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돌이킬수 없는 / Chapter 91 -الفص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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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알아보니까 유라 씨 생활이 꽤 어렵다고 들었는데, 내가 그때 두둑이 챙겨준다고 했잖아.”유태희는 유라의 아픈 구석이자 가장 비참한 현실인 경제적인 형편을 도진의 앞에서 대놓고 들춰내며, 유라를 완전히 짓밟으려는 듯 가시 돋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의 명품 가방을 뒤척이며 지갑을 열었다.수표를 쥔 유태희의 손이 유라의 눈앞으로 들이밀어졌다. 하얗고 길게 뻗은 손가락 끝에 들린 수백만 원짜리 수표들이 화려한 거실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유라 씨가 도진 씨 집에 있는 줄 알았으면 더 챙겨왔을 텐데, 지금 내가 가진 게 이것밖에 없네. 이거라도 우선 받아.”태희는 마치 길가에 굶주린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던져주듯, 지독하리만치 오만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수표를 유라의 가슴팍으로 툭 밀어 넣었다.바스락.종이 쪼가리가 살결에 닿는 미세한 소리가 유라의 귓가에는 거대한 폭발음처럼 천둥 쳤다. 당장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몸이었지만, 뺨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은 지독한 수치심이 밀려왔다. 도진의 앞에서 철저하게 거지 취급을 당하며 자존심이 갈갈이 찢겨 나가는 기분이었다.“아니에요, 안 주셔도 돼요...…… 제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좋은 시간 보내세요 ...”유라는 태희가 내민 수표를 차마 쥐지도 못한 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밀어내며 거절했다. 목소리는 모기 날갯짓 소리처럼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밀려드는 수치심과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더는 일초도 이곳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유라는 소파에 앉아 자신을 서늘하게 내려다보는 도진을 향해 겨우 고개를 숙였다.“죄송한데…… 오늘은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지옥 같은 이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쥐어짜 낸 마지막 양해였다.그 순간, 유라의 인사를 가차 없이 짓밟으며 유태희가 도진의 옆자리로 더 철썩 밀착해 앉았다. 태희는 도진의 단단한 팔뚝을 감싸 안으며 콧소리 섞인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도진아, 표정이 왜 그래? 기분 안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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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태희는 연예계 생활을 하며 사람의 눈빛을 읽는 데 도가 터 있었다. 도진이 평소와 달리 유라를 바라볼 때 스치던 그찰나의 눈빛과 그리고 전 계곡 촬영신에서 자신에게 복수하듯 굴었던 모든 행동에 사실은 김도진의 마음이 온통 저 보잘것없는 이유라에게 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순간, 태희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을 느꼈다. 감히 나를 두고 저런 애송이 따위에게 눈을 돌려?이것은 유태희 나름의 잔인한 수작이었다. 이유라가 두 눈을 똑똑히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내 남자인 김도진을 넘보지도, 품지도 못하게 비참함을 낙인찍으려는 확실한 경고였다.벽을 짚고 간신히 고개를 돌린 유라의 시야 속으로, 거실 조명 아래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 있는 두 탑스타의 실루엣이 잔혹하게 박혀들었다.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간 유라는, 매서운 복도 공기가 뺨에 닿자마자 버티고 있던 모든 긴장의 끈이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쾅- 하고 육중한 현기증과 함께 도진의 펜트하우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면서 유라는 그대로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한편,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유태희의 기습적인 입맞춤이 닿은 순간, 도진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도진은 유태희의 어깨를 움켜쥐고 소름 끼치도록 불쾌하다는 듯 그녀를 거칠게 밀어냈다. 갑작스럽게 밀려난 태희가 소파 위로 엉성하게 흐트러졌지만, 도진은 그녀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그의 온 신경은 이미 현관으로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현관문 바로 앞 복도에서 무언가 둔탁하게 쓰러지는 불길한 소리가 쿵 하고 들려왔다.“이유라……!”도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과 함께 반사적으로 현관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갔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도진의 두 눈이 서늘하게 굳어버렸다.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제 앞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던 유라가 차가운 바닥에 가냘픈 몸을 웅크린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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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한편, 태희가 나가든 말든 도진의 신경은 온통 제 품에 안긴 유라에게 쏠려 있었다.도진은 유라를 제 침실의 넓고 푹신한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침대 시트 위로 뉘어진 유라의 몸은 한눈에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가냘팠다얼굴은 핏기가 전혀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식은땀이 계속해서 배어 나오고 있었다.“이유라. 눈 좀 떠봐.”볼을 톡톡 쳐보아도 유라는 미동조차 없었다.도진은 거칠게 휴대폰을 꺼내 들어 자신의 전담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다.“형. 지금 당장 내 펜트하우스로 와줘. 지금 당장.”전화를 끊어버린 도진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유라의 머리카락을 떨리는 손길로 쓸어 넘겼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서서 그 어떤 위기 상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탑스타 김도진의 손이, 지금은 이 조그만 여자 한 명 때문에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침대 머리맡에 주저앉은 도진의 시선이 유라의 턱 끝과 가녀린 목덜미로 향했다. 그곳에는 어제 전화 통화 너머로 유라를 잔인하게 몰아붙였던 이도현의 흔적이 붉고 푸른 멍 자국이 되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더러운 자국들을 마주한 순간, 도진의 눈에 서슬 퍼런 살기가 휘돌았다.“……도망을 치려면 제대로 치든가”도진은 낮게 읊조리며 유라의 얼음장 같은 손을 꽉 쥐었다. 부서질 것처럼 얇은 손가락이 제 손안에 힘없이 들어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적막한 펜트하우스에 초인종이 울렸다. 도진은 유라의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침실을 뛰쳐나갔다. 문을 열자, 도진의 다급한 연락에 숨을 헐떡이는 전담 주치의가 서있었다.“도진아 무슨일이야? 어디 아픈거야?”“말 받아 줄 기분 아니니까 입 닫고 들어와 형.”도진은 주치의의 질문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며 침실로 이끌었다. 평소의 오만하고 여유롭던 모습은 간데없고, 금방이라도 사람을 물어뜯을 것처럼 사납게 날이 선 도진의 태도에 주치의는 당황하며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주치의는 익숙한 듯 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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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오늘 밤새도록 옆에서 열 체크 잘하고, 링거 다 들어가면 내가 두고 간 약 먹여. 네가 그렇게 죽을상 쓰고 지켜보고만 있다고 애가 낫는 거 아니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챙겨줘.”주치의의 뼈 때리는 잔소리가 텅 빈 침실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요즘 세상에 굶어서 영양실조로 쓰러졌다는 유라의 비참한 현실이 도진의 가슴을 난도질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유라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렸다.눈앞에 어른거리는 은은한 간접 조명과 그리고 지독하리만치 낯익은 천장의 실루엣. 유라는 그것이 꿈인가 싶어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다가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숨을 흡 들이켰다.분명 도진의 집에서 제 발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신이 김도진의 침실에 누워 있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당혹감에 몸을 가누려던 유라는 손등에 찌릿한 통증을 느끼고 시선을 내렸다.손등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고, 거치대에는 투명한 영양제와 약물이 담긴 링거 팩이 매달려 있었다.그제야 아득해졌던 마지막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졌다. 지옥 같던 거실을 빠져나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정신줄이 툭 끊어지며 복도 바닥으로 쓰러졌던 기억이 났다.“하아…….”유라의 입에서 짓눌린 듯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도진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을 쳤건만, 결국 쓰러져서 다시 이 방으로 기어들어 온 꼴이라니.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하고 비참했다. 유라는 침대에 상체를 일으켜 앉더니, 더는 망설이지 않고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을 거칠게 뽑아버렸다.투둑.바늘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붉은 핏방울이 울컥 배어 나왔지만, 유라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 현관을 나가기 직전 잔인하게 박혀버린 잔상이 떠올라 가슴을 난도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파 위에서 보란 듯이 얽혀들던 김도진과 유태희. 자신에게 사정없이 비수를 꽂아대던 유태희와, 그 앞에서 비참하게 찢겨 나가던 자신을 그저 서늘하게 방관하다 태희의 입맞춤을 받아들이던 김도진의 모습이 떠올라 숨이 턱 막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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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유라의 얼굴은 여전히 핏기가 하나도 없이 창백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도진은 이를 악물고 낮게 읊조렸다.“누워.”“저…이제…괜찮아요....”유라가 제 손목을 쥔 도진의 손을 밀어내며 억지로 걸음을 옮기려 하자, 도진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가라앉았다.“마지막이야. 누워있으라고 했어.”도진의 으름장에도 유라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다시 문고리를 잡으며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제 품에서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유라를 보며, 도진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하, 진짜 미치겠네.”도진은 가차 없이 유라의 가냘픈 몸을 번쩍 안아 올렸다. 깜짝 놀란 유라가 버둥거렸지만, 도진은 단단한 팔로 그녀를 제압해 침대 위로 거칠게 눕혀버렸다. 유라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하자, 도진은 두 무릎으로 유라의 골반을 누르며 위에서 압도적으로 내리눌렀다.“놔주세요.!...”악을 쓰며 한 손으로 도진의 어깨를 밀쳐내는 유라의 손목을 도진이 한 손으로 단단히 결박했다. 그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협탁 위에 풀어두었던 자신의 넥타이를 거칠게 낚아챘다.스윽-도진은 반항하며 발버둥 치는 유라의 한쪽 손목을 넥타이로 단단히 감아쥐더니, 그대로 침대 프레임 헤드 부분에 타이트하게 묶어버렸다. 매끄러운 천이 유라의 하얀 손목을 파고들며 단단히 고정되었다.“……!”순식간에 침대에 한쪽 손이 묶인 채 갇혀버린 유라는 충격으로 커진 눈을 들어 도진을 바라보았다.“좋은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 이유라.”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긴 도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넥타이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유라를 내려다보았다.“얌전히 있어. 봐주는 건 여기까지야.”도진은 낮게 읊조리며 유라를 짓누르던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분노와 집착으로 차갑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도진은 침대 위를 한 번 더 매섭게 내려다본 뒤, 거칠게 발걸음을 옮겨 침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쾅- 하고 육중하게 닫히는 방문 소리가 유라의 심장을 다시 한번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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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거실로 나온 도진은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텅 빈 거실의 서늘한 공기가 뺨에 닿자, 방금 전 침실에서 유라를 몰아붙였던 자신의 광기 어린 행동들이 고스란히 밀려왔다. 마음은 전혀 그게 아닌데, 상처 입고 쓰러진 유라를 보면 걱정보다 분노가 먼저 앞서고 항상 거칠게 대하고 마는 자신의 모습에 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복잡해졌다.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도진의 귓가에 조금 전 주치의 형이 던진 날카로운 질문이 환청처럼 맴돌았다.‘너, 이 여자 좋아하는 거냐?’좋아한다라니. 감히 자존심 강한 김도진의 인생에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였다.처음에는 그저 비틀린 유희에 불과했다. 자신이 지독하게도 싫어하는 이도현, 그리고 그 이도현과 깊게 얽혀있는 이유라. 그 두 사람을 동시에 제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골려주기 위해 시작한, 조금 질 나쁜 장난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이도현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그 오만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그 곁에 있는 이유라를 흔들어대며 혼란을 주는 것. 도진에게 이 모든 과정은 짜릿한 승부욕을 채워줄 자극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자신했었다.“하…… 미치겠네, 진짜.”도진은 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어뜨렸다.스스로 생각해도 비겁했다. 아직 퇴직 처리가 안 됐다느니, 계약 기간이 남았다느니 말도 안 되는 핑계들을 대며 어떻게든 유라를 자신의 곁에 묶어두려 발버둥 쳤던 자신의 행동들이 스쳐 지나갔다.무엇보다 도진의 가슴을 가장 무겁게 짓누른 건, 이유라를 강제로 취한 그 날 밤의 기억이었다. 화려한 연예계에서 수많은 여자가 그에게 목을 매고 유혹해 왔지만, 도진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강제로 취한 적이 없었다. 자신을 원하지 않는 여자를, 거부하며 우는 여자를 억지로 탐한 건 도진의 인생에서 이유라가 처음이었다.그 잔인한 짓을 저지르고도 유라를 제 곁에 두고 싶어 가두어 놓는 제 모습은, 영락없이 미쳐버린 집착에 불과했다. 유라를 향한 이 감정이 죄책감인지, 도현을 향한 승부욕인지, 아니면 정말 주치의 형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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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헐렁한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유라의 굴곡진 몸선은, 아픈 와중에도 묘하게 매끄럽고 탐스러운 선을 그리며 침대 시트 위로 흩어져 있었다. 웅크린 자세 탓에 가냘픈 쇄골 라인과 깊게 파인 목덜미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 위로 이도현이 남긴 붉고 푸른 흔적들이 마치 지독하게 매혹적인 낙인처럼 도드라져 보였다.“……흐윽, 하지 마……그만해…….”가늘게 떨리는 유라의 손가락이 이불을 거칠게 쥐어뜯으며 허공을 부유했다. 묶인 손목이 움직일 때마다 넥타이가 부드럽게 쏠리는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자극적으로 헤집었다. 괴로운 듯 몸을 뒤틀 때마다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팍과,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하얗고 가녀린 목선은 도진의 시선을 강박적으로 붙잡아 두기에 충분했다.보호 본능을 자극하다 못해 거칠게 짓밟아 무너뜨리고 싶을 만큼, 악몽 속에서 위태롭게 침잠해 있는 유라의 모습은 지독하리만치 관능적이고 섹시했다.도진은 홀린 듯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가 주저앉았다. 침대 시트를 적시는 유라의 가쁜 숨소리가 그의 온 신경을 아찔하게 자극하고 있었다.도진은 떨리는 숨을 들이켜며 악몽 속을 헤매는 유라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도진의 커다란 손안에 유라의 가냘픈 손이 빈틈없이 쏙 들어왔다. 뜨겁게 열이 오른 도진의 손바닥과 달리, 유라의 손 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묘한 이질감이 두 사람의 살결을 타고 흐르다 얽혀들었다.신기하게도 도진의 커다란 손이 차가운 손가락을 단단히 감싸 쥐자, 악몽에 시달리며 위태롭게 신음하던 유라의 숨결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고통으로 잔뜩 찡그려졌던 가녀린 미간이 스르르 펴지더니, 도진의 손길에서 지독한 안정감이라도 느낀 듯 거칠던 숨소리도 점차 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하지만 그 지옥 같은 꿈속에서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던 것일까. 꼭 감긴 유라의 눈꼬리에는 미처 삼키지 못한 눈물이 가득 고여 고운 뺨을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어둠 속에서 그 눈물방울이 달빛을 받아 투명하게 부서지는 것을 보며, 도진의 심장 한구석이 찌릿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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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처음으로 제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이었지만, 그 끝은 비참한 절망이었다. 자신은 결코 그들의 화려하고 거대한 세계에 발을 들일 수도, 어울릴 수도 없는 존재였다. 더는 그들의 장난감이 되어 비참해지고 싶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그리고 김도진의 인생에서 영원히 없어져 주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답이었다.유라가 펜트하우스를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침대 위에서 무겁게 몸을 뒤척이던 도진은 이내 옆자리에 감도는 서늘하고 허전한 기운에 번쩍 눈을 떴다. 제 품에 잠들어 있어야 할 유라가 보이지 않았다.“이유라……?”낮게 잠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건 지독한 정적뿐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걷어찬 도진이 성난 걸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폈다. 텅 빈 거실과 굳게 닫힌 현관문을 확인한 순간, 유라가 또다시 제 손귀를 벗어나 도망쳤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와닿았다. 도진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깊고 거친 한숨을 내쉬었다.“하…… 이유라. 말로 해서는 절대 안 듣는다 이거지. 그 몸을 하고 또 어딜 기어 나간 거야!”들끓는 분노와 함께 심장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듯한 초조함이 밀려왔다. 도진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켜, 미리 연동해 두었던 유라의 기기 위치 추적 앱을 실행했다. 화면 위로 깜빡이는 붉은 점이 펜트하우스 인근을 가리키고 있었다.도진이 제 위치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유라는 이른 새벽의 푸르스름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지나가는 택시를 잡아보려 애타게 손을 뻗었지만, 이른 새벽 도로 위엔 야속하게도 빈 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았다. 결국 한계에 부딪힌 유라는 근처의 버스 정류장 의자에 겨우 걸터앉아 몸을 잔뜩 웅크렸다. 얇은 옷가지 사이로 매서운 새벽 공기가 사정없이 파고들 때마다, 가녀린 어깨가 안쓰럽게 덜덜 떨렸다. 바로 그때끼이익—!정막을 찢는 거친 마찰음과 함께, 정류장 바로 앞에 육중하고 매끄러운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들이받을 듯이 멈춰 섰다.김도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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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도진은 신경질적으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며 유라의 얼굴 앞으로 제 상체를 바짝 밀착시켰다. 셔츠 깃 사이로 드러난 도진의 단단한 목줄기와 팔뚝 위로 푸른 힘줄이 터질 듯이 불거져 있었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내려다보는 도진의 눈동자는, 새벽녘의 서늘함과 집착 어린 열기가 뒤섞여 지독하리만치 섹시하고 위험해 보였다.“네가 내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구는 게, 피해라는 생각은 안 해?”도진의 낮고 차가운 음성이 칼날처럼 날아와 유라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잔인하게 찔렀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유라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날이 선 도진의 위압감에 짓눌려 숨조차 쉬지 못하던 유라의 눈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유라는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가슴 밑바닥에 묻어두었던 말을 가까스로 이어갔다.“저…… 저는…… 김도진 씨 장난감이 아니에요. 저도 감정이…… 있다고요…….”장난감이라는 단어가 유라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도진의 미간이 아슬아슬하게 일그러졌다. 평소의 오만한 탑스타의 가면은 이미 조각난 지 오래였다. 도진은 유라의 가녀린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거칠게 받아쳤다.“장난감?? 누가 너보고 장난감이래?”“그렇지만 지금 저한테 하시는 행동들은…… 전부 다 제멋대로잖아요……!”유라는 설움과 억울함에 받친 듯 온몸을 잘게 떨며 말을 토해냈다. 어제 거실에서 유태희와 입을 맞추던 도진의 잔상, 그리고 자신을 무시하던 유태희의 시선이 떠올라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유라를 가장 비참하게 만든 건, 도진을 향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제 마음이었다.“저는....처…… 처음이었어요. 당신이 처음이었다고……! 제 첫 경험을, 그런 식으로…… 그렇게 억지로 당하고 싶지 않았단 말이에요……!”억눌렀던 오열이 서러운 신음이 되어 흘러나왔다. 도진의 몸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날 밤, 거부하는 유라를 억지로 탐했던 기억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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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한참 동안 유라는 도진의 넓고 단단한 품에 안겨 가슴속에 맺혀 있던 설움을 전부 토해내듯 서럽게 울었다.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참함, 그리고 이러면 안 된다고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도진을 향해 뛰어버린 제 마음에 대한 원망까지. 유라의 눈물은 도진의 빳빳한 셔츠 자락을 뜨겁게 적셔갔다.도진은 그런 유라를 아무말 없이 가만히 안아주고 있었다.유라의 숨이 넘어갈 듯한 오열이 제 가슴에 와닿을 때마다, 도진은 오히려 숨을 죽인 채 그녀의 가녀린 등을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유라를 괴롭혔던 제 오만한 행동에 대한 후회, 그리고 마침내 마주하게 된 유라의 진짜 진심에 대한 안도감이 도진의 가슴속에서 복잡하게 소용돌이쳤다.유라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가쁜 숨결이 도진의 목덜미에 잔잔하게 흩어질 때까지, 도진은 차가운 새벽빛이 거실을 완전히 밝힐 때까지 유라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마치 이제는 절대 그녀를 놓치지도, 비참하게 만들지도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처럼.한편 도현은 연락이 완전히 끊겨버린 유라의 집 앞에서 초조하게 발을 구르며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어제 이후로 통화음만 허무하게 울릴 뿐, 그 어떤 응답도 없는 유라 때문에 도현의 속은 이미 새까맣게 타들어 간 지 오래였다.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애타게 이름을 불러보아도 문틈 너머에서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도현은 결국 사적으로 사람을 불러 억지로 유라의 집 문을 열어젖혔다.철컥, 스르륵—마침내 열린 유라의 집 안은 숨 막힐 듯한 고요함만이 가득했다.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컴컴한 집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던 도현은, 거실 한복판에 멈춰 섰다. 유라가 머물던 방 안에는 미처 닫지 못한 서랍장과 바닥에 뒹구는 옷가지들, 그리고 급하게 짐을 싸다 나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혹은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듯 다급하게 가방을 챙겨 나간 살풍경한 흔적을 본 순간, 도현의 눈동자가 뒤집히듯 잔인하게 일그러졌다.“이유라…….”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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