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Chapter 101 - Chapter 108

108 Chapters

제101화

진명화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네 엄마가 술에 잔뜩 취해서 실실 웃고 다니는 꼴이 얼마나 꼴 보기 싫었는지 알아? 거기 있던 사모님 몇 명이 네 엄마 옷까지 다 찢어 놨어. 네 엄마는 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제발 한 번만 봐 달라고 애원했지.”“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다들 네 엄마 꼴을 보더니 너무 신이 난 거야. 그래서 길 한복판으로 끌고 나가 옷을 전부 벗겨 버리고 춤을 추라고 했지.” “하지만 네 엄마가 술에 너무 취해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더라.”“H시 최고 명문가 아가씨?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임애교? 그날 밤으로 완전히 끝난 거야.”“마지막에 우리 앞에서 살려 달라고 빌던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쯧쯧.”진명화가 신이 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복수에 취한 얼굴이었다.시유는 고개를 숙인 채 어느새 손을 멈췄다. 저들의 말이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기억과 하나둘 맞아떨어졌다.그날 밤, 임애교는 딸 시유를 허름한 월셋집에 혼자 남겨 둔 채 문을 잠그고 나갔다.밤새 돌아오지 않다가 새벽이 다 돼서야 집에 들어왔는데, 몸에 걸친 옷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지독한 술 냄새가 진동했다.초점이 풀린 눈과 흐트러진 머리카락. 하룻밤 새 넋이라도 통째로 빼앗긴 사람처럼 보였다.그날 이후 임애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급하게 돈을 마련해 주류 판매점을 차렸고, 온갖 고급 술을 사고팔았다.밤마다 유흥가를 드나들며 스스로를 갉아먹듯 살았다.한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던 H시 최고 명문가 아가씨는 어느새 ‘밤거리의 여왕’이 되었다.그리고 3년 동안 엄마는 아빠가 남긴 막대한 빚을 모두 갚아 냈고, H시에서 가장 유명한 유흥업소 아르테움까지 세웠다.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고통을 내색한 적이 없었다.오직 딸 시유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며, 절대 엇나가지 말라고 당부할 뿐이었다.하지만 시유도 이제야 알았다. 엄마가 지난 10년을 얼마나 아슬아슬한 삶을 버텨 왔는지...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이제야 모두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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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시유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두 눈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방금 당신들이 한 짓, 전부 다 찍혔어요.”드론이사람들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드론 아래 달린 고화질 카메라가 아래를 향한 채, 방금 벌어진 모든 일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감히... 우리를 함정에 빠뜨려?”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진명화가 곧바로 상황을 깨달은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빨리! 저 드론부터 떨어뜨려! 방금 한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선 절대 안 돼!”진명화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진지원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새나 역시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틀어막은 채 사시나무 잎처럼 몸을 떨었다.“늦었어요. 영상은 이미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올라갔으니까요.”“방금 사모님들이 드러낸 그 추악한 본모습도, 우리 엄마에게 저지른 그 끔찍한 일들도 이제 모두가 알게 될 거예요.”시유가 드론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리고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게요.”“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부끄러운 삶을 산 적이 없어요.”“사모님들은 남자를 유혹해서 받아 낸 더러운 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돈은 전부 정당하게 빌린 돈이었어요.”“차용증도 빠짐없이 남아 있고, 나중에 모두 갚았어요.”“저도 직접 듣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그날 밤 우리 엄마를 짓밟고 망가뜨린 게 그 더러운 남자들이 아니라...”“겉으로는 품위 있는 척하면서 속은 썩어 문드러진 사모님들이었다는 걸요.”“방금 보여 준 모습이야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이 말은 세 사람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 드론 카메라 너머 모두를 향해 외치는 진실이었다.엄마는 그 긴 세월 동안 가장 밑바닥 같은 삶을 홀로 버텨 냈다.변명하지도, 원망하지도, 무릎 꿇지도 않았다.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고 견뎌 냈다.사람들의 조롱을 받던 자신을, 끝내 전설이라 불리는 ‘밤거리의 여왕’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시유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이었다. 우연히 엄마 서랍에서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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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진명화의 시선이 변항에게 향했다.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도대체 저 남자는 누구지?’‘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방금 임시유를 ‘아가씨’라고 부르던데, 왜 ‘아가씨’라 부르는 거지?’진명화의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이 소용돌이쳤지만,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로 매섭게 날아들었다.귀가 찢어질 만큼 강한 충격에, 진명화의 몸이 그대로 옆으로 나뒹굴었다.진명화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주변에서 연이어 따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짝!진지원과 새나는 이미 겁에 질린 채 살기 위해 정신없이 뺨을 내리치고 있었다.진명화가 부어오른 얼굴을 감싼 채 악을 썼다.“당신들 제정신이야? 여기가 어디인 줄 알아? 병원이야!”“원장님, 사람 살려! 사람 죽어!”그 순간, 누군가 단정하게 틀어 올린 진명화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두피가 통째로 뜯겨 나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억지로 고개를 들자, 눈앞에 창백하고 무표정한 변항의 얼굴이 보였다.그 눈빛은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처럼 살벌했다.“진 여사님,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신 모양이군요. 저희도 험한 일 좀 해 본 사람들입니다.”“204대로 끝낼지, 아니면 목숨을 내놓을지 하나만 고르시죠.”변항이 싸늘하게 내뱉자, 진명화는 순식간에 온몸에 힘이 풀려 버렸다.울음조차 삼킨 채, 체념한 얼굴로 자기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짝!마리가 다가와 시유의 팔을 꼭 붙잡았다.걱정스러운 손길이 뺨에 닿는 순간, 시유가 숨을 들이켜며 몸을 피했다.“마리야, 만지지 마. 쓰라려.”“알았어, 알았어. 우리 얼른 들어가서 약부터 바르자. 이러다 얼굴 다 망가지겠어.”시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진명화를 바라봤다.그리고 겁에 질려 넋이 나간 채 뺨만 내리치고 있는 새나에게도 시선을 옮겼다.머릿속엔 부씨 집안에서 견뎌야 했던 고달팠던 지난 5년 세월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시유 역시 다른 며느리들처럼 어떻게든 시댁 식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그래서 자기 자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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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내가 산후조리할 때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절대 안 잊어. 부여준이 나한테 그런 짓을 하도록 만든 데 너도 한몫했잖아. 너도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어디 한번 끝까지 지켜봐. 우리 시유가 어떻게 하나씩 무너뜨리는지 똑똑히 보게 될 테니까!”마리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당차게 외쳤다.말을 마치자마자 방금 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목을 움츠리더니, 시유의 손을 잡아끌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자기야, 진짜 멋있었어! 아까 살벌하게 경고할 때 완전 히어로 같았다니까!”마리가 가슴을 쭉 펴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조금 전 시유의 표정과 말투를 똑같이 흉내 냈다.굳어 있던 시유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웃는 순간 얼굴이 당기며 화끈한 통증이 밀려왔다.“마리야... 얼굴이 너무 아파. 불에 덴 것 같아.”마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빨리 가자! 당장 병원부터 가 봐야 해!”백 대가 넘는 따귀를 맞은 시유가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조차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의사가 곧바로 냉찜질을 해 준 뒤, 제일 효과가 빠른 타박상 연고를 처방하며 꼼꼼히 바르라고 당부했다....한편, 부씨 집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실은... 집안을 넘어 부강그룹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진명화와 여동생, 그리고 조카딸까지 세 사람이 며느리를 집단으로 괴롭히고 모욕하는 장면이 담긴 생방송 영상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들불처럼 퍼져 나간 영상은 지우고 지워도 끝이 없었다.부강그룹 비서실부터 계열사 공장 직원들까지 회사 안에서는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이 정도면 단순한 갑질 수준이 아니었다.게다가 영상 속 대화를 통해 십수 년 전 사건까지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시유와 임애교가 같은 사람들에게 괴롭힘과 모욕을 당했으며, 무릎까지 꿇고 제 뺨을 때리도록 강요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이 완전히 폭발했다.인터넷은 그야말로 분노로 들끓었다.생방송이 공개된 직후 부강그룹 주가가 걷잡을 수 없이 폭락했는데, 그 어떤 주식 전문가가 와도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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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식당 주인은 토끼띠인 인상 좋은 중년 남자였다.게다가 시유와 유난히 잘 통하는 사람이었고, 가게 뒤편 작은 대숲에는 토끼를 여러 마리 기르고 있었다.시유는 동그란 눈에 앞니가 살짝 도드라져, 꼭 토끼를 닮았다. 화를 내지 않을 때는 순하고 얌전했지만, 화가 나면 사람도 물어뜯을 만큼 당찼다. 그래서 어릴 적 오빠가 시유에게 토끼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그러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가 전 세계적으로 개봉하자, 시유가 그 안에 등장하는 토끼 경찰 주디를 무척 좋아하게 됐다. 그때부터 토끼를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더 커져 갔다.여준이 룸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시유가 턱을 괸 채 유리창 너머 대숲을 자유롭게 뛰노는 토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깊게 눌러쓴 볼캡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뒷모습에서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여리고 쓸쓸한 기운이 묻어났다.예전 시유는 생기 넘치고 해맑게 웃던 사람이었다.여준은 지난 5년 동안 시유를 충분히 잘 보살펴 왔고, 하고 싶은 대로 살도록 늘 존중해 줬다고 생각했다.시유 일에 간섭한 적도 없었다. 자신의 취향은 긴 머리였지만 시유가 짧은 머리를 고집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였고, 바꾸라고 강요한 적도 없었다.시유를 마주하는 순간, 여준의 분노가 어느새 누그러졌다. 여준이 다가가 무심코 시유 손을 잡으려 했지만 허공만 움켜쥐었다.시유가 그 손길을 피해 버린 것이다.허공에 멈춘 손과 함께 여준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 버렸다.여준이 시유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어떻게 해야 그만둘 거야?” 여준은 지쳐 있었다.하루 종일 사방에서 터지는 일을 수습하느라 몸도 마음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이대로 계속 싸우다가는 결국 둘 다 무너질 뿐이었다. 부강그룹의 치부가 전부 세상에 드러나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이런 상황을 더는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도대체 시유가 왜 이러는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내가 소새나를 놓아주길 원하는 거야?”시유는 담담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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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시유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러니까 내가 당신이랑 5년이나 살았는데도, 결국 돈밖에 모르고 아무 남자나 밝히는 여자라고 생각한 거야?”시유의 입에서 끝내 거친 욕설이 튀어나오고 말았다.5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사람 보는 눈이 지독하게도 없었던 그때의 자신을 저주하고 싶을 지경이었다.도대체 자신을 전혀 믿지 않는 저딴 남자를 어떻게 좋아하게 된 건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고 싶을 정도였다. 난데없이 따귀를 맞은 여준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 본능적으로 손을 치켜들었다.하지만 시유가 거칠게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붉게 부은 얼굴을 그대로 들이밀며 다가오는 순간, 여준이 치켜든 손은 허공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머리끝까지 치솟던 분노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여준이 무의식적으로 시유의 얼굴을 감싸 쥐며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얼굴이... 왜 이렇게 된 거야?”시유는 차갑게 그의 손을 쳐 내고 재빨리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터질 듯 욱신거리던 머리도 조금씩 차분해졌다.“날 어떻게 생각하든 이제 상관없어. 이혼합의서에 서명할 건지 말 건지만 대답해.”시유는 다시 자리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본론을 이어갔다.이미 이혼 절차는 샅샅이 알아본 상태였다.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이혼합의서를 통한 협의이혼이었다.물론 소송으로 가는 것도 못 할 일은 아니었지만, 재판을 최소 두 번은 거쳐야 이혼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었고 아무리 빨라도 반년 이상이 걸렸다.그렇게 질질 끌며 감정을 소모하는 건 사양이었다. 가능하다면 여준과 합의를 끝내고 단칼에 털어버리고 싶었다.여준은 시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서명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오늘 있었던 일, 처음부터 빠짐없이 말해.”“어머니한테도 들었지만, 라이브 방송에 나온 내용은 전부 사실이더군.” “그런데 그 뒤에 네가 웬 남자랑 경호원들을 데리고 와서 어머니와 이모를 협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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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시유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보통 이런 일에 엮이면 다들 어떻게든 선을 긋기 바쁜데, 연호는 오히려 제 발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여준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까 봐 일부러 불을 지피는 사람 같았다.여준이 싸늘한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시유를 쏘아보았다. 마치 아내의 불륜을 확신한 듯 비웃었다.목소리는 섬뜩할 만큼 낮게 가라앉았다.“고연호도 직접 인정했는데 계속 발뺌할 거야? 그래서 그렇게 이혼을 서두른 거였어? 진작에 갈아탈 놈을 찾아놨으니까?”여준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몸이 크게 휘청였다.시유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 서명할 거야? 안 할 거야?”“안 해. 절대 너희 둘 뜻대로 안 해.”그 순간 여준은 지난 5년 세월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함께했던 사랑도, 행복했던 기억도 모두 연기처럼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여준이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문손잡이를 움켜쥔 손이 눈에 띄게 떨렸고, 걸음걸이마저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문득 걸음을 멈춘 그가 뒤를 돌아보더니, 핏발 선 눈으로 시유를 응시했다.“4년 전 내 생일 기억해?”“당신이 처음 이 방에서 내 생일 챙겨 주면서, 같이 소원 빌면서 했던 말 기억하냐고.”시유는 그딴 과거는 떠올리기조차 싫었다.“기억 안 나.”여준이 고통스러운 듯 가슴을 움켜쥐었다.“그때 당신이 그랬잖아. 온 세상이 나를 등져도 당신만은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고.”“내가 뒤돌아보기만 하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겠다고.”“내가 어디까지 가든, 얼마나 높이 올라가든 자기 손만 놓지 말아 달라고 했잖아.”“가끔 투정 부려도 절대 먼저 손 놓지 말라고.”“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자기 마음만은 안 변할 테니까, 나더러 믿으라고 했잖아!”그 말들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모두 시유가 예전에 진심을 다해 했던 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 회상만으로도 속이 뒤집혔다.어떤 맹세도 결국 시간을 이기지는 못하는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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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출산할 때 못 챙겨 준 게 그렇게 죽을죄야? 애 낳을 때 옆에 없었던 남자가 세상에 나 하나뿐인 줄 알아? 당신처럼 이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여자가 어디 있어?”“사람이 앞을 보고 살아야지. 예전에 잘못한 건 내가 다 만회하겠다는데, 그 얘기를 꼭 매번 꺼내야 속이 시원하냐?”여준이 오히려 당당하게 따져 물었다. 심지어 그 눈빛에는 화가 섞여 있었다.마치 자기가 이 모든 일에서 제일 억울한 피해자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시유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이런 말 못 들어 봤어?”“여자가 간절하게 남자를 필요한 순간은, 공수부대원에게 낙하산이 필요한 순간과 똑같아.”“가장 절실한 그 순간에 곁에 없었다면, 그 뒤로는 영원히 나타날 필요도 없다는 뜻이야.”시유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몸이 걷잡을 수 없이 차가워졌고 마치 지독한 열병이라도 앓는 것처럼 덜덜 떨려왔다.여준은 몇 초간 멍하니 서 있다가 입술을 달싹였다.이내 다가가 시유를 억지로 품에 끌어안으며 다그치듯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다음에 또 아이를 낳게 되면 그땐 24시간 내내 옆에 붙어 있을게, 응?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 풀어.”또 저 기만적인 태도였다. 지난 5년 동안 시유가 화를 내거나 억울함을 토로할 때마다, 늘 이런 식으로 넘어가려 했다.시유가 괴로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준에게는 모든 게 쉽게 용서받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너그럽게 굴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게 계속될 수 있는 것처럼 굴었다. 늘 이런 식으로 사람 마음을 흔들었다.시유가 품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던 순간, 여준이 갑자기 작은 상자를 꺼내 열었다. 그 안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희귀한 핑크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었다.시유도 예전 어느 경매 회사 책자에서 저 다이아몬드를 본 적이 있었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몇 개 없는 데다, 왕실이나 세계적인 재벌들이 소장하고 있다는 보석이었다.“우리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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