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의 모든 챕터: 챕터 311 - 챕터 320

500 챕터

제311화

허서령은 침묵했다. 오늘 병원에서 백시욱을 본 일을 심인혜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됐다.지강산은 미간을 찌푸리고 다급하게 물었다.“우리 회사에서 누가 결혼한 뒤 외도했다는 거야?”“윤가온이라고 알아요?”“알아. 백시욱의 전 여자친구야.”허서령은 놀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속에서 마구 치솟았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백시욱 씨가 그 여자와 계속 연락하는 걸 알고 있었어요?”“회사 정문 앞에서 한 번 본 적 있어. 백시욱이 소개해 줬거든. 이혼하고 아픈 딸을 데리고 백시욱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했어. 아마 딸 치료비를 빌리러 온 거겠지.”허서령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목소리가 점점 차갑고 딱딱해졌다.“백시욱 씨가 전 여자친구와 그 아이에게 돈도 쓰고 직접 돌봐 주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옳지 않아.”“그런데 강산 씨는...”지강산이 말을 끊었다.“난 내 연애 문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어. 남의 관계까지 신경 쓸 여유 없어.”그 말을 듣는 순간 허서령의 화가 단번에 사라졌다. 괜스레 죄책감이 밀려와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저질러 아무 말도 못 하는 아이처럼 밥알을 한 알씩 집어 입에 넣었다.지강산은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기서 얼마나 지낼 생각이야?”허서령은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평생.”“뭐?”지강산은 잘못 들은 줄 알고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허서령은 눈을 들어 그와 시선을 맞추고 진지하고 성실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산 씨 집에서 평생 살 거예요.”썰렁한 농담보다도 더 썰렁한 말이었다.그런데 지강산은 오히려 웃었다. 입꼬리에 옅은 냉소를 띤 채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허서령, 그 말을 너 자신은 믿어?”“믿죠!”허서령은 그를 향해 활짝 웃었다.지강산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젓가락을 들어 다시 식사하려 했다.그때 초인종이 울렸다.지강산이 젓가락을 내려놓기도 전에 허서령은 이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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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문이 열리는 순간, 거실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했다. 네 사람이 차례로 안으로 들어왔다.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지강산의 아버지 지상훈이었다. 맞춤 제작한 검은 양복의 주름 하나하나에서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이 흘러나왔다.매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허서령에게 꽂혔다.그 뒤를 지강산의 어머니 하선희가 따랐다. 흰색 긴 원피스에 걸친 진주 목걸이에서는 온화하면서도 거리감 있는 빛이 났다. 입가에는 흠잡을 데 없이 예의 바른 미소가 적당한 각도로 걸려 있었다.그 뒤에는 마찬가지로 위엄 있는 두 사람이 따라 들어왔다. 큰아버지 지준석, 큰어머니 도미란이였다.네 사람이 만들어 낸 강한 기세가 무겁고도 묵직하게 허서령을 짓눌렀다. 심장이 조여와 평소보다 더 힘주어 숨을 쉬어야 했다.허서령은 한 사람씩 따로 인사하지 않고 예의 바르게 고개만 숙였다.“안녕하세요.”그들 역시 고개만 끄덕여 답했다.들어온 네 사람을 본 지강산의 표정도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그는 시선을 허서령에게 향하며 그녀의 반응을 살피는 듯했다.누가 보아도 그녀는 불편하고 당황해하고 있었다.“아버지, 어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무슨 일로 오셨어요?”지강산의 목소리에는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하선희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타이밍이 좋지 않았구나. 저녁 먹는 데 방해했네.”지강산이 말했다.“괜찮아요. 먼저 다실에 가서 차 드세요. 식사 마치고 곧 갈게요.”어른들은 대답하고 다실로 향했다.“허서령, 와서 밥 먹어.”지강산이 부르는 소리에 허서령은 불안한 생각에서 깨어났다. 어른들은 이미 다실로 들어갔고 넓은 거실에는 그녀와 지강산만 남았다.허서령은 황급히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음식을 보아도 조금도 입맛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해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그녀는 몰래 지강산을 힐끗 바라봤다. 그는 몹시 냉정하고 침착해 보였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모두 자신의 어른들이니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먹어.”갑자기 지강산이 고기 한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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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믿음과 의심이 번갈아 그녀를 잡아당겨, 마음은 한순간도 편할 수 없었다.환하게 불이 켜진 다실은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각종 물건은 여유로운 간격을 두고 질서 있게 놓여 있었다.향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차향이 방 안 가득 퍼졌다.네 어른은 이미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지강산이 혼자 들어오는 것을 본 큰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서령이는?”지강산은 휠체어를 움직여 네 어른 앞에 멈춰 섰다.“큰아버지, 무슨 말씀이든 저한테 하시면 돼요.”지준석은 목을 가다듬고 찻잔을 내려놓은 뒤 진지하게 타일렀다.“강산아, 너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야. 결혼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니.”지강산은 옅게 웃으며 예의 바른 말투로 예의 없는 말을 했다.“큰아버지, 사촌 형은 결혼했어요? 큰아버지의 두 의형제 아들은요? 제 형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요. 집안 남자 중 제가 제일 어린데, 왜 저부터 결혼을 재촉하시는 거죠?”지준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는 당장 할 말을 찾지 못했다.지상훈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네 형은 적어도 결혼 상대로 맞지 않는 여자를 고르지는 않을 거다. 너는 여자 하나 때문에 네 사업까지 포기할 생각이냐?”지강산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엄숙하게 말했다.“아버지, 우리는 모두 독립된 개인이에요. 각자 자기 인생을 잘 살면 돼요. 아무리 부자 관계라도 제 인생에 지나치게 간섭하시면 안 돼요.”지상훈이 억눌린 분노를 드러냈다.“그래도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지강산은 옅게 웃었다.“‘널 위해서’라는 말 한마디로, 아버지가 제 선택의 결과까지 대신 감당해 주실 수 있어요?”지상훈도 입을 다물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도미란은 그들의 설득이 전혀 효과가 없자 더 노골적으로 물었다.“허서령이 대체 뭐가 그렇게 좋아?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도 계속 그 여자와 함께하겠다는 거야?”지강산은 표정이 굳은 채 시선이 큰어머니에게 향했다.“제가 이렇게 된 건 제 잘못이지 그 여자와 무슨 상관이에요?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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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지강산이 다실에 들어간 뒤 허서령의 마음은 엉망으로 뒤엉켰다. 자꾸만 좋지 않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샤워를 마친 그녀는 창가에 앉아 창밖의 밝은 달빛을 바라보고 여름벌레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우울한 감정은 수시로 찾아와 마음을 어지럽히고 몸까지 괴롭혔다. 몇몇 어른이 찾아와 숨조차 쉬기 힘들게 압박한 탓에 지금은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감정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고 걱정거리는 하나씩 계속 생겨났다.우울감에 붙잡혀 있고 싶지 않았던 허서령은 휴대전화를 꺼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그녀는 심인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절친이라면 백시욱의 일을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전화를 받은 심인혜는 목소리를 아주 많이 낮췄다.“령아, 무슨 일이야?”목소리를 들어 보니 방금 아이를 재운 모양이었다. 지금도 아기 옆에서 돌보고 있을 터였다.허서령도 큰 소리를 내지 못하고 낮게 말했다.“인혜야, 윤가온 알아?”“어느 윤가온? 우리 남편 전 여자친구?”“응.”“예전에 남편한테 들은 적은 있어. 왜? 너도 그 여자를 알아?”“지강산 말로는 제산시로 시집왔다가 이혼했고, 딸이 자폐증 증상이 있대. 오늘 병원에서 네 남편이 그 여자 딸을 데리고 진료받으러 온 걸 봤어.”휴대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허서령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심인혜에게 숨기고 싶지는 않았다.“인혜야, 나도 오래 고민했어. 괜히 말해서 너희 부부가 오해하게 될까 봐 걱정됐거든.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너한테 미안할 것 같았어. 나는 본 사실만 그대로 이야기한 거야. 상황은 네가 직접 판단해.”“고마워, 서령아.”심인혜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그 울먹임을 들으니 허서령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이제 어떻게 할 거야?”심인혜는 코를 훌쩍이고 호쾌하면서도 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뭘 어떻게 해. 내일 바로 제산시로 가는 표를 끊어야지. 내가 뭘 판단할 필요가 있어? 아들을 그 인간한테 맡기고 나는 일자리 구해서 출근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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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허서령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이 자신을 꾸짖는 것 같았다.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지강산처럼 굳건하지 못했다. 외부의 압박이 닥치면 견디지 못하고 물러서려 했다.허서령은 그의 앞으로 가 쪼그려 앉아 따뜻하고 큰 손을 잡으며 눈을 내리깔고 낮게 물었다.“강산 씨, 저를 내쫓을 거예요?”지강산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차가운 손끝을 꼭 쥔 채 가볍고도 쉰 목소리로 말했다.“허서령, 남고 싶으면 남고 가고 싶으면 가. 난 억지로 붙잡지 않아.”허서령의 눈가가 이유 없이 젖었다.울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몸이 뇌를 지배한 듯, 무거운 그물 같은 감정이 사방에서 덮쳐 왔다.지강산의 말은 자신이 남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는 예전만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듯했다.상처를 계속 받으면서도 영원히 버틸 사람은 없었다.‘지강산도 이제 지친 것이리라.’그녀 역시 너무나 지쳐 있었다. 허서령은 얼굴을 옆으로 돌려 그의 허벅지에 기대고, 뺨을 따뜻한 손바닥에 붙이며 물기 어린 눈을 천천히 감았다.지강산이 자신을 꼭 안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그녀는 정말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몇 번이나 그를 밀어내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아프게 한 일을 후회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앞날과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인생에 반드시 앞날과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모른 채말이다.‘어쩌면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지금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까?’맑은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왼쪽 눈에서 나온 눈물이 오른쪽 눈물과 합쳐진 뒤 눈꼬리로 빠져나와 지강산의 손등을 적셨다.차가운 물기를 느낀 지강산의 손이 살짝 굳다가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허서령의 검은 머리 위로 시선을 내렸다. 그녀는 허벅지 위에 엎드려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가늘고 여윈 몸에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시들어 가는 느낌이 감돌았다.지강산은 허서령이 평소 짓는 미소 중 상당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꾸며 낸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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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허서령은 우유를 마신 뒤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사방은 고요했다. 주황빛 조명이 차갑고 어둡게 번지며 방의 윤곽만 희미하게 비췄다.허서령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공기마저 묵직해져 폐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숨을 막는 것 같았다.그녀는 재빨리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이불 속에서도 억누르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머릿속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다. 모두 이 빌어먹을 병이 주는 고통이었다.그녀도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을 통제할 수 없었다. 갑자기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고, 자신은 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것이 너무나 지쳤다...우울한 감정도, 부정적인 생각도, 신체화 증상도 통제할 수 없었다.그녀는 계속 이를 악물고 버텼다. 눈물을 흘리며 손발을 떨었고, 숨과 심장 박동까지 괴롭게 느껴졌다. 그러다 고통 속에서 점차 잠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운 상태로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아침에는 감정이 조금 나아졌다. 말끔히 씻고 가볍게 화장해 꾸민 뒤 예쁜 원피스를 입었다. 옅은 미소를 짓고 밖으로 나가면 그녀는 다시 건강하고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그녀는 옆방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지강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허서령은 문을 밀고 들어가 책상 앞에서 바쁘게 일하는 지강산에게 다가갔다.“강산 씨, 좋은 아침이에요.”그녀는 눈꼬리를 곱게 휘며 다정하게 웃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지강산은 우아하고 귀티가 났다. 차갑고 준수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아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었다.허서령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고개를 돌렸다.허서령은 그의 옆에 와 쪼그려 앉았다. 두 손을 단단한 팔 위에 얹고 휠체어에 반듯하게 앉아 있는 그를 올려다보며 유난히 달콤하게 웃었다.“아침 먹었어요?”“먹었어.”지강산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살구색 원피스에 옅은 화장을 한 그녀에게서 은은한 향기가 흘렀다. 몸짓은 우아했고 눈빛은 환하게 빛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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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허서령은 수줍게 입술을 오므렸다. 입술 위에는 아직 지강산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그럼 저 아침 먹으러 갈게요.”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갔다.지강산은 말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문밖으로 나와 지강산의 방문을 닫자, 허서령의 얼굴에 떠 있던 달콤한 미소가 점점 굳어졌다. 고개를 숙여 아랫입술을 깨문 순간 알 수 없는 서글픔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지강산은 정말 예전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그녀가 뻔뻔하게 매일 찾아와 살을 맞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도, 그의 반응은 늘 이토록 차분했다.마치 자신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같았다. 씹어도 맛이 없는 음식처럼,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굳이 찾지 않는 존재였다.‘이제 강산 씨는 나를 억지로 붙잡지도, 열망하지도, 탐내지도 않는 걸까?’허서령은 고개를 들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그저 자신이 잘못 느낀 것이기를 바랐다.그녀는 식당으로 가 아침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뒤에는 할 일이 없었지만 이 집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모처럼 쉬는 주말이라 지강산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는 자신보다 일에 시간을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허서령은 정원 바깥 정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아침부터 대지를 달궜다. 멀지 않은 곳에 정원을 관리하는 직원이 나타났다.그는 꽃과 식물에 물을 주고 가지를 다듬고 주변을 정리한 뒤 비료를 주었다.허서령은 돌 탁자에 엎드린 채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서령아...”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허서령은 상체를 일으켜 뒤를 돌아봤다.소준혁은 여름용 비즈니스 차림이었다. 회색 셔츠에 검은 바지, 반짝이는 검은 구두를 신었고 머리카락 한 올까지 공들여 정돈한 모습이었다.허서령은 잠시 놀랐다.“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네.”가까이 온 소준혁은 더운 듯한 손을 허리에 얹고 회색 셔츠 깃을 잡아당겼다.“이렇게 더운데 여기 앉아서 뭐 해?”“그냥 있었어요. 준혁 씨는 어떻게 들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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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허서령의 시선은 지강산의 손에 고정됐다.그녀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뒤, 지강산이 먼저 손을 뻗어 자신을 만진 것은 처음이었다. 큰 손으로 작은 손을 감싸 천천히 주무르는 동작은 친밀하고 다정했다.따뜻하고 두툼한 손바닥이 불덩이처럼 피부 위에 열기를 퍼뜨렸다. 온기가 팔다리와 온몸 깊숙이 번졌다.허서령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준혁 씨가 와서 인사만 했어요. 다른 얘기는 안 했고요.”소준혁은 두 사람의 곁에 와서 맞잡은 손을 내려다봤다.“다른 얘기도 했지.”소준혁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기분 나쁜 듯 입꼬리를 비틀더니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서령이한테 너희가 다시 만나는지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하더라고. 네가 대신 대답해 줘. 앞으로도 계속 꽃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하게.”“보내지 마.”지강산의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말투는 온화했지만 감히 반박할 수 없는 강한 기세가 느껴졌다.“앞으로는 형수님이라고 불러.”허서령은 숨을 몰아쉬며 놀란 눈빛으로 지강산을 바라봤다.‘소유욕 때문에 일부러 소준혁을 자극하는 것일까?’소준혁은 화가 나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두 번 흘렸다.“강산아,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네가 다시 만난다면 친구 여자를 빼앗을 생각은 당연히 없어. 그런데 나더러 형수님이라고 부르라고? 이건 사람 가슴에 칼을 꽂는 거나 마찬가지야!”“부를지 말지는 네가 알아서 해.”지강산은 말을 마치고 허서령의 손을 놓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령아, 가자. 거실로 가.”소준혁 앞에서 굳이 그녀를 령이라고 부르는 갑작스러운 다정함은, 남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자신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 같았다.“네.”허서령은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멍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휠체어 뒤 손잡이를 잡아 거실로 밀었다.소준혁은 화가 나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바닥을 내려다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잠시 생각하던 그는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혼인신고하고 나면 그렇게 부를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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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사촌 형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한편, 친구들은 모두 소파에 앉아 탁자를 둘러싸고 차와 다과를 즐기며 열띤 대화를 나눴다.윤가온은 지강산의 앞으로 다가와 상냥하게 웃고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지강산 씨,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주치의를 추천해 주신 덕분에 딸아이의 중재 치료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시욱이에게 다치셨다는 말을 듣고 저도 함께 찾아뵙게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지강산은 예의상 짧게 대답했다.“신경 써 줘서 고맙습니다.”백시욱도 앞으로 다가왔다. 미소가 조금 굳어 있었다.“강산아, 네가 서령이와 다시 만날 줄은 몰랐어. 축하한다.”지강산은 미간을 깊게 찌푸리고 그를 바라봤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사람이 전 여자친구를 자주 곁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병문안에까지 데려오다니, 너무 터무니없는 행동이었다.두 사람 사이가 결백하든 아니든 남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고 부부 사이에도 상처가 될 터였다. 게다가 허서령에게까지 들켰다.허서령은 딱딱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시욱 씨, 제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겠죠? 전 여자친구랑 쌍으로 붙어 다니면서 혼자 아기를 돌보는 인혜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백시욱은 난처하게 웃으며 허서령을 바라봤다.“오해예요. 저와 가온이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친구끼리 조금 도와주는 것뿐이에요. 괜히 인혜한테 말해서 쓸데없는 생각하게 만들지 말아요.”윤가온은 불쾌한 눈빛으로 허서령을 훑으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허서령 씨는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건가요?”그 뼈 있는 말에 허서령은 몹시 화가 나 조금도 봐 주지 않았다.“강산 씨에게 약혼녀가 있을 때는 저와 깨끗이 정리했어요. 저와 만날 때는 약혼녀와 완전히 정리했고요. 그러니 백시욱 씨, 아내와 깨끗이 정리할 거예요? 아니면 전 여자친구와 정리할 거예요?”백시욱은 난처한 얼굴로 웃음까지 굳은 채 도움을 청하듯 지강산을 바라봤다.지강산은 미간을 문질렀다. 백시욱의 사생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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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허서령은 눈을 들어 지강산을 바라봤다. 눈 안의 빛이 잔잔하게 흔들리고 눈물이 안개처럼 맺혔다. 분명 웃고 있는데도 설명할 수 없는 우울함이 느껴졌다.지강산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가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너... 왜 그래?”허서령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조금 감동해서 그래요.”“난 네 장점이 아니라 단점을 말한 거야.”지강산은 옅게 웃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게 왜 감동적이야?”“강산 씨는 몰라요.”허서령은 낮게 중얼거리고 일어나 백시욱에게 걸어갔다.백시욱과 소준혁의 대화가 끝나자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시욱 씨, 강산 씨는 시욱 씨의 전 여자친구와 아무런 친분도 없어요. 사소한 도움 하나 받았다고 직접 찾아와 감사할 필요도 없고요. 시욱 씨가 데려왔다면 시욱 씨가 데리고 나가요. 혼자 찾아온 거라면 제가 직접 나가 달라고 할 거예요.”백시욱은 난처하게 웃었다.“친구의 친구도 친구잖아요. 가온은 영업직이라 세상도 좀 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싶어 해요.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니까 너무 나쁘게 보지 말아요.”‘세상을 본다고?’허서령은 고개를 돌려 탁자 쪽을 바라봤다.윤가온은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사람들과 웃고 떠들었다. 사교 능력이 뛰어난 여자였다.이곳에 모인 귀한 집안의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제산시에서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재벌 2세나 고위층 자제였고, 집안이 대단하지 않아도 본인의 재능이 출중해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그중 누구 한 명만 따로 떼어 놓아도 평범한 사람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허서령의 태도가 차가워졌다.“백시욱 씨, 인혜가 제산시에 온다는 건 알아요?”백시욱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뭐라고요? 언제요?”“오늘 비행기예요.”“인혜가 왜 와요?”허서령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제가 제산시에서 보고 들은 걸 말해 줬어요.”“젠장! 허서령 씨, 제정신이에요?”백시욱은 화가 나 거친 욕설을 내뱉고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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