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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チャプター

160화

속을 꽉 채우는 도진의 묵직하고 뜨거운 마찰감에 유라는 비명을 지르듯 신음을 내뱉으며 도진의 목덜미를 가녀린 두 팔로 터질 듯 꽉 끌어안았다. 도진은 유라의 허벅지를 제 허리에 단단히 감아올린 채 유라의 안을 거침없이 헤집기 시작했다.“하아…… 읏, 아……!”숨이 가쁘게 얽히고설키며 두 사람의 뜨거운 신음이 빈틈없이 방 안을 메웠다.서로를 그토록 원하고 애태우던 격렬한 행위가 끝나고, 마침내 방 안에는 가쁜 숨소리만이 아련하게 가라앉았다.도진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유라를 제 품 안으로 조심스럽게 당겨 꼭 껴안았다.자신의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유라의 작은 몸을 한층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도진이 낮게 속삭였다.“사랑해, 이유라…….”심장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진심 어린 고백이었다.도진의 그 따뜻한 한마디에, 유라는 그토록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던 불안정하고 조각나 있던 감정들이, 도진의 깊은 품 안에서 비로소 고요하고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사랑해요....”유라는 나지막히 도진에게 속삭였다.서로의 심장 박동을 나누며 온전한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마침내 지독했던 악몽을 뒤로하고 달콤한 안식을 맞이하는 듯했다.하지만 두 사람의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띠리릭, 띠리릭─.새벽녘, 고요한 펜트하우스의 정적을 깨고 도진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액정 화면 위로 비서의 이름과 함께 다급한 메시지들이 쉴 새 없이 팝업창을 덮었다.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 메인은 이미 두 사람을 표적으로 삼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도배되어 있었다.[단독] 탑스타 김도진의 진짜 연인은 유태희가 아니었다? 베일에 싸인 진짜 여인은 누구[충격] ‘완벽남’ 김도진의 은밀한 사생활… 일반인 여성 ‘이 모 씨’와의 동거설 실체김도진, 일반인 여성 감금? 연예계 뒤흔들 메가톤급 스캔들마치 거대한 덫이 유라와 도진의 숨통을 조여오듯, 자극적이고 악의적인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졌다이 지저분한 폭로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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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도진은 거짓 기사가 번지기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반박 자료를 배포하고 수습 기사를 냈지만, 대중은 이미 자극적인 가십에 눈이 멀어 진실을 전혀 믿어주지 않았다. 이때다 싶은 언론사들은 조회수를 더 늘리기 위해 더 악의적이고 자극적인 찌라시를 공장처럼 찍어냈고,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도진이 메인 모델로 활약하던 대기업 광고주들로부터 계약 해지와 위약금 청구 압박이 들어왔고, 현재 촬영 중인 대작 드라마의 제작사마저 하차 요구를 빗발치게 받으며 도진의 캐리어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탁!정적이 흐르는 소속사 대표실. 소속사 대표가 태블릿 PC를 탁자 위로 거칠게 내던졌다. 대표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김도진, 너 대체 어쩌려고 이래? 반박 기사고 뭐고 대중들은 이제 들으려고도 안 해! 남의 여자 빼앗은 파렴치한으로 낙인찍혔다고!”도진은 창밖을 바라보며 깊게 담배 연기를 뱉어낼 뿐,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태연한 태도에 대표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지금 들어와 있는 광고 서너 개는 이미 브랜드 이미지 타격 운운하면서 소송 걸겠다고 난리야. 오늘 아침엔 드라마 제작사 대표한테 직접 전화 왔어. 이번 주 촬영 분량부터 네 분량 다 들어내고 대본 수정하겠단다. 사실상 퇴출이야, 임마!”“…….”“도진아, 제발 정신 좀 차려. 여자 하나 때문에 네가 평생 쌓아 올린 커리어를 다 시궁창에 쳐넣을 셈이야? 언론에 그냥 발표하자. 그 여자 정신 불안 증세 있고,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돈을 노리고 너한테 접근한거라고!”지금 상황에서는 유라를 철저히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불쌍한 여자’, 그리고 돈을 노리고 접근한 악질적인 ‘꽃뱀’으로 위장해야만 도진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세간의 비난 화살을 온전히 유라 한 사람에게 돌려 희생양으로 삼는 것. 그것이 탑스타 김도진을 이 더러운 진흙탕에서 단숨에 건져낼 유일한 탈출구였으니까.“도진아, 넌 알고 있잖아! 대중들은 자극적인 마녀사냥에 미쳐 있어. 그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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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도진의 눈을 피해 유라를 따로 불러내 조용히 이야기 하던  매니저의 목소리는 지독하리만치 차분하고 현실적이었다. ‘그럼 모든 화살은 유라 씨에게 향하겠지만, 그래도 유라 씨는 공인이 아니라 금방 잊힐 거예요. 하지만, 도진씨는 달라요. 이번 일로 무너지면 다신 복귀 못 해요. 유라 씨가 도진 씨를 정말로 생각한다면……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래, 자신은 어차피 이 화려한 세계의 이방인일 뿐이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악의에 찬 수군거림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질 먼지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김도진은 달랐다. 그는 저 높은 곳에서 언제나 빛나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니요, 제가 지금 경찰서 갈게요.” 유라가 도진의 옷소매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가서 다 이야기할게요. 기사에 나온 거 전부 다 이도현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도진 씨와 저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말할게요.” 유라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제가…… 제가 도진 씨 너무 좋아해서 멋대로 쫓아다닌 거고, 도진 씨는 그냥 불쌍한 저를 동정심에 몇 번 만나준 것뿐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대중들도 믿어줄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이유라.” 참지 못한 도진이 거칠게 유라의 말을 가로막았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체. 그만해. 너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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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화

유라는 아무 말 없이 도진의 넓은 품 안에서 눈을 꼭 감았다. 심장이 아릿하게 저려왔지만, 그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길에 후회는 없었다.그리고 다음 날 아침.기사는 유라가 의도한 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인터넷 세상을 집어삼켰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은 온통 붉고 강렬한 헤드라인으로 도배되어 있었다.[단독] 탑스타 김도진, 알고 보니 악질 ‘꽃뱀’에게 당했다? 충격적 전말[이슈] 김도진을 파멸로 몰고 간 여인은 누구? 정신 이상 증세까지 보인 이 모 씨[비하인드] 김도진, 동정심에 도와준 스토커에게 발목 잡혔나… 흉악한 폭로의 진실기사는 기획사의 발 빠른 대처가 맞물려 완벽한 소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도진은 하루 아침에 선의의 피해자로 둔갑해 있었다.거기에 대중들의 말동무를 자극할 가장 치명적인 미끼가 하나 더 던져졌다.[속보] 김도진의 진짜 연인은 유태희! ‘유태희도 이 모든 내막 알고 있었다’교묘하게 왜곡되었던 두 사람의 키스 사진은 ‘악질 꽃뱀에 시달리던 도진을 위로하던 연인 ’유태희‘ 라는 눈물겨운 프레임으로 재해석되었다.기사는 순식간에 김도진과 유태희의 눈물겹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불쌍한 꽃뱀을 어떻게든 조용히 감싸주려 했던 두 사람의 깊은 속내와 배려가 세상에 드러났다는 식이었다.여론은 무서운 속도로 반전되었다. 유태희의 악성 팬들조차 이번 기사를 보고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었다.‘유태희 진짜 다시 봤다. 저런 막장 스토커까지 품어주려고 했다니 천사가 따로 없네.’‘김도진도 피해자였어. 둘이 진짜 눈물겹다. 이 사랑 응원함.’댓글창은 두 사람을 향한 찬사와 동정론으로 가득 찼고, 유태희와 김도진의 이미지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유라보다 먼저 잠에서 깬 도진은 습관처럼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피곤함이 섞인 한숨을 내쉬며 포털 뉴스를 켠 도진의 눈동자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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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화

툭, 하고 통화가 끊기는 소리와 함께 서재 안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돌았다. 도진은 붙잡고 있던 휴대폰을 책상 위로 팽개치듯 내려놓고 유라를 쳐다봤다. 그의 짙은 눈동자에는 겉잡을 수 없는 분노와 깊은 상처가 뒤섞여 잔뜩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유라, 이리 와 봐.” 낮게 가라앉은, 그러나 뼈가 시릴 만큼 차가운 명령조의 목소리였다. 유라는 도진의 싸늘한 모습에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의 바로 앞에 섰다. 도진은 유라의 가녀린 어깨를 부서질 듯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한 줄이나 알아?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도진의 다그침에 유라는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도진을 응시했다. 이미 밤새도록 수천 번도 더 삼켜냈던 말들이었다. “그게…… 저는 잃을 게 없지만, 도진 씨는 아니잖아요. 도진 씨뿐만 아니라 유태희 씨도 그렇고…… 도진 씨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이런 기사 하나 때문에 다 같이 무너지면 안 되잖아요.” “이유라!” “전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유라는 아무렇지 않은척 도진의 앞에서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침에 기사 보니까…… 뭐, 틀린 말도 아니더라구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맞고, 불쌍한 것도 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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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화

이도현의 머릿속은 오직 하나, 어떻게 하면 김도진이라는 존재를 완벽하게 짓밟고 끌어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도진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기세였다.그렇게 어느덧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뜨거웠던 대중들의 관심도 겉으로는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유라의 일상은 완전히 멈춰 서 버렸다. 기사가 나간 그날 이후, 유라는 도진의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유라의 행방을 샅샅이 뒤지는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이 도진의 집 앞에 24시간 진을 치고 상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유라는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도진의 집 안에서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었다.인터넷 화면을 가득 채운 자신의 과거 사진들과 쏟아지는 자극적인 악성 기사, 그리고 차마 눈으로 읽기조차 힘든 잔혹한 댓글들. 그것은 형체도 없이 유라의 목을 조르는 가장 잔인한 폭력과 같았다.매일 아침 습관처럼 언제쯤 이 지독한 기사들이 사그라들까 싶어 화면을 내려보던 유라가 찌릿하게 밀려오는 아랫배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며칠 전부터 아려오던 배였지만, 유라는 그저 생리할 때가 다 되었거나 지독한 스트레스 때문이라 여겼다.하지만 오늘따라 밑배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은 이전과 차원이 달랐다. 서서히 강도를 더해가는 알싸한 통증에 유라의 이마에는 몽글몽글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걷기조차 힘든 통증에 스케줄을 소화하러 나간 도진에게 연락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도진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결국 혼자 병원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은 유라는 푹 눌러쓸 모자와 마스크를 챙겼다. 혹여라도 얼굴이 드러날까 커다란 후드티의 모자까지 겹쳐 쓰고, 조심스럽게 집을 나섰다.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내내 아랫배를 감싸 움켜쥔 유라의 손끝이 아릴 만큼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큰 길가로 나와 겨우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탄 유라는, 뒷좌석에 몸을 묻자마자 차마 참지 못한 야위어진 신음을 내뱉었다.“손님, 괜찮으세요? 어디 편찮으신가 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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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유라가 깊은 충격과 혼란에 빠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간호사의 안내로 초음파실 침대에 눕게 되었다.유라의 질 속으로 기구가 들어가며 이내 모니터 화면에 까만 음영이 떠올랐다. 의사가 화면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 중앙에 아주 조그맣고 동그란 아기집이 유라의 눈에 들어왔다.“여기 보이시죠? 아기집이 아주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리 잡았네요. 다음 주에 오시면 자그마하게 뛰는 심장 소리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화면 속 조그마한 점을 바라보는 순간, 유라의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손에 쥔 작은 초음파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며 병원 문을 걸어 나오는 유라의 발걸음은 무거우면서도 위태로웠다. 제 몸속에 온전한 하나의 작은 생명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지만, 가슴을 채운 경이로움도 잠시, 마음 한구석에서 짙은 불안감이 먹구름처럼 밀려들었다.‘도진 씨에게…… 이 사실을 말해도 될까?’한참 잘나가는 최고 위치의 탑스타, 김도진이 자신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과연 순수하게 기뻐해 줄 수 있을까.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가슴이 서늘하게 식어내렸다. 도진의 가족들이 자신 같은 배경을 가진 여자를 반길 리 만무했고, 세간에서는 틀림없이 '아이를 빌미로 덜컥 임신해 탑스타의 발목을 잡은 몰염치한 여자'라며 더한 비난을 퍼부울게 뻔했다. 가뜩이나 자신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도진에게, 이 아이의 존재는 축복이 아니라 더 무거운 짐이자 족쇄가 될게 뻔했다.유라는 초음파 사진을 꼭 쥐었다가, 이내 혹여라도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운 듯 후드티 주머니 깊숙이 숨겨 넣었다.자신처럼 부모 없이 외롭게 자란 아이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제 몸속에 찾아온 이 작은 생명만큼은 온전한 사랑 속에서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한참 잘나가는 탑스타인 도진에게 자신의 존재는 이미 커다란 오점이자 짐이었다. 여기에 임신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라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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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괜찮은 거야? 진짜 괜찮아? 다시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괜찮아요…… 아까 낮에 병원 다녀왔잖아요. 그냥 갑자기 체기가 올라와서 그래요.”“감기약은 어디 있어? 일단 약부터 먹자.”도진의 무심한 한마디에 유라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아까 낮에 감기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실제로 타온 감기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유라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 약을 어디에 뒀지…… 아까 병원 다녀와서 주방에 둔 것 같은데……”갑작스러운 도진의 추궁에 당황한 유라가 시선을 피하며 횡설수설하자, 도진은 곧바로 주방 상부장과 식탁 위를 샅샅이 뒤지며 약봉지를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나올 리 만무한 약에 도진의 미간이 점차 좁아졌다. 한참을 찾아 헤매던 도진이 유라를 돌아보며 물었다.“유라야 여기에 둔 거 맞아?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아…… 아까 정신이 없어서 어디 딴 데 뒀나 봐요. 근데 저 진짜 이제 괜찮아요.”유라는 도진의 시선을 피하며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속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게워냈더니 좀 괜찮아졌어요. 약은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요.”유라는 최대한 담담한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진짜 안 먹어도 돼? 감기약은 제때 먹어야지.”“약 먹었다가 괜히 속 더 뒤집히면 힘들 것 같아서요..... 정말 괜찮으니 걱정 마세요..”도진은 여전히 찝찝한 표정이었지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유라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어깨를 감싸 안았다.“알았어. 오늘은 일단 쉬자. 내일 아침에도 안 좋으면 그땐 나랑 같이 병원 가는 거야, 알겠지?”“네……”도진의 품에 안긴 유라는 그의 가슴에 뺨을 묻은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이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목구멍 끝까지 슬픔이 턱턱 차올랐다.몸이 좋지 않은 데다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탓일까, 유라는 침대에 눕자마자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샤워를 마치고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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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얼마 지나지 않아 적막을 깨고 벨 소리가 울렸다. 문을 열자 숨을 헐떡이는 매니저가 서 있었다. 도진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외투를 걸친 유라는 차마 떼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차는 도로를 내달려 순식간에 병원 앞에 도착했다. 도진의 전담 주치의가 기다리고 있는 프라이빗 진료실로 안내받은 유라는 긴장으로 바짝 마른 입술을 짓씹으며 검사실로 들어섰다.하지만 첫 검사부터 커다란 난관이 찾아왔다.기본 검사를 마친 뒤 흉부 엑스레이 촬영을 준비하던 방사선사가 유라를 향해 무심하게 물었다.“이유라 씨, 혹시 임신 가능성 있으신가요?”갑작스러운 질문에 유라는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 굳어버렸다. 입술만 벙긋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유라를 보며,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혹시라도 임신 가능성이 있으시면 배를 가리고 촬영해야 해서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실까요?”“네……”유라의 입술 사이로 들릴 듯 말 듯한 대답이 새어 나왔다. 자신 때문에 혹시라도 아이에게 나쁜 영향이 갈까 차마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하는 동안, 유라는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꼭 쥐며 나지막이 물었다.“저기…… 혹시 제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보호자에게 비밀로 해주실 수 있나요?”갑작스러운 부탁에 간호사는 의아한 눈빛으로 유라를 바라보았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유명 연예인 도진과 어떤 관계인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는 듯했지만, 이내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하게 답했다.“음, 그건 저희 쪽에서 임의로 숨겨드리기는 어려워요. 검사가 다 끝나고 담당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실 때 직접 말씀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자, 찍습니다. 숨 크게 들이마시고 참으세요.”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흉부 엑스레이 촬영은 금세 끝이 났다. 이어 피검사를 비롯해 각종 검사를 차례로 마친 유라는 옷을 갈아입고 검사실 밖으로 나왔다.아침부터 빈속이었던 데다 긴장 속에 여러 검사를 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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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화

주치의의 긴 설명이 끝나고 진료실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도진은 단 한마디 입을 열지 않았다.슬픔과 미안함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유라는 꾹 눌러 참았다. 차마 도진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조차 나지 않아, 유라는 병원을 나서는 내내 숙인 고개를 끝내 들지 못했다.차에 올라탄 도진의 반응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집으로 향하는 내내 차 안에는 숨 막히는 정적만이 감돌았다.도진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그의 차가운 옆모습은 낯설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도진의 차가운 옆모습에 유라는 가녀린 몸을 더욱 말아 웅크렸다. 스쳐 지나가는 창밖의 어두운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유라의 손가락 끝이 불안하게 마구 짓눌렸다.차 안을 짓눌러 오는 이 무거운 침묵이 마치 마지막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펜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도진은 유라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냉수를 컵 가득 따라 한 번에 들이켰다.차갑게 굳어 있는 그의 등 뒤에서, 유라는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꼭 쥔 채 참아왔던 목소리를 내어놓았다.“…… 이 아이로 발목 잡을 생각 전혀 없어요.”차가운 정적 속에서 유라의 떨리는 음성이 서글프게 울려 퍼졌다.“제가…… 제가 떠날게요.”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물컵을 내려놓는 도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식탁 위에 '탁' 소리를 내며 놓인 유리컵 주변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이유라.”낮게 가라앉은 도진의 목소리가 펜트하우스의 차가운 공기를 갈랐다. 천천히 몸을 돌려 유라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참아왔던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넌 정말…… 나한테 비밀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이야기하기로 했잖아!”억눌렸던 도진의 소리가 결국 거칠게 터져 나왔다. 화가 잔뜩 난 그의 목소리에는 서운함과 울분, 그리고 속을 태우던 애타는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도대체 이렇게 큰 일을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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