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은 고요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지용식은 차분히 말했다.“로운아, 네가 태어난 날 병원에 널 보러 갔었다. 간호사실을 지나는데 날 알아보지 못한 간호사들이 수군대더구나. 508호 산모의 아이가 O형인데 아버지도 O형이라며, 남편이 바람난 아내한테 속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했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그런데 나중에 네 혈액검사 결과는 A형으로 나왔어. 그래서 의심을 거뒀지. 하지만 산모가 있는 508호실은 하나뿐이었어. 그 일이 마음에 가시처럼 남았지. 네가 태어난 뒤 네 부모가 더 다정해지고 집안도 화목하게 잘살길래, 평생 모른 척하는 것도 행복일 거로 생각하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하지만 넌 자라는 내내 네 아버지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지씨 집안의 특징도 안 보였어. 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얼굴도 반듯하고 나이 들어도 멋지지 않니. 사촌 동생 둘도 키가 크고 늘씬한 데다 이목구비도 또렷하고 잘생겼어.”“그런데 넌 어려서부터 잘 먹고 자랐는데도 키가 170cm 정도에서 멈췄고, 늘 통통했지. 각진 얼굴, 큰 코끝, 쌍꺼풀 없는 눈, 두툼한 입술까지, 어려서부터 네 어머니의 옛 남자 친구를 똑 닮았다. 내가 태일이와 강산이를 더 아끼고 너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은 것도 그래서야. 아무리 봐도 내 친손자 같지 않았거든.”“태일이와 강산이는 어릴 때 제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어. 사진을 섞어 놓으면 세쌍둥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지.”지용식은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서럽게 숨을 들이마셨다.“그래도 너는 어머니 쪽을 더 닮았겠지 하고 나를 달랬어. 아니면 어머니가 성형해서 지금은 너무 예뻐진 탓에 네가 지금 얼굴과 닮지 않은 거라고도 생각했고.”“하지만 커 갈수록 못된 성미가 더 뚜렷해지더구나. 집안에서 아무리 바르게 가르쳐도 달라지지 않았지. 여자 밝히고 욕심 많고, 난폭하고 제멋대로에 속까지 좁아... DNA 검사를 안 해 봐도 넌 우리 집안 핏줄이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할아버지... 저... 저는 그런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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