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90

100 فصول

81화. 주객전도

이른 새벽부터 수라간은 정귀인의 생일연회 준비로 분주했다.예년과 달리 생일상은 간소해졌으나, 겸의 명에 따라 갖출 것은 모두 갖춘 정갈한 상이 준비되었다.평소보다 일찍 눈을 뜬 정귀인은 이미 치장을 마친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이른 아침,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우의정과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이 처소를 찾았다.예쁘게 단장한 딸의 모습을 본 정경부인이 호들갑스럽게 감탄했다.“마마,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오늘 누구보다도 빛나실 것입니다.”“당연하지요, 어머니. 제 생일이 아니어도, 어디를 가든 제가 가장 눈에 띄지 않겠습니까?”“그럼요, 마마. 이리도 고우신데, 누군들 마마께 마음을 뺏기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마마의 미모에 감탄할 것입니다.”모녀의 대화가 무르익는 사이, 우의정은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대감, 왜 이리 말씀이 없으십니까? 우리 마마를 좀 보세요.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지 않습니까?”우의정이 고개를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뱉은 말은, 방 안의 이들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흠... 오늘은 관심을 받아야 할 텐데...”정귀인의 볼이 발끈 달아올랐다.왕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모두 제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었다.“아버님! 전하를 뵐 기회가 없는데, 제가 어떻게 주목을 받겠습니까? 하지만 두고 보세요. 오늘의 주인공은 분명 저입니다. 제가 이리 돋보이게 앉아 있는데, 전하께서 반하지 않으시면 그분이 남자도 아니겠지요.”“어허, 말을 조심하세요. 듣는 이가 많습니다.”“아니, 그만큼 오늘은 자신 있다는 뜻입니다. 기대하셔도 됩니다. 아버지.”한껏 차려입고 기분이 들뜬 정귀인은 상궁의 안내를 받아 연회가 준비된 장소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연회장에 도착한 정귀인은 도착하자마자 기분이 상해버렸다.오늘의 주인공은 자신이었음에도 겸의 옆자리는 중전이 꿰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래, 두고 보자. 이 자리에 나만큼 빛나는 여인이 어디 있나.’정귀인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اقرأ المزيد

82화. 시간은 흐르고 흘러

순간 연회장 안은 들썩이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중전에게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 그녀 앞에 줄을 섰다."중전마마. 감축드리옵니다.""전하. 감축드리옵니다."한쪽에서는 축하의 인사로 시끌벅적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어색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이 모습을 정귀인과, 우의정부부가 지켜보며 얼굴이 구겨지고 있었다.정귀인의 생일연회는 그렇게, 중전의 회임 축하잔치로 끝을 맺고 말았다.연회가 끝난 뒤 정귀인이 처소로 돌아오자마자, 우의정 부부도 그녀를 뒤따라 들어왔다.문을 닫자마자 정귀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열하기 시작했다.무겁게 올린 머리가 중심을 잃더니, 두피와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엉-엉 - 어린아이 같이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에 놀란 정경부인이 다가가 딸을 달랬지만,울음소리는 더 커지고 말았다.“어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제 생일 연회에서 중전의 회임 소식을 전하다니요! 전하께서 절 찾지도 않으시더니, 이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망신을 주신 게 아니고 뭡니까? 저는 오늘만을 기다렸단 말입니다!”정귀인의 울음가 처소 가득 메아리쳤고, 우의정은 옆에서 한숨만 쉬었다.‘이것 봐라. 결국 내 가문을 견제하려는 것이 맞아. 딸을 궁에 들이라 한 것은 내 숨통을 조이기 위함이었어.’목청껏 울어대는 딸을 옆에 두고도, 다른 생각에 몰두되어 있었다.“대감, 뭐라도 말씀을 해주셔요! 우리 마마가 저렇게 마음 아파하시는데요!”“우리가 속은 것 같소.”“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감.”“애초에 나를 회유하려 우리 옥주를 궁에 들이라 하신 게 아니오. 그저 우리를 옭아매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신 게지.”자리에 몸져누워있던 정 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 반동에 곱게 올린 머리장식이 풀어지며 볼품없이 덜렁거렸다.“아버님, 그 말씀이 무슨 뜻이옵니까? 그럼 처음부터 저를 품으실 마음도 없으셨다는 겁니까?”그의 한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그런 것
اقرأ المزيد

83화. 권력의 이동

원자가 조잘대는 사이, 중전이 다가와 겸에게 인사했다.연화도 예를 갖추어 중전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홍연 대장, 지난번에도 원자에게 선물을 주시더니 어찌 이리 매번 챙기십니까?”“소인의 친척이 명나라를 오가고 있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괘념치 마시옵소서, 중전마마. 원자마마께서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 더 드리지 못한 것이 오히려 아쉬울 따름입니다.”“시간 날 때마다 동궁에 들러 우리 원자와 놀아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그런 일이 있었소?”“예, 전하. 홍연 대장께서 종종 동궁에 들러 원자와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하하, 그러니 원자가 이 아비보다 홍연을 더 반가워했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군.”“저… 그래서인데요, 전하. 전하께 드릴 청이 하나 있습니다.”연화는 눈치껏 자리를 피해, 원자에게 다가갔다.“말해 보시오, 중전.”중전은 세자와 연화, 겸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원자가 세자로 책봉되면, 홍연 대장을 동궁전으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두 분이 함께 계신 이 기회에 감히 청을 올립니다.”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청에 겸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저… 중전, 그것은 지금 당장 쉬이 답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예, 알고 있습니다, 전하. 천천히 결정해 주십시오. 다만, 홍연 대장이라면 우리 원자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감히 청을 드렸습니다.”그녀는 겸에게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청을 올렸다.중전은 평소 사사로운 일로 겸에게 청을 올리는 일이 드물었다.하지만 수년간 지켜본 결과,그녀는 홍연이 임금의 충직한 신하이자 세자에게도 믿음직한 인물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을 것이다.그런 자를 세자의 곁에 두고자 하는 것은, 과한 욕심이 아닐 것이다.“일단은 알겠습니다, 중전. 생각해 보겠소.”겸과 중전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연화는 원자와 함께 놀고 있었다.연화는 원자가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갓난아기 시절부터 걷고 말문이 트일 때까
اقرأ المزيد

84화. 희생

“예?”“전 영의정 영감과 폐비를 따르겠다고 줄을 섰지만 결국 다들 등을 돌리지 않았습니까? 사직서라… 여기서 모두가 한 입으로 내자고 한들, 과연 몇 분이나 진짜 내실 것 같습니까?”“맞습니다. 이미 우리 사이에도 믿음에 금이간지 오래입니다.”한참을 설전하던 서인들이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설전은 오갔지만, 별다른 대안도 없으니 결국 다들 자리에서 일어섰다.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 우의정과 좌찬성만이 남았다.“우의정 대감, 어차피 대감께서는 정귀인 마마 때문에라도 전하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우시니, 이참에 전하께 협조하 는 쪽으로 방향을 트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감께서 그리하신다면 저도 따르겠습니다.”사실 우의정도 내심 누군가 옆구리를 찔러주길 바라고 있었다.재산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권력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자신이 왕의 측근이 된다면 정귀인을 바라보는 왕의 시선도 바뀔 것이고,그러다 보면 정귀인이 이제라도 왕의 총애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하지만 명색이 서인 세력의 수장으로서 체면이 있기에 쉬이 나설 수 없었다.그런데 좌찬성이 이렇게 옆에서 찔러주니, 못 이기는 척 줄을 바꿔 타야겠다는 생각에 입술이 휘었다.“흠… 좌찬성 대감의 말씀이 맞습니다. 내 아무리 권력이 중하다 한들, 어찌 딸자식보다 더 중할 수 있겠소. 일단은 전하의 뜻에 힘을 실어드립시다. 헌데…”우의정이 말을 맺지 않고 뜸을 들이자, 좌찬성이 그 뜻을 알아채고 먼저 나섰다.“아! 제가 다른 이들에게도 넌지시 대감의 뜻을 전해 설득하겠습니다. 다들 내심 그렇게 되어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그럼 그리 합니다! 허허.”술잔을 채워 잔을 부딪혔다. 쨍-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겸이 아침 수라를 마치자 영도가 급하게 찾아왔다.“전하!”전에 없이 상기된 목소리에 겸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영도야! 무슨 일이길래 이리 허겁지겁 달려온 것이냐?”“저… 홍연이 아직 등청하지 않았습니다.”“뭐? 연이?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اقرأ المزيد

85화. 불임 1

감히 예상치도 못한 말에 홍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뭐요? 뭐라고 하였소?”“전장에 나가, 전하를 호위하기 위해서는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청하였습니다.""부인!""물론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연화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제가 의원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제 자네가 말씀드리게.”의원은 무릎으로 기어와 홍양의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예. 마님께서 연화와 함께 찾아오셨습니다. 너무나 간곡히 부탁하셔서 소인이… 그것이… 원래는 낙태약이 온데, 여러 번 복용하면 임신이 불가능해지는 약입니다.”“이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럼 우리 연화가 불임이 되는 약을 먹었다는 말인가?”“예… 아마도요…”“아마도라니?”“그 약을 먹는다고 모두 불임이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연화는 아마… 그렇게 된 듯합니다. 상태를 물어보니, 달거리도 하지 않는다고…”의원의 이야기에 홍양은 너무나 기가 막혀 그의 눈만 멀뚱히 바라봤다.대체 이 아이는 제 몸에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정부인이 의원을 다그치듯 물었다.“그간 잘 버티지 않았는가?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이야?”“아마… 잘 버티지 못했던 듯합니다. 그간, 통증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진통제를 여러 번 타갔거든요. 아마… 이번이 고비인 듯합니다.”“고비라니? 그럼 연화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겁니까?”“저… 아주 드물게는 목숨을 잃기도…”흥분한 홍양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의원이 자리에 바짝 엎드렸다.“우리 연화가 잘못된다면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이토록 격앙된 홍양의 모습은 누구도 본 적 없었다.늘 침착했던 정부인조차 놀랐고, 의원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린 채 벌벌 떨기 시작했다.“대감, 일단 진정하세요. 이 아이를 낫게 할 이도 의원뿐이지 않습니까?”“부인도 그렇소! 연화가 부인의 소생이라면 이런 청을 들어주었겠소?”홍양이 정부인에게 원망을 쏟아내자,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정부인도 지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감! 예
اقرأ المزيد

86화. 불임 2

대감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정부인과 의원이 겸을 발견하고는 바닥에 엎드렸다.“스승님!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연화가… 불임이라니요! 그리고 지금 연화가 왜 저렇게 누워 있는 겁니까?”겸의 등장에 정부인과 의원은 그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겸이 방으로 들어가 의식 없이 누워있는 연화를 그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동공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뒤따라 들어온 영도가 방문 앞을 지키고 앉았다.홍양은 안절부절 못하는 겸에게 연화의 상황을 전했다.연화가 전장에 나가기 위해 약을 먹고 여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그 후유증으로 기절을 한 것이라고.너무나도 황당하고, 어이없는 홍양의 말에 화가 났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이 미련하고, 희생적인 그녀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연화… 연화가… 그렇게까지…”겸은 연화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녀리고 힘없이 늘어진 그 손을 자신의 볼에 대고 연신 문질러댔다.그러자, 눈에서 눈물이 그렁이 맺히고, 이내 그녀의 곁에서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조선의 왕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감히 그 누구도 겸에게 말을 걸지도, 다가가지도 못했다.시간이 계속 흘렀지만, 겸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연화의 방 앞에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영도야… 아무리 내 딸이 귀하다지만 어찌 주상 전하의 자리만큼 귀하겠느냐. 더는 지체하지 말고 전하를 모시고 궁으로 돌아가거라.”영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전하,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습니다. 이제 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하지만 겸은 아무 대답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전하…”“나는 갈 수 없다. 의식을 잃은 연화를 두고 나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간신히 울음을 참는 듯한 말투였다.그런 겸의 모습에 영도는 더는 재촉하지 못하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으므로.그때였다. 연화의 작고 가녀린 손이 겸의 손을 꼭 그러쥐었다.그
اقرأ المزيد

87화. 당신을 지키는 방법.

그녀의 말을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그건 이미 안 된다고 말했다.”“전하, 애초에 소인은 세자 저하의 호위무사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셨으니, 제 소양으로는 더 이상 곁을 지키기에 부족합니다. 원래 소인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세자 저하를 보필하고 싶습니다.”“안 된다. 세자보다 내가 더 네가 필요하다.”그의 단호한 표정과 결연한 눈빛에 연화는 잠시 숨을 골랐다.그리고 꺼내고 싶지 않았던,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그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전하… 전하께서는 눈치채지 못하셨지만, 이미 일부 눈치 빠른 자들 사이에서는 저와 전하의 관계를 의심하는 모양입니다.”“그게 무슨 말이냐?”“생각해 보십시오. 전하의 침소에 소인이 밤늦게까지 드나드니,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연모하는 이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어찌 숨길 수 있겠습니까…”“상관없다.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린다는 것이냐? 찾아내서, 당장 도륙을 낼 것이다!”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만류했다.“전하께서는… 언제까지 이 비밀이 유지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그래도 안 된다. 어찌 나와 거리를 두려는 것이 아니냐?”“전하. 지금은 대신들이 고개를 숙이고 전하의 뜻을 따르는 것처럼 보여도, 언젠가는 다시 세력을 모아 전하를 흔들려할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전하의 약점을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 발 물러서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늘 전하 곁에 있을 것입니다.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연화의 말과 표정은 단호했고, 그 어떤 말로도 그녀를 설득할 수는 없으리라.그저 이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겸은 그녀를 두고 뒤를 돌아섰다.네가 내 옆에 없는 현실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어찌 너를 떠나보내고 내가 살 수 있을까.그런 겸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하듯, 연화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지키고 싶습니다.”“……”“곁에 있는 것 만이
اقرأ المزيد

88화. 기회.

“하하. 걱정이라니요! 아닙니다, 전하. 전하께서 바쁘신 건 온 나라가 다 아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이제라도 신경 써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겸과 대화를 나누고 나온 우의정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자신이 생각했던 그림대로 일이 잘 흘러가고 있었다.가벼운 마음으로 오랜만에 정귀인의 처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좋은 소식을 빨리 전해야 제맛이 아닌가.“아버님! 이게 얼마 만이십니까? 저를 까맣게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귀인 마마. 하나뿐인 여식을 어찌 하루라도 잊겠습니까? 그저... 마음이 영 불편하여 마마께 괜한 근심만 드릴까, 발걸음을 잠시 멈췄을 뿐입니다.”정귀인은 오랜만에 본 아버지를 표정 없이 그저, 빤히 쳐다보았다.웃으며 맞이했지만 아버지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아버지가 자신을 귀하게 여긴 것은 맞다.하지만 늘 아들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이것이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꼬’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했다.정귀인은 아버지를 잘 알고 있었다.아버지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 준 것이 아니었다.그저 자신의 소유물로서 아낀다는 사실을 정귀인은 일찍이 깨달았다.이런 아버지의 본심을 알기에, 그간 쌓여온 원망이 한층 더 깊어진 상태였다.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한껏 웃으며 자신을 찾아온 걸 보면, 분명 어떤 용건이 있어 온 것이 확실했다.그런 정귀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의정은 싱글거리며 말을 이어갔다.“오늘 전하께서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그간 서운했던 점은 잊고, 잘 지내보자고 하시더군요.”“예? 전하께서 아버님께 그리 말씀을 하셨다고요?”“그렇다니까요. 이러나저러나 어찌 되었든 간에, 마마께서 후궁으로 계신데 전하와 척을 져서 좋을 것이 뭐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전하 편에서 전하를 잘 보필해 드리고자 말씀을 나눴지요.”“그럼 앞으로는 전하께서 아버지를 적대시하지 않으시겠단 말씀이십니까?”“예, 그렇습니다. 다 마마를 위해 이 아비가 그리 결정한 것입니다.
اقرأ المزيد

89화. 동상이몽

겸은 술에 꽤 강한 편이다. 술 한두 병 정도로는 취하지도 않는 그였다.그는 정귀인 한 잔, 자신의 술 한 잔을 번갈이 들이켰다.정귀인이 빨리 취해 쓰러지기만을 바라며, 그녀의 술잔이 비기만을 바랐다.그는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몹시 불편한 기운에,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 뿐이었다.우의정이 자신 쪽으로 노선을 튼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대해 손바닥 바꾸듯 처세를 달리라는 그를,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또한 그의 성정으로 보아, 딸자식을 이용해 권력을 틀어쥘 셈인 듯 보이기도 했다.그런 자가 권력을 쥐고 흔든다면, 그것은 분명 독이 될 것이 자명했다.정귀인을 보고 있자면, 그 간사하고 음흉한 얼굴이 떠올라 마주하는 것조차 혐오스러웠다.하지만 정귀인은 그런 겸의 의중도 모른 채, 싱글벙글 웃으며 그가 따라주는 대로 술을 다 받아 마시고 있었다.정귀인은 정말로 겸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주는 대로 받아먹으려니 죽을 맛이었다.그러다 결국에는 그녀의 의지와는 다르게 의식은 점점 흐려져 갔다.‘아... 안 되는데... 왜 이렇게 정신이 몽롱하고 졸리지? 안 되는데...’정귀인은 흐려져 가는 의식을 겨우 붙잡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전하, 소첩이 너무 취한 것 같습니다. 이제 소첩은 그만 마셔야...”말을 끝내기도 전에, 정귀인은 스르륵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겸은 술에 취해 쓰러진 정귀인을 보고, 마지막 자신의 잔에 술을 채운 뒤 단숨에 털어 넣었다.“밖에 누구 있느냐?”왕의 부름에 상궁과 나인이 서둘러 들어왔다.“귀인께서 많이 취하신 듯하니 자리에 눕히거라.”상궁은 왕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정귀인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처소를 나서는 왕의 냉정한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정귀인께서 오늘 얼마나 기대하고 열심히 준비하셨는데… 에휴, 내일 일어나시면 실망이 크시겠네.’상궁은 속
اقرأ المزيد

90화. 흑화

이튿날 아침, 정귀인은 늦은 아침을 맞이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그 통증에 짜증이 밀려와,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명화야! 명화야! 물 좀 다오!”정귀인의 외침에 사가에서부터 함께한 몸종 명화가 물을 들고 들어왔다.“마마, 괜찮으십니까?”정귀인은 갈증에 못 이겨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구나. 속도 울렁거리고..”정귀인은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시큼하게 올라오는 침을 연심 삼켜댔다.“마마, 의원을 부를까요?”“잠시만… 아, 어제…”정귀인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은 채 어제 있었던 일을 더듬어 기억하려 했다.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전하는? 전하께서는 어디 계시느냐?”그녀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지아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마마… 그게… 저…”“빨리 말하거라! 전하는 어디 계시느냐고?”“저… 전하께서는 마마께서 잠드신 후 바로 돌아가셨습니다.”차마 정귀인의 눈을 마주칠 수 없던 명화는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떨었다.제 주인에게서 떨어질 벼락이 무서워서였다.“뭐? 그냥 가셨다고? 정말이냐? 나를 두고 그냥 가셨다고?”“예… 마마…”“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다. 바로… 바로 나가셨다는 거야?”“예, 최상궁님께 말씀만 하시고 바로 떠나셨습니다.”정귀인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정신이 멍해졌다.깨질 듯 아프던 머리가 무감각해졌다.정귀인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다잡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생각해 보니, 왕은 쉴 새 없이 술을 따라주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마치 빨리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행동했다.만약 자신과 밤을 보내려 했다면, 적당히 취기가 올랐을 때 멈췄어야 했다.하지만 왕의 손은 멈추지 않고 그녀의 술잔을 채우는데 몰입되어 있었다.‘아… 나를 재우려고 일부러 술을 먹이신 거였구나…’왕의 의중을 파악한 정귀인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모멸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정귀인은 이불을 꽉 움켜쥐며 고개를 떨
اقرأ المزيد
السابق
1
...
5678910
امسح الكود للقراءة على التطبيق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