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가장 잔인한 축복 / Chapter 291 - Chapter 300

All Chapters of 가장 잔인한 축복: Chapter 291 - Chapter 300

302 Chapters

291화 화려한 조명 뒤의 균열

박성재 변호사 및 법무팀과 함께 CB와 찰스를 향한 본격적인 법적 소장을 준비해 나가던 유현은, 밤늦게 자신의 SNS 계정을 열었다.유현은 이전에 찰스에게 디자인을 빼앗기고 억울해할 때, 강도진 대표로부터 "디자인을 지키는 것도 디자이너의 능력이자 힘이다"라는 찬바람 부는 핀잔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유현은 이번 홀리데이 시즌 CB의 세컨드 라인으로 출시되어 큰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스티치 커플구두의 최초 원본 스케치 및 3D 도면 초안을 SNS에 무덤덤하게 업로드했다.그리고 그 사진 아래에 한 줄의 짧고 단단한 제목과 함께 장문의 글을 적어 내려갔다.['지키는 것도 힘'이라고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유현이 적어 내려간 글은, 무기력하게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눈물 흘렸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이자 다시는 그런 부조리를 겪지 않겠다는 단단한 다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권력에 눌려 자신의 소중한 작품을 빼앗기고 숨죽이고 있을 수많은 주니어 디자이너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기도 했다.유현의 글은 올라오자마자 패션계 안팎과 CB 그룹 사내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다음 날 아침, CB 사옥 디자인실 옆 휴게실. 직원 몇몇이 커피를 들고 모여 앉아 유현의 SNS 화면을 띄워놓고 소곤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와, 그 순하고 입 무겁던 유현 씨가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올리다니 진짜 대단하다.""그러게. 그런데 이거…… 그냥 자기 다짐글은 아닌 것 같지 않아?""당연하지! 딱 봐도 찰스 저격글이잖아. 그리고 유현 씨가 올린 스케치, 이번 시즌 찰스가 자기 작품이라고 발표해서 대박 친 세컨드 라인 구두랑 소름 돋을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았잖아.""아, 나 그 이야기 들은 적 있어! 강도진 사장이 유현 씨한테 슈즈 라인 기획해 보라고 해서 유현 씨가 몇 달 동안
Read more

292화 진짜 럭셔리의 조건

유현의 용기 있는 SNS 글 한 줄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오랫동안 찰스의 폭정과 착취 아래 숨죽이고 있던 피해자들의 가슴에 거대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유현은 박성재 변호사의 조력 아래, 개인 SNS DM과 댓글로 조심스럽게 연락을 건네온 찰스의 전·현직 피해 디자이너들과 비밀리에 연쇄 미팅을 갖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락과 미팅을 이어갔지만, 거대한 공룡 기업 CB와 업계의 거물 찰스에게 직접 맞서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을까, 선뜻 법정이나 재판에 직접 나서 주겠다는 사람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유현도 그들의 망설이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소중한 디자인을 빼앗겨서 처음엔 화나고 분통이 터지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점차 시들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무리 용기를 내어 이 부조리한 사실을 밝힌다고 해도 결국 자신들이 할 줄 아는 건 디자인뿐이었다. 찰스가 자신의 막강한 업계 인맥과 권력을 동원해 뒤에서 어떤 매장 공작을 펼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다들 신중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거절과 난색에, 유현의 가슴 한구석에 서운함과 무력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그렇게 발품을 팔며 힘겹게 모은 10명 내외의 디자이너 중, 유현과 끝까지 뜻을 함께하여 법정 싸움을 해보겠다는 확신을 보여준 사람들은 이미 패션 디자인 업계를 떠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머지 몇몇은 재판의 진행 상황을 관망하면서 최종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철저한 익명을 요구한 현직 디자이너들이었다.비록 당
Read more

293화 아이들의 눈물, 그리고 진실

힘겹게 2주를 기다린 끝에, 강도진은 드디어 박진우와의 미팅 자리에 들어설 수 있었다.도진은 그동안 밤을 지새우며 사력을 다해 완성했던 남미 에메랄드 광산 사업계획서를 테이블 위에 당당하게 내밀었다. 이 거대한 광산 사업의 가치와 비전을 확인한다면 박진우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그러나 서류를 넘겨보는 진우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못해 냉담했다."……에메랄드 광산이라."진우는 계획서를 대충 몇 장 훑어보더니, 더 이상 읽을 가치도 없다는 듯 서류를 내려놓았다. 진우의 얼굴에는 흥미나 호기심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을 완전히 아랫사람 취급하듯 무심한 진우의 태도에 도진의 자존심이 바닥까지 짓밟히며 파르르 떨렸다."박 대표, 사업 규모나 수익성 면에서 이만한 건이 없다는 건 잘 알 텐데?""강 대표님. CB의 현 자금 사정과 리스크를 감안했을 때, 이 정도 덩치의 해외 광산 투자는 사업이 아니라 무모한 도박에 가깝습니다. 저희는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건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원론적이고 단호한 거절에 도진은 수치심으로 얼굴이 허얗게 질려갔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진우가 당장이라도 과거 지원했던 200억 투자금마저 당겨서 상환하라고 회수 독촉을 날릴까 봐 사시나무 떨리듯 불안감이 밀려왔다.그런 도진의 파르르 떨리는 턱관절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진우는, 서류를 천천히 덮으며 묘한 여운이 담긴 나지막한 한마디를 덧붙였다."하지만 강 대표님과의 인연을 생각해서…… 검토는 해 보지요. 그래도 전혀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넓혀보겠다는 그 도전정신만큼은 아주 마음에 드는군요."말은 검토해 보겠다지만 사실상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으니 나가라는 말없는 축객령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도진의 발목을 잡는 은밀한 희망의 밧줄이기도 했다. 마치 불쌍한
Read more

294화 차가운 사형선고

며칠 뒤, 박진우의 호출을 받은 강도진은 약간의 희망을 안고 다시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지난 미팅에서 진우가 "도전정신은 마음에 든다"며 남겼던 여지가, 남미 광산 투자의 물꼬를 틀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도진을 맞이한 것은 서늘한 정적과 진우의 차가운 눈빛이었다.진우는 도진이 내밀었던 사업계획서 옆에, 두꺼운 조사 보고서 두 묶음을 툭 던져놓았다. 하나는 과거 아스테리아에서 실시했던 남미 광산 현장 실사 보고서였고, 다른 하나는 앤더슨이 직접 현지를 방문해 작성한 따끈따끈한 현장 보고서였다."강 대표님. 이 두 보고서를 읽어보셨습니까?"진우의 무덤덤한 질문에 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우는 두 보고서의 특정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강 대표님이 내민 계획서의 화려한 전망과, 외부 전문가들이 작성한 이 현장 조사 결과가 왜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특히 이번 CB의 현장 조사 때 앤더슨 씨가 직접 동행했던 것으로 아는데, 어째서 CB의 최종 보고서에는 그가 제시한 치명적인 지질학적 위험 요소와 붕괴 가능성이 쏙 빠져 있는지 의문이군요."진우가 CB 현장 보고서의 신뢰성 자체를 정면으로 건드리자, 도진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도진은 침을 삼키며 급히 변명을 내놓았다."앤더슨 씨가 이야기한 위험성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십수 년 동안 잔뼈가 굵은 실무자들과 개발 브로커들
Read more

295화 잔해를 거두다

박진우에게 500억 대물변제 압박을 받고 나온 강도진의 행보는 조급해질 대로 조급해져 있었다. 당장 현금을 확보해 광산 사업의 자금줄을 대고 자신의 주식 지분을 지켜내야 했던 도진은, 그동안 시장에 내놓고 있던 수백억 원대의 개인 부동산 매물들의 가격을 대폭 낮추어 급매물로 연달아 전환했다. 제값은커녕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당장 현금을 손에 쥐어야 할 만큼 피가 말라붙는 긴박함 때문이었다.같은 시각, 제이아우라 이지수 대표의 집무실.지수의 비서 민철은 이전부터 지수가 유심히 눈여겨보고 있던 도진의 개인 부동산 매물 서류를 새로 정돈하여 지수의 책상 위에 올렸다."대표님, 강도진 대표가 급해지긴 한 모양입니다. 부동산 가격을 조절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건 조절된 내역입니다."지수는 서류를 받아 들고 붉은 펜을 들어 하나하나 유심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한남동의 빌라, 청담동의 부지, 그리고 과거에 사두었던 대지들까지. 지수의 펜 끝이 몇몇 매물 위에서 주저 없이 깔끔하게 동그라미를 그렸다.곁에서 그 과정을 한참 동안 가만히 지켜보던 민철은, 지수가 리스트의 가장 상단에 적힌 한 장소를 유유히 지나쳐 그대로 서류를 넘기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포스트 빌리지는 구매 안 하시나요?"포스트 빌리지. 두 사람이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그리고 8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신혼집으로 사용했던 고급 빌라였다.
Read more

296화 위기와 올가미

수진이 구속되어 감옥에 들어간 이후, 강도진의 비서로 일하며 비밀리에 뒷돈을 챙겨왔던 한수혁의 삶은 그야말로 참혹하게 무너져 내렸다. 비리 사실이 업계 전반에 낱낱이 파헤쳐지며 소문이 나자, 그 어떤 회사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밀린 월세와 사채업자들의 독촉에 쫓겨 곰팡이 쓸린 음습한 단칸방에 갇힌 수혁은, 매일 밤 찌든 술과 절망 속에서 피폐해져 갔다.초췌하게 자란 수염과 핏발 선 눈, 퀭하게 파인 볼골이 그의 처절한 몰락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골방 구석에서 썩어가는 자신과 달리, 수진과 갈라선 후 두 아이를 데리고 전보다 훨씬 다복하고 유복하게 살아가는 박진우의 소식이 뉴스나 SNS를 통해 들려올 때마다 수혁의 가슴속에는 비틀린 원망과 증오가 소용돌이쳤다.'박진우 네놈 때문에 수진 누나도 감옥에 가고 내 인생도 이 꼴이 됐어……!'진우가 현수와 현지에 대해 유난한 부성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수혁은, 아이들을 이용해 거액의 돈을 뜯어내고 해외로 도주할 끔찍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수혁은 기회를 노리며 진우 가족의 뒤를 집요하게 쫓았지만, 늘 철통같은 경호와 보모의 밀착 케어 때문에 선뜻 접근하지 못했다.그러던 어느 주말, 지수가 도진에게서 사들인 양평 별장의 상태를 확인하고 아이들과 나들이를 겸해 떠난다는 정보가 수혁의 귀에 들어왔다. 진우와 지수, 현수, 그리고 동갑내기인 다섯 살 현지와 예인이까지 함께한 양평 별장 나들이. 수혁은 어린 현지와 예인이를 타깃으로 삼고 별장 인근 숲속에 모자와 마스크를 눌러쓴 채 숨어 기회를 노렸다.별장 뒷마당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들 중, 첫째 현수가 넘어져 옷이 흙투성이가 되는 바람에 옷을 갈아입히려 보모가 현수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뒷마당에는 동갑내기인 다섯 살 현지와 예인이 둘만 남아 쪼그려 앉아 알록달록한 꽃을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예인아, 이 분홍색 꽃 진
Read more

297화 사선의 목소리

수혁은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애초에 현지 하나만을 노리고 들어갔던 계획과 달리, 얼떨결에 두 명의 아이를 양팔에 껴안고 튀어나온 탓이었다.뒷좌석에 구겨 넣어진 현지와 예인이는 목이 터져라 "아빠! 엄마!"를 부르짖으며 오열하다가, 차의 거친 흔들림 속에서 끝내 지쳐 깊은 잠에 떨어졌다.수혁은 룸미러를 통해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오히려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는 어린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다니는 성인 남자는 길거리나 휴게소에서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에 십상이었던 까닭이다.한참을 정처 없이 국도를 돌아다니던 수혁은 룸미러 속 아이들을 보다가, 아까 별장 마당에서 자신의 차를 미친 듯이 쫓아오다 허망한 눈으로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고 망연자실 서 있던 박진우의 모습이 떠올랐다.'크하하, 박진우 네놈이 아무리 잘나봤자 내 손아귀 안이다.'마치 자신이 전능한 승자가 된 듯한 짜릿한 승리감이 전신을 감쌌다. 처음엔 현지의 몸값만 뜯어낼 생각이었지만, 제이아우라 이지수의 딸인 예인이까지 덤으로 끌고 왔으니 몸값을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뜯어낼 수 있다는 헛된 탐욕이 솟구쳤다.수혁은 차를 몰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음습한 동네로 들어섰다. 예전에 사촌 누나인 수진이 궁상맞게 살았던 곳과 흡사한 낡은 반지하 방. 수혁은 거칠게 아이들을 안아 들고 어두운 반지하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깨어나 발버둥 치지 못하도록 준비해 온 덕테이프로 아이들의 조그만 손과 발, 그리고 입까지 꼼꼼하게 막아버렸다.하지만 입을 막아놓고 가만히 아이들을 바라보던 수혁의 머릿속에 순간 나쁜 생각이 스쳤다.'잠깐, 이러다 혹시 코까지 막혀서 숨이라도 못 쉬어 죽으면 어쩌지? 그럼 거액이고 뭐고 다 날아가는 건데.'겁이컥 난 수혁은 급히 아이들의 입을 막고 있던 덕테이프를 거칠게 떼어냈다. 그 순간, 입가에 붙어 있던 테이프가 떨어져 나가는 쓰라린 통증에 잠들어 있던 예인이가 헉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아
Read more

298화 그늘진 연회

"강 대표님, 내밀어 주신 사업계획서 상의 남미 광산 매장량 추정치만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성공만 하면 그야말로 대박이겠어요."고급 한정식집의 프라이빗 룸. 묵직한 정적 속에서 자산운용사의 이 이사는 도진이 내민 서류를 손끝으로 넘기며 감탄사를 내뱉었다.도진은 속으로 긴장의 끈을 조이며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상대의 표정이 꽤나 긍정적으로 보였기에, 이번만큼은 기류가 흐뭇하다고 믿고 싶었던 까닭이다."그렇습니다, 이 이사님. 이미 1차 지질 조사와 현지 브로커 선점까지 완벽하게 마친 상태입니다. 초기 개발 자금만 빠르게 확보된다면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채굴과 대대적인 유통망 확보가 가능해집니다."도진은 기회를 놓칠세라 품속에서 정식 투자 계약서를 꺼내 들고, 차분한 태도를 가장하며 테이블 위로 스르륵 밀어 넣었다."오늘 이 자리에서 확약서에 도장만 찍어주신다면, 자금 집행 및 수익 배분 조건은 운용사 측의 요구에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그러나 도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은한 가야금 소리가 흐르던 방 안의 공기가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 이 이사는 허허 싱거운 실소를 흘리며 슬그머니 찻잔을 내려놓더니, 도진이 밀어 넣은 계약서를 손끝으로 슬쩍 당겨 다시 도진 쪽으로 밀어냈다."아이고, 강 대표님. 마음이 너무 급하시네. 이렇게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사업인데, 우리가 서류 몇 장 보고 오늘 당장 인감도장을 찍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Read more

299화 허상의 신전

김미자의 고집과 독단은 파티 준비 단계부터 스태프들과 정지상 팀장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뜯게 만들었다.정지상이 기획했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미니멀리즘 연출안은 김미자의 손에 들어간 지 단 10분 만에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미자는 호텔 대연회장 입구부터 촌스러운 대형 금빛 아치와 요란한 원색 조명을 도배했고, 사교계 사모님들의 눈길을 사로잡겠다며 CB의 신상 드레스와 보석들을 조잡하게 나열한 초대형 디스플레이 존을 강행했다."사모님, 제발 재고해 주십시오. 겉으로는 CB의 연말 갈라 파티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 자리의 본질은 남미 광산 유치를 위한 거액 투자자들을 위한 자리라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정지상의 절박한 건의에도 김미자는 명품 클러치를 쥔 손끝을 까딱거리며 비웃음을 날렸다."내가 설마 그것도 모를까 봐 그래? 어휴, 답답하긴! 투자가들도 우리가 가진 재력과 세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안심하고 선뜻 투자할 마음이 생기지 않겠어? 그리고 또! 그 투자가들이 혼자 오니? 다 자기 마누라나 파트너 손 잡고 와. 생각보다 그 안사모님들 입김이 사업 결정에 얼마나 센지 네가 잘 몰라서 그래!""하지만 사모님, 이건…….""토 달지 마! 어디서 감히 대표 모친이 지시하는 일에 일일이 토를 달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해!"결국 파티장은 품격 있는 명품 투자설명회의 무대가 아닌, 억지로 자본력을 과시하려 애쓰는 기괴하고 조잡한 삼류 연회장으로 변질되어 갔다.
Read more

300화 허상의 신전 (下)

파티장 로비의 눈부신 역광을 뚫고 들어선 두 사람을 보며, 강도진은 한참 동안 이지수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혼 후 공식 석상에서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그 지수가 CB의 연말 갈라 파티장에 직접 발을 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까닭이다.도진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지수의 우아한 딥 네이비 실크 드레스뿐만이 아니었다. 지수가 가볍게 클러치를 쥐고 있는 왼손 손가락, 그곳에서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였다.'영원한 사랑'과 닮은 듯하면서도 완벽하게 다른 디테일.희귀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촘촘한 세공이 보석의 입체감을 극대화한 독보적인 반지는, 얼마 전 지수가 SNS에 사진을 올려 사교계의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던 바로 그 디자인이었다. 마침내 그 반지가 실물로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멍하게 반지를 내려다보던 도진의 신경을 사정없이 깨운 것은 모친 김미자의 날카로운 비명이었다."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냐!"김미자의 히스테릭한 목소리에 이어, 그 곁에 서 있던 부친 강수한 회장의 묵직하지만 조심성 없는 호통이 날아들었다."넌 어른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어디서 못된 버릇이냐!"그러나 지수는 그들의 거친 고함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눈앞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그들을 차갑게 지나쳐, 연회장 안쪽에서 지수를 반갑게 바라보고 있던 강인주 여사에게로 걸어갔다. 제이아우라 시크릿
Read more
PREV
1
...
262728293031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