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와의 긴장감 넘치는 협상을 마친 도진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고급 찻잔에 담긴 차가 까맣게 식어가는 동안에도, 도진은 턱을 괴고 앉아 손가락으로 책상을 일정하게 톡, 톡 튕겼다. 겉으로는 언제나처럼 차갑고 완벽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거대한 계산기 톱니바퀴가 미친 듯이 돌아가는 중이었다.‘시간이 부족해. 그리고 명분도.’다가오는 연말은 패션업계 전체가 혈안이 되는 최대 대목, '크리스마스 홀리데이 시즌'이었다. 동시에 글로벌 톱스타 클로이의 화려한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어 언론과 대중, 그리고 상류층의 시선이 온통 CB 그룹에 쏠릴 판이었다. 이 시기에 내놓는 컬렉션 하나가 CB 브랜드의 가치를 수천억 단위로 뒤흔들 수도 있었다.그리고 이 크리스마스 시즌은, 내부적으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다음 정규 시즌의 디자인 전권을 찰스에게 위임할 수 있을지 판단할 마지막 시험대이자 명분 만들기였다.도진은 인터폰을 눌러 비서실에 나지막하게 지시했다."찰스 수석 올라오라고 해요."잠시 후, 찰스가 특유의 거만한 걸음걸이로 대표이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화려한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 턱을 높게 든 모습이었지만, 도진의 눈에는 그 겉치레 너머의 불안감이 훤히 들여다보였다."부르셨습니까, 대표님?"도진은 책상 위에 놓인 크리스마스 컬렉션 기안서를 찰스 앞으로 천천히 밀어냈다."찰스 수석.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 전권을 넘기지요. 그리고 이번 시즌의 매출 결과와 시장 반응에 따라 다음 정규 시즌의 전권을 완전히 넘길지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도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찰스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는 서류를 훑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눈살을 지푸리며 기분 나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도진을 따져 묻듯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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