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Chapter 121 - Chapter 130

296 Chapters

제121화

시유가 장난스레 농담을 건넸다.“설마 병원장이 경찰을 부르는 걸 기다리는 건 아니지?”임애교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감히 누가 날 잡아가겠어?”시유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어머, 배짱 한번 크시네. 임 여사, D국에서 엄청 빵빵하고 든든한 옛 애인이라도 만난 거야?”“아유, 까불지 마.”임애교가 화난 척 시유의 어깨를 툭 밀치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니. 이제야 우리한테도 좋은 날이 온 거지.”시유는 더 이상 캐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무슨 뜻인지 알아챘기 때문이다.시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엄마, 그러니까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더 이상 누구 때문에 억지로 참고 살지 마. 그러다 병을 키워서 유방암까지 걸린 거잖아.”“이 세상에서 예전처럼 우리를 짓밟고 모욕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을 거야. 그동안 우리가 당한 걸 두 배로 갚아줄 거야.”임애교는 말없이 딸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시유가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엄마의 두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이 맺혀 있었다.진지원에게 억지로 끌려 병실로 돌아온 새나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아들이 곁에서 자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잡히는 건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이걸 어떻게 참아요? 이걸 어떻게 참냐고요!”“엄마, 당장 저 여자들을 죽여버리고 싶어요! 그 모녀, 아주 한통속이라고요!”“이게 사람 사는 꼴이에요?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냐고요! 엄마, 나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아요!”한바탕 물건을 집어던지고 부수던 새나는 자신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떠올렸다. 특히 겨우 가라앉았다가 다시 뺨을 맞아 붉게 부어오른 얼굴을 생각하니,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아팠다.너무 괴롭고 절망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그렇게 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진지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새나가 발악하는 꼴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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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시선이 맞닿은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 눈을 번뜩였다.진지원의 얼굴에 번지던 짜증이 순식간에 음흉한 미소로 바뀌었다.“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래, 거길 노리면 되겠네!”“임시유가 우리 별장에 불을 질렀으니, 우리도 똑같이 갚아줘야지.”새나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으며 진지원과 하이파이브를 했다.“뷰티나잇을 불태워버리는 거야.”진지원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반짝였다.“좋아, 그 계획 아주 좋아. 다만 우리 짓이라는 걸 꿈에도 모르게 완벽하게 꼬리를 자를 방법을 생각해야 해!”새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그거야 간단하죠. 거기 직원을 돈으로 매수하면 돼요.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 법이잖아요.”“나중에 경찰이 조사해도 직원들끼리 다툼이 벌어진 것처럼 꾸미면 돼요. 당장 사람 풀어서 최근에 그 가게에서 불만 있는 직원이 있는지 알아볼게요.”진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자 의욕이 다시 살아났다.“그래, 이번 일은 아주 깔끔하게 처리해야 해!”“새나야, 이 한을 풀지 못하면 아까 임애교 그 여자가 지껄이던 꼴이 자꾸 떠올라서 도저히 분이 안 풀릴 거야!”진지원이 씩씩거리며 아기 침대 난간을 내리쳤다.그제야 진지원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침대에 아기가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그런데 방금 전부터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며 떠들고 난간까지 쾅 내리쳤는데도, 침대 안의 아기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진지원이 두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새나를 쳐다보았다.“아니, 너... 대체 시터한테 리오 수면제를 얼마나 먹인 거니?”“이 난리를 쳤는데도 애가 안 깬다고?”새나가 억울하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다.“별로 안 먹였어요. 처음엔 아주 찔끔이었는데, 그것만 먹이니까 효과가 금방 떨어지길래 양을 좀 늘리라고 했어요...”“아니... 저도 어린애가 조금 먹는 건 괜찮을 줄 알았어요. 다 푹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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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병실 밖에 서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영우였다.차에 돌아와 한참을 고민하던 영우는, 결국 비서에게 연락해 출국 비행기 시간을 미뤘다.억울하다며 악을 쓰던 새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이 우는 소리가 잠을 방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제 배 아파 낳은 갓난아기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그런 엄마가 있을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정말 내가 모르는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오랜 고민 끝에, 영우는 다시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하지만 병실 문을 열려던 순간, 열린 틈새로 새나 모녀가 아이를 두고 나누는 대화가 고스란히 흘러나왔다.진지원의 질책과,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하는 새나의 목소리가 영우의 가슴을 깊이 후벼 팠다.영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리창 너머 침대에 누워 있는 리오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이내 문고리를 잡았던 손을 천천히 내려놓고는, 발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조용히 돌아섰다.발걸음을 옮기던 중, 문이 열려 있는 빛나의 병실 앞을 지나게 되었다.똑같이 아이가 입원한 병실이었지만, 그 안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시유는 작은 빛나를 품에 꼭 안은 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부드러운 수건으로 아이의 얼굴을 끊임없이 닦아주고 있었다.빛나는 최고급 소재의 환자복을 입은 채 얼굴이며 손까지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목에 두른 턱받이도 앙증맞았고, 얼굴을 할퀼까 봐 손싸개까지 꼼꼼히 씌워져 있었다.아이가 아픈 와중에도 엄마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무엇보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유의 눈빛에는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저게 진짜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반면 새나는 어땠던가. 영우가 귀국한 이후로 새나가 리오를 안아준 적은 거의 없었고, 자기 손으로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도, 분유를 먹인 적도 없었다. 어쩌다 기분이 내킬 때만 잠깐 안고 달래다가, 금세 귀찮다는 듯 시터에게 떠넘기기 일쑤였다.집에 있으면 마스크팩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고 꾸미느라 바빴고, 그게 아니면 종일 핸드폰으로 드라마만 쳐다보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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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영우가 여준의 어깨를 툭 쳤다. “내 아들한테 수면제 먹인 거, 새나가 시터한테 시킨 짓이야. 네 사촌 동생, 네 생각만큼 그렇게 순진하고 착한 애 아니라고.”영우는 그 말만 남긴 채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한때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믿고 의지했던 친구였지만, 지금 영우의 마음속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실망감과 낯선 거리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예전엔 여자 문제로 얼굴 붉힐 일도, 감정싸움이 벌어질 일도 없었다.둘 사이엔 끝없는 대화와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의리, 눈빛만 봐도 통하는 믿음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게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애초에 여준을 믿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새나가 어릴 적부터 자신이 업어 키우다시피 한 착한 동생이라는 여준의 호언장담이 없었더라면, 영우는 결코 이렇게 섣불리 결혼을 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결국 친구를 잘못 믿은 탓에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 셈이었다.이대로 그 구렁텅이 속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진흙탕에서 빠져나오는 것 역시 뼈를 깎는 고통과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일이었다.엘리베이터에 홀로 선 영우는 거대한 바위에 짓눌린 듯 숨이 막혔다. 마치 그의 무거운 한숨을 대신하듯,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낮은 기계음만 적막하게 울렸다.복도에 홀로 남겨진 여준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방금 영우가 한 말을 이해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새나가 시터한테 수면제를 먹이라고 시켰다고?’‘말도 안 돼. 새나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해? 그 착하고 여린 애가...’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킨 여준은 굳은 얼굴로 다급하게 리오의 병실을 향해 뛰어갔다.병실 문을 벌컥 여는 순간, 마침 새나가 리오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긴 잠에서 깬 리오가 배가 고파 칭얼거리자, 새나가 어설픈 손놀림으로 젖병을 물려주고 있었다.새나는 이미 시터에게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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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영우 씨가 방금 갔다고? 오빠, 정말 확실해?” 새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진지원의 얼굴도 굳어지더니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영우는 비행기 시간 맞춘다고 진작에 나갔는데? 방금 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두 사람의 반응에 묘한 낌새를 눈치챈 여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5분 전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어. 설마, 영우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이야?”평소에도 무거웠던 여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무섭도록 차갑게 가라앉았다.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은 여준에게서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러나왔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사람을 그대로 꿰뚫어 보는 듯했다.새나는 사색이 되면서도 어떻게든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며 필사적으로 억울한 표정을 꾸며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영우 씨가 뭐라고 했는데?”진지원도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 영우가 대체 무슨 말을 했다는 거니?”두 사람을 빤히 내려다보는 여준의 눈빛에 짙은 의심이 서렸다.영우의 성격은 여준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허튼소리를 할 놈도 아니고, 확실한 증거도 없이 함부로 사람을 의심할 놈도 아니었다.눈앞에서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새나와 진지원의 반응을 보니,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이 갔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가슴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팠다.여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새나야, 솔직하게 말해. 리오한테 수면제 먹인 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그 어린애한테 그렇게 오랫동안 약을 먹였다는데 그걸 시터 혼자 마음대로 했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넌 매일 리오랑 같이 있었잖아. 애가 이상하다는 걸 정말 눈치채지 못했다고?”여준은 숨이 막혀왔다.냉정하게 생각하려 해도, 자신이 업어 키우다시피 한 사촌 동생이 이렇게 끔찍하고 철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여준의 기억 속 새나는 티 없이 맑고 착한 아이였다. 어린 시절 여준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 준 동생이었다.그런 새나가 제 배 아파 낳은 친아들에게 수면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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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깜짝 놀란 진지원이 서둘러 새나를 품에 안고 등을 다독이며 달래자, 새나는 그제야 겨우 막혔던 숨을 토해냈다.당황한 여준은 멍하니 선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장모님이 방금 새나를 때렸다고?’ ‘그것도 새나 아들이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 병원까지 찾아와 새나를 때렸단 말이야?’ ‘두 사람... 정말 이 집안을 박살 내려는 건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정말 새나를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여준은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랐다. 감정이 격해지자 온몸에 열이 뻗치며 머리가 터질 듯이 지끈거렸다.사실 여준은 내심 임애교가 하루빨리 D국 여행에서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다.임애교가 귀국한 뒤 시유를 잘 타일러준다면, 다시 예전처럼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하지만 막상 돌아온 임애교는 시유보다 더 과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했다.‘더 이상 이 모녀가 멋대로 날뛰게 둬서는 안 되겠어.’ 이대로라면 정말 사람 하나 잡을지도 몰랐다.여준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디서 맞았어? 당장 가서 따져 물을 테니까.”최대한 억누른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매서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그 말을 듣자 새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 훌쩍거리며 다급히 복도 쪽을 가리켰다. “저... 저기 복도 끝, 옆 병실에 있어.”여준의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그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굳은 얼굴로 병실을 나섰다.더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병실 앞에 다다른 여준은, 그대로 문을 세게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갔다....한편, 빛나 병실.시유가 임애교에게 무리하지 말고 어서 가서 쉬라고 재촉한 덕분에, 임애교가 막 병원을 떠난 참이었다.다행히 빛나의 고열도 내렸다. 시유는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한참을 달랜 끝에 겨우 빛나를 재웠다.빛나 걱정에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시유가 이제야 장순영과 마주 앉아 늦은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그런데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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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시유는 당장이라도 펄펄 끓는 물을 여준의 얼굴에 확 끼얹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겨우 안정을 되찾고 품에 안겨 있는 딸을 내려다보며, 시유는 포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이내 억지로 내려놓았다.시유는 살기 어린 눈으로 여준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스스로 잘못을 깨달은 여준은 문가에 선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차마 다가가지도 못한 채, 조금 전까지 치솟던 분노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시유의 품에 안긴 빛나의 얼굴을 조심스레 바라보는 여준의 마음속에 순식간에 짙은 죄책감이 밀려들었다.시유가 한참을 토닥이며 달랜 끝에, 빛나는 겨우 다시 잠들었다.시유는 조심조심 빛나를 침대에 눕히고는, 장순영에게 아기를 잘 지켜봐 달라고 눈짓했다. 그러고는 여준을 향해 복도로 따라 나오라는 살벌한 신호를 보냈다.애초에 빛나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일로 여준에게 단단히 따져 물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저쪽에서 먼저 문을 부수고 쳐들어올 줄은 몰랐다.안 봐도 뻔했다.씩씩거리며 병실 문을 걷어찬 걸 보면, 그 모녀가 또 무슨 말을 교묘하게 꾸며내서 이간질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여준은 그걸 또 덥석 믿어버린 게 뻔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시유의 입가에 싸늘한 비웃음이 번졌다.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복도 끝 비상계단으로 향했다.심란해진 여준이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고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더니, 불쑥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방금은 우리 딸이 있는 줄 모르고...”시유는 그 목소리조차 듣기 역겨웠다. “입 다물어, 듣기 싫으니까. 뜸 들이지 말고 본론만 말해. 이번엔 또 무슨 트집을 잡으러 온 건데?”여준은 시유를 마주 보는 것조차 숨이 막힐 듯 긴장됐지만, 애써 억누르며 억지로 입을 열었다. “장모님이 새나를 때렸다고 들었어. 그것도 병원 복도에서. 사실이야?”시유가 팔짱을 낀 채 싸늘한 눈빛으로 여준을 쏘아보았다. “그래서? 또 소새나 대신 복수라도 해주러 오셨어?”여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말로 해결하면 안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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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이제 와서 발뺌을 해? 우리 애 감기, 당신이 옮긴 게 아니면 대체 누구겠어!”시유는 최대한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여준의 얼굴만 보면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어 악에 받친 소리가 터져 나왔다.목숨을 반이나 내놓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낳은 딸이었다. 그런데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믿었던 남자가 아이를 이렇게 무책임하게 대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고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괴로웠다.감기 기운이 있으면 아기 곁에 가지 말아야 하고, 건강하더라도 함부로 갓난아기 얼굴에 뽀뽀를 해선 안 된다는 건 부모로서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이 남자는 딸을 향한 진심도 없으면서 그저 얄팍한 부성애를 흉내 내고 싶었을 뿐이다.그 철없는 행동 때문에 아무 죄 없는 빛나만 이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태어난 지 겨우 두 달 된 아이가 병원에 입원해 사경을 헤맸다.고열 때문에 괴로워하던 빛나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시유는 결국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빛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시유의 유일한 약점이자 전부였다.여준은 망부석처럼 굳어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꿈에도 몰랐다. 그 잠깐의 만남이 딸을 입원까지 하게 만들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딸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 앞앞뒤 생각도 못 한 채 행동했다. 아이의 뺨에 뽀뽀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를 보는 순간 감정이 북받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건... 그건 그저 아빠로서의 본능적인 행동이었어.’‘빛나를 아프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어.’ 그때는 자신이 감기 기운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중에 미열이 오르기 시작했을 때도, 차라리 아프기 전에 빛나를 미리 보고 와서 다행이라며 생각했었다.바이러스에 잠복기가 있다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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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의사와 간호사들도 급히 달려왔다.사람들이 서둘러 시유를 검사실로 옮기는 동안, 여준은 문밖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괴로워했다.어느새 여준의 곁으로 다가온 장순영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께서 이틀 동안 눈도 거의 못 붙이시고 밥도 못 드셨어요. 따님이 계속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니 식사할 정신이 없으셨던 거죠.”“사모님은 정말 따님을 목숨처럼 아끼세요. 산후조리 때도 푹 쉬시라고 해도 좀처럼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셨어요. 애가 울기만 하면 일어나시느라 몸이 많이 상하셨어요.”“대표님, 사모님한테 신경 좀 많이 써주세요. 따님 낳고 나서부터 사모님은 늘 벼랑 끝에 선 사람처럼 긴장 속에 살고 계세요.”“...”여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턱 막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그제야 여준은 깨달았다. 시유가 그토록 날이 서고 예민하게 굴었던 이유가 혹시 의지할 곳 없는 불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자신이 남편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여준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그 길고 힘든 시간 동안, 시유의 고통을 너무 무심하게 지나쳤다. 늘 뭐든 척척 해내는 사람이었으니까, 뭐든 잘해낼 거라 믿었다. 어느새 그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어 시유의 힘듦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것이다.시유가 쓰러진 원인은 식사를 거른 탓에 온 저혈당이었다.의사는 곧바로 수액을 놔주며 아이의 병실로 돌아가 푹 쉬라고 당부했다.시유가 깨어나 링거 팩을 든 채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자, 여준은 황급히 다가가 팩을 대신 들고 그녀를 부축했다. 여준의 손길은 몹시 조심스러웠고, 표정에는 깊은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하지만 시유는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내고 싶었다. 여준이 곁에 오는 것조차 싫었다. 특히 옷에서 짙게 진동하는 소독약 냄새를 맡으니 헛웃음만 났다. 당장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도무지 힘이 없었다. 밀어내기는커녕 입을 뗄 기운조차 없었다.시유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여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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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엄마, 여준 오빠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임시유한테 따지러 간 거 아니었어요? 왜 이렇게 안 와요?”새나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오 좀 보고 있어요. 내가 직접 가볼게요!”진지원에게 아이를 맡긴 새나는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그런데 몇 걸음 걷지도 않아, 복도 저편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준이 수액 팩을 높이 든 채, 핼쑥해진 시유를 애지중지 부축하며 조심스럽게 병실로 돌아가고 있었다.새나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불같이 화를 냈으면서...’‘어떻게 눈 깜짝할 새에 돌변해서 저렇게 다정하게 임시유 곁을 지키고 있는 거지?’여준에게 몸을 의지한 채 걸어가는 시유의 모습을 보자 새나는 질투심이 걷잡을 수 없이 치밀었다.리오 병실로 돌아온 새나는 있는 힘껏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그 요란한 소리에 깊이 잠들어 있던 리오가 기겁하며 깨어나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깜짝 놀란 진지원이 화를 냈다. “새나야,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애가 이렇게 어린데 문 좀 살살 못 닫아?”새나의 두 눈에는 독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엄마, 내가 방금 밖에서 뭘 봤는지 알아요?”“오빠는 임시유한테 따지러 간 게 아니라 임시유 곁에서 남편 행세나 하고 있었어요!” “지금도 안 가고 임시유 병실에 죽치고 있어요. 내 말이 안 믿기면 엄마가 직접 나가서 보든가요!”진지원은 기가 막혔다. 리오를 안아 달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여준이가 아까 그렇게 노발대발했는데? 임시유가 그 난리를 쳤는데도 그걸 다 오냐오냐 받아준다고?” “말도 안 돼, 여준이가 그렇게 줏대 없는 애가 아니잖아...”새나가 씩씩거리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엄마, 진짜라니까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임시유가 오빠 앞에서 수액까지 맞고 불쌍한 척했겠죠. 오빠는 또 그거 보고 마음이 약해진 거고!” “아까 보니까 한 손에는 수액 팩을 들고 한 손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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