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돌이킬수 없는 / Chapter 101 -الفصل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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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فصول

101화

그 시각,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펜트하우스의 거실에는 기묘할 정도의 정적이 감돌았다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롭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차마 말로 다 뱉지 못한 복잡한 감정의 잔해들이었다.이 숨 막히는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도진이었다.도진은 길고 커다란 손으로 헝클어진 새까만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평소의 오만하고 차가운 스타의 아우라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한 여자 앞에서 철저히 무너진 한 남자의 잔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도진은 유라의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난날 제 이기적인 욕망과 소유욕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었던 유라를 향한, 생애 첫 사과였다.“……미안해, 이유라. 널 이렇게 아프게 만들어서.”도진의 목소리는 낮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유라의 발갛게 부어오른 손목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며,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이제 다시는 네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는 일, 아프게 하는 일, 절대로 없을 거야. 약속할게.”이제 더는 상처받게 하지 않겠다며 흔들림 없이 다짐하는 도진의 모습은 뜻밖이었다. 언제나 제멋대로 굴며 차가운 가시를 돋우던 도진의 입에서 나온 다정한 말들은, 유라가 알던 그 김도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투와 눈빛마저 완벽히 달라져 있었다.유라는 도진의 손귀에서 슬그머니 제 손을 빼내며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저는 도진 씨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걸 알아요.”제 처지를 읊조리는 유라의 목소리는 물기 어린 새벽안개처럼 처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탑스타 김도진과, 그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밑바닥에 있는 자신. 그 압도적인 격차가 유라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었다.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려는 유라의 태도에 도진의 눈동자가 짙게 가라앉았다.도진은 물러서려는 유라의 가녀린 손을 힘주어 다시 낚아챘다. 아까처럼 거칠거나 강압적인 손길이 아니었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제 온기를 전부 밀어 넣을 듯 단단하고 묵직한 움켜쥐었다.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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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유라의 피곤함이 가득 묻어나는 안색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도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넓고 고급스러운 욕실 안으로 커다란 욕조에 따뜻한 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뽀얀 수증기와 함께 기분 좋은 온기가 욕실 내부를 가득 채웠고, 새벽내내 찬 바람을 맞아 딱딱하게 굳어 있던 유라의 몸을 녹여주기에 충분할 만큼 따스한 온도가 맞춰졌다.금세 물이 알맞게 받아지자, 도진은 욕실 문을 열고 나와 거실에 앉아 있는 유라에게 다가갔다. 평소의 서슬 푸른 기세는 지워낸 채, 나른하면서도 다정한 눈빛으로 유라를 내려다보며 도진이 말했다.“욕실에 물 받아 뒀으니 들어가서 몸 좀 풀어.”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유라가 조금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도진의 모습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은 염려에 유라의 마음은 다시금 몽글하게 피어올랐다.도진이 받아 둔 물속에 몸을 뉘어 가만히 엎드린 유라는, 금세 온몸이 기분 좋게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찬 새벽 공기에 굳어 있던 뼈마디가 따스한 온기에 녹아내리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이 스르르 풀리며 스스륵 눈이 감길 때쯤이었다.스르륵, 쾅.고요한 정적을 깨고 욕실 문이 열렸다. 깜짝 놀란 유라가 당황해 상체를 바짝 웅크리며 손으로 몸을 가리자, 도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유유히 걸어와 넓은 욕조 가장자리에 가볍게 걸터앉아 유라를 내려다보았다.따뜻한 물열기 때문인지 유라의 새하얀 얼굴은 발그레한 연분홍빛을 띠고 있었고, 뽀얀 수증기 사이로 드러난 하얗고 매끄러운 살결이 유난히 도드라져 돋보였다. 유라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더욱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자, 도진은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다 이내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가차 없이 풀어내며 바닥으로 벗어던졌다.그리고 지체 없이 찰랑이는 욕조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물줄기가 밀려나며 드러난 도진의 탄탄하게 떨어지는 가슴팍과 어깨 실루엣은 그야말로 숨을 멎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도진은 쑥스러워 고개도 못 드는 유라의 가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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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나른하면서도 여전히 열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읊조린 도진이 유라의 가녀린 몸을 제 품에 빈틈없이 가득 감싸 안았다. 자신의 품 안에서 금세 탈진하듯 곤히 잠든 유라의 하얀 이마와 붉게 물든 목덜미에 차례로 입을 맞추며, 그 자그마한 얼굴을 내려다보던 도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낯선 감정이 피어올랐다.지금껏 유라를 향해 품었던 감정이 지독한 소유욕과 거친 집착이었다면, 지금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건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강렬한 보호 본능이었다.그렇게 유라를 자신의 품에 완벽히 가둔 채, 도진과 유라는 오랜만에 찾아온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띠리링, 띠리링—얼마나 지났을까, 침대 머리맡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도진이 먼저 무거운 눈을 떴다. 스케줄을 확인하는 매니저의 전화였다. 전화를 짧게 끊은 도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드레스룸에서 옷을 골라 입으며, 옆에서 부스스 눈을 뜨는 유라에게 낮게 이야기했다.“저녁에 스케줄 있어. 혼자 집에 있지 말고 같이 가.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네, 알겠어요.”도진은 옷을 다 입고 나서 유라의 옷차림을 가만히 뜯어보았다.유라의 얇은 옷차림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는 드레스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제 옷장 깊숙한 곳에서 커다랗고 두툼한 외투 하나를 꺼내왔다.도진은 유라의 작은 어깨 위로 제 체취가 짙게 배어있는 외투를 툭 걸쳐주며 퉁명스럽지만 다정하게 읊조렸다.“입어. 지금 몸 상태 안 좋으니까 찬 바람 맞지 마.”품이 넓은 도진의 외투에 폭 파묻힌 유라의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로 작고 가녀려 보였다. 도진은 그 모습이 못내 마음에 드는 듯 유라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듯 툭툭 치고는 거실로 향했다.띵동—타이밍 좋게 매니저가 도착해 벨을 눌렀다.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온 매니저는 도진의 옆, 그의 옷을 입은 채 서 있는 이유라를 발견하고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눈치를 보였다. 갑자기 그만둔다던 유라가 왜 김도진의 펜트하우스에서, 그것도 도진의 외투를 입고 나타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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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유라에게 신신당부를 한 후, 도진은 서둘러 광고 촬영 세트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라를 홀로 대기실에 두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 탓인지, 도진의 눈빛에는 평소보다 더 날카롭고 강렬한 집중력이 서려 있었다.촬영이 시작되자 도진은 대한민국 최고의 탑스타답게 단숨에 몰입했다.카메라 셔터 소리에 맞춰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매혹적인 표정과 압도적인 아우라는 세트장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냉소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도진의 모습에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은 숨을 죽인 채 지켜볼 뿐이었다.결국 도진은 프로답게 아주 능숙하고 완벽한 포즈로, 단 한 컷 만에 감독의 우렁찬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다.한편 도진이 촬영하러 나가자, 유라는 쌓인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았는지 사정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차 안에서의 짧은 긴장이 풀린 탓도 있었다. 유라는 대기실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테이블에 앉아 엎드려 기대어 스르륵 잠이 들었다.이윽고 촬영을 마치고 서둘러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온 도진은, 널찍한 소파를 두고 굳이 불편한 테이블에 엎드려 아기 고양이처럼 졸고 있는 유라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유라의 몸보다 큰 자신의 외투에 폭 파묻힌 채 웅크리고 있는 유라가 모습이 도진의 눈에 못견디게 사랑스러웠다.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도진이 대기실에 들어옴과 동시에, 다음 일정을 재촉하는 스태프들과 코디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쳐 대기실 안이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도진 씨, 수고하셨어요! 바로 의상 체인지 하실게요!”웅성거리는 소음과 거친 발소리에 유라가 놀란 듯 눈을 번쩍 뜨며 잠에서 깼다. 유라가 당황해 주변을 살피는 사이, 도진의 화려한 촬영 옷을 정리하고 얼굴의 분장을 지워내는 정신없는 시간들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도진은 메이크업을 지우는 와중에도 거울을 통해 잠이 덜 깨 눈을 비비는 유라의 동태를 집요하게 살폈다.마침내 광고 촬영 스케줄이 완전히 끝나고, 도진과 유라는 다시 대기하고 있던 밴 차량에 올라탔다.당연히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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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네, 네! 감독님이 이미 제일 안쪽 VIP 룸으로 잡아두셨다고 합니다. 일반 손님들이랑 전혀 마주치지 않게 후문 전용 엘리베이터로 안내받기로 했습니다.”매니저가 도진의 서슬 푸른 기세에 식은땀을 흘리며 황급히 대답했다.차가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하고 화려한 클럽 건물 후문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쿵쿵거리는 묵직한 베이스 비트 음과 함께 쾌락과 유흥이 뒤섞인 특유의 탁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복도로 새어 나오는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어지러운 조명을 마주하자, 유라는 본능적으로 위축되어 도진의 커다란 외투 깃을 바짝 여미었다.“내 옆에만 붙어있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도진이 제 옆에 잔뜩 긴장한 듯 꼿꼿이 서 있는 유라를 향해 낮게 읊조렸다.어두컴컴한 VIP 복도를 지나 마침내 매니저가 두꺼운 방음 룸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자욱한 담배 연기와 독한 양주 냄새, 그리고 이미 거나하게 취한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와락 쏟아져 나왔다. 룸 안에는 소문대로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사내와 영화 제작사 피디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얽혀 있는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보였다.“어, 김도진! 진짜 오는구나! 탑스타 모시기 참 힘들다, 힘들어!”소파 중심에 비딱하게 앉아 있던 감독이 도진을 발견하고는 잔을 치켜들며 호탕하게 웃었다.“안녕하세요 감독님. 광고 촬영이 생각보다 길어져 늦엇네요.”도진은 인사를 건네면서도, 제 품에 바짝 얼어붙어 있는 유라를 자연스럽게 대동해 룸 안쪽 깊숙한 자리에 앉혔다. 감독의 시선이 도진의 거대한 외투에 폭 파묻힌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라에게로 향했다.“어라? 옆에는 누구야? 새로 온 매니저인가? 얼굴을 다 가리고 있는데도 분위기가 묘하네. 이쪽으로 와서 술이나 한잔 받지?”흥미롭다는 듯 유라를 향해 끈적하고 무례한 시선을 던지는 감독의 행동에, 도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살기등등하게 번뜩였다. 도진은 유라의 앞을 가로막듯 제 넓은 어깨로 그녀를 완전히 가려버리며, 차가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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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유라는 도진을 안심시키듯 옅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무거운 룸 문을 열고 한 발짝 나서자마자, 쿵쿵거리는 시끄러운 클럽 음악 소리가 유라의 귓속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스테이지는 이미 광란에 휩싸여 있었다. 클럽 안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는 것조차 가녀린 유라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리저리 치이고 거칠게 밀리며 간신히 숨이 막히는 클럽 안을 빠져나온 유라는 입구 근처에 주차되어 있을 도진의 차를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다행히 익숙한 밴 차량을 발견했지만, 굳게 닫힌 차 문을 당겨보아도 철컥거릴 뿐 잠겨있었다. 로드 매니저가 어디로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인지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지갑도, 휴대폰도 없이 맨몸으로 나온 유라는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차 밖에서 도진을 기다리기로 했다.번화가의 밤거리는 클럽 내부만큼이나 위태로웠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과 클럽에서 새어 나오는 거대한 음악 소리가 건물 밖에서도 쿵쿵거리며 유라의 심장을 기분 나쁘게 울려댔다.화려한 유흥가 한복판, 어울리지 않는 차림으로 서 있는 유라를 향해 술에 취한 행인들이 힐끗거리며 음침한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다. 불쾌하고 두려운 시선들을 느낀 유라는 급히 마스크를 코끝까지 바짝 올려 쓰고는, 제 몸을 온전히 지켜주듯 짙은 체취를 풍기는 도진의 커다란 외투를 더 단단히 감싸 안았다.화려한 네온사인과 탁한 소음이 뒤엉킨 거리, 도진의 외투를 감싸 안은 채 위태롭게 서 있는 유라의 모습을 저 멀리서 지독하게 응시하고 있는 어둠의 그림자가 있었다.도현이 사람을 풀어 보낸자 들이었다.그들은 이도현의 금전적인 도움을 받아 막강한 정보력을 이용해 유라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금세 알아낼 수 있었고, 오늘 저녁 광고 촬영장부터 도진의 밴 차량을 은밀하게 미행하며 뒤를 밟고 있었다.틈도 없이 탑스타 김도진의 삼엄한 경호 속에 있던 유라였기에 기회를 엿보던 차였다. 하지만 이 시끄러운 클럽 골목 한복판에 혼자 남겨진 유라의 모습은, 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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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쾅, 하고 거칠게 차 문이 닫혔다. 의식을 잃고 까무러친 유라의 가녀린 몸이 뒷좌석 시트 위로 힘없이 축 늘어졌다.“출발해.”어둠의 그림자를 태운 검은 차량은 미련 없이 액셀을 밟으며, 쿵쿵거리는 클럽의 소음을 뒤로한 채 유라를 싣고 순식간에 강남의 밤거리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리고 바로 그 시각, 룸 안에서 나갈 타이밍을 보고 있던 도진은 로드 매니저가 룸안으로 들어오자 미간을 찌푸렸다.“왜 전화 안 받아? 이유라는 어쩌고?”도진의 전례 없는 폭압적인 기세에 매니저는 겁에 질려 어안이 벙벙해졌다.“아, 저…… 화장실을 잠깐 다녀오느라 못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유라 씨가 차에 갔나요? 차 문 잠겨 있을 텐데…… 제가 가서 확인해 볼게요.”매니저의 말에 도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도진의 서늘한 표정에 서둘러 밖에 나가 주위를 살펴보던 도진의 매니저는 유라가 걸치고 있던 도진의 점퍼가 차가운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불길한 예감에 황급히 주위를 샅샅이 살펴봤지만, 유라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블랙박스를 돌려보던 매니저는 화면을 확인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면 속에는 유라가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거칠게 들쳐메여 끌려가는 충격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매니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급히 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큰일 났어요! 유라 씨 납치당한 것 같아요! 우선 빨리 경찰에 신고 할게요!!”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매니저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도진의 고막을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그 순간 도진의 이성은 날카롭게 끊어져 버렸다.전화를 받자마자 룸을 박차고 나온 도진은 미친 사람처럼 어두운 골목길 주위를 살폈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자신의 점퍼였다.“어떻게 된 거야?!”도진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억누르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그는 하얗게 질려 있는 매니저에게 다가가 밴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함께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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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한편, 차 안에서 의식을 잃었던 유라는 서울을 벗어나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운 한적한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며 유라는 간신히 희미하게 눈을 떴다. 하지만 사방은 여전히 덜컹거리는 차 안이었다. 불길한 예감에 유라가 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손목과 발목은 거친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어 몸을 미동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살려주세요…….”유라가 겁에 질려 나지막이 읊조리자, 앞좌석에 앉아 있던 사내 중 한 명이 백미러로 유라를 보며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아, 일어났어? 생각보다 안 깨어나길래 불안했는데, 다행이네.”“살려주세요……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유라가 떨리는 숨을 들이켜며 있는 힘을 다해 애원하자, 사내는 백미러 너머로 비열하게 눈꼬리를 접었다.“가보면 알아. 우리도 덕분에 조만간 큰돈 좀 만지게 생겼거든.”한참을 더 거칠게 달리던 차는 이윽고 외딴곳에 숲속 깊이 숨겨진 어느 고급 별장의 차고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섰다.차가 멈춰 서기가 무섭게, 사내 중 한 명이 뒷좌석 문을 열고 유라를 가뿐하게 들쳐업었다. 그리고는 어두컴컴하고 거대한 고급 별장 내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내려주세요…… 제발 보내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유라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눈물을 쏟아내며 비참하게 애원했지만, 사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넓은 소파 위로 유라의 몸이 툭 던져지듯 내려앉았다. 유라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웅크린 순간, 고요한 별장 안을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2층 계단을 타고 느릿하게 내려오는 정적이고 묵직한 발소리였다.소파에 묶여 쓰러져 있던 유라가 공포에 질린 채 겨우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순간, 멀리서 걸어오는 너무나 익숙한 실루엣이 그녀의 눈동자에 박혔다.“도현…… 오빠……?”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도현이었다.이도현은 유라의 부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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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목이 메어 가늘게 떨리는 유라의 목소리에도 도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안의 일그러진 광기를 쏟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유라의 숨결이 닿을 만큼 얼굴을 바짝 밀착한 도현이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넌 절대 날 벗어날 수 없어, 유라야.”“내 말만 잘 들었으면 이럴 일이 없잖아.”도현이 서늘하게 내뱉었다. 조각같이 뚜렷하고 차가운 인상의 그의 얼굴이 유난히 더 시리게 굳어 있었다.도현은 마침내 유라의 목덜미를 쥐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주방 쪽으로 걸어가 물 한 컵을 가득 채우더니 거칠게 들이켰다. 그의 목줄기를 타고 차가운 물이 사납게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물기를 거칠게 닦아낸 도현은, 소파 위에 힘없이 누워있는 유라를 가만히 응시했다.그를 벗어나기 위해 끈을 풀려고 얼마나 버둥거렸는지, 유라의 가느다란 손목은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거친 매듭에 쓸린 살갗에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새하얀 손목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그 핏자국이 거슬렸던 것일까. 도현이 다시 유라에게 다가왔다. 그는 유라의 상처 난 손목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그녀의 손과 발을 단단히 묶고 있던 끈을 하나씩 풀었다.억눌려 있던 끈이 풀려나가자, 짓눌렸던 살점 위로 뒤늦은 통증이 사정없이 밀려왔다.“아…….”유라의 입술 사이로 아픈 신음이 터져 나왔다.도현이 아파하는 유라의 손목을 다시 잡으려 하자, 유라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려 피하며 상처투성이가 된 손목을 제 등 뒤로 깊숙이 숨겼다. 손끝 하나조차 도현과 접촉하기 싫다는 온몸으로 하는 거부 표현이었다.자신을 노골적으로 밀어내는 유라의 태도에 도현의 이성이 다시 한번 차갑게 뒤틀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도현은 등 뒤로 숨긴 유라의 연약한 팔을 거칠게 잡아당겨, 제 품 앞으로 유라를 강하게 끌어당겼다.“이유라, 반항하지 마. 더 이상은 안 봐줘.”화가난 도현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자비도 없었다. 이미 눈앞의 사내는 유라가 과거에 알던 그 자상하고 따뜻했던 도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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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도현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채 힘없이 쓰러져 있는 유라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가녀린 그녀의 몸을 가볍게 안아 들고 점차 걸음을 옮겨, 침실로 향했다.침실 침대 위에 유라를 조심스레 눕힌 도현은 구급상자를 가져왔다. 버둥거리느라 살점이 파이고 피가 맺힌 유라의 가느다란 손목. 도현은 그 상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약을 바르고 하얀 붕대를 감아주기 시작했다.지독하게 망가진 소유욕 속에서도, 유라가 아픈 것은 견딜 수가 없다는 듯 도현은 붕대가 감긴 유라의 손목에 가만히 입술을 묻었다. 흰 붕대 위로 그의 뜨거운 숨결이 잔인하게 내려앉았다.“……왜 자꾸 날 미치게 만들어, 유라야.”도현은 나직하게 읊조리며 누워있는 유라의 새하얀 얼굴을 한동안 눈에 담았다.방에서 나온 도현은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로 내려왔다. 그는 주방에서 독한 위스키를 꺼내 잔에 가득 따르고는, 거실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았다.얼음도 넣지 않은 알코올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타들어 가는 듯한 뜨거운 열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하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서늘한 공허함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잔을 쥔 도현의 손끝이 유독 차가웠다.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자신이 유라에게 저지른 잔인한 행동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이제 되돌릴 수 없었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버렸다.소파에 기대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도현은 피식, 서글픈 실소를 터트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제 표정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자신이 봐도 낯설고 지독한 악마 같은 모습이었지만, 신기하게도 후회는 들지 않았다. 유라를 제 곁에 묶어둘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도 상관없었다.그 시각, 집 안에 갇혀 있던 도진은 유라의 행방을 찾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온 인맥을 동원해 뒤를 수소문하고 있었다.머릿속을 가득 채운 인물은 단 한 명, 유라에게 유난히 집착해 대던 이도현이었다. 폭발하기 직전의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도진은 손이 떨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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