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Chapter 81 - Chapter 90

108 Chapters

제81화

그림빌에 들어서자마자, 시유의 얼굴에 차갑고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시유는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몸을 돌려 나가려 했지만, 여준이 허리를 안아서 들고 있어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여준은 단숨에 시유를 거실 소파 위에 내려놓고서야 손목에 묶인 스타킹을 풀어주었다.그때 시유 품에 있던 가방이 떨어졌다. 지퍼가 닫히지 않은 가방에서 출생신고 접수 서류와 가족관계증명서가 흘러나왔다.여준은 서류 위에 적힌 ‘가족관계증명서’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주워 들고 펼쳤다. 얼굴이 사납게 굳었다.서류에 적힌 ‘임빛나’ 세 글자가 여준의 심장을 거칠게 뛰게 했다. 여준은 다시 불같이 격해졌다. 서류를 높이 들고 시유에게 소리쳤다.“어떻게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딸 출생신고를 네 마음대로 해?”여준은 답답한 듯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 터질 것 같았다.딸의 이름을 짓기 위해 여준은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작명 사이트를 뒤지고, 한자 뜻을 찾아보고, 사주 명리 상담까지 받으며 겨우 이름을 골랐다.여준은 딸이 사랑스럽고 귀엽게 자라길 바랐다. 그래서 이름에 ‘가’ 자를 넣고 싶었다.또 여자아이 이름은 부드럽고 여성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중성적인 글자를 쓰면 성격이 강해지고 제멋대로 될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여준은 ‘련’과 ‘은’ 사이에서 오래 고민했다. 결국 역술가의 조언을 듣고, 딸에게 점수까지 좋다는 이름을 정했다.부가련.가엾고도 사랑스러워 보호해 주고 싶은 아이.여준은 딸이 자라서 부드럽고 순한 성격이 되길 바랐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가엾어서라도 챙겨 주고 싶어지는, 얌전하고 순수한 토끼 같은 아이가 되길 바랐다. 온몸에 가시가 돋친 고슴도치 같은 아이가 아니라.그런데 시유가 먼저 출생신고를 해 버렸다.‘임빛나’라는 이름을 보자 여준의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가슴속 분노가 계속 치밀어 올랐다.이름부터 거슬렸다.임애교나 시유처럼 그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름도 아니었다
Read more

제82화

시유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시유가 날카롭게 소리쳤다.“당신 또 억지로 덮치려는 거야?”여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쳐서 마른 모습이었는데, 지금의 시유는 눈에 띄게 생기가 돌았다.볼에는 은은한 혈색이 돌고, 눈동자는 맑았다. 머리는 전보다 조금 길어져 중성적인 느낌이 줄고 한층 부드러워 보였다. 전보다 훨씬 생기 있고 아름다웠다.시유는 꾸미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지만, 조금만 손을 대도 확 달라지는 타입이었다. 먼지에 덮인 원석 같았다. 조금만 다듬으면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사람.여준의 눈빛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안 될 게 뭐 있어? 설마... 당신은 싫어?”여준은 시유도 원한다고 확신했다.여자가 싫다고 하는 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조금 강하게 밀어붙이고 흔들면, 결국 얌전히 따라온다고 믿었다.시유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시유는 무릎을 접었다가 그대로 여준의 아래쪽을 향해 세게 걷어찼다.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했다. 여준은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맞았다.“윽...”여준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이를 악문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시유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앉았다. 여준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경고하는데, 다시는 이런 식으로 나한테 손대려고 하지 마. 한 번만 더 그러면 경찰 부를 거야.”공기가 다시 조용해졌다.여준은 한참이나 고통을 가라앉힌 뒤에야 겨우 숨을 골랐다.시유는 여준과 어떤 대화도 더 나누고 싶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문 쪽으로 걸어갔다.여준이 시유를 붙잡았다.“잠깐만. 우리 다시 이야기해.”시유가 차갑게 여준을 흘겨보았다.“무슨 이야기? 이혼 이야기?”여준의 표정이 굳었다.“이혼은 이야기할 것도 없어. 난 절대 이혼 안 해.”시유는 더 이상 말 섞기도 싫었다.“좋아. 그럼 소장 기다려. 법정에서 보자.”퇴사했고, 빛나의 출생신고도 마쳤다. 다음은 이혼이었다.여준이
Read more

제83화

하지만 여준이 먼저 시유의 손목을 붙잡았다. 시유의 손에서 꽃병을 빼앗아 제자리에 내려놓은 뒤, 시유를 품 안에 가두고 내려다보았다. 여준의 얇은 입술이 열렸다.“나는 우리 사이가 이렇게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는 데까지 가길 원하지 않아. 나는 아직도 당신과 잘 살고 싶어. 당신이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건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다 보상할게.”“하지만 당신이 계속 이렇게 멋대로 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찾을 거야. 당신은... 누구보다 내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잘 알잖아.”시유는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입술을 세게 깨물고 말했다.“그래서 힘으로 나를 짓누르고, 굴복시키겠다는 거야?”여준이 한숨을 내쉬었다.“굴복시키겠다는 게 아니야. 나는 당신이 예전 그대로 돌아왔으면 해. 얌전히 나를 우러러보고, 나에게 의지하던 여자로 돌아오면 안 돼? 왜 꼭 이렇게 싸움으로 가야 하는데?”시유가 차갑게 웃었다.“예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당신을 우러러볼 일도, 당신에게 기대는 일도 절대 없어. 부여준, 끝까지 힘겨루기한다면 당신이 후회하게 될 거야.”여준은 코웃음을 참지 못했다.“나는 지금까지 계속 당신을 봐주고 있어. 아니었다면 당신이 쓰는 수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지.”시유는 속으로 웃었다.‘그래? 그 자신감이 오래가길...’여준이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야?”시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갑게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보인 뒤 소파로 가 앉았다.오랫동안 다투느라 목이 마르고 지쳤다. 힘을 아끼기 위해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여준은 H시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강씨 집안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유를 도와주고 있는 ‘그분’은 지금 해외에서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여준을 제압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이런 결정적인 패는 쉽게 드러내면 안 된다.여준이 문 앞에 경호원까지 세워 둔 것을 보면, 쉽게 보내 줄 생각이 없는 것이
Read more

제84화

하지만 시유는 곧 문 앞을 막은 인간 방호벽에 밀려 안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마리에 대한 걱정 때문에 물불을 가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시유는 곧바로 변항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제 절친 마리가 위험해요. 방금 구조 요청 전화가 왔는데 피를 많이 흘린다고 했어요. 최대한 빨리 마리를 찾아 주세요. 제발 구해 주세요!”변항이 답했다.[알겠습니다. 진정하십시오. 윤마리 씨 연락처를 보내 주시면 바로 사람을 움직이겠습니다.]시유는 급히 마리의 연락처, 주민등록 정보, 필요한 내용을 전부 변항에게 보냈다.전화를 끊은 뒤 시유는 초조하게 거실을 오갔다. 가슴이 불안으로 뒤집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변항의 일처리는 빠르기로 유명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변항이 시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사람 찾았습니다. 태양파크 지하 주차장입니다. 윤마리 씨는 감시카메라 사각지대로 끌려가 둔기에 맞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가해자들이 더한 짓까지 하려던 참에 제 사람들이 구했습니다.]시유의 등골이 오싹해졌다.“뭐라고요? 이런 대낮에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해요?”“마리부터 바로 병원으로 보내서 치료받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이 일은 반드시 조사해 주세요. 누가 마리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꼭 알아야겠어요.”변항이 말했다.[네, 알겠습니다.]시유가 이어 말했다.“저는 지금 부여준의 손에 끌려와서 그림빌에 갇혀 있어요. 문 앞에는 경호원 여섯 명이 지키고 있고요. 저를 여기서 빼내 주세요. 병원에 가서 마리를 봐야 해요.”[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30분 뒤.변항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사람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제 나오시면 됩니다.]시유는 가방을 들고 침착하게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있던 건장한 남자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정문 밖에는 롤스로이스 팬텀이 세워져 있었다.차 문이 열리고, 변항은 공손하게 옆에 서 있었다. 시유를 보자 변항이 신사적으로 타라는 손짓을 했다.시유는
Read more

제85화

여준은 눈을 감고 대표이사실에서 잠시 쉬었다. 퇴근해서 시유와 제대로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그때 유순자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유순자의 비명이 들렸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집에 와 보니 경호원 여섯 명이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고, 사모님도 안 계십니다!]여준의 관자놀이가 곧장 뛰었다.“뭐라고? 지금 바로 가.”여준은 더 묻지도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새나는 지병인 심장 문제가 다시 도져 병원에 입원했다. 며칠 동안 쉬고 나니 겨우 몸이 조금 나아졌다.새나가 깨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람을 고용해 마리를 때려눕히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먼저 시유의 절친부터 건드려, 시유에게 제대로 겁을 주려는 생각이었다.마리의 얼굴에 멍이 들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사진을 보자, 뒤틀린 새나의 속은 더없이 후련해졌다.새나가 이불 속에서 소리 죽여 웃고 있을 때, 진명화가 전복죽을 들고 병실 문 앞에 나타났다.새나는 깜짝 놀라 급히 핸드폰을 치웠다. 곧 평소의 여리고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약한 목소리로 불렀다.“이모...”새나의 눈시울이 곧장 붉어졌다.그 모습을 본 진명화는 마음이 아파 새나를 꼭 끌어안았다.“새나야, 네가 괜찮아서 다행이야. 이모 정말 놀랐어! 다시는 너 못 보는 줄 알았잖아!”새나의 눈물이 바로 쏟아졌다.“이모, 새언니 너무해요. 언니가... 저랑 오빠를 죽이려고 작정했어요. 너무해요.”“오빠가 저 아이 낳을 때 곁에 있어 준 게 그렇게 죽을죄예요? 언니가 우리를 이렇게까지 사람들 앞에 세워 두고 욕먹게 하다니요!”진명화도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다 그 못된 년 탓이야! 너랑 여준이는 아무 잘못 없어! 그 여자는 처음부터 재수 없는 여자야. 네 오빠가 처음부터 그런 여자를 들이면 안 됐어!”진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중년 부부 한 쌍이 병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두 사람의 손에는 짐가방이 들려 있었다.여자는 귀티 나는 옷차림에, 인상은 진명화와 어느 정도
Read more

제86화

진명화의 얼굴이 시퍼렇게 굳었다. 목소리는 더 커졌다.“그게 무슨 뜻이야? 새나가 우리 집안 체면을 땅바닥에 처박다니! 그런 짓을 한 건 시유잖아!”“유란아, 너까지 왜 그래? 너는 팔이 밖으로 굽어서 남의 편을 들고, 네 동생 편은 안 들어?”유란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차갑게 서 있었다. 키가 170센티미터에 가까운, 강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유란이 위에서 내려다보듯 진명화를 바라보자, 기세만으로도 진명화를 눌렀다. 진명화는 목이 막힌 듯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유란이 말했다.“엄마가 시유를 남처럼 대한 그 태도 때문에 일이 여기까지 온 거야.”“엄마는 입만 열면 새나는 잘못 없고 시유가 잘못했다고 하지? 그럼 내가 물을게.”“시유가 뭘 잘못했는데? 우리 집안 아이를 낳은 게 잘못이야? 1년 내내 쉬는 날 없이 우리 집안을 위해 일한 게 잘못이야? 아니면 엄마한테 너무 잘하려다가 걸핏하면 시집살이 당하고 엄마한테 잡혀 산 게 잘못이야?”진명화는 말문이 막혔다.몇 초가 지나서야 진명화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진명화는 유란을 보며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너 요즘 왜 이래? 예전에 너도 임시유 싫어했잖아. 여준이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은 그 여자 편을 드는 거야?”유란이 차갑게 진명화를 보았다.“나는 예전에 시유를 싫어한 게 아니야. 그냥 여준이가 결혼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봐, 결국 터졌잖아.”진명화는 그 말을 듣자마자 더 화가 났다.“헛소리하지 마! 네 동생이 시유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그 여자 때문에 나한테 몇 번이나 대들었는지 알아? 문제는 그 여자가 여준이 같은 남편 얻은 것을 복인 줄 모르고 제멋대로 군다는 거지, 네 동생이 무슨 잘못이야?”유란은 어이가 없었다.“엄마가 그런 태도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시유였으면 시유보다 더 크게 판을 벌이고 뒤집었어.”“시유가 아이 낳을 때, 의사가 산모와 아이 중 누구를 우선하겠냐고 물었잖아. 엄마가 아들이면 아이를
Read more

제87화

“지난 5년 동안 네가 영우를 따라 외국에 있는 동안 부씨 집안은 조용했어. 그런데 네가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큰일이 터지네. 남들은 네 속을 모를 수 있어도, 나는 널 아주 잘 알아.”새나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반박할 말이 없어 입을 열지 못했다.진명화가 무의식적으로 새나를 거들려 했지만, 유란이 날카롭게 바라보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진지원과 소효섭 부부도 5년 전 새나가 벌였던 그 일을 알고 있었다.유란이 두 사람 앞에서 그 일을 그대로 까발리자, 두 사람의 체면도 단번에 무너졌다.진지원이 말을 꺼내려던 때, 소효섭이 벌떡 일어났다.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새나야, 정신 차려라! 계속 이렇게 굴면 우리 세 집안이 전부 너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퇴원하면 네가 직접 네 새언니에게 가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 앞으로는 네 사촌 오빠와 거리 지키고. 이런 부끄러운 일로 온 도시가 떠들썩해지는 일, 더는 만들지 마라!”소효섭은 마음속 분노를 더는 참지 못했다. 거칠게 꾸짖은 뒤 곧장 병실을 나갔다.새나는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처절한 울음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다.그 모습을 본 진지원이 불쾌한 표정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한심하게 울기만 해. 고작 임시유 하나한테 그렇게 당하고 있어?”진지원은 새나를 보며 답답해했다.진명화가 무의식적으로 새나를 감쌌다.“임시유가 만만한 여자가 아니야. 나도 상대하기 힘든데, 새나가 어떻게 감당하겠어? 너무 몰아붙이지 마.”진지원은 이번에는 진명화에게 화살을 돌렸다.“언니,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언니는 부씨 집안에서 너무 힘이 없는 거 아니야?”“남이나 다름없는 여자가 언니를 이렇게 얕보는 데도 가만히 있고, 큰딸까지 자기 엄마인 언니를 대놓고 꾸짖잖아. 이러다 정말 모두가 언니를 우습게 보지 않겠어?”진명화가 억울한 듯 입술을 삐죽였다.“내가 뭘 어쩌겠어? 임시유는 요즘 완전 화약고야. 건드리기만 하면 터지고, 여준이 말도 안 들어.”“그 여자가 지
Read more

제88화

병원 응급처치실 앞.시유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병원 복도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온몸이 제멋대로 떨려 도저히 침착해질 수 없었다.시유는 새나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먼저 건드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숨만 겨우 붙어 있는 듯한 마리의 모습을 봤을 때, 시유는 자기 뺨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때리고 싶었다.‘소새나, 정말 용서할 수 없어!’시유는 손가락을 꽉 움켜쥔 채 응급처치실 문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마침내 의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의사는 마스크를 내리며 안심시키듯 말했다.“다행히 환자분은 대부분 타박상과 찰과상입니다. 장기 손상은 없고, 현재 생체 징후도 안정적입니다. 며칠만 안정하면 퇴원할 수 있습니다.”시유의 가슴을 짓누르던 커다란 돌이 겨우 내려갔다.옆에 서 있던 변항도 그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변항이 앞으로 나섰다.“병원 측과 이야기는 끝냈습니다. 곧 윤마리 씨를 1인 VIP 병실로 옮기고, 가장 좋은 의료진이 돌보게 하겠습니다.”시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내려던 때, 등 뒤에서 비꼬는 목소리가 들렸다.“어머, 언니. 여기서 보네요. 응급처치실 앞에는 웬일이에요? 병문안 오셨어요?”시유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진명화와 진지원 자매가 새나의 휠체어를 밀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세 사람은 잡아먹을 듯 시유를 바라보고 있었다.시유는 다가가자마자 새나의 옷깃을 움켜쥐었다.“소새나, 아직도 모르는 척할 생각이야? 내가 그 익명의 문자를 누가 보냈는지도 모를 줄 알았어?”시유는 거의 달려들듯 새나 앞에 섰고, 아귀힘이 얼마나 센지 새나가 휠체어에서 들릴 듯했다.진명화와 진지원은 동시에 놀라 외쳤다.“미쳤어?”진명화가 손을 들어 시유의 뺨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손이 내려오기도 전에 강한 손이 먼저 진명화의 손목을 붙잡았다.곧이어 상대가 거칠게 손을 뿌리치자, 진명화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풀썩 넘어졌다.“아이고!”진명화는 바닥에 세게 넘어지며 병원이
Read more

제89화

진지원은 이를 악물었다. 시유를 향한 증오가 최고조에 달했다.진명화는 눈을 가늘게 뜨며 오래 벼르고 벼른 사람처럼 말했다.“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정말 만만한 줄 아나 보네.”“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힘을 합쳐 임애교를 손봤는지 기억하지?”진지원의 얼굴에 사악한 웃음이 떠올랐다.“그걸 어떻게 잊어. 사람도 귀신도 아닌 꼴로 나타난 그 여자 모습은 아직도 생생해.”진명화가 비웃었다.“그러게. 이 임시유도... 내가 보기엔 임애교랑 한통속이야. 그 배에서 나온 딸이니 손보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진지원이 말했다.“그래서 내가 여준이더러 그때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던 거야. H시에 좋은 집안 딸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그 여자를 골라? 정말 이해가 안 돼.”진지원의 말에는 시유를 향한 멸시가 가득했다.진명화는 그 말을 듣자 더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그 얘기는 꺼내지도 마. 생각만 해도 화가 나! 그때 대체 무슨 수로 여준이 마음을 홀렸는지 몰라. 그 애 엄마랑 똑같아. 남자 홀리는 것들! 아주 기를 확 꺾어 놔야 해. 끝까지 몰아붙여야 한다고!”휠체어에 앉아 있던 새나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에서 많은 것을 눈치챘다.새나는 두 사람이 구체적으로 시유의 엄마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말투만 들어도 이상하게 흥분되고 통쾌했다.전에는 혼자 시유를 상대하느라 힘이 부칠 때가 있었다.이제 진명화와 진지원이 같은 편에 섰으니, 새나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 움직여 줄 것이다.새나는 속으로 기뻐했다. 예전 일의 전말을 빨리 알고 싶었고, 시유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꼴도 빨리 보고 싶었다....병원 1인 VIP 병실.마리가 드디어 눈을 떴다. 시유는 급히 마리의 손을 붙잡고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마리야, 드디어 깼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내가... 너 좋아하는 삼계탕 끓여 왔는데, 조금 먹을래?”시유는 겨우 말을 끝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이 구슬처럼 뚝뚝 떨어졌다.마리는 급히 손을 들어 시유의 눈물
Read more

제90화

다음 날 이른 아침, H시 방송국 아침 뉴스는 곧장 소식을 전했다.“도심의 최고급 주택 두 곳에서 잇따라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신고받고 출동한 소방대가 빠르게 현장에 도착해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현재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 중이며, 이번 화재로 두 주택의 직접 피해액은 각각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아침부터 시유의 핸드폰은 폭격이라도 맞은 듯 계속 울렸다.여준이 전화를 거는 빈도만 봐도, 시유는 여준이 얼마나 분해서 펄쩍 뛰고 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시유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전화받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이어 주방으로 가서 도우미가 마리에게 주려고 끓여 둔 한우 사골국을 보온 도시락에 담았다. 도시락을 들고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집을 나섰다.전에도 변항은 시유에게 경호원을 붙이겠다고 했었다. 그때 시유는 번거롭다며 거절했다.하지만 이번에 여준에게 감금당할 뻔한 일을 겪은 뒤, 시유는 순순히 마음에 드는 사복 경호원 두 명을 골라 곁에 두었다.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지금 시유에게는 적이 적지 않았다.시유는 도시락을 들고 병원으로 갔다.뜻밖에도 VIP 병실 입구에는 여준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오래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여준을 보자 시유는 자연스럽게 길을 돌아갔다. 시선은 여준을 공기처럼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쳤다.여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시유의 손목을 잡아챘다.“나한테 할 말 없어?”시유가 비웃었다.“내가 당신한테 할 말 없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잖아. 그런 재미없는 질문 좀 그만하면 안 돼?”시유는 정말 생리적인 거부감까지 느끼고 있었다.예전에 사랑하고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여준이 불편하고 싫었다.여준은 분해서 콧망울까지 떨렸다.“우리 이모 집과 그림빌의 그 불, 당신이 사람 시켜서 낸 거지? 당신이 계속 이렇게 멋대로 굴면 나도 더는 감싸 줄 수 없어. 나랑 같이 가.”여준은 말이 끝나자마자 시유를 끌고 가려 했다.이번
Read more
PREV
1
...
67891011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