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돌이킬수 없는 / Chapter 111 -الفصل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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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도진의 분노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핏발 선 눈으로 운전대를 거칠게 움켜쥐던 그는, 이도현과 오랫동안 얽혀있던 공통의 친구 녀석을 떠올리고는 주저 없이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상황도 모르는 친구의 쾌활하고 반가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이야, 김도진! 어쩐 일이냐? 바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모임에도 잘 안 나오더니, 나한테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어?”친구의 한가한 농담을 받아줄 여유 따윈 없었다. 도진은 심장을 날카롭게 긁는 서늘한 목소리로 본론만 낮게 뱉어냈다.“이도현 그새끼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 누구야.”“어? ……그야 내가 제일 친하긴 하지. 초등학교 때부터 알았으니까. 근데 갑자기 이도현은 왜? 너네 원래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어?”갑작스러운 도진의 서슬 퍼런 태도에 친구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다. 도진은 내리깔린 음성으로 명령하듯 말을 이어갔다.“이도현 사는 곳, 가지고 있는 집 주소 다 찍어서 문자로 보내.”“야, 미쳤냐? 걔네 집이 한두 채야? 전국에 별장부터 시작해서 개인 명의로 된 거 가려내면 몇십 채는 될 텐데. 근데 그게 왜 갑자기 궁금한 건데?”“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네가 아는 대로 당장 문자로 다 찍어.”당장이라도 수화기를 뚫고 들어와 목을 꺾어버릴 듯한 도진의 살벌한 말투에, 친구는 더 물어보려다 슬며시 돋은 소름에 마른침을 삼켰다.“알겠어, …… 톤 좀 낮춰라, 무섭게 왜 이래. 다는 모르지만 내가 가봤거나 들어서 아는 것만 정리해서 보내줄게.”뚝, 전화를 끊은 도진은 미칠 것 같은 초조함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는 손끝이 미세하게 분노로 떨렸다.뿌연 담배 연기가 자국하게 흐트러지며 도진의 날카로운 눈빛 앞에서 흐트러졌다.몇십 분의 지옥 같은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띠링, 하고 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기다리던 친구의 문자였다. 액정 화면 위로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이도현 소유의 고급 주택과 외딴 별장들의 주소록이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우선 내가 확실히 아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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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도현과 시선이 마주친 유라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과 함께 흠칫 놀라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당장 이곳을 벗어나 도망쳐야 했지만, 사방이 꽉 막힌 낯선 공간에서 어디로 나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더구나 저 아래 거실에서부터 자신을 집어삼킬 듯 서늘한 눈빛을 한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도현을 마주한 시점에서는 뇌 속이 하얗게 마비되는 것 같았다.유라는 내려오던 발걸음을 급히 멈추고,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치며 다시 계단을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도현의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극심한 두려움에 온몸의 세포가 얼어붙어 몸짓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도현은 도망치는 유라의 발걸음에 정확히 보폭을 맞추며, 숨 막히는 그림자를 드리운 채 그녀를 압박해 올라왔다.어느새 유라가 방금 걸어 나왔던 2층 침실 문 앞이었다. 등 뒤가 딱딱한 문틀에 가로막혀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자, 유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초조함에 앞에 선 도현의 넓은 가슴팍을 있는 힘껏 밀쳐냈다.어떻게든 그를 밀어내고 그 사이 틈새로 뛰어 나가려던 필사적인 반항이었다. 하지만 도현의 단단한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라의 가느다란 손목이 그의 커다란 손귀에 단숨에 붙잡히고 말았다.하필이면 조금 전 도현이 손수 붕대를 감아놓았던, 상처투성이인 그 손목이었다. 거친 악력으로 상처가 짓눌리자 유라는 찌릿하게 파고드는 극심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굳어버렸다.“읏…… 아…….”그때, 유라의 정수리 위로 낮게 가라앉은 도현의 목소리가 유령처럼 들려왔다.“왜? 어디 가려고.”“………오빠 이것좀 놓..고……….”유라는 뼈가 바스러질 듯 힘이 들어간 도현의 손을 바라보며 애처롭게 사정했다. 하지만 도현은 그 눈물 어린 애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라를 잡고 있던 손목을 보란 듯이 더 세게 쥐어짰다.“읏……!”유라의 입술 사이로 찢어지는 듯한 아픈 신음이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도현은 미동도 없는 서늘한 얼굴로 유라의 시선을 정면으로 갉아먹으며 속삭였다.“어디 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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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유라가 바닥을 긁으며 찢어지게 외쳤지만, 도현은 사정없이 그녀를 침대 위로 내던졌다. 유라의 몸이 매트리스 위로 쿵 소리를 내며 처박히기가 무섭게, 도현은 곧바로 유라의 허리 위를 올라타 무게를 실어 짓눌렀다.도현의 무게감에 몸을 완전히 결박당한 유라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지만, 단단한 벽처럼 버티고 선 도현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도현은 제 밑에서 하얗게 질린 채 숨을 몰아쉬는 유라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원망하듯 바라보는 그 눈빛이 도현의 이성을 날카롭게 긁어내렸다. 더는 유라의 거친 저항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겠다는 듯, 도현은 침대 헤드 양옆으로 유라의 가느다란 양 손목을 이끌어 옆에 있던 끈으로 유라의 손을 단단히 고정해 묶어버렸다.“오빠, 싫어! 놔줘요! 이거 풀어!!”양손이 침대에 묶인 유라가 미친 듯이 몸을 비틀며 발버둥치자, 도현은 느릿하게 유라의 몸 위에서 내려왔다.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침대 협탁 서랍을 열어젖힌 도현이 투명한 진정제 약병을 꺼내 들었다.차가운 앰플의 목을 툭 까서 주사기 안으로 약물을 빨아올리는 그의 손길은, 병원에서 환자를 대할 때처럼 지독하리만치 능숙하고 침착했다. 주사기를 톡톡 두드려 공기를 빼내는 도현의 시선이 공포에 질린 유라에게 닿았다.“유라야, 우선 진정해. 좀 진정되면 다 괜찮아질 거야.”낮고 부드럽게 가라앉은 의사로서의 목소리가 도리어 소름 끼치도록 다정했다. 도현은 거칠게 움직이는 유라의 새하얀 팔을 한 손으로 가볍게 압박해 고정하더니, 유라의 귀밑에 입술을 바짝 대고 낮게 읊조렸다.“가만있어, 다쳐.”도현은 혈관을 찾아 능숙하게 바늘을 밀어 넣고 진정제를 투여했다.차가운 약물이 혈관을 타고 흐르자마자, 격렬하게 요동치던 유라의 몸이 서서히 반항을 멈추었다. 약 기운에 취해 유라의 초점이 흐려지고 거친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자, 도현은 주사기를 내려놓고 침대맡에 걸터앉았다.그는 땀과 눈물로 젖어 유라의 뺨에 엉망으로 달라붙은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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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 아니면 이런 추잡한 짓을 벌일 새끼가 없거든.”도진이 수화기 너머로 이빨을 으드득 갈며 살벌하게 뱉어냈다. 사정없이 핸들을 내리치는 거친 소리가 도현의 귀를 자극했다.“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이유라 어디 있는지 말해, 이도현.”“내가 설령 유라와 함께 있다고 한들, 너한테 왜 이야기를 해줘야 하지?”도현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잔에 남은 위스키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얼음이 없는 잔 안에서 짙은 액체가 출렁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동요도 없었다.“그리고 또 한 가지, 김도진 네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도현이 나직하게 읊조리며 매끄러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유라는 원래 내 사람이었어. 너 따위가 가볍게 만나서 가지고 노는 그런 싸구려 여자들과는 본질부터 다르다고.”그 말은 도진의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건드렸다.“누가 가지고 놀아? 이 미친 새끼가…….”낮게 가라앉은 도진의 음성에서 짐승 같은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그 더러운 주둥이 당장 닥치고, 이유라 어디 있는지 말해.”“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을까, 천하의 김도진이.”도현은 혀를 쯧 차며, 조소 섞인 목소리로 도진의 약을 바짝 올렸다.“안타깝지만 난 지금 달콤한 휴가 중이야. 그러니까 유라가 어디 있는지는 네가 알아서 찾아야지. 다 큰 성인이 이렇게 전화해서 예의 없게 굴면 쓰나.”“이도현, 너 지금…….”“그럼 이만. 내 할 얘기는 끝난 것 같으니 끊을게. 난 내 달콤한 휴가를 방해받고 싶지 않거든.”“이런, 씨발……!”도진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단호하고도 매정한 기계음이 수화기를 채웠다. 툭, 전화가 끊겼다.도진은 눈이 뒤집혀 곧장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미칠 것 같은 신호음이 들리기도 전에, 익숙하고 불길한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고객님의 전원이 꺼져있어……“아악! 이도현!!!”도현과의 통화가 일방적으로 끊긴 후,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피가 거꾸로 솟구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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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주소를 확인한 도진의 눈빛에 맹렬한 살기가 스쳤다. 그는 한치의 주저도 없이 거칠게 차 키를 챙겨 운전대를 잡았다.도진이 폭주하듯 유라와 이도현이 있는 별장으로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던 바로 그 시각.침대에 묶인 유라는 서서히 지독한 약 기운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시야는 여전히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몽롱하게 눈을 뜨자, 침대 머리맡에 어슴푸레하게 실루엣 하나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약 기운에 취한 유라의 일그러진 감각은 그 서늘한 그림자 위로 그토록 애타게 찾던 남자의 얼굴을 겹쳐 올렸다.“김..도진…….”그토록 절박하게 그리워하던 이름이 유라의 갈라진 입술 사이로 무방비하게 흘러나왔다.순간, 어둠 속에 가만히 멈춰 있던 이도현의 미간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방 안의 공기가 단 1초 만에 영하로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살기가 내려앉았다.“김도진?”유라가 몽롱한 정신에 내뱉은 그 세 글자는 도현의 마지막 이성의 끈을 잔인하게 끊어버렸고, 그의 심기를 사정없이 건드렸다. 도현의 잘생긴 얼굴이 악마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주저 없이 유라의 얼굴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며, 목을 짓이기는 듯한 낮고 소름 끼치는 음성으로 이야기했다.“다시 한번 말해봐.”“보고…… 싶…….”도현의 억누른 음성이 귀를 파고든 순간, 유라는 눈앞에 바짝 다가온 사람이 도진이 아닌, 이도현의 차가운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번쩍 정신을 차렸다.본능적으로 멀어지려 했지만, 양 손목이 침대 헤드에 단단히 묶여 있어 한 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완벽한 결박 상태에서 도현에게서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이유라.”도현이 묶인 유라의 양 손목 바로 윗 공간을 거칠게 짚으며 그녀를 완전히 가둬버렸다.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얼음송곳 같은 도현의 날카로운 말이 날아와 박혔다.“김도진 그 새끼한테, 마음이라도 준 거야?”“…….”유라는 도현의 눈에 서린 광기에 질려 숨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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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순간적으로 강하게 압박해오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손길에 유라가 놀란 신음을 내뱉었다.“하아……! 내 몸에.... 손대지 마……! 흑, 흐…….”유라가 울부짖으며 어떻게든 그 가혹한 손길에서 빠져나오려 허리를 비틀고 반항했지만, 등을 완전히 내리누르는 도현의 묵직한 힘 앞에 유라는 꼼짝없이 짓눌려 있을 뿐이었다.도현은 유라의 상체를 거칠게 탐닉하며 점차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유라가 입고 있던 바지를 한 손으로 능숙하고도 사정없이 벗겨냈다.유라가 비명을 지르며 강하게 소리쳤지만, 유라를 완전히 제 소유로 만들겠다는 도현의 거침없는 손길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순식간에 유라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완벽하게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지독한 수치심과 공포에 짓눌려 더 이상 반항할 힘도 남아있지 않던 바로 그 순간, 도현이 자신의 바지를 벗기 위해 유라를 누르고 있던 힘을 아주 잠깐 떼어냈다.유라는 본능적으로 찾아온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침대 위에서 빠져나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그런 유라를 향해 도현은 굳이 다급하게 쫓아가지 않았다. 덫에 걸린 사냥감을 보듯, 그는 침대맡에 서서 서늘하고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그 상태로 어딜 갈 수 있을 것 같아? 이유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얌전히 나한테 와.”방 안을 가득 채운 도현의 음성은 소름 끼치도록 침착했다. 유라는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린채 눈물로 앞이 흐려진 시야를 헤치며 2층 문밖 복도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 나갔다.도현은 그 도망이 부질없다는 듯, 셔츠도 입지 않은 날 것의 몸으로 유라의 뒤를 천천히, 그리고 일정하게 쫓았다.“오지 마…… 나한테서..... 떨어져 ……!”도현의 위압적인 실루엣이 다가올수록 유라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오직 눈앞의 포식자를 피해야 한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유라는 자신의 등 뒤에 위태롭게 뚫려 있는 가파른 2층 계단을 보지 못했다. 그순간 허공을 디딘 발끝이 중심을 잃고 무너졌다.그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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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마침내 친구가 알려준 도현의 별장에 도착한 도진은 거칠게 브레이크를 밟았다.차 문을 박차고 내려 별장 주위를 샅샅이 살펴보고 안에 들어가 보았지만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여기가 아니란 말인가…… 하아.”도진은 붉게 충혈된 눈을 감싸 쥐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유라,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도진은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연기가 밤공기 속으로 흩어졌다.며칠 밤낮을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도진의 눈빛은 핏발이 서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도진은 타들어 가는 담배를 바닥에 짓이기며, 다시 차를 돌렸다.결국 허탕을 치고 무거운 새벽 공기를 뚫고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돌아온 도진은,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거칠게 몸을 던지듯 앉았다. 타들어 가는 속을 진정시키려 마른세수를 하던 그가 땀과 초조함으로 젖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유라의 소식을 가져다줄 핸드폰은 잔인하리만치 고요하기만 했다. 도진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지친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뒤로 유라의 얼굴이 아른거려 심장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몇 시간이나 눈을 붙였을까. 다음 날 아침, 정적을 깨고 울린 날카로운 휴대폰 벨소리에 도진은 튕겨 나가듯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이유라의 소식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소속사 실장의 딱딱한 목소리였다.“도진 씨, 오늘 광고 촬영 스케줄 안내차 전화드렸습니다. 유라 씨 일 때문에 이미 몇 차례나 미룬 건이라, 광고주 측 항의가 장난이 아니에요. 더 이상 미루면 위약금은 둘째 치고 커리어에 치명타입니다. 오늘부턴 복귀하셔야 해요.”유라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데, 당장 눈앞에 산더미처럼 밀려든 대형 스케줄들을 소화해야 한다는 현실이 도진의 목을 조여왔다. 더 이상 스케줄을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도진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짓이기듯 흐트러뜨리며 결국 낮게 읊조렸다.“……갈 테니까, 픽업 차량 보내세요.”그렇게 무슨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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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전화를 거칠게 끊은 도진은 자신의 스포츠카에 올라타 바닥이 뚫릴 정도로 속도를 밟았다. 병원으로 향하는 도로 위,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차 안에서 도진은 요동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거칠게 뜯어냈다.병원에 순식간에 도착한 도진은 주위의 시선조차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대한병원 VIP 병동 복도를 거칠게 가로질렀다. 구두굽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고요한 복도에 크게 울렸다. 마침내 도착한 유라의 병실 앞, 경찰 두 명이 문 앞을 무겁게 지키고 서 있었다.숨을 몰아쉬며 다가오는 도진을 알아본 형사가 그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췄다.“안녕하세요, 김도진 씨. 연락받고 바로 오셨군요.”형사는 곤란하다는 듯 짙은 한숨을 내쉬며 차트를 슬쩍 내려다보았다.“일주일 전에 납치당했다고 신고해 주셔서 저희도 다방면으로 수사 중이었습니다만…… 보시다시피 지금 유라 씨 상태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깨어나긴 했는데, 최근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려서 수사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도진의 턱 끝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전화를 통해 이미 들은 이야기였지만, 수사관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사살을 당하자 가슴에 서늘한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형사의 설명은 계속되었다.“의사 말로는 고등학교 시절 기억 외에는 성인이 된 이후의 일은 아예 백지상태라고 합니다. 자신이 왜 여기 누워있는지도 모르고 있어요. 게다가 지금 무엇 때문인지 모를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와 불안 증세가 너무 심해서, 정식 진술은커녕 사람만 마주해도 발작하듯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래서야 도저히 수사를 진행할 수가 없네요.”경찰의 말이 이어질수록 도진의 눈빛은 무섭게 가라앉았다.“제가 들어가겠습니다.”도진이 형사의 말을 짓누르며 병실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아, 김도진 씨. 지금 환자가 민감한 상태라 안정을 취해야……”“제 매니저였어요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형사의 제지를 서늘하게 잘라낸 도진은 망설임 없이 병실 문을 거칠게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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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도진의 눈앞에서 완벽한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 도현의 도발은, 도진의 이성을 마침내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이유라, 정신 차려! 진짜 나 몰라보겠어? 나 김도진이야!!”폭발한 도진이 도현의 어깨를 거칠게 밀쳐냈다. 무방비하게 밀려난 도현의 틈새로 도진이 유라의 하얗게 질린 양어깨를 붙잡고 다그치듯 외쳤다. 도진의 절박함이 가득 담긴 커다란 손길이 닿자, 유라는 마치 끔찍한 괴물에게 붙잡힌 것처럼 온몸을 소스라치게 떨며 비명을 질렀다.“이거 놔주세요……!오빠...!!”유라는 제 어깨를 쥔 도진의 손을 미친 듯이 뿌리치며, 멀어지던 도현의 의사 가운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도현의 넓은 등 뒤로 더 깊숙이 숨어들었다. 유라의 입에서 터져 나온 ‘오빠’라는 절박한 부름은 도진이 아닌, 오직 이도현만을 향하고 있었다.병실 안의 거친 고함과 유라의 날카로운 비명에, 문밖에 있던 경찰들이 황급히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무슨 일 있으십니까? 김도진 씨, 환자에게서 떨어지세요!”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가자, 도현은 기다렸다는 듯 유라를 제 품에 완벽히 가두어 보호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가운이 엉망으로 구겨졌음에도 도현의 표정은 잔인할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했다.“형사님, 보시다시피 지금 환자는 수술 직후라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신원도 불분명한 외부인이 멋대로 들어와 다그치는 건, 환자의 상태를 다시 위험하게 만들 뿐이에요. 당장 내보내 주십시오.”도현은 의사로서의 전문적이고 단호한 아우라를 풍기며 경찰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의 시선이 도진을 향해 서늘하게 내리꽂혔다.“환자의 정신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합니다. 의학적 소견으로, 환자가 완전히 안정을 찾을 때까지 이 병실의 외부인 출입을 전면 제한해 주실 것을 정식으로 요청합니다.”“음, 의사 선생님 말씀이 맞네요.”상황을 지켜보던 형사도 유라의 발작적인 태도와 도현의 논리적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도진의 앞을 가로막았다.“김도진 씨, 일단 나가시죠. 환자 상태가 먼저 아닙니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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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결국 병원 밖으로 나간 도진은 타들어 가는 속을 채우듯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지만, 가슴속을 가득 채운 지독한 초조함은 식을 줄 몰랐다.한편, 폭풍 같은 소란이 지나간 병실 안. 도진이 나가고 고요해진 방 안에서 유라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조금 전, 자신을 강하게 붙잡았던 그 남자—김도진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풍겨오는 짙고 매혹적인 향기가 이상하게 코끝을 맴돌았다. 지독한 두려움 속에서도 그 향취만큼은 소름 끼치도록 뇌리에 박혔다. 분명 어디선가 맡아보았던, 지독하리만치 익숙한 향기였다.‘누구지……? 분명 익숙한 향기인데…….’유라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자, 그 모습을 지켜보며 침대 곁으로 다가온 도현이 다정한 눈빛을 가장하며 유라의 흐트러진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유라야, 저런 이상한 사람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은 푹 쉬는 게 좋겠어.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와서 많이 무섭고 혼란스럽겠지만…… 네 옆에는 내가 있잖아. 오늘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쉬어 ”가장 안전한 울타리를 자처하는 도현의 목소리는 소름 돋을 정도로 감미로웠다. 유라를 안심시킨 도현은 병실을 나서며 문 앞을 지키는 경찰들에게 서늘한 눈빛으로 당부했다.“조금 전 같은 불상사가 또 생기면 곤란합니다. 환자 안정을 위해 외부인 출입은 철저하게 금지해 주세요.”“네, 알겠습니다, 이 선생님. 걱정 마십시오. 철저히 통제하겠습니다.”도현마저 회진을 위해 나간 후, 넓은 VIP 병실에는 다시 유라 혼자만이 남았다.정적 속에서 묘한 이끌림에 이끌리듯 유라는 링거 거치대를 붙잡고 느릿하게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병원 정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때, 창밖 벤치 옆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유라의 시야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병실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김도진이었다.담배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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