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슬이 약을 먹지 않으려 할 때면 할아버지도 늘 이런 말투로 달래 주셨다.‘우리 윤슬이, 착하지...'정윤슬은 얌전히 입을 벌렸다. 따뜻한 숟가락에 담긴 좁쌀죽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부드럽고 고소한 죽을 삼키자 지태일은 다시 한 숟가락을 떠서 먹여 주었다.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먹으면 먹을수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기억이 닿는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누군가가 직접 밥을 먹여 준 적은 없었다. 아플 때조차 할아버지는 스스로 먹어 보라며 달래셨을 뿐, 이렇게 살뜰히 죽을 떠먹여 주지는 않으셨다.몇 숟가락을 먹자 더는 넘어가지 않았다. 눈꺼풀도 천근만근 무거웠다.“이제 안 먹을래요.”정윤슬이 고개를 저었다. 지태일은 약을 집어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의 손끝이 입술에 닿았고, 정윤슬은 약을 입에 물었다.“착하지. 물 마시고 삼켜.”그녀는 입가까지 내민 컵을 받아 두 모금 크게 마신 뒤 약을 삼켰다.“약도 먹었으니 누워서 푹 쉬어.”지태일은 물컵을 협탁에 내려놓고 어깨를 받쳐 그녀를 눕히려 했다.그 순간 정윤슬이 몸을 돌려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 안고 얼굴을 목덜미에 묻었다.갑작스러운 포옹에 지태일의 몸이 굳었다. 손끝이 떨리고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숨을 가볍게 내쉰 그는 입을 열고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윤슬아, 누워서 푹 쉬어. 약 먹었으니 금방 나을 거야.”“태일 오빠... 고마워요.”“고마워할 필요 없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세상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은 없어요. 의무로 하는 일도 없고요. 그냥 하고 싶으냐, 하고 싶지 않으냐의 차이죠.”“맞아. 난 널 돌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지태일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대답했다. 그녀의 팔을 풀어 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자 그대로 몸을 숙여 침대에 눕혔다.두 사람은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지태일은 정윤슬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를 선명하게 느꼈다.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향이었다.한쪽 팔꿈치로 침대를 짚고 다른 손으로 정윤슬의 팔을 잡은 그는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