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유라의 텅 빈 방 안 덩그러니 남겨진 도현은 통화가 끊긴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기계적인 안내음뿐이었다.‘고객께서 전원이 꺼져 있어…….’“하…….”도현의 입술 사이로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언제나 제 말 한마디면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유라였다. 그런 유라가 제 손으로 전화를 끊고, 급기야 전원까지 차단했다.쾅─!도현이 거칠게 벽을 내리쳤다. 주먹 위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지만, 분노로 뒤덮인 도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김도진.. 개새끼가…… 자꾸 나를 이렇게까지 만든다 이거지.”유라에게 건넸던 애타는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도현의 음성에는 맹독 같은 살기가 짙게 뱀처럼 뿜어져 나왔다.유라는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듯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며, 한참 동안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긴장이 탁 풀리자 밀려드는 정신적 피로감에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이후, 유난히 잠이 많아진 유라였다. 마치 뇌가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의 스트레스를 잠이라는 도피처로 해결하려는 듯, 유라는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그 시각, 화려한 조명과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가는 광고 촬영 현장.도진은 프로답게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지만, 세트가 변경되는 막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가운을 걸치며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의 긴 손가락이 거침없이 유라의 번호를 누르고 귀에 가져다 대는 순간, 차가운 안내음이 흘러나왔다.‘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도진의 미간이 단숨에 팍 구겨졌다.불길한 예감이 스치자마자 도진은 지체 없이 경호실장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통화가 연결됐다.“이유라, 어디 나갔어?”낮게 가라앉은 도진의 목소리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 수화기 너머 경호실장이 신속하게 대답했다.[아닙니다, 집에 계십니다.]“……그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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