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오전, 법원 주차장 구석에 육중한 진회색 마이바흐 한 대가 은밀하게 미끄러져 들어왔다.조정실에서 이지수에게 추잡한 불륜 증거 폭탄을 맞고 간신히 도장을 찍고 나온 강도진은, 평소의 위풍당당함은 온데간데없이 눈에 띄게 위축되어 있었다. 수진이 벨트를 풀고 내리려 하자, 도진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그녀를 만류했다.“기자들이나 눈들이 많으니 난 차에서 기다릴게. 얼른 도장 찍고 와.”평소라면 당당히 에스코트해 주었을 도진의 소극적인 태도에 수진은 내심 조금 서운했다. 하지만 임신 6개월 차에 접어들어 살짝 부풀어 오른 제 배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이제 이 고급스러운 마이바흐의 진짜 안주인은 자신이라는 오만한 승리감에 취해 문을 열었다.바로 그 순간, 수진이 내리려던 마이바흐 바로 옆 칸으로 도진의 차량과 똑같은 최고급 사양의 마이바흐 한 대가 거침없이 미끄러져 들어와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고 뒷좌석에서 한 남자가 내리는 것을 확인한 순간, 도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지난번 '더 오리진' 쇼에서 지수의 곁에 서늘하게 서 있던 의문의 남자, 박진우였다. 지수에게 당한 처참한 패배감과 열등감이 번뜩 도진의 온몸을 지배했다. 도진은 순간, 저 남자의 소유였던 수진을 자신이 완벽하게 빼앗아 가졌다는 뒤틀린 소유욕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도진은 급하게 차 문을 열고 내려 수진을 제 품에 와락 안아 들었다. 그리고 옆 차에서 내린 진우가 보란 듯이, 수진의 이마에 진하게 축복하듯 키스를 퍼부었다.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수진은 당황하면서도 이내 어깨가 한껏 으쓱해졌다. 도진은 옆 차의 남자를 매섭게 곁눈질하며, 수진에게 들으라는 듯 일부러 소리 내어 코웃음을 쳤다.“네 전남편, 오늘 이혼한다고 무리 좀 했나 보네? 어디서 회장님 차 기사 알바라도 뛰는 거야, 아니면 마지막 날이라고 일일 렌탈이라도 한 건가? 허세가 참 눈물겹군.”
최신 업데이트 : 2026-06-03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