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Kapitel 21 – Kapitel 30

30 Kapitel

제21화

하설은 눈을 내리깔고 침묵했다.하설은 한소영과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오늘 이전까지만 해도, 한소영은 하설에게 눈길 한 번 제대로 준 적이 없었다.그런 한소영이 지금은 협력을 제안하고 있었다.하설은 어떤 선택이든 대가가 따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뭔가를 얻으려 한다면, 뭔가를 잃을 각오도 해야 했다.하설은 약 10초 정도 침묵한 뒤 천천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여사님, 생각했습니다. 협력하겠습니다. 대신 400억 원을 주세요.”한소영의 세련된 화장 아래 유지되던 미소가 곧바로 사라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설을 바라보았다.“미쳤어? 400억 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아?”하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저는 지금 멀쩡합니다.”손끝으로 소파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던 한소영이, 눈썹을 세우면서 하설을 내려다보았다.“400억 원이 작은돈은 아니지만, 내가 마련하지 못할 돈도 아니지. 다만 현금으로는 주지 않겠어.” “이렇게 하자. 네 동생 생명 유지 장비의 연 임대료가 24억 원이니, 20년치면 400억 원이 넘어. 그 비용을 내가 부담해 주마.”하설은 웃었다.‘역시 오래 묵은 여우가 더 무섭네.’한소영은 절대 지금 하설에게 현금을 쥐여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하설에게 지금 당장 문교와 죽기 살기로 맞붙을 배짱을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하설은 얌전히 소파에 앉아 고분고분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여사님.”20년치 임대료.그거면 충분했다.적어도 유준이 꽤 긴 시간 동안 최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하지만 하설은 알고 있었다. 지금이 한소영에게 드러내 놓고 조건을 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잔꾀든, 기회를 틈탄 요구든...하설은 다시 입을 열었다.“오늘 사진 소동은 저보고 나서서 해명하라고 하실 거지요.”한소영의 눈에 뜻밖이라는 기색이 스치면서, 계속 말해 보라는 듯 시선을 보냈다.하설은 낮게 말했다.“그에 대한 대가와, 앞으로 한 달간 배문교와 혼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데 따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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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하설은 이를 악물었다.곧바로 눈물을 떨구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사진이 이렇게 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어?”문교는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울지 마. 네가 울면 내가 마음 아픈 거 알잖아. 양 비서가 방금 확인했어. 그 사진은 AI 합성물이야.” “배씨 집안 방계 쪽에서 오늘 상장 발표회를 노리고 나를 흔들려는 거야.”‘AI 합성... 생각한 방향은 같았네.’하설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조롱 섞인 웃음이었다.“그래?”문교는 세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맹세할게. 내가 너를 속였다면 벼락을 맞고, 죽어서도...”예전에는 일이 생겨 다툴 때마다 문교가 이렇게 맹세하려고 하면, 하설이 말이 끝나기 전에 입을 막았다.그래서 문교도 습관처럼 늘 말이 막히던 지점에서 멈췄다.하지만 이번에는... 하설은 그러지 않았다.검은 눈동자가 문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문교의 태도를 지켜보려는 듯이.문교는 잠깐 멈칫한 뒤 말을 이었다.“죽어서도 편히 눈을 못 감을 거야.”하설은 입술을 삐죽거렸다.“믿을게. 왜 그런 무서운 맹세까지 해?”문교는 웃었다.“우리 설이가 마음 아파할 줄 알았어. 이제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러 가자.”하설은 고개를 저었다.“안 가. 사진만 봐도 화가 나. 게다가 AI 합성이라면 왜 하필 당신과 윤채아를 합성했겠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윤채아라는 걸 알잖아.”문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다가와 하설을 가볍게 안고,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알아. 다 알아. 내 체면이 아니더라도 회사 때문에 이 일은 넘겨야 해. 상장 첫날부터 이런 추문이 터지면 내 월급도 보너스도 깎일지 몰라.” “그럼 앞으로 우리는 뭘 먹고 살아? 유준이는? 네 새아버지 쪽 프로젝트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줘.”이제 때가 됐다고 느낀 하설이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알았어.”문교는 웃으며 하설의 손을 잡고 나갔다. 발표회는 이미 만찬 순서로 넘어갔지만 행사장의 분위기는 몹시 이상했다.문교는 술잔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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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문교는 놀란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왜 그래?”하설은 핑계를 댔다.“먼저 돌아가고 싶어. 보청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게 울려서 속이 좀 안 좋아.”문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준비한 선물이 집에 도착해 있을 거야. 오늘 밤은 늦게까지 바쁠 것 같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 조심해서 가고, 도착하면 전화해.”“응.”하설은 짧게 대답했다.문교는 다정하게 하설을 바라보며 허리를 숙였다.하설이 고개를 돌려 피하자 문교가 미간을 찌푸렸다.하설은 대충 둘러댔다.“사람들이 다 보고 있잖아.”문교는 웃으며 재킷을 벗어 하설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양 비서한테 집까지 데려다 주라고 할게.”...하설은 문교가 말한 ‘선물’이 이런 것일 줄 몰랐다.“할머니!”하설이 거실에 들어서자 따뜻한 열기가 확 밀려오면서 볼을 붉게 만들었다. 한눈에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주영숙은 고개를 들었다.“우리 강아지! 이 옷이 어쩜 이렇게 예쁘니? 이게 내 손녀야?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지!”하설은 울고 싶은데 웃음이 났다. 치맛자락을 들고 주영숙 앞으로 달려갔다.“할머니, 어떻게 오셨어요? 오시는 길이 춥지는 않았어요? 왜 미리 말 안 했어요?”주영숙은 하설의 손을 잡고 안쓰럽게 말했다.“내가 보기엔 네가 더 추워 보인다. 배 서방이 사람을 보내 나를 데려왔어.” “우리 동네는 난방도 제대로 안 들어와서 너무 춥다고, 내가 버티기 힘들까 봐 데려오라고 했다더라. 미리 말하지 말라고도 했어. 널 놀라게 해 주고 싶다면서.”말을 마친 주영숙은 뒤를 살폈다.“배 서방은 왜 같이 안 왔니?”하설은 눈가를 눌렀다.“아직 행사장에 있어요. 행사가 끝나면 다른 일도 있고, 그 뒤에는 파티도 있어서 오늘 못 들어올 수도 있어요. 할머니, 저녁은 드셨어요?”주영숙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먹었다, 먹었어. 내가 내리자마자 성순 아줌마가 얼른 만둣국을 끓여 줬어. 할미한테 신경 쓰지 말고 여기 앉아 봐. 할미가 좀 보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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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주영숙이 타박하듯 말했다.“할미가 이 나이를 먹었는데, 냄새 나서 싫지도 않아?”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손은 솔직했다.팔을 뻗어 하설 뒤쪽 이불을 단단히 덮어주었다.“어릴 때랑 하나도 안 변했네. 이제 엄마가 될 나이인데도 아직 이렇게 애처럼 품에 파고들고.” “배 서방이랑 아이는 언제 가질 생각이니? 결혼한 지 2년이면 슬슬 생각해야지.”주영숙은 계속 중얼거렸다.하설은 또렷이 들었지만, 일부러 턱을 주영숙의 어깨를 비비면서 말했다.“할머니, 뭐라고요? 저 보청기 안 꼈어요. 하나도 안 들려요.”어둠 속에서 주영숙의 눈시울이 또 붉어지면서 결국 훌쩍이기기까지 했다.“그때 네 아버지랑 같이 그 나쁜 놈들을 쫓아가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다면 네가 네 아버지 일을 직접 보지도 않았을 텐데.” “이렇게 착하고 예쁘고 똑똑한 내 손녀가 청력을 잃지도 않았을 텐데...”하설은 목이 메었다.그해에 문교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문교를 하설의 아버지 심민석에게 맡겼다.하지만 문교는 친아버지를 찾겠다는 생각뿐이었다.그 때문에 낯선 사람들에게 속았다.그 사람들이 문교를 데리고 가자, 심민석은 문교를 구하려고 집에 있던 오토바이를 타고 그 사람들을 쫓았다. 어린 하설도 자전거 페달을 미친 듯 밟으며 아버지 뒤를 따라갔다.그래서 하설은 직접 보았다. 문교를 데리고 간 나쁜 놈들이 승합차로 아버지 심민석을 몇 번이나 짓밟아서, 사람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끔찍한 장면을...하설은 자전거에서 떨어졌다.아버지 쪽으로 기어가며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목에서 피가 올라오면서 가슴이 터질 듯했지만,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은 죽은 듯 조용했고, 모든 소리는 아버지와 함께 사라졌다.그날부터 하설은 청력을 잃었다.그날부터 문교는 다시는 아버지를 찾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그날부터 하설, 유준, 문교 세 아이는 주영숙의 손에 힘겹게 자랐다.하설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주영숙의 배를 가볍게 토닥거렸다.“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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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이재훈은 평가표를 여의사에게 건넸다.“됐습니다.”여의사는 서둘러 진료실을 나갔다.이재훈은 느긋하게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배 대표님. 사모님이 아이 인공와우 수술 전 검사 때문에 제 진료실에 오셨습니다.”이재훈이 문교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하설의 살짝 귀를 기울였다. 한 손으로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누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율과 수어로 대화를 이어 갔다.이재훈의 말이 그대로 귀에 들어왔다.“정말 저를 곤란하게 하십니다. 사모님 보청기 파라미터를 더 올리면 사모님 몸과 정신 건강에 악영향이 생깁니다.”“심하면 귓속이 계속 찌르는 듯 아프고, 고막에 천공까지 생길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인공와우 수술도 영영 못 합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닙니다!”“하하하, 역시 배 대표님은 통이 크시네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하설의 손톱이 자신의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면서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알고 보니... 전부 거짓이었다.후천성 난청이라 인공와우 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말도 거짓이었다.체질이 특이해 보청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말도 거짓이었다.문교는 의사와 짜고, 하설을 평생 소리 없는 세상에 가둬 두려고 했다.‘짐승...’소리 없는 분노가 하설의 눈속 깊은 곳에서 타올랐다.하설은 속이 뒤집힐 듯하면서 창백해진 손끝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하설은 다시 보청기를 꼈다.이재훈은 곁눈질로 확인한 뒤 급히 전화를 끊었다.“사모님, 축하드립니다. 하율이는 한 달 뒤 인공와우 수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보청기에 의지하지 않아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얼굴 표정을 필사적으로 조절해서, 하설은 겨우 기뻐하는 미소를 만들어 냈다.“정말 다행이네요. 교수님은 참 의사다운 분이세요.”이재훈은 웃으며 손짓했다.“사모님, 얼마 전 배 대표님을 뵈었는데, 사모님 보청기에서 전류음이 자주 난다고 하셨습니다. 집중도 잘 못 하실 정도라고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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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다만 사모님께서 그동안 맞지 않는 세팅을 오래 견뎌 오신 탓에, 오히려 정상 세팅이 낯설게 느껴지는 겁니다. 천천히 적응하셔야 합니다.”하설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렇군요.”이재훈은 하설 모자를 밖으로 배웅하며 말했다.“이건 배 대표님이 큰돈을 들여 사모님께 맞춘 제품입니다. 이것도 안 맞으면 시중의 어떤 보청기도 쓰기 어려울 겁니다.” “우선 적응해 보세요. 정말 견디기 힘들면 그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네, 알겠습니다.”하설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진료실 밖으로 나온 하설은 하율의 손을 잡았다.“감사합니다, 교수님. 옛말에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잖아요. 교수님처럼 마음씨 좋으신 분은 하늘도 다 보고 있을 거예요. 언젠가 꼭 돌려받으실 겁니다.”이재훈의 눈가가 움찔하더니, 미소도 조금씩 어색해졌다.“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모님, 조심히 가십시오.”하설을 보낸 뒤, 이재훈은 진료실로 돌아가기도 전에 급히 핸드폰을 꺼내 은행 알림을 확인했다.계좌에 2천만 원이 입금됐다는 알림이었다....의사 면허가 날아갈 위험까지 감수하며 이런 일을 도왔으니, 문교가 건넨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문교가 이만한 돈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다는 건, 분명 드러나지 않은 자금줄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그 돈은 문교 명의가 아닌, 그가 믿는 누군가의 차명 계좌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컸다.‘배문교가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수석비서 양현? 아니면 윤채아일까?’하설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엉켰다. 실타래처럼 엉켜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하설은 반쯤 넋이 나간 채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차를 세우고 안전벨트를 푸는데, 거치대의 핸드폰이 울렸다.하설은 전화를 받은 뒤 하율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하율은 작은 손을 들어 눈송이를 받으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올해는 눈이 정말 많이 와요.”두 사람이 조각 장식이 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간 뒤,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라즈베리 핑크색 벤츠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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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하설은 멍한 눈으로 채아를 바라보았다.“무슨 말인지 안 들려. 미쳤어? 놔.”채아는 풋 웃었다.“언니, 내가 방금 밖에서 봤어. 전화 받을 때 보청기도 안 끼고 있었잖아. 아직도 내 앞에서 연기해?” “청력이 돌아온 걸 왜 문교 오빠한테 숨겨? 무슨 떳떳하지 못한 생각을 품고 있는 거야?”눈을 내리깐 채 하설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면서, 입꼬리도 살짝 올라갔다. 다른 손으로 채아의 손을 떼어 내면서 하설이 말했다.“청각장애인 앞에서 혼자 떠들어 대는 걸 보니,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외로운가 보네.”채아는 하설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아직도 연기해?”하설은 마치 바보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채아를 쓱 훑어보고는,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화가 치민 채아가 다시 하설 앞을 막았다. 얼굴을 거의 붙이다시피 다가와서는, 마치 승자처럼 비웃었다.“그럼 내가 말해 줄게. 문교 오빠는 언니가 늙은 남자와 결혼했던 걸 더럽다고 여겨.” “결벽증이 있어서 차라리 한밤중에 차를 몰고 나를 찾아와 자더라도, 언니는 건드리고 싶지 않대.”“문교 오빠가 왜 언니랑 결혼했는지 알아? 첫째, 배은망덕한 인간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둘째, 언니 동생이 나를 구하다 식물인간이 됐으니까 불쌍해서.”“셋째, 한소영 여사가 문교 오빠 세력이 너무 커지는 걸 경계했기 때문이야. 언니처럼 배경도 없는 장애인과 결혼해야 한소영 여사가 안심할 수 있었거든.”말을 할수록 채아의 웃음은 더 커졌다.“언니, 솔직히 알려 줄까? 사실 언니 남편 욕구가 엄청 강해. 매일 밤 나를 원해. 너희 신혼 첫날 밤에도, 우리는 언니 방 발코니에서 땀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했어.”짝!날카로운 손바닥이 바람을 가르며 채아의 뺨에 정확히 떨어졌다.채아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하얀 뺨에는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하지만 채아는 화를 내지 않았다. 고개도 돌리기 전부터 크게 웃었다.“드디어 꼬리가 잡혔네.”채아는 타오르는 눈으로 하설을 바라보았다.“역시 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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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쿵!묵직하고 둔탁한 소리.두개골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치는 끔찍한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할머니!”하설은 미친 듯이 달려 내려갔다. 무릎이 바닥에 부딪혔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떨리는 두 손으로 축 늘어진 할머니를 끌어안았다.“할머니, 괜찮아요? 저 좀 봐요!!”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핸드폰!! 내 핸드폰이 어디 있지?!’당장 119에 신고해야 했다.주머니를 뒤진 하설은 핸드폰을 꺼내 떨리는 손가락으로 119를 눌렀다.“로온힐스 1단지예요. 어르신이 계단에서 떨어져 의식이 없어요. 제발 빨리 와 주세요. 빨리요...”채아의 몸이 굳어지면서 눈빛이 흔들렸다.두 손은 난간을 꽉 잡은 채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피어났다.‘저 늙은이, 설마 죽지는 않겠지?’극도의 혐오와 원망으로 가득찬 살기를 품은 시선이 채아에게 꽂혔다.그 눈빛을 마주하자 채아는 본능적으로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하설은 잔뜩 쉰 목소리로 한 글자씩 씹듯이 내뱉었다.“윤채아! 우리 할머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반드시 너를 죽여버리겠어!”...차가운 병원 복도에는 소독약 냄새가 짙게 깔려 있었다.하설은 혼자 복도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수술 중’이라는 붉은 불빛이 눈을 뜨겁게 비췄다.성순이 하율을 데리고 도착했고, 하설의 보청기도 가져왔다.성순이 있기에 하설은 습관처럼 보청기를 꼈다.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짙은 녹색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나왔다.“주영숙 어르신 보호자분 계십니까?”하설은 튕겨 오르듯 일어났다.“저요. 제가 손녀예요. 우리 할머니 지금 어떠세요?”의사는 불필요한 말은 전혀 없이 간결하게 말했다.“어르신은 이송 당시 상태가 매우 위중했습니다. 심장병 병력이 있다는 점은 알고 계시죠.” “이번 충격으로 급성 광범위 심근허혈과 심각한 부정맥이 발생했습니다. 쉽게 말해 급성 심근경색입니다.”의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얼음 송곳처럼 하설의 가슴에 박혔다.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의사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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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말을 마치자 문교는 전화를 끊었다.“여보세요, 여보세요...!!”핸드폰에서는 차가운 통화 종료음만 흘렀다.핸드폰을 든 하설은 그 자리에 굳은 채 서 있었다. 귀 안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울렸다.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찬바람이 거침없이 밀려들면서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하지만 하설은 슬퍼할 시간도, 분노할 시간도 없었다. 할머니는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다. 하설이 버텨야 했다. 할머니를 살려야 했다.이 세상에서 하설에게 차고 따뜻한 것을 물어봐 줄 혈육은 할머니뿐이었다.‘누구를 찾아야 할까?’‘한소영 여사!’하설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소영에게 전화했다.“여사님, 제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셨어요.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병원에서는 도현민 선생님이 직접 집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소영 여사님,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한소영은 조금 놀란 듯했다.[널 도와주기 싫은 게 아니라, 도씨 집안은 대대로 진씨 집안을 배경으로 삼은 의료계 명문 집안이야.] [보통 사람이 친분을 만들 수 있는 집안이 아니야. 나도 도 선생 어머니를 한 번 본 게 전부야.]하설은 맥이 빠진 목소리로 폐를 끼쳤다고 말한 뒤 급히 전화를 끊었다.‘도씨 집안은 진씨 집안을 배경으로 삼은 의료계 명문 집안...’‘진씨 집안...’‘진우건?!’한 손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하설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감정을 억눌렀다. 우건의 번호를 찾아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수화기 너머의 연결음이 한 번씩 울릴 때마다 무너져 가는 신경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제발... 전화를 받아 주세요...’통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자동으로 끊기기 직전에 비로소 전화가 연결됐다.나지막하고 안정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네.]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하설은 눈물이 다시 쏟아질 뻔했다.“회장님, 저예요. 심하설입니다. 죄송해요, 방해해서... 제 할머니가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고 있는데, 당장 수술이 필요해요...”“병원에서는 도현민 선생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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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수술실 문이 다시 닫혔고 붉은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하설은 곁에 선 우건을 바라보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회장님, 감사합니다. 할머니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하설을 바라보는 우건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하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 먼저...”하지만 말이 중간에서 끊어졌다. 하설은 계속 가슴을 눌러 오던 뜨거운 뭔가를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며칠째 이어진 정신적 압박과 쌓인 감정에, 몸의 한계가 모두 피 속으로 몰려든 듯했다.“콜록, 콜록...”하설의 안색이 바뀌었다. 몸을 숙이고 격렬하게 기침을 하더니, 예고도 없이 검붉은 피가 입에서 튀어나왔다.눈앞의 모든 것이 일그러지면서, 귀에 들리던 소리도 천천히 멀어졌다. 세상이 뒤집히는 듯하면서, 하설의 몸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아래로 무너졌다.하지만 바닥에 부딪치는 아픔은 전해지지 않았다.하설이 완전히 쓰러지기 전에 남자가 강한 팔로 몸을 받쳤다.두 눈을 꼭 감은 하설의 몸은 차가웠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가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미간을 잔뜩 찌푸린 우건이 하설을 안아 들고서 급히 응급실로 향했다....“설아, 드디어 깼구나.”익숙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하설의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어떻게 당신이 있어?”문교는 조심스럽게 하설의 손을 잡았다. “움직이지 마. 아직 수액 맞고 있잖아. 할머니 수술은 아직 안 끝났어. 별말이 없다는 건, 아직 괜찮다는 뜻이야.”“의사가 말하길, 너는 요즘 감정 기복도 크고 정신적 압박이 심해서, 스트레스로 위장의 혈관이 파열됐대. 푹 쉬어야 한다고 했어.”하설은 잡혀 있던 손을 빼냈다.문교의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묻어났다.“할머니가 그렇게 심하게 다치신 줄 몰랐어. 그때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네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어.” “다 내 잘못이야. 할머니가 깨어나시면 내가 직접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할게.”문교를 바라보는 하설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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