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식 장인이 지수의 의뢰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이후, 지수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촘촘하게 돌아갔다.오전에는 매듭 장인 윤유선의 작업실에서 실의 꼬임과 매듭의 강도를 몸소 익혔고, 오후에는 익선동 박종식의 작업실 한구석에서 그의 서슬 퍼런 은입사 기법을 눈으로 훔쳤다. 그리고 해가 지면 자신의 밀실로 돌아와 낮에 배운 기술들을 피가 나도록 연습했다.박종식은 지수가 자신의 기술을 탐내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았지만,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험한 일들을 맡겼다. "손끝이 짓물러야 쇠의 마음을 아는 법이지." 그는 지수의 집요함에서 젊은 시절 자신의 광기를 보았다. 급기야 그는 백옥잠이 완성되는 날, 지수만의 감각으로 빚어낸 장신구를 하나 만들어 오라는 파격적인 숙제까지 내주었다. 그것은 박종식이 지수를 단순한 의뢰인이 아닌 '제자'이자 '동료 예인'으로 인정했다는 징표였다.강 여사가 가봉을 위해 자수 장인 장명숙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녀가 목격한 것은 화려한 디자이너 이지수가 아니었다. 작업실 구석, 수십 가닥의 명주실 사이에 파묻혀 묵묵히 수를 놓고 있는 야위고 단단한 여인만 남았있었다."지수 씨, 손이 왜 이래?"강 여사가 안쓰러운 듯 지수의 거칠어진 손끝을 붙잡았다. 곱게 관리받던 디자이너의 손은 어디 가고, 군데군데 밴드가 붙고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만 남은 탓이었다."자네는 디자인만 하면 장인들이 알아서 해줄 텐데,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나?"지수가 밴드가 붙은 손으로 매듭 실의 엉킨 부분을 조심스레 풀어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여사님, 제가 이 실의 무게와 질감을 모르면 장인 선생님께 어느 정도의 힘으로 매듭을 지어달라고 부탁드려야 할지 알 수가 없거든요.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그건 제 디자인이 아니라 그저 장인의 손을 빌린 기성품일 뿐이니까요."강 여사는 지수의 눈속에
최신 업데이트 : 2026-05-21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