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하루 종일 몰아쳤고 폭우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아파트 단지가 쑥대밭이 되었다. 얼마 전에 새로 심은 어린나무들은 물론 수많은 가지를 뻗은 오래된 큰 나무들까지 모두 힘없이 쓰러지거나 부러졌다.낮은 지대의 도로와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겼다.에버그린 힐도 이번 재해를 피하지 못했다.지강산은 이른 아침에 관리사무소로부터 지하 주차장이 침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뜻밖에도 지강산의 표정이 아주 태연했다.어제 점심에 이미 차를 2km 떨어진 고층 건물 주차장에 옮겼기 때문이었다.바람은 잦아들었지만 빗줄기는 여전히 맹렬하게 쏟아졌다. 바깥이 온통 흐린 회색빛이었고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지강산은 평소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냉장고에서 계란과 국수, 채소, 그리고 파를 꺼냈다. 허서령이 파를 먹지 않는다는 생각에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방 안.허서령이 휴대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완전히 정신이 든 게 아니었기에 몽롱한 상태로 휴대폰을 더듬어 귀에 갖다 댔다.휴대폰 너머에서 나정민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허변,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방금 상표권 침해 사건 의뢰인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허변 업무 처리가 미흡하고 성격이 매우 나쁘며 태도가 아주 무례하다고 컴플레인을 걸었어요. 의뢰인한테 뭘 어쨌길래 이렇게 펄쩍 뛰는 거죠? 이젠 우리한테 사건도 의뢰하지 않겠대요. 설명 좀 해봐요.”설명하기도 귀찮았던 허서령이 천천히 말했다.“나변, 그 여자 명의로 된 회사가 없어서 상표권 침해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요. 그냥 저한테 개인적인 적대감이 있어서 저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그런 거예요.”“그런 거였군요.”나정민이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어쩐지 허변을 콕 집더라니. 트집 잡으려고 작정한 거였네요.”“네.”허서령이 눈을 비볐다.“됐어요, 그럼. 태풍이 막 지나갔으니 조심하고요.”“네, 나변도 조심해요.”전화를 끊은 뒤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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