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apítulo 321 - Capítulo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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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지강산의 말은 조금 자랑처럼 들렸지만 그녀는 몹시 부러웠다. 지강산처럼 좋은 남자이기에 이렇게 좋은 친구가 많은 것이리라. 게다가 친구들 하나하나가 거의 모두 뛰어난 인재였다.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더욱 밝고 아름다워졌다.그때 지태일이 다가왔다.“네 여자친구 잠깐 빌려도 되겠어?”지강산은 고개를 들어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왜?”허서령은 의아하게 고개를 돌려 지태일을 올려다봤다.그는 강철 같은 기개를 지닌 강인한 남자였다. 침착하고 냉정했으며 당당한 기세를 지니고 있었다. 어디에 서 있든 주변 공기마저 정의롭게 바뀌는 듯한 강한 존재감을 풍겼다.지태일은 입꼬리를 올려 옅게 웃고 한 손을 검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둘이서 몇 마디만 하려고. 뭘 그렇게 무서워해?”허서령은 천천히 일어서서 잔잔한 물처럼 평온한 지태일의 얼굴을 보고, 다시 긴장과 불안이 어린 지강산의 깊은 눈을 바라봤다.이제야 지강산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가족들이 자신을 설득해 떠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하지만 허서령이 보기에 그의 걱정은 쓸데없었다. 이제는 누구도 그녀를 설득해 떠나게 할 수 없었다.허서령은 몸을 조금 숙여 지강산의 손등을 만지고 살짝 눌러 안심시키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강산 씨, 태일 오빠랑 뒤뜰에서 잠깐 이야기하고 올게요. 강산 씨는 친구들이랑 같이 있어요.”지강산은 침묵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허서령이 지태일을 따라 뒤뜰 정원으로 향하는 동안 그의 시선은 한 번도 그녀의 뒷모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무거운 숨을 내쉬고 휠체어를 움직여 소파 쪽으로 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사람들은 열띤 대화를 이어 갔지만 그는 정신이 딴 곳에 가 있었다. 시선은 수시로 뒤뜰을 향했고 표정도 저도 모르게 어두워졌다.친구 한 명이 그가 넋을 놓고 계속 뒤뜰만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리고 놀렸다.“강산아, 목 안 아파? 고개 돌리는 주기가 우리 집 로봇청소기 동선보다도 규칙적인데.”사람들이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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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뒤뜰에서 지태일은 아버지 사건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증거도 없는데 왜 굳이 나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걸까?’허서령은 지태일이 자신이 그의 동생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생각했다. 동생을 위해 무언가 해 주고 싶었고, 그녀의 마음속 불꽃도 다시 지피려는 것이리라.그의 선의가 느껴지자 허서령은 진심으로 고마웠다.뒤뜰을 나온 지태일은 거실로 향했고 허서령도 뒤를 따랐다. 넓은 거실에는 남자들뿐이었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고 술과 담배는 없고 차 향만 가득했다.거리낌 없이 솔직한 대화 속에는 남자들 사이의 편안하고 깊은 온기가 흘렀다.허서령은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들어가면 분위기를 망칠까 두려웠다.그녀가 몇 초 동안 망설이는 사이 지강산이 시선을 돌려 바라봤다. 깊은 눈 안에는 묵직하면서도 다정한 빛이 숨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까딱여 그녀를 불렀다.사람들도 지강산의 행동을 알아차리고 일제히 허서령 쪽을 바라봤다. 지강산은 거리낌 없이 그녀를 불렀다.허서령은 손바닥에 맺힌 땀을 주먹을 쥐어 문지른 뒤 그의 곁으로 걸어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왜요?”지강산은 태연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앉아서 같이 이야기해.”그때 지강산의 친구 한 명이 식당으로 달려가 의자를 들고 와 허서령 뒤에 놓았다.“형수님, 여기 앉으세요.”뒤를 돌아보니 의자와 함께 남자의 환한 미소가 보였다.“고마워요.”허서령은 인사한 뒤 지강산의 옆에 앉았다.지강산은 계속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남자의 손바닥은 조금 거칠었지만 따뜻하고 두툼했으며 큰 안정감을 주었다.친구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어도 그는 그녀가 소외된 기분을 느끼지 않게 했다. 사람들도 의식적으로 대화 주제를 그녀가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모두 즐겁게 이야기하던 중 한 사람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강산아, 대체 어디서 차에 치인 거야?”“길에서. 차를 제대로 못 봤어.”지강산은 대충 얼버무리려 했다.그때 사촌 형이 차갑게 웃으며 대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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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친구의 여자친구를 빼앗든, 친구의 전 여자친구를 쫓아다니든 어느 쪽이든 품위 없는 행동이었다.차라리 빼앗는 데 성공했다면 험담을 감수할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성공하지도 못했다는 점이었다. 체면까지 구겨질 뿐이었다. 이 일은 속으로 삼킨 채 죽어도 인정할 수 없었다.“형수님과는 사건 때문에 근처에 볼일을 보러 간 거였어.”소준혁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형수님’이라는 호칭을 입에 올렸다.“아마 강산이랑 형수님이 전날 싸운 모양이야. 둘 다 감정이 격해져 있었고 강산이가 급한 마음에 길을 제대로 안 보고 건너다가 사고가 난 거지.”설명이 끝나자 사촌 형의 표정은 완전히 망가졌다. 악취 나는 것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얼굴이 일그러졌고 미소도 점점 굳었다. 그는 지금의 난처함을 숨기려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그럼 내가 잘못 들었나 보네.”어색한 분위기는 이미 깨졌고 주제도 곧 즐거운 이야기로 바뀌었지만 지강산의 얼굴은 내내 어두웠다. 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촌 형을 응시했고 온몸에서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그는 그동안 집안 어른들이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과 허서령의 관계를 반대한다고만 생각했다.그런데 같은 세대인 사촌 형까지 허서령에게 이토록 큰 적의를 품고 있었다.지금 보니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듯했다.허서령도 지강산의 이상한 낌새를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떠올리자 여전히 죄책감이 밀려왔다.그 뒤로 지강산의 태도는 계속 무덤덤했다.모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허서령은 앞뜰의 큰길에서 모든 친구의 차가 떠나는 것을 배웅한 뒤 돌아보았다. 지강산은 이미 휠체어를 움직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사촌 형의 말 때문에 불안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성큼성큼 지강산의 휠체어 뒤를 따라갔다.한낮의 햇살은 유난히 밝았다. 산들바람에는 여름의 열기가 섞여 불어와 그녀를 몹시 불편하게 했다.현관 앞 그늘로 돌아오자 지강산의 휠체어가 갑자기 멈췄다. 허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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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허서령은 가슴이 철렁했다.기쁨이나 설렘은 조금도 없이 당황과 불안만 밀려왔다.‘지강산이 갑자기 결혼을 말한 것은 자신의 사업과 나 사이에서 나를 선택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확실한 태도를 확인하고 싶은 걸까?’“사촌 형님분이 한 말 때문에 자극받은 거예요?”허서령은 청혼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의 앞날을 망칠 수는 없었다.“사촌 형님분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냥 제가 강산 씨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것뿐이에요.”“령아, 이건 내가 세 번째로 하는 청혼이고 마지막이야. 네 번째는 없어.”지강산의 목소리에는 거친 결이 묻어 더 무겁게 들렸다.허서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묵했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결혼에는 충동이 필요했다. 특히 자신과 지강산 같은 상황이라면 모든 것을 내던질 만큼의 충동이 더 필요했다. 일단 냉정해지고 나면 두 사람은 영원히 결혼할 수 없을 것이다.지강산은 뜨거운 눈으로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허서령은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강산 씨, 결혼은 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헤어지지도 말고요.”“아이 갖고 싶어?”“아니요.”아이를 낳아도 혼외자가 될 뿐이었다. 법적 지위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지강산의 앞으로의 승진뿐 아니라 아이의 장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지강산은 고개를 돌려 옆의 푸른 식물을 쓸쓸하게 바라봤다. 눈빛이 깊이 가라앉아 끝없는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했다.잠시 침묵한 뒤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들어가서 점심 먹자.”“네.”허서령은 일어나 휠체어 뒤로 돌아가 그를 집 안으로 밀었다.넓고 환한 집 안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가 뜨겁던 몸을 조금 편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시원해지지 않고 답답하고 무거웠다.두 사람 앞에는 세 가지 반찬과 국 한 그릇이 놓였다.창가로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큰 나무의 초록 잎이 살랑거렸다. 얼룩진 빛과 그림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식탁은 아주 조용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손을 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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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뭔가 잊지 않았어?”허서령은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온갖 것을 떠올렸지만 무엇을 잊었는지 알 수 없었다.지강산이 손가락을 까딱여 가까이 오라고 하고 나서야 뜻을 알아차렸다. 뺨이 살짝 뜨거워지고 입가에는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두 손을 남자의 넓은 어깨 위에 올리고 몸을 숙여 고개를 들어 얇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닿는 순간 허서령의 가슴이 살짝 떨렸다.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이 뒤섞였고 지강산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샤워 향을 선명하게 맡을 수 있었다.방 안의 라벤더 향과 섞이자 술을 마시기도 전에 취한 기분이 들었다.그녀가 굿나잇 키스를 끝내고 입술을 떼어 뒤로 물러나는 순간, 갑자기 지강산이 두 팔을 감아 왔다. 왼손으로 뒤통수를, 오른손으로 허리를 잡아 품 안으로 세게 끌어당기고 깊고 얕게 입술을 탐하며 키스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그녀는 그저 잘 자라는 의미로 가볍게 입 맞추려 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강산은 그녀를 삼킬 듯 뜨겁게 키스했다. 숨이 막힐 만큼 입을 맞춰 허서령의 몸은 힘없이 그의 품 안으로 무너졌다.얼마나 지났을까. 허서령은 남자의 넓은 어깨를 밀어 겨우 입술을 피하고 가쁘게 숨을 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살짝 투정했다.“굿나잇 키스 아니었어요?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지강산은 가볍게 웃는 것으로 대답했다.남자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거친 엄지손가락 끝이 키스 때문에 조금 부은 붉은 입술을 천천히 문질렀다. 눈에는 감출 수 없는 욕망이 있었고 호흡은 조금 무거웠다. 목울대를 살짝 움직인 뒤, 그는 쉰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취하지 마. 지금은 내가 널 돌봐 줄 수 없으니까.”단순한 손길인데도 전류가 손끝에서 입술로 전해져 온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심장마저 힘이 빠지고 저릿해지며 박자를 놓쳤다.그 손길은 입맞춤보다도 더 그녀의 넋을 빼앗았다.허서령은 서둘러 지강산의 손목을 잡고 지나친 유혹을 억지로 막았다.“안 취할 거예요. 강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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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윤가온과 아직도 관계를 완전히 끊지 못했으면서 오히려 내가 둘을 모함한다고, 내가 말이 안 통한다고 해.”“너한테 술 마시러 오기 전에도 윤가온이 또 백시욱에게 전화했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몹시 급해져서 차 키를 들고 나가려 하더라. 그래서 아이를 그 사람한테 안겨 주고 그냥 나왔어.”“지금 백시욱이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는지, 아이까지 데리고 윤가온을 찾아갔는지 나도 몰라. 정말이야, 서령아... 나 이혼할 거야...”심인혜는 밤새 속에 쌓인 이야기를 쏟아 냈다. 술을 마시며 결혼생활에서 받은 온갖 상처를 울면서 털어놓았다.마지막에 내린 결론은 이랬다. 여자는 연애만 하고 결혼하지 않으며, 직업과 아이는 있되 남편은 없는 삶이 가장 완벽하다고.술에 잔뜩 취하고 나니 오히려 허서령을 부러워했다.자신이 얼마나 괴로운지는 허서령만이 알고 있었다.한밤중 허서령은 술에 취한 심인혜를 객실로 데려가 눕히고 휴대전화를 침대 옆 탁자에 놓아주었다.백시욱에게서는 메시지도 전화도 오지 않았다. 심인혜가 안전한지 전혀 걱정하지 않는 모양이었다.아내에게는 무관심하면서 전 여자친구에게는 온갖 수발을 드니 누가 봐도 마음이 식을 수밖에 없었다.허서령은 심인혜가 몹시 안쓰러웠지만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객실에서 나온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지강산이 휠체어를 타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허서령은 멈춰 서서 놀라 물었다.“이렇게 늦었는데 왜 안 자요? 어디 가려고요?”“네가 취했을까 봐 보러 왔어.”“많이 안 마셨어요. 강산 씨 몸도 이런데 아직 저를 걱정해요?”허서령은 옅게 웃으며 휠체어 뒤로 가 방향을 돌려 방 쪽으로 밀었다.“방에 가서 얼른 쉬어요.”방에 들어간 허서령은 그를 침대 옆으로 밀고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다.지강산은 팔을 그녀의 어깨에 걸고 천천히 일어섰다. 조심스럽게 침대에 앉다가 몸이 침대에 닿는 순간 어깨를 감고 있던 팔에 조금 힘을 주었다.허서령의 몸 전체가 그의 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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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약을 먹으면 바보, 먹지 않으면 미치광이가 되는 고통스러운 상태를 오가며 살았다.그녀가 잠시 망설이는 동안 지강산의 미소는 이미 굳어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문지르며 낮게 말했다.“방에 가서 자. 잘 자.”말을 마친 그는 몸을 움직여 누운 뒤 이불을 끌어 허리까지 덮고 눈을 감았다.허서령은 꼭 감은 그의 눈을 바라봤다. 얼굴은 조금 전보다 확연히 어두워져 있었다.그녀는 나가지 않았다. 잠든 척하는 지강산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 몸을 돌려 침대 옆 조명을 껐다.방 안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흐릿한 어둠에 잠겼다.허서령은 슬리퍼를 벗고 침대에 올라 그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어깨를 맞댄 채 나란히 누워 눈을 감고 낮게 말했다.“강산 씨, 잘 자요.”고요한 방 안에는 두 사람의 가볍고 고른 숨소리만 들렸다.지강산은 꼼짝하지 않았다. 누운 순간 바로 잠든 것 같았다.하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허서령은 눕자 습관처럼 발을 지강산 쪽으로 뻗었다. 그의 종아리에 닿자 천천히 밀착했다.허서령에게 지강산의 발은 따뜻하고 무척 편안했다.반면 지강산이 느끼는 그녀의 작은 발은 피가 돌지 않는 듯 차갑고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지강산은 어둠 속에서 옆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에어컨 온도를 2도 높였다.에어컨에서 삑삑 소리가 두 번 나고 멈추자, 그가 갑자기 손을 뻗어 허리께의 이불을 잡았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꼼꼼히 덮어 주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일을 마치고 손을 내려놓은 뒤 다시 반듯하게 누워 잠을 청했다.그의 곁에 누운 허서령은 온통 지강산의 기운에 둘러싸인 듯했다. 마음이 편안하고 몸도 안락했다. 방 안에 퍼진 라벤더 향이 잠을 불러 그녀는 점점 긴장이 풀리고 졸음이 밀려왔다.거의 잠들 무렵 지강산의 커다란 손이 천천히 그녀의 손가락을 찾아왔다. 따뜻하고 긴 다섯 손가락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와 깍지를 끼었고, 그녀의 손을 아주 단단히 쥐었다.허서령은 졸음에서 깨어났다. 손바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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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이은경은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변명했다.“허서령을 미행한 게 아니고 여기가 너의 집인 줄도 몰랐어. 우연히 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길 건너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을 뿐이야. 너희들이 날 붙잡아 온 건 불법이야.”지강산은 차가운 눈빛을 지었다. 화를 내지 않아도 위엄이 느껴지는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집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 시스템이 있어요. 주변 수 킬로미터 안에 다른 민가도 없어서 밖에 파리 한 마리가 날아가도 다 알 수 있어요. 전에는 택시를 타고 허서령을 따라와 현관 앞에 몇 분 머물다가 떠났죠. 이제는 택시도 타지 않고 아예 바깥 수풀에 숨어 있더군요. 어제 아침 7시부터 지금까지 근처에서 먹고 마시고 볼일까지 해결하며 숨어 있었는데, 정말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찔린 이은경은 곧바로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그녀는 소리만 크면 옳기라도 한 듯두 손을 허리에 얹고 목소리를 높였다.“도로 건너편까지 너희 땅이야? 내가 있고 싶으면 있는 거지 네가 무슨 권리로 내쫓아? 무슨 근거로 내가 허서령을 미행했다고 하는데?”지강산은 표정이 굳더니 한 글자씩 또렷하게 말했다.“처음에는 당신이 돈 때문에 제산시까지 허서령을 찾아온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 보니 그것만이 아니군요.”이은경은 험악한 얼굴로 이를 악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상금은 보통 법원이 추심해요. 그런데 당신은 허서령을 찾자마자 돈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몰래 숨어 미행하고 겁을 줬어요. 배상금이 전부 지급된 뒤에도 미행을 계속했어요. 다른 목적이 있는 거겠죠. 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죠?”이은경은 대답하지 않고 화를 내며 물었다.“언제 날 풀어줄 거야? 안 풀어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지강산은 고개를 옆으로 숙이고 팔꿈치를 휠체어 팔걸이에 대더니 손끝으로 미간을 가볍게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사건의 근본적인 논리를 천천히 정리했다.옆에서 지켜보던 허서령은 대략 상황을 이해하고 천천히 다가가 담담하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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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이은경이 끌려간 뒤 지강산은 허서령에게 손을 내밀었다.허서령은 마음속 불안을 감추려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까지 걸어가,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지강산은 가늘고 하얀 손가락을 감싸 쥐고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러고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가볍게 물었다.“무서워?”“안 무서워요.”허서령은 고개를 저었지만 미소는 조금 딱딱했다.“보조 인력을 한 명 붙여 줄 수 있어. 평소 출퇴근할 때 따라다니고 업무도 도와줄 사람이야.”“필요 없어요.”허서령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은 싫었다. 이런 병은 곁에 있는 사람의 기운까지 소모했다.“진성호가 나오려면 아직 3년이나 남았잖아요. 그 엄마 혼자서는 큰일 못 벌여요.”지강산은 깊은 눈으로 허서령을 바라봤지만 더는 강요하지 않고 다시 손을 문지르며 말했다.“손도 차고 발도 차. 밤새도록 따뜻해지지도 않더라. 여자는 물로 만들어졌다는데 넌 얼음으로 만들어졌나 봐.”허서령은 그 말에 웃으며 손을 빼냈다.“강산 씨 체질이 너무 뜨거워서 제가 차갑게 느껴지는 거예요.”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식탁으로 향했다. 지강산은 휠체어를 움직여 뒤를 따랐다.“우리는 한 사람은 차갑고 한 사람은 뜨거우니 딱 서로 보완되네. 내 몸을 난로로 빌려줄게.”“한여름에 난로 필요 없어요.”허서령은 의자를 빼고 앉았다.지강산은 휠체어를 그녀의 맞은편에 세우고 편하게 뒤로 기대었다. 팔꿈치를 팔걸이에 올린 채 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나는 네가 필요해.”“우리는 에어컨 온도 취향부터 다르잖아요.”“나와 같은 방에서 자기 싫다는 핑계가 참 많네.”허서령은 가볍게 웃었다.아주머니가 아침을 들고나오자 그녀는 민망해져 입을 다물고 지강산의 깊고 잘생긴 눈을 바라봤다.다행히 그의 눈에는 다정함만 있을 뿐 불쾌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아주머니가 자리를 뜬 뒤 허서령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목소리를 낮췄다.“제 방이 바로 옆이잖아요. 메시지 하나 보내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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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허서령과 지강산이 아침을 먹고 있을 때, 막 잠에서 깬 심인혜가 방에서 허둥지둥 뛰어나와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허서령이 뒤를 돌아보니 심인혜는 가방과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머리는 아직 부스스하게 흐트러졌고 다급한 표정으로 밖을 향하고 있었다.“서령아, 나 먼저 갈게.”“지강산 씨, 저 먼저 갈게요. 어젯밤 재워 줘서 고마워요.”심인혜는 걸어가면서 인사했다.허서령은 두 손으로 식탁을 짚고 급히 일어났다.“인혜야, 왜 이렇게 급하게 가? 무슨 일 생겼어?”심인혜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허서령에게 씁쓸하게 웃었다.“어젯밤 아이를 백시욱한테 맡겼어. 당연히 집에 남아서 아이를 볼 줄 알았지. 그런데 윤가온 집 전기 수리해 주겠다고 아이까지 데리고 그 집에 갔더라. 내가 밤새 집에 안 들어가도 찾지도 않았고, 내 아이는 윤가온에게 맡겼어. 윤가온이 지금 와서 데려가래.”허서령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심인혜가 지금 얼마나 화나고 괴로운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었다.“내가 차로 데려다줄게.”“됐어. 넌 지강산 씨를 돌봐야 하잖아.”“이 근처는 택시 잡기 어려워.”허서령은 지강산 옆을 지나며 허락을 구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갔다 와도 돼요?”지강산은 고개를 끄덕였다.“운전 조심해.”“네.”허서령은 곧바로 방으로 뛰어갔다.“잠깐만 기다려, 인혜야. 옷만 갈아입고 금방 올게.”심인혜는 고개를 숙여 몰래 눈물을 닦았다. 옷을 갈아입은 허서령은 차에 심인혜를 태우고 윤가온이 약속한 장소로 갔다.공원 밖, 햇볕은 뜨겁게 내리쬐었고 큰 나무 아래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긴 벤치에 윤가온이 생후 6개월 된 아기를 안고 앉아있었다. 곁에는 자폐증 증상이 있는 네 살 딸이 함께 있었다.차가 멈췄다. 허서령과 심인혜는 함께 차에서 내려 윤가온에게 다가갔다.윤가온은 아기를 어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하는 말이 희미하게 들렸다.“아가야, 엄마 해 봐... 엄마... 누나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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