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돌이킬수 없는 / Chapter 81 -الفصل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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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머릿속을 지배한 그 위험하고도 광기 어린 생각이 도현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도현은 거친 손길로 제 목을 죄던 넥타이를 풀어 바닥에 내팽개치고, 입고 있던 와이셔츠의 단추를 후두둑 뜯어내듯 풀어내며 거칠게 벗어던졌다. 단단한 상체를 드러낸 도현의 거친 숨결이 유라의 얼굴 위로 무겁게 떨어졌다.도현은 위스키 기운에 취해 아득해진 정신으로 신음하는 유라의 위로 천천히 몸을 겹쳐왔다.그리고 제 흔적을 새겨넣듯, 유라의 부드러운 살결 위로 아주 조심스럽고도 깊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독한 위스키 기운과 도현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열기가 침실 안을 질척하게 채워갔다. 유라의 살결에 닿는 도현의 거친 숨결은 뜨거웠고, 도진의 흔적 위로 제 존재를 새기려는 손길은 가차 없었다. 유라는 오직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존재여야 했다. 유라만은 몰랐던, 지난 몇 년간 어둠 속에서 숨죽여 키워온 도현의 지독하고 잔인한 짝사랑이 마침내 고삐를 풀고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하아…… 유라야……."도현의 억눌린 신음이 유라의 귓가를 핫하게 파고들었다. 술기운에 취해 몽롱하게 흐려진 유라의 시야 위로 도현의 땀방울이 툭 떨어졌다. 이윽고 유라의 연약한 몸 안을 잔인하게 가르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찌릿함에, 유라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며 발버둥 쳤다."흐읍…… 아……!“하지만 알코올에 마비된 육체는 도현의 단단한 체구를 이겨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그 미약한 움직임은 오히려 도현의 정복욕을 무섭게 자극할 뿐이었다.밀착된 살결 사이로 전해지는 유라의 뜨거운 체온과 달콤한 숨소리에 도현의 이성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라를 제 아래에 묶어둔 채 몰아치는 도현의 흥분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그 시간,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도진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굳어버렸다.평소와 다르게 현관이 엉망이었다. 누군가 거칠게 들이닥친 듯 흐트러져 있는 신발장 모습에 도진의 날카로운 눈매가 단번에 좁혀졌다. 지독할 정도로 고요한 집안에는 오직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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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흩트리며 도진은 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갈 때마다 도진의 턱관절이 부서질 듯 맞물렸다.띠리링,띠리링-침대 위, 땀방울을 흘리며 유라의 가녀린 몸을 탐하던 도현의 귓가에 날카로운 벨소리가 박혔다.분명 유라는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고 했었다. 지독하게 밀폐된 침실 안을 울리는 낯선 기계음에 도현이 거친 숨을 내쉬며 유라의 몸 위에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열기로 달아오른 눈을 가늘게 뜨며 핏빛 살기를 가라앉힌 도현이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유라의 바지 뒷주머니로 향했다.벨소리가 함께 액정 위로 선명하게 떠오른 이름, [김도진].그 세 글자를 확인한 순간, 이도현의 입가에 뱀처럼 잔인하고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며칠 전 병원에서 제 눈앞에 유라를 끌고 가 오만하게 굴던 김도진의 얼굴이 겹쳐졌다.딸깍-도현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귀에 대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당장이라도 사람을 찢어 죽일 듯한 도진의 짐승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이유라, 너 지금 어디야.”“…….”“말 안 해? 당장 대답해, 이유라.”침묵 끝에 도현이 낮게 헛기침을 하며 쾌락의 여운이 남은 음성으로 픽 웃었다.“난데, 김도진.”“…….”순간 수화기 건너편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도진의 거친 숨소리가 뚝 끊기더니, 이내 뼈를 갈아내는 듯한 서늘하고 고압적인 음성으로 변했다.“……왜 이유라 핸드폰을 니가 받는 거지?”“그야 유라가 지금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안 되니까, 내가 대신 받는 거겠지?”며칠 전과는 완벽하게 공수가 역전된 상황이었다. 도현은 김도진의 가슴에 가장 깊은 비수를 꽂아 넣겠다는 듯, 느긋하고도 잔인하게 말을 늘어뜨렸다.“못 받을 상황?”도진의 목소리에 극도의 살기가 실렸다. 펜트하우스 거실에 서 있는 그의 눈동자가 붉게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도현은 침대 위에서 하얗게 질린 채 신음하는 유라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우린 지금 사랑을 나누는 중이었거든. 숨이 차서 대답할 여유가 없네, 유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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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수화기 너머로 도진이 폭발하듯 짓이기며 지르는 고함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도현은 가차 없이 통화를 끊어버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액정의 불빛을 완전히 꺼뜨린 뒤, 휴대폰을 침대 바닥으로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도현은 눈물이 고인 채 허덕이는 유라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뺨에 흐르는 눈물을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훔쳐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시선은 다시금 도진의 흔적이 남은 유라의 하얀 살결로 향했고, 전원을 꺼버린 휴대폰처럼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린 채 유라의 몸을 더욱 거칠고 격정적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전원이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기계적인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자마자 도진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거실 대리석 바닥에 사정없이 내팽개쳤다. 콰장창-!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난 액정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도진의 불타는 분노를 가라앉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가슴이 터질 듯 거친 숨을 몰아쉬는 도진의 귓가에, 방금 전 수화기 너머로 생생하게 들려왔던 유라의 젖은 목소리가 환청처럼 맴돌았다.도진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번뜩였다. 제 품 안에서는 닿는 것조차 끔찍하다는 듯 온몸을 굳히고 거부하던 여자였다. 자신이 안을 때마다,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적인 눈물을 흘리던 이유라가 아니었나.“이유라…….”도진이 이를 악물며 낮게 읊조렸다. 짓이겨진 목소리 사이로 지독한 배신감과 처절한 질투가 뿜어져 나왔다.“나한테는 그렇게 죽을 것처럼 거부하더니…… 그 이유가 겨우 그거였어? 이도현 그 새끼를 좋아해서 나한테 그 난리를 친 거였냐고!!!”텅 빈 펜트하우스에 도진의 광기 어린 고함이 거칠게 메아리쳤다. 유라가 자신을 밀어냈던 모든 순간이 도현을 향한 연심 때문이었다고 오해한 순간, 도진의 가슴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이성마저 완전히 타버렸다.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눈을 뜬 다음 날 아침, 유라는 깨질 듯한 두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겨우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던 유라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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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체로 거울 앞에 선 유라는 밀려드는 수치심과 공포에 고개를 돌리며 필사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우려 했다. 하지만 도현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 앞으로 바짝 다가와 유라의 가녀린 뒷덜미를 억세게 움켜쥐었다. 도현의 커다란 손아귀에 목덜미가 붙잡힌 유라는 강제로 고개가 고정된 채 거울 속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똑바로 마주해야 했다.도현이 거울 속 유라의 눈을 매섭게 쏘아보며, 억눌린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귓가에 차갑게 읊조렸다."똑바로 봐, 이유라. 넌 이제 내 거야. 어디도 못 가. 처음부터 넌 내 거였어.""아……! 놔요, 오빠…… 제발……!“"김도진 그 새끼 밑에서 장난감 노릇 하는 건 이제 끝내. 봐주는건 여기까지야 이유라”처음으로 마주한 도현의 폭력적인 모습에 유라는 온몸을 잠식하는 소름 끼치는 공포를 느꼈다.도현은 거울 앞에서 굳어버린 유라의 어깨를 돌려 세우더니, 언제 폭력적이었냐는 듯 미치도록 다정한 손길로 그녀를 제 품에 안아주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유라의 나체가 도현의 단단하고 뜨거운 가슴에 고스란히 맞닿았다.공포로 잘게 떠는 유라의 등을 부드러운 손길로 쓸어내리며, 도현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나직하게 이야기했다.“이유라, 이 세상에서 널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야. 너도 알고 있잖아.”유라는 도현의 품 안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눈물만 툭툭 떨어뜨렸다.“그 새끼는 널 망가뜨릴 뿐이야. 하지만 난 아니야, 유라야. 난 네 상처까지 다 사랑하니까…….”이어 이도현은 얼어붙은 유라의 귓가에 뱀처럼 낮고 잔인하게 속삭였다.“어제 우리 둘이 사랑 나누는 소리, 김도진이 다 들었는데…… 네가 다시 김도진에게 돌아가서 태연하게 일할 수 있겠어?”“……!”도현의 입에서 나온 청천벽력 같은 말에 유라의 사고가 순간 정지했다. 온몸의 피가 바닥으로 전부 쏟아져 내리는 듯한 극심한 충격이 유라를 덮쳤다.김도진이 다 들었다고? 어젯밤 그 수치스럽고 비참했던 순간을?“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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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도현이 승리감에 도취되어 나직하게 읊조리는 순간, 유라는 본능적인 혐오감에 이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이 기괴한 집착이 가득한 공간에서 단 1초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유라가 가방을 낚아채고 서둘러 현관을 향해 나가려 하자, 도현의 미간이 좁아지며 신속하게 앞을 막아세웠다.단단한 벽처럼 앞을 가로막은 도현의 체구에 막힌 유라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도현은 유라의 어깨를 붙잡아 더는 도망치지 못하게 짓눌렀다.유라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어 이도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생전 처음 보는 지독한 원망의 눈빛이었다.“다시는…… 오빠도, 김도진도 안 봤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낮게 내려앉은 유라의 말투에는 뼈를 깎는 듯한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평소 유라를 제 뜻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믿었던 도현조차 순간 숨을 들이켤 만큼 서늘한 목소리였다.이도현 역시 당장 병원 출근과 급한 수술 일정이 잡혀 있어, 유라를 이대로 제 집에 마냥 가둬둘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도현은 복잡한 눈빛으로 흐트러진 옷을 추스르며 유라에게 다가갔다.“유라야, 일단 진정해. 내 차로 집에 데려다줄 테니까……”“손대지 마요!!!”도현이 뻗은 손이 채 닿기도 전에 유라는 비명을 지르며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도현이 붙잡을 틈도 없이 신발을 구겨 신은 유라는 문을 열고 폭풍처럼 그의 집을 뛰쳐나왔다.거짓말처럼 때마침 빈 택시 한 대가 앞을 지나갔다. 유라는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세웠다.철컥.택시 뒷좌석에 몸을 던지듯 실은 유라는 문을 닫자마자 겨우 참았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게 제 상처를 어루만져 주던,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의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했다.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제 편은 없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버린 처참한 현실이 유라의 숨통을 옥죄어왔다.유라를 태운 택시는 서서히 그녀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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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도진은 이유라의 위치가 확인되자 마자 사람을 시켜 이유라를 자신의 앞에 데려오라고 명령했다띵동- 쾅, 쾅, 쾅!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의 집 현관문 너머로 거친 초인종 소리와 함께 문을 부술 듯한 두드림이 시작되었다.“이유라 씨! 안에 있는 거 다 압니다. 문 여세요!”사나운 사내들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지만, 집 안은 죽은 듯 고요했다. 유라는 거실 한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양손으로 귀를 터질 듯 틀어막고 있었다. 문을 열어줄 생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아무하고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유라는 먼지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절망감 속에서, 문이 부서져라 울리는 소음을 외면하며 더 깊이 웅크려 떨 뿐이었다.터벅, 터벅…….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사내들의 거친 기척과 발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집 안을 집어삼킬 듯했던 소음이 잦아들고, 사방은 다시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 잠겼다. 낯선 남자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 후에야 유라는 겨우 틀어막았던 손을 내리고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온몸의 긴장이 풀려 유라는 제자리에 스러지듯 누워버렸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캄캄해진 밤늦은 시간, 또다시 차가운 정적을 깨고 날카로운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띵동- 띵동-“유라야. 유라야, 안에 있지?”이도현이었다. 병원 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달려온 듯, 도현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유라가 휴대폰을 아예 꺼버린 탓에 온종일 연락할 방법이 없어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던 그였다. 문 너머에서 들리는 도현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집요했다.“유라 문 열어. 안에 있는 거 알아. 휴대폰은 왜 꺼놓은 거야?”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유라는 반사적으로 다시 두 귀를 막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아침에 전신거울 앞에서 제 뒷목을 억세게 움켜쥐던 도현의 폭력적인 손길이, 그리고 귓가에 뱀처럼 속삭이던 잔인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도진에게 어젯밤의 일을 들려주었다며 비틀린 미소를 짓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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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택시를 부르기 위해 숨을 죽이며 휴대폰 전원을 켠 유라는 화면이 켜지자마자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진동에 소스라치게 놀랐다.액정 위에는 김도진과 이도현, 두 사람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빽빽하게 찍혀 있었다. 그 지독한 집착에 소름이 돋았지만, 유라는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택시 앱을 켜서 차를 호출했다.화면에 택시 도착 예정 시간이 뜨자, 유라는 가냘픈 팔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막상 문밖으로 나왔지만 갈 곳 같은 건 없었다. 친척도, 마음 편히 기댈 친구도 떠오르지 않는 처량한 신세였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는 막막함보다,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가장 멀리 도망쳐야 한다는 공포가 유라의 발걸음을 재촉했다.마스크와 모자를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눌러쓴 채 대기 중이던 유라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기사님, 서울역으로 가주세요.”가라앉은 가녀린 목소리로 목적지를 말한 유라는 창밖을 살피며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한편, 사람을 시켜 유라의 집 앞까지 갔음에도 유라를 못 데려온 김도진은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도현은 적막한 거실 소파에 기대 앉아 유라의 휴대폰 위치 추적 앱 화면만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바로 그 순간, 꺼져 있던 위치 추적 화면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며 날카로운 알람음이 울렸다. 유라가 택시를 잡기 위해 휴대폰 전원을 켠 타이밍이었다.“……이유라, 집에 꽁꽁 숨어있었단 말이지? 하.”도진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화면 속 유라의 위치가 빠른 속도로 대로변을 지나쳐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도진은 서둘러 겉옷을 챙겨 입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거칠게 차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과 유라의 위치를 대조하던 도진의 미간이 좁아졌다.“서울역……?유라가 탄 택시가 서울역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한 도진은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그 사이 서울역에 도착한 유라는 캐리어를 밀며 흐트러진 걸음으로 매표소로 향했다. 인파 속에서 숨이 막혀왔지만, 창구 직원 앞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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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바닥에 닿은 그 낯익은 구두를 본 순간, 유라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감히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모자 챙을 더 바짝 내리며 고개를 푹 숙인 채, 캐리어를 옆으로 비틀어 어떻게든 그를 스쳐 지나가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는 유라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정확히 한 걸음 내딛으며 벽처럼 길을 막아섰다.사방이 꽉 막힌 절망감 속에서 유라는 결국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상대는 모자와 마스크, 그리고 짙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단단히 꽁꽁 싸매고 있었다. 평소 대중의 시선을 피해 다녀야 하는 연예인 특유의 철저한 위장이었지만, 유라는 단번에 그가 김도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김도진 특유의 짙은 우드 향 향수가 유라의 마스크 틈새를 가차 없이 뚫고 들어왔기 때문이다.“……!”그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유라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쫓아온 것인지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놀라 굳어버린 유라를 선글라스 너머로 서늘하게 내려다보던 김도진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타인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유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마스크 너머로 닿는 그의 뜨거운 숨결이 유라의 목덜미를 잔인하게 옭아맸다.“여기서 소란 피우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내 차로 따라나와.”도진의 냉혹한 경고에, 캐리어를 꼭 쥔 유라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가지 않겠다고 버텨도 문제였고, 이대로 김도진을 순순히 따라가도 문제였다.유라가 패닉에 빠져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뚝 서 있자, 선글라스 너머로 유라를 서늘하게 주시하던 김도진이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오며 나직하게 읊조렸다.“……내가 여기서 널 들쳐 업고 나가야 정신을 차리겠어?”낮지만 확실한 경고가 담긴 도진의 말에 유라의 전신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유라는 결국 포기한 듯, 무거운 캐리어 손잡이를 쥔 채 도진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분명 여기서 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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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단 두 마디였지만, 주차장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는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유라는 핑 도는 현기증에 가냘픈 손으로 차 문을 붙잡으며, 간신히 정신줄을 부여잡고 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도진의 서슬 퍼런 눈빛에 밀려 그의 뒤를 악착같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할 줄 알았던 도진의 펜트하우스 현관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김도진은 거칠게 모자와 마스크를 소파 위로 신경질적으로 날려버렸다. 그러고는 곧장 주방으로 걸어가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거칠게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과 분노로 잔뜩 날이 선 날렵한 턱선은 무서울 정도로 화가 난 모습임에도 지독 매력적이었다.한편, 유라는 넓고 차가운 거실 한가운데에 갈 곳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가녀린 체구의 유라를 향해, 물을 다 마신 도진이 다가왔다. 그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앉아, 제 앞에 죄인처럼 서 있는 유라를 오만하게 올려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봐.”나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유라의 심장을 난도질했다.“실장한테 보낸 문자 하며…… 지금 어딜 가려고 했던 건지.”도진의 턱끝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의 서늘한 시선이 유라의 잘게 떨리는 입술과 창백한 얼굴에 내리꽂히며 대답을 종용하고 있었다.유라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서 있자, 거실을 채운 침묵은 도진의 인내심을 잔인하게 갉아먹었다. 가뜩이나 하얗게 질려 있던 유라의 안색은 도진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더 투명하게 바래 가고 있었다.말 한마디 뻥긋하지 않고 처량하게 서 있는 유라를 가만히 응시하던 도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그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낮게 읊조렸다.“마스크 벗어.”유라는 도진의 서슬 퍼런 명령에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천천히 벗어 내렸다.마스크가 걷혀 나간 유라의 얼굴은 안 그래도 작고 새하얀 데다 그간의 마음 고생에 살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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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저도…… 저도 그냥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었어요…… 좋아했…….”순간 머리가 핑 돌고 어질한 정신에, 유라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고백—도진을 향했던 그 위태로운 감정을 저도 모르게 내뱉을 뻔했다. 자신이 비참해지면서도 그를 좋아했었노라고 말하려던 바로 그 찰나.띵동— 띵동—!날카로운 초인종 소리가 펜트하우스의 거실을 잔인하게 찢고 들어왔다.소파에 앉아 있던 도진의 미간이 험악하게 구겨졌다.도진이 현관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자, 문밖에는 안절부절못하는 매니저의 모습이 보였다.도진이 거칠게 문을 열자, 그리고 그 뒤로 당당하게 서 있는 여자, 유태희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태희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도진의 미간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매니저가 잔뜩 기가 죽은 채 난감한 목소리로 변명하듯 속삭였다.“저는 분명 안 된다고, 지금 집방문은 절대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급하게 하실 이야기가 있으시다고 집앞에서 기다리고 계셔서 어쩔수 없이……”하지만 유태희는 매니저의 난처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 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도진을 가볍게 밀치며 펜트하우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화려한 높은 굽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당당하게 거실로 들어서던 태희는 서 있는 유라를 발견하고 순간 당황했다. 도진의 한낱 직원인 유라가 왜 이 시간에 도진의 집 한가운데에, 그것도 저런 모습으로 서 있는지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태희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소파 위로 다가가 제 집마냥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도진은 그런 태희를 가당치 않다는 듯 쳐다보며,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무슨 일이야. 용건만 간단히 하고 가.”그 틈을 타, 유라는 도진에게 흘린 눈물과 무너지려던 감정을 감추기 위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가뜩이나 현기증이 나는데 태희까지 들이닥치자 숨이 막혔다.유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며 간신히 자리를 피했다.화장실 안으로 들어와 육중한 문을 닫고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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