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동쪽에 핀 연꽃 : 서녀무사전: Chapter 101 - Chapter 110

135 Chapters

101화. 포기할 수 없어.

영도는 연화와 헤어진 이후 단 한순간도 그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차라리 연화와 겸이 연인이라 여겼을 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두 사람사이에 풍기던 그 애절하고, 간지러운 분위는 누구도 끼어들 수 없게 만들었고,그저 무력하게 지켜보게 만들 뿐이었다.연화가 자신의 여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에, 희망도 없으니 고통도 없었.그러나… 연화가 겸을 떠났다는 그 사실이, 희망이, 잡초처럼 자라나고 있었다.머리는 알고 있다.그녀 하나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며, 그것을 그녀가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것도.하지만 그 일 푼의 희망이 그를 그녀에게서 놓아주지 않았다.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그녀에 대한 연모가 걷잡을 수 없이 그를 흔들고 있었다.그녀와 헤어진 후 사흘 동안, 그녀를 포기하기 위해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쉴 새 없이 몸을 굴렸고, 퇴청도 않고 궁 안에 머물며 일만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릿속을 지배해 버린 그녀를 떨쳐내지 못했다.잊으려 할수록 그녀의 존재는 그 안에 단단히 자리를 잡아갔다.그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했다.그가 모든 것을 비치고자 했던 그의 주군 마저 져버려야 할 만큼,커져가는 그녀에 대한 욕망은 통제를 벗어나고야 말았다.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생각은 깊었지만, 실행은 한순간이었다. 그는 궁을 빠져나가 곧장 홍양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번뇌를 벗어난 발걸음은 가벼웠다.그녀를 향한 발걸음이 실행된 순간,영도는 그녀가 이미 떠났을까 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고 그는 어느새 달려가고 있었다.그가 홍양의 집에 도착하여 들어섰을 때는, 역시나 이미 그녀가 떠난 뒤였다.“연화는 이미 떠났다.”“언제요? 어디로 갔습니까?”“…”“말씀해 주세요. 스승님!”“오늘 아침 일찍 떠났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난 아이다. 그 아이를 그냥 놔달라, 전하께 전해드리거라.”“전하의 명이 아닙니다. 제가… 제가 그 아이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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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첩실이라도 되어 드릴까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너를 놓치는 줄 알았다.”연화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모든 마음의 정리는 마치고 나선 길이었다.“여기까지 어찌 오신 겁니까?”“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너를 설득하기 위해 달려왔다.”“저는 다 말씀드렸습니다. 더는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어서 돌아가세요.”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려는 연화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돌려세웠다.“그때는 네가 무너지는 모습을 견딜 수 없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나 또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저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서 전하 곁으로 돌아가세요. 부탁입니다.”“알고 있다. 네 마음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렇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내 욕심이라고 해도 좋다. 한 번만 더 네게 기회를 달라 떼를 써볼 작정이다.”맹목적이고 간절한 그의 모습에서 연화는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우리는 서로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로 인한 슬픔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역시…“아시잖아요. 대장도… 저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도저히 그렇게 포기가 안 되는걸…”“제가 대장님을 받아들이고 설사, 전하께서 용서하신다고 해도요. 그다음은요? 그 뒤는 어쩌시렵니까?”“……”영도는 눈앞의 괴로움에 몰두되어 있었다. 그 이후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대장 또한 명문가의 자제가 아니십니까? 잊으셨나요? 저는 엄밀히 말하면 사대부가의 자제가 아닙니다. 천한 서녀이고 그저 양인의 신분일 뿐입니다. 제가 홍양대감을 아버지라 부른다 하여 양반이라 생각하셨나요?""!""이제 어쩌시렵니까?”“……”“제가 좋다 하면 어쩌시려고요? 저를 첩실로 들이실 생각이셨습니까?”“첩이라니! 아니다! 그건…”“그럼요? 아니면 평생을 도망 다니는 죄인으로 살려하셨나요?”“너만 좋다면, 평생 그렇게 살아도 좋다.”제가 아는 남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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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마지막 인사

“소나기 같으니 잠시만 기다리면 다시 해가 뜰 겁니다.”“ 그래...”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찬 공기가 스미는 동굴 안에 젖은 채로 앉아있던 연화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추우냐?”“조금요... 곧 그치겠죠. 그럼 금방 또 따뜻해질 겁니다.”연화의 떠는 모습을 본 영도는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와 낙엽들을 모아 불을 지폈다.몸과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들 사이의 갈등이 사라지자 두 사람은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그러나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몰랐고, 이내 날이 어두워졌다.“아무래도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떠나야 할 듯하구나.”“!”밤새 그와 단둘이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연화의 마음이 불편해졌다.더군다나 자신을 마음에 둔 사내와 함께라니…그녀가 대답 없이 입만 우물쭈물하자, 영도가 눈치 있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걱정 말아라. 내가 아무리 너를 연모한다 해도, 싫다는 여인을 어찌하는 그런 파렴치한 놈은 아니다.”“알고 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그럼,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이 비 오는 산길을 나 혼자 내려가길 바라는 것이냐? 매정하구나.”“아니요! 아닙니다…”"그럼 됐다! 그나저나 배가 고프진 않아?"꼬르륵- 민망한 소리에 연화가 봇짐에서 주먹밥을 꺼냈다.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과거 이야기를 나누며, 주먹밥을 나눠 먹었다.날은 이미 깊어졌고, 시간은 더디 흘렀다.하지만, 어느덧 졸음이 밀려오고, 두 사람은 어느새 스르르 잠에 들었다.아침 햇살이 낮게 스며들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먼저 눈을 뜬 것은 영도였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연화의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처음이었다. 이렇게 하염없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것은.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는 앳되고 발그레한 모습은 사라지고,어느새 여인이 되어 있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마음의 동요가 일었다.그녀는 피곤했는지 여전히 미동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너는 내가 옆에 있어도 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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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그래도 지아비.

헐레벌떡 대전 안으로 들어오는 명화를 먼저 발견한 건 상선이었다.“귀인 마마 처소의 나인이 아니냐?”“예, 상선 어른. 다름이 아니라 오늘 저녁 주상 전하의 일정이 어찌 되시는지요?”“전하께서는 늘 늦게까지 정무를 보신 뒤, 주안상을 들고 술을 드신 후에야 침소에 드신다.”“그렇다면 오늘 저녁, 정귀인 마마께서 찾아뵈어도 되는지 여쭤봐 주시겠습니까?”상선은 요즘 들어 부쩍 말이 없고, 멍하게 허공만 바라보는 왕의 모습이 떠올랐다.임금이 지금 어떤 심정으로 버티고 있는지 알고 있는 그로서는,이 나인의 청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귀인의 청을 제 선에서 거절하는 것 또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그래, 그러마. 지금 전하께서 바쁘시니 여쭤보고 기별을 넣으마.”“아닙니다. 제가 직접 듣고 가야 하기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어쩐지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나인의 행동에 상선은 그러겠노라 대답했다.명화는 상선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쳐다보며, 자리를 지켰다.빨리 대답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분명 정귀인의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상선이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아 상선이 명화에게 다가왔다. 명화는 상선을 발견하자 빠르게 다가갔다.“상선 어른!”“그래, 술시(19시~21시)에 드셔도 좋다 하셨다.”“예, 감사합니다. 상선 어른.”명화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정귀인의 처소로 향했다.명화가 들고 온 기쁜 소식에 정귀인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길이 없었다.시간은 참 더디게도 흘렀다.그날 밤, 정귀인은 참으로 오랜만에 몸단장에 한껏 신경을 썼다.“아직이냐? 아직도 시간이 되지 않았어?”“이제 일어나셔도 될 듯합니다.”“그래. 빨리 전하께 가봐야겠다.”“예, 마마.”기대 반, 설렘 반, 긴장이 얽힌 마음으로 정귀인은 겸의 침전으로 향했다.정귀인은 왕의 침전 앞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긴장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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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처절한 몸부림.

“아니, 저... 전하.” “술까지 들어가니 더 피곤하군.” 마음속 어딘가에 접어 두었던 자존심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불쑥 솟구쳤다. 그러자 분노가 치솟으며 언성이 높아졌다. “전하! 정말 너무하십니다. 어찌 소첩에게 그리 모질게 대하십니까? 가례를 올린 지 몇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찾지 않으셨습니다. 소첩이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까지 하십니까? 정말 너무하십니다!” “그대의 잘못이라... 그렇군. 그러고 보니 딱히 그대가 잘못한 건 없군.” 그저 담담한 목소리였다. ​ “전하. 그러니 소첩을 불쌍히 여겨 주시어요. 소첩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전하를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유도 없이 싫소. 연유를 설명할 수 없을정도로.” 그의 냉담함에 정귀인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소첩이 싫으시다구요? 그 이유조차 모르신다구요? 소첩은 전하께서 소첩을 안지 않으시는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소첩을 받아 주실 줄 알았는데! 연유도 없이 싫다니요! 정말 너무하십니다!” 그녀가 울부짖으며 겸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그녀를 물끄러미 보던 겸이 술을 거칠에 입에 털어 넣었다. ‘네 년이로구나. 네 년이었어. 네 년이 연화를 내게서 내쫓았던 것이로구나.’ ​ 감정을 읽을 수 없는 그 눈빛이 소름끼쳤다. 분노가 너무 커서, 표현할 방법조차 없었다. 목으로 넘어가는 술에서 아무맛도 느낄 수 없어, 한병을 목구멍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거칠게 자리에 눕혔다. 정귀인은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퍽 야하고 짜릿했다. ​ “그대가 원한 것이 이것이오? 그렇다면 한번 해보지.” 그녀의 옷을 벗기는 그의 손길이 무척이나 거칠었다. 곧 희고 말캉한 속살이 드러났다. 그의 희번득한 눈빛에 가슴을 졸였다가도, 자신의 진심이 전해졌다고 생각하니 그저 다행이라 여겨졌다. 그녀는 모든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떨리고 부끄러운 마음에 눈을 꼭 감고 그의 손길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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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최후의 발악

정귀인이 벌떡 일어났다. 우의정은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뭐야? 아이고, 머리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어의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 ​ ​ “중전께서 또 회임이라니... 해산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아이고, 체질이시네. 체질!” 우의정은 주먹을 쥔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연신 쳐댔다. 분노가 한계에 다다른 정귀인은 명화를 향해 소리 질렀다. “어머니를 모셔오너라! 어서!” ​ ​ 부인이 들어서자, 드러누운 정귀인과 망연자실한 얼굴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우의정이 눈에 들어왔다. “마마,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이 어미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정귀인은 벌떡 일어나 어미를 와락 끌어안고 흐느꼈다. 그리고는 부인의 손을 꼭 잡고 울분을 토해냈다. “어머니! 저는 도저히 이 궁 안에서 더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죽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 제발, 어머니. 이 고통에서 저를 벗어나게 도와주세요. 네?” “마마, 어미 앞에서 어찌 그런 모진 말을 하십니까?” ​ 딸의 호소에 부인도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런데 이 가슴에서 불이 올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비상을 구해다 주세요. 네?” “마마, 어찌 그러십니까?” 이제는 절망밖에 남아 있지 않은 딸의 처참한 몰골에 그녀의 마음이 짓이겨졌다. ​ “어머니, 죽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발요.” “비상이라니요, 마마! 어찌 그러십니까? 조금만 더 힘내세요. 조금만 더 버텨보세요. 분명 지금보다는 나아질 겁니다. 마마께서 잘못되시면 이 어미도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계속 이렇게 살라는 말씀이세요? 이곳은 얼음보다 차갑고, 너무나도 외로운 곳입니다. 이미 제 영혼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비상을 구해다 주세요. 제발요!” “마마,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어찌하면 이 어미가 마마를 살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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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실행.

“마마, 괜찮으십니까?”“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 더 이상은... 욱...”중전은 한 번 더 속을 토해냈고, 김상궁은 급히 상을 물리고 나인에게 치울 준비를 하라 지시했다.기미상궁은 잠시 안절부절못하는 듯하더니, 이내 조용히 상을 들고나갔다.계속되는 토악질에 기력을 다한 중전은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목구멍부터 위까지 쓰리고 답답했다.​그때, 중전이 게워낸 음식을 치우던 나인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에구머니나!”그녀의 소리에 놀란 상궁과 중전의 불쾌한 시선이 따랐다.상궁이 나인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냐? 중전마마께서 놀라시지 않으셨느냐?”“저... 그게요. 마마님, 이것 좀 보셔요.”“무엇인데?”떨리는 목소리와 떨리는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그녀의 손에 검게 변한 은수저를 들려 있었다.​“이게... 이게 어찌 된 일이냐?”“모르겠습니다, 마마님. 수저로 게워내신 타락죽을 옮기는데.. 이리되었습니다. 어찌할까요?”그저 힘없이 누워있던 중전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이야?”하얘진 얼굴의 김상궁은 천천히 중전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저... 중전마마, 누군가 타락죽에 독을 탄 듯합니다.”“뭐?”​“저, 마마께서 게워내신 음식을 담은 은수저가 검게 변하였습니다.”중전의 시선이 나인의 손에 들린 수저로 향했다.그녀는 배를 움켜쥐었다. 자신보다 뱃속의 용종이 걱정되어서였다.“중전마마, 의금부와 주상전하께 알릴까요?”“잠깐... 잠깐 기다리게.”“……”중전은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뒤, 방금 있었던 일들을 복기했다.​“아까 기미상궁의 수저는 괜찮지 않았는가?”“예, 마마. 그랬사온데...”“일단, 지금 당장 조용히 그 상궁과 타락죽을 날랐던 상을 찾아오게.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이네.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빨리!”“예, 마마.”상궁은 몇몇 나인을 데리고 기미상궁을 찾아 나섰다.머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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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추국장

그 시각, 정귀인과 정경부인은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어머니, 잘 되겠지요?”“너무 염려 마세요. 마마. 이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저 운명에 맡겨야지요.”일을 그르치면,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실행에 옮겼다.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삶에, 도박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막상, 일이 진행되고 나니 두려움과 불안함에 사지가 벌벌 떨렸다.하지만 이대로 살다 죽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중전만 없으면, 그러면 이제 전하는 자만의 것이 아닌가.가는 눈에 입술이 휘어졌다.​그러나 그것은 그녀만의 착각이었고, 헛된 야망이었다.​귀인의 처소밖 시끄러웠다.“귀인을 당장 끌어내라!”그 소리에 정경부인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그리고 그녀가 떠난 자리에 감찰궁녀들과 중궁전의 김상궁이 들이닥쳤다.‘결국, 이리되는 것인가.’​정귀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중전은 가누기 조차 힘든 몸을 이끌고 추국장으로 가고 있다.눈엣가시 같던 귀인이었다.태도는 오만방자했으며, 상전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하지만, 주상으로부터 냉대받는 그의 처지가 가련하여 딱히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런데 결국, 이런 식으로 자신과 용종의 목숨까지 해하려 들다니.‘결국, 네가 일을 그르치는구나.’​중전은 추국장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벌써 추국장은 정귀인의 발악으로 시끄러웠다.“놔라! 놔! 이것들!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손을 대는 것이야!”중전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가 내려다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제 아래, 무릎을 꿇은 정귀인이 있었고, 그 뒤로는 기미상궁과 타락죽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중전은 한동안 말없이 정귀인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그리도 고고하던 그녀가 중전의 앞에 서니, 몸을 휘청이며 떨리고 있었다.​​정귀인은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그녀는 이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중전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정귀인! 자네가 어미를 시켜 나와 용종을 해하려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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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추국장 2

“전하께서는... 남색이 있으십니다.” “!” “놀라긴 아직 이르십니다. 마마.” “……” 정귀인은 가빠진 중전의 호흡을 느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홍연, 그 자가 전하의 정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홍연을 내쫓았지요. 마마께서도 그것은 소인에게 감사하셔야 합니다. 훗 ” 귓속 속삭임이 멎자 중전은 허리를 천천히 세웠다. 너무 황당하기도, 충격적이기도한 사실에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중전을 보며 정귀인은 비웃음을 흘렸다. ‘너라고 다를까?’ “그러니 중전마마께서도 저에게 빚을 지신 것이 아닙니까? 어떠십니까? 이 정도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으셨습니까?” 정귀인의 비열한 웃음에 정신이 혼미해진 중전의 몸이 떨렸다. 그러나 그것이 드러나서는 안된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뒤를 돌아 자리에 앉았다. 정귀인을 말없이 바라보던 중전은 곧 결심한 듯 김상궁을 가까이 불렀다. 김상궁은 중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이더니 나인들을 불러 모았다.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라!” 김상궁의 명령이 떨어지자 나인들이 정귀인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발을 묶고 입에 제갈을 물렀다. ​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정귀인이 몸무림을 쳤다. "놔라! 놔!" 하지만 이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정귀인의 몸이 결박된 것을 확인한 중전이 나인들을 향해 외쳤다. “지금 당장 죄인의 혀를 잘라라.” 중전의 명령에 정귀인은 더욱 발악했다. "안됩니다!! 마마!" 그러나 몸은 묶이고, 입은 막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추국장에서 신문을 한다는 소식이 궁 안에 빠르게 퍼져 나갔고 궁인들로 추궁장이 둘러 쌓였다. 평소 인자하기로 소문난 중전의 처벌에 추국장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말을 들었기에 저토록 인자한 중전이 저런 명령을 내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모두의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중전이 다시 소리를 높였다. “어서!” 나인들과 상궁들이 정귀인을 더욱 강하게 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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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형장의 이슬

“부인! 그것은 안 될 말입니다. 중전과 용종을 해하려 한 자입니다.사지를 찢어 죽여도 부족한 대역죄인이에요!”“전하, 전하께서는 신의를 중히 여기시는 분이 아니십니까?그러니 제게도 그 신의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하... 어찌 그런, 무모한 약조를 하셨단 말입니까?”“그것이...”중전은 그 이유를 차마 왕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아직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전하, 때로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중전의 말에 겸은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 하리다. 부인, 일단 오늘은 많이 힘드셨을 텐데 어서 가서 쉬세요. 김상궁, 중전을 침전으로 뵈시게.”중전은 쓰러지 듯 김상궁에게 기대었다.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복잡해 보였다.​얼마 후, 우의정과 정경부인은 참형에 처해졌다.그리고 정귀인은 폐서인이 되어 궁 밖으로 쫓겨났다.하​지만 중전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했다.​“김상궁, 정귀인은 출궁 했는가?”“예, 마마. 동이 트자마자 떠났다 합니다. 헌데 마마, 너무 가까운 곳으로 보내신 것이 아닌지 염려되옵니다.”“감시하려면 가까이 있어야지. 사람들에게 일러 감시를 소홀히 하지 말라 이르게. 그 성정에 필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게야. 그때 손목까지 잘라버렸어야 했는데...”그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눈을 감았다.​“마마, 걱정 마시옵소서. 말씀대로 가만히 있을 정귀인이 아닙니다. 그때 처결하셔야 완전히 끝내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중전의 생각은 옳았다.궁에서 쫓겨난 정귀인은 며칠간은 몸조차 가누기 어려웠지만, 그 시간에도 온통 복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물론 완벽한 복수는 불가능하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이제 내게 잃은 것은 없다. 권력도 부모도...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이제 끝까지 가야지.'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정귀인은 늦은 밤, 주변이 조용한 걸 확인하고 붓을 들었다.​조선의 왕은 남색이다. 그리고 왕의 정인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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