어야 했기에 더더욱 고까웠다.서씨 노부인은 장녀인 서소현을 끔찍이 아끼는 마음에, 외손녀인 영슬기마저 친손녀인 서명주보다 훨씬 감싸고돌았다.서 부인으로서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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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8화

서씨 노부인은 그 귀한 신분이 바로 영슬기라고 굳게 믿었다.그 덕분에 영슬기를 각별히 편애하며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었다.영슬기를 곁에 두고 오전 내내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작스러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늘 아침 조회에서 수왕이 또다시 탄핵을 받았다는 것이었다.여러 어사가 일제히 들고일어나 수왕을 물어뜯었다. 그가 뒤로 군량을 대거 사재기하고 폭설이 석 달간 이어질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려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으며, 억울함을 호소하려 상경한 백성들을 무참히 때려죽였다는 죄목이었다."그…… 그럴 리 없습니다!" 영슬기가 가장 먼저 펄쩍 뛰며 부인했다. "백성을 때려죽이고 유언비어로 세상을 어지럽히다니요. 어느 것 하나 수왕 전하께서 감당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가볍게는 파직이요, 무겁게는 목이 달아날 중죄였다.영슬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씨 노부인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서씨 노부인은 손녀를 달래며 사람을 시켜 정확한 진상을 다시 알아보라 명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갔던 시녀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노부인, 온 거리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인 듯합니다."털썩!영슬기는 다리에 힘이 풀려 침상 위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할머니, 멀쩡하시던 분이 어찌 하루아침에 이리 되셨단 말입니까. 대체 뒤에서 누가 전하를 음해하는 것입니까?"서씨 노부인 역시 속이 타들어 갈 뿐, 뾰족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큰아가씨, 영씨 가문에서 지금 당장 아가씨를 모셔 오라 사람이 왔습니다." 문밖에서 영가의 어멈이 고개를 들이밀며 다급히 고했다.영슬기는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서씨 노부인의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서씨 노부인이 어멈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로 아이를 이리 급히 찾는 거요?"어멈이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어르신들의 뜻입니다."자세한 내막은 입을 굳게 다문 채 한마디도 흘리지 않았다.서씨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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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9화

영슬기를 내쫓고도 서 부인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그녀는 심복들을 배치해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게 했다.체면을 단단히 구긴 서씨 노부인은 곧장 사람을 보내 아들 서유천을 불러들였다."네 처가 하는 꼴 좀 보거라. 기세등등해서 시어미는 안중에도 없구나. 아무리 그래도 네 조카이거늘, 어찌 저리 매몰차게 군단 말이냐!"서씨 노부인이 핏대를 세우며 호통을 쳤지만, 잔뜩 굳어 있는 아들의 표정을 보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서유천은 싸늘한 얼굴로 손을 내저어 주변 하인들을 모두 물렸다.그는 잔뜩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불쑥 입을 열었다."어머니, 유국공부의 노부인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뜬금없는 질문에 서씨 노부인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유씨 노부인은 차남네만 편애한 나머지, 유국공이 집을 비운 틈을 타 현왕비를 모질게 학대했습니다. 결국 그 가문의 끝이 어찌 되었습니까?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차남과 삼남댁 일가족은 처참하게 죽어 나갔습니다. 사리 분별 못 하던 그 노부인 역시 비참하게 죽었지요."서씨 노부인은 흠칫 몸을 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아들을 쳐다보았다."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서소현과 영슬기 모녀는 썩어빠진 종양이나 다름없습니다. 엮이는 순간 같이 죽는 겁니다. 어머니께서 가문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계속 그들을 감싸고도신다면, 소자 역시 가문을 지키기 위해 유국공부의 전철을 밟아 혈육을 쳐낼 수밖에 없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쐐기를 박았다."둘째와 셋째, 넷째 아우에게도 이미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 애들의 뜻도 저와 같습니다."가문을 위해서라면 혈육의 정마저도 기어이 끊어버리겠다는 결의였다.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가문을 지키겠다는 아들의 살벌한 얼굴에 서씨 노부인은 하얗게 질린 입술을 떨었다."금섬 대사께서 슬기가 장차 귀한 신분이 되어 우리 가문을 크게 일으킬 것이라 하셨다!""영슬기는 서씨가 아닙니다! 영슬기는 우리 서씨 가문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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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0화

서소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영정이 그 아이를 때려죽였단 말이냐?"소식을 알아온 시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듯 답했다."여덟 대쯤 맞았을 때 아가씨께서는 이미 혼절하셨습니다. 허나 큰나리께서 기어코 십여 대를 더 치라 명하셨고, 결국 의원이 당도하기도 전에 숨을 거두셨다 합니다."그 말을 들은 서소현은 숨이 턱 막히며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시녀가 기겁하여 온몸을 주무르고 꼬집은 끝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광화사에서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서소현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악을 썼다."당장 하산하여 영씨 가문으로 가자!"같은 시각, 황궁.날이 어둑해지자 전각 밖으로 살을 에이는 듯한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쳤다.배이수는 전각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이 새빨갛게 얼어붙어 있었다.상 내관이 이따금 그를 힐끗거렸으나 이내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낭하에서 부산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덕비가 궁인들을 대거 이끌고 다가왔다.상 내관이 황급히 다가가 앞을 막아섰다."덕비 마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폐하께서는 정무를 보고 계십니다."덕비는 굳이 억지로 안으로 들이닥치지 않았다."이곳에서 기다리지."상 내관도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물러섰다.덕비의 싸늘한 시선이 배이수에게 닿았다.죄지은 기색이 역력한 배이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불렀다."어마마마.""내가 어찌 감히 수왕에게 어미 소리를 듣겠느냐."덕비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나이는 어려도 배짱은 두둑하더니. 나는 너같이 대역무도한 아들 둔 적 없다."덕비의 노골적인 조롱에 배이수의 귓바퀴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한 시진 전 영슬기가 영씨 집안에서 맞아 죽었다. 시신은 사당에 들이지도 못한 채 밖에 대충 묻혔다더구나."덕비는 상황 파악조차 못 하고 책임감도 없는 배이수를가 경멸스러웠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주제에 겉과 속이 다르게 구는 꼴이 한심할 따름이었다.배이수는 수치심에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는 다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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