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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진짜와 진짜의 밤

Author: 릴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4 17:01:53

경리단길에서 살짝 벗어난 후미진 골목의 공방. 유진은 어두운 작업대 조명 아래 홀로 앉아 핀셋을 쥔 손을 덜덜 떨었다. 작업대 구석에는 수진이 던져두고 간 현금 천만 원이 담긴 봉투와, 제 영혼의 처분권을 넘기겠다는 불공정 계약서가 비참하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태블릿 화면 속에는 수진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그려놓은 백금 덩굴과 잎사귀 도안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유진의 눈앞에 불과 3개월 전,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그날의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심장병을 앓는 가온이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유진은 마지막 희망을 안고 강수한 회장의 저택을 찾았었다. 비에 젖은 몸으로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유진은 가온이가 회장의 핏줄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밀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서늘한 멸시였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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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릿룸을 채운 묵직한 중압감과 정적 속에서, 이지수는 차분한 걸음걸이로 전면 유리창 쪽에서 걸어 나와 마호가니 테이블 상석에 우아하게 앉았다.채권자들 역시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맞은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록 전파 차단과 갤러리 같은 인테리어에 잠시 위축되긴 했으나, 그들은 금융계의 뼈굵은 거물들이었다.외부에 비친 CB 그룹은 찰스의 폭로와 여론 악화로 리스크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불안하긴 하지만, 여전히 남미 에메랄드 광산이라는 대형 호재를 쥐고 있는 거대 기업이었다. 아직 도진의 개인 자산이 바닥나 회사 비상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내부 파산 위기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채권자들은 자신들이 CB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완벽한 '갑(甲)'의 위치에 있다고 믿으며 기고만장한 태도로 일제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이지수 대표. 직설적으로 말하겠소. 우리가 오늘 여기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CB 그룹의 채권을 넘겨 달라는 해외 투자자들의 연락이 쇄도했소.""맞습니다. CB 그룹이 아무리 흔들린다 한들 남미 에메랄드 광산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쥐고 있는 기업이오. 거래를 선택할 권리는 전적으로 우리 채권단에게 있다는 뜻입니다."거만한 목소리들이 방 안을 울렸지만, 지수는 그들의 말에 단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았다.지수는 그저 다기(茶器)를 집어 들고, 평소 즐기는 어린 찻잎으로 떫은맛이 적고 우아한 향이 일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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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잔인한 축복   313화 벼랑 끝의 칼날

    찰스가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 회개 영상과, 그와 동시에 인터넷 전역에 터져 나온 강도진과의 최후 통화 음성 녹음 파일은 전국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첫 번째 공개되었던 파일이 도진도 찰스의 표절을 사전에 알고 방조했다는 증거였다면, 이번에 공개된 파일은 찰스를 사지로 몰아넣은 도진의 가혹한 꼬리 자르기가 그대로 담긴 결정타였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네가 다 뒤집어쓰고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스피커 너머로 울려 퍼지는 강도진의 잔혹한 목소리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와 메인 뉴스 헤드라인을 순식간에 도배했고, 중립을 지키며 관망하던 대중의 민심은 완벽하게 뒤흔들렸다. [단독] '구치소 자살 시도' 찰스 CP, 병실 바닥 무릎 꿇고 사죄… "모든 죄는 내게, 하지만 강도진을 용서 못 해" [사회] 찰스 2차 통화 폭로…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네가 다 뒤집어써" 강도진 폭언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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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 그룹이 전 세계 언론에 사내 조사 결과와 함께 공개한 남미 광산의 1차 채굴 결과서는 시장을 크게 흔들었다. 영롱한 초록빛 원석 수십 킬로그램의 사진과 지질팀의 서명은 자극적이었다. 대중의 시선은 순식간에 찰스의 피투성이 이송 소동에서 희귀 에메랄드 노다지로 쏠렸고, 자사주 매입과 맞물려 주가는 10만 원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고지전을 이어갔다.그러나 사내 조사 보고서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 패션 및 디자인계 내부의 분위기는 서늘하기만 했다. 수십 년간 수많은 명품 라인을 배출했던 총괄 디자이너가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그 뒤에 대표의 표절 방조 음성이 얽혀 있다는 사실은 디자이너 커뮤니티와 명품업계 내부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CB가 발표한 '찰스 개인의 일탈'이라는 사내 조사 보고서를 보며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어쩜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지수의 사무실 맞은편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진우는 차분하게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지수는 CB의 에메랄드 컬렉션 [Imperial Emerald: 왕좌의 빛] 정식 사전 예약 개시일에 맞춰, 법원에서 완전히

  • 가장 잔인한 축복   311화 수면 아래의 거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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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잔인한 축복   310화 왕좌의 환상

    대학병원 특실 병동.손목에 겹겹이 흰 압박붕대를 감은 찰스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담당 의료진과 신입 변호인은 기자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 채, 법원에 제출할 정신감정 진단서를 서둘러 작성하고 있었다. 극단적 선택 시도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과 정신적 공황,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재판 기일을 최대한 연기하기 위한 수순이었다.같은 시각, 강도진의 지시를 받은 CB 그룹 법무팀은 대대적인 보도자료를 내고 찰스를 향해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기업 업무방해 혐의'로 강력한 형사 고발을 감행했다. 찰스의 자살 소동을 '범죄 처벌을 피하기 위한 심신미약 자작극'으로 프레임 씌우며 언론전을 펼쳤지만,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은 CB 그룹을 향한 여론의 시선은 서늘하기만 했다.— '자살 시도한 사람한테 바로 맞고소 때리는 클래스 보소. 강도진 진짜 피도 눈물도 없네.'— '심신미약 자작극이라고 덮으려고 애쓰는데, 녹음 파일 속 강도진 목소리가 너무 빼박이라 안 속음 ㅋㅋㅋ'

  • 가장 잔인한 축복   4화 안녕 나의 8년의 시간 4

    도진과 전화를 마친 지수는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휴대폰을 조작했다. 익숙한 번호가 아닌, 철저히 숨겨두었던 가른 번호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실장인 혹시 오늘 CB 그룹과 투자 회의가 잡혀 있나요? "라고 물었다. " 네 사장님. 오늘 오후에 미팅이예정되어 있습니다. 혹시 변동사랑이 있으신가요?지수의 입가에 서늘안 미소가 번졌다. 도진이 그토록 화를 내며 중요하도고 외쳤던 미팅은 역시나 지수의 RV인벤스먼트와의 미팅이었다. " 네 변동 사항이 있습니다. 미팅은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대신 계약서에 싸인은 하지말고

  • 가장 잔인한 축복   2화 안녕 나의 8년의 시간 2

    지수는 도전에게 연락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119를 불렀다. 하지만 출산이 임막한 임산부처럼 부푼 배때문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조차 무리였다. 지수는 필사적으로 옆방에 잠든 가정부를 불렀다."아줌마 아줌마...! 하아, 남 좀... 도와주세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문트에 타고 넘고오는 가정부의 코고는 소리뿐이었다. 이것이 이 집에서 지수의 위치였다. 남편의 무관심 속에 고용인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철저한 그림자 같은 아내.지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K국에 있는 부모님이나 오빠에

  • 가장 잔인한 축복   5화 D-14

    7일간 입원 치료를 마치고 영양제로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지수는 배아 이식을 끝내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도진에게서는 단 한통의 연락도 없었다.지숙 역시 먼저 손을 내밀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적막하고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거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지수의 귓가에 가정부의 은밀한 전화 통화 소리가 드려왔다."네 사모님 진짜라니까요. 그 여자가 일주일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분명 다른 남자가 생긴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사장님은 방치할수는 없는 거죠 . 네 ,맞아요 제가 어떻게 사모님께 거짓말을 할

  • 가장 잔인한 축복   3화 안녕 나의 8년의 시간 3

    도진은 아침 6시가 넘어서야 옷을 갈아입기 우해 집에 들어왔다.주방에서는 가정부가 무미건조한 소리를 내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수가 현관까지 뛰어나와 "여보 왔어?"라며 겉옷을 받아 들었을 시간이었다. 밤새 고생했다며 미리 따뜻한 물을 받아둔 욕조로 그를 안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다. 거실은 적막했고 욕조는 차갑게 비어 있었다." 이 사람, 어디 갔어요?" 도진의 물음에 가정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사장님 오셨어요? 사모님은 주무시는지 방에서 안 나오시네요."그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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