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산이 실험실에서 나왔다.사무실로 돌아와 작업복을 벗어 던진 뒤 서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머니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지강산이 의자에 앉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자마자 깍듯하게 말했다.“어머니, 전화하셨어요?”하선희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강산아, 유하한테 들었는데 울심에서 서령이를 만났다며? 지금 동거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니?”“동거가 아니라 셰어하우스예요. 집을 나누어 쓰는 거죠.”지강산의 말투가 한없이 다정했다.“셰어하우스라니? 울심에서 집까지 샀으면서 왜 세를 맡고 살아?”“말하자면 길어요.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너 혹시 서령이를 용서했어?”“어떻게 하는 게 용서인데요?”“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용서했다는 뜻이지.”“글쎄요, 아마도요.”“남자랑 한집에 사는 걸 보면 서령이도 아직 혼자라는 건데... 그래서 다시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거니?”“아니요.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지강산이 눈을 감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넌 내 아들이야. 내가 너를 몰라?”“엄마,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하선희가 답답한 나머지 한숨을 쉬었다.“네 할아버지랑 아버지는 한 여자만 바라보는 지독한 사랑꾼들이셨어. 너도 그 피를 물려받았으니 당연히 그렇겠지. 이번 설에 너랑 유하를 제산에서 약혼시킬 생각이었는데.”“제발 그러지 마세요. 엄마 친구 딸이라서 제가 지금까지 참아온 거예요. 전 유하한테 이성적인 감정이 하나도 없어요.”“하지만...”“제 결혼에 간섭하지 마세요.”하선희가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알았어. 네 인생이니 네가 결정해야지. 부모로서 바라는 건 그저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야.”“고마워요, 어머니.”지강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참, 서령이가 예전에 배를 참 좋아했었지?”하선희의 말투가 한결 다정해졌다.“마침 뒷마당 배나무에 열매가 아주 잘 열렸더라. 주소 보내주면 한 상자 보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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