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Chapter 31 - Chapter 40

100 Chapters

제31화

문교의 눈 속 깊은 곳에 아주 잠깐 다른 기색이 스쳤다.하지만 문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발은 점점 거세졌다.하설과 문교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다. 하설은 문교의 마음이 조급해졌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하설은 시선을 내렸다.입가가 얕게 올라갔다.‘아, 벌써 그렇게 마음이 쓰여?’쾅!양현이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급박한 표정이었다.“대표님, 윤 비서님이 눈밭에서 쓰러졌습니다.”문교가 벌떡 일어섰다.자신이 지나치게 동요했다는 것을 깨달은 듯, 문교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하설을 돌아보았다.“아래층에 좀 다녀올게. BY그룹이 막 상장한 참이야. 절대 인명 사고로 얽히면 안 돼. 나중에 다시 올 테니까 푹 쉬고 있어.”문교와 양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둘러 병실을 나갔다.하설은 병상에 누운 채 코를 훌쩍였다. 콧속에 달궈진 솜뭉치가 틀어박힌 것처럼 답답했다.이어서 아주 옅게 웃었다.‘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지, 바보가 아니라.’‘배문교는 나를 바보로 보고 있어.’‘할머니가 아직 수술실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병상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 있겠어?’하설은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벽을 짚고 한 걸음씩 수술실 쪽으로 걸어갔다.간호사 데스크를 막 지나쳤을 때 등 뒤에서 어수선한 발소리가 밀려왔다.병원이니 그런 일은 흔했다.하설은 신경 쓰지 않고 두 걸음을 더 내디뎠다.발소리가 멎자, 이어서 문교의 목소리가 들렸다.“선생님, 이 사람이 눈밭에서 쓰러졌습니다!”하설은 돌아보지 않고, 멈추지도 않았다.마른 몸에 걸친 환자복이 유난히 헐렁했다. 하설은 홀로 수술실 앞까지 걸어갔다.툭-수술실 문 위에서 붉게 타오르던 불빛이 마침내 꺼졌다.현민이 수술실에서 나왔다.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리자 젊고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지만 짙은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스텐트 삽입도 순조로웠고 막혔던 혈관도 뚫렸어요. 수술 중 바이탈 사인이 잠시 흔들리긴 했지만 안정적으로 넘기셨습니다.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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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인사도 없이 현민은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아래층으로 내려온 현민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사촌 형이 아래층 차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드문 일이었다.정말 드문 일이었다.현민은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형, 난 형이 간 줄 알았는데. 설마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우건은 깊은 눈으로 태블릿을 내려놓았다.“수술은?”현민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손대면 뭐든 되지. 저승 문턱까지 간 사람도 염라대왕이랑 싸워서라도 데려온다니까. 아주 잘 됐어. 아마 24시간도 안 돼서 깨어나실 거야. 그런데 하나만 물어보자.”우건이 현민을 바라보았다.현민은 건들건들하게 웃었다. 눈꼬리와 입꼬리가 동시에 올라갔다.“형, 내가 수술한 그 환자분 손녀 좋아하지?”우건이 눈살을 찌푸렸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현민은 콧방귀를 뀌었다.“속일 걸 속여야지. 마음 없으면 실험센터 만들라고 200억 원을 내밀면서 나를 꼬셔? 고작 그 손녀분 할머니 수술해달라고?”우건은 의미 없는 설명을 덧붙이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현민은 멈추지 않았다.“근데 아까 보니까 그분 아이도 있더라. 결혼한 사람 맞겠지? 형이 남의 가정 흔들려면 하나만 꼬시는 게 부족한데...”“그래도 아이까지 붙어오면 하나 더 얻는 셈이긴 하다. 내가 형이 남의 아내를 좋아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우건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관자놀이를 누른 우건이 낮게 꾸짖었다.“입 닫아.”현민은 뭔가를 깨달은 듯 얼른 말을 바꿨다.“알았어, 알았어. 남의 아내를 좋아한다는 말은 듣기 좀 그러니까, 앞으로는 형이 좋아한 사람이 하필 남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고 할게. 이게 좀 낫지? 대신 형이 좀 처량해 보이긴 한다.”우건이 고개를 돌려 현민을 보았다.현민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왜 그렇게 봐?”우건은 차 뒤쪽을 한 번 흘끗 보고 말했다.“트렁크에서 물건 좀 꺼내 와.”“어.”현민은 순순히 차에서 내렸다.무엇을 꺼내야 하느냐고 돌아서 묻기도 전에 검은색 컬리넌이 현민의 옷자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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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하설은 문교가 내민 고소장을 받아들었다.문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문교는 알고 있었다. 하설은 늘 얌전했고, 결국 자신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그러나 다음 장면은 문교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하설은 고소장을 움켜쥐고 문교의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짝!맑고 큰 소리가 울렸다.조용한 병원 복도에 메아리까지 생길 만큼 선명했다.문교의 잘생긴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잠시 공기가 멈춘 듯했다.한참 뒤, 문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하설을 보았다.“네가 나를 때려?”고소장을 쥔 하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익숙한 비릿함이 올라왔지만 하설은 이를 악물고 눌러 삼켰다.“이건 할머니 몫이야. 할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너를 키웠는데. 할머니가 당했고, 목숨까지 잃을 뻔했어. 그런데 넌 가해자를 빼내려고 해?”“나는 윤채아를 고소할 거야. 모두에게 윤채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릴 거고, 그 악랄한 짓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감옥에서 썩게 할 거야.”문교는 숨을 가볍게 들이마셨다.“잔뜩 때렸고 욕도 했으니까 이제 진정할 수 있겠어?”하설이 한 걸음 다가섰다. 고개를 들었다.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문교를 바라보았다.“너 예전엔 윤채아 싫어했잖아. 윤채아를 동생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도 나였고.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까지 잘해?”문교는 미간을 좁혔다.“그게 무슨 뜻이야? 너는 내가 채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만 보고, 채아가 뭘 해왔는지는 늘 외면해.”“네가 싫어하는 술자리는 채아가 죽을 듯 마셔가며 버텼고, 네가 나가기 싫어하는 행사는 채아가 사람들 사이에서 다 맞춰줬어. 채아가 없었으면 네가 그렇게 한가했을 것 같아?”하설은 돌아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럼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해?”문교는 하설 앞에 반쯤 몸을 낮췄다.“그런 뜻이 아니야. 채아는 내 비서고 손에 들고 있는 업무가 많아. 채아가 고소당하면 당장 채아의 일을 대신할 사람을 찾기 어려워. 회사에도 손해가 크고.”“이렇게 하자. 할머니가 회복되면 채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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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하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간호사를 따라 무균복을 갈아입고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주영숙은 아직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몸에는 여러 장치가 연결되어 있었다.“설아, 할미가 너 많이 놀라게 했지?”하설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주영숙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주영숙이 콧소리를 냈다.“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10년 전만 해도 채아 같은 어린 애 둘이 와도 나한테 못 당했어. 설아, 그 애가 너한테는 별짓 안 했지?”하설은 고개를 저었다. 시선을 내린 채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안 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는 제 걱정은 마시고 할머니 몸만 잘 챙기시면 돼요. 의사 선생님이 할머니 체력이 좋으시대요. 아흔아홉까지 사실 수 있대요.”주영숙이 웃었다.“아이고, 내 바보 손녀. 의사가 언제부터 사주팔자를 봐줬대?”하설은 멈칫했다가 따라 웃었다.“할머니, 저 잠깐 나갔다가 올게요. 어디 불편하시면 바로 벨 누르세요. 벨은 바로 손 옆에 있어요.”주영숙은 고개를 끄덕였다.“할미 걱정하지 마. 나 아무렇지도 않아. 고향에 있을 땐 네 이모할머니들이랑 매일 산책도 하고 뒷산도 올랐어. 체력은 너보다 나아.”하설은 주영숙과 몇 마디를 더 나눴다.의사가 허락하면 유준을 보러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주영숙은 하설을 보내주었다.주영숙이 깨어나자 하설의 마음을 짓누르던 돌도 내려앉았다.그제야 하설은 갈아입을 옷을 챙길 여유가 생겼다....하설이 캐리어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던 때였다.문교가 채아를 안고 밖에서 들어왔다.하설을 먼저 본 사람은 채아였다.“언니, 돌아왔네. 병원에서 언니한테 사과하려고 했는데 다리를 다쳐서 의사가 사흘은 침대에 누워 있으래. 그래서 못 갔어.”하설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조롱이 섞인 웃음이었다.“하늘도 참 무심하지. 아예 부러뜨리진 않았네.”채아는 억울한 듯 입술을 오므렸다.문교가 한숨을 쉬었다.“그렇게까지 모질게 말해야 해? 병원 가는 길이야? 내가 태워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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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문교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단순히 청력이 돌아온 것이라면 괜찮은데...’‘하지만 들으면서 못 듣는 척을 하고 있다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질 거야.’채아가 고개를 들었다. 겁먹은 듯 물었다.“언니가 나랑 오빠 사이를 알고 기회를 봐서 나한테 복수하려는 걸까? 아무 남자나, 심지어 폭력적인 남자한테 나를 시집보내려고 하면 어떡해? 오빠, 나 무서워.”문교는 정신을 차렸다.채아의 걱정을 듣자 문교는 우습다는 듯 말했다.“설이한테 그럴 능력 없어. 설령 알았다고 해도 어쩔 건데? 지금 설이 본인도, 동생도, 외할머니도, 엄마도, 심지어 새아버지까지 내 돈으로 버티고 살아. 설이는 이 판을 뒤집을 수 없어. 감히 그러지도 못해.”채아는 코웃음을 치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사람들이 그러잖아. 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고. 오빠가 언니한테 그렇게 돈을 많이 쓰니까, 언니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거겠지?”문교는 시선을 내렸다. 손가락이 채아의 뺨을 가볍게 스쳤다.“양심 없는 꼬맹이. 내 돈이 어디로 가는지 네가 몰라?”채아가 볼멘소리했다.“알면 뭐 해. 오빠가 돈 버는 거 힘든 줄 아니까, 난 오빠 돈 한 푼 쓰는 것도 아까운걸.”문교가 채아 옆에 앉았다.채아는 곧바로 몸을 낮추듯 문교의 품에 기대었다.문교가 낮게 말했다.“네가 제일 착한 거 알아. 얌전히 있어. 내가 다 보상할게.”예전의 하설도 그렇게 착했다.하지만 요즘은...‘정말 들리는 건가?’그 의심은 문교의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혔다.채아는 흥미로운 듯 고개를 들었다. 문교의 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물었다.“무슨 보상?”문교가 웃었다.“너 불꽃놀이 디자인하고 싶어 했잖아. 내가 하게 해줄게.”...문교는 차 안에 앉아 담배를 네 대째 피웠다. 차 안은 이미 연기로 자욱했다.문교는 핸드폰을 꺼냈다.이재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배 대표님... 혹시 무슨 일이십니까?]문교의 목소리는 연기에 젖어 더 낮고 거칠었다.“교수님, 혹시 제 아내가 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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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이재훈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손끝이 저렸고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떨렸다.“소리가... 들리십니까?”하설은 담담히 웃었다.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그날 아이가 제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가 우연히 녹음을 눌렀더군요. 집에 와서 보니 못 보던 녹음 파일이 하나 있길래 재생해봤어요. 뜻밖에도 제 인생과 아주 밀접한 엄청난 비밀이 들어 있더군요.”이재훈은 어금니를 악물었다.“그렇다면 배 대표님을 찾아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부 배 대표님 지시로 한 일입니다.”하설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교수님이 제 일을 하나 도와주셔야겠습니다.”이재훈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움츠러든 눈이 하설에게 꽂혔다.하설의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으며 흐트러짐이 없었다.“보청기 백엔드 기록을 수정해 주세요. 착용 시간과 착용 횟수 모두요.”이재훈은 정색했다.“저는 의사입니다. 그런 짓은 할 수 없습니다.”그 말이 하설에게는 우습게 들린 모양이었다.하설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교수님, 더한 일도 이미 하셨잖아요. 이제 와서 이런 건 못 하시겠다고요? 갑자기 양심이 살아나신 건가요? 아니면 제가 가진 녹음 파일이 교수님의 가정을 무너뜨리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하신 건가요?”“제가 교수님에 대해 조금 알아봤어요. 교수님 아내분은 공립학교 교사시더군요. 우수 교사 표창도 두 차례 받으셨고, 주변에서 평판이 아주 좋은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명예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는 분이라면서요.”“교수님 딸은 올해 14살, 중학생이죠. 아버지를 본보기로 삼고 존경한다고 하더군요. 장래희망도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어 사람을 살리는 거라고요.”“참 좋은 세 식구네요. 행복하고 단란하고, 교수님과 부인의 앞날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굳이 위험을 안고 녹음 파일 하나 때문에 한 가정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을까요?”이재훈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눈은 핏줄로 가득했다.“사모님... 제 가족은 죄가 없습니다. 하실 말이 있으면 저한테 하십시오.”하설은 양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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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예지가 코를 훌쩍였다.[직원들은 유급휴가 처리한다고 하는데, 결국 우리더러 먼저 사직서 내라고 하는 것 같아요. 대표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얼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잖아요. 중앙광장 카운트다운 불꽃도 우리가 디자인했는데...]하설은 발끝에서 차가운 기운이 치밀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럼에도 감정을 누르고 예지를 달랬다.“우선 당황하지 마. 내가 바로 갈게.”하설은 간호사 데스크로 걸어갔다.주영숙을 간호사에게 부탁한 뒤 병원을 서둘러 나와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하설의 목적지는 빛담불꽃기획이 아니었다.문교의 사무실로 곧장 갔다.양현은 하설이 온 것을 보자마자 빠르게 일어나 맞았다.“사모님, 어떻게 오셨습니까?”하설은 걸음을 멈추고 두 손으로 가방을 몸 앞에 들었다.“왜요? 여기 제가 보면 안 되는 거래라도 있나요? 제가 오면 안 됩니까?”양현은 말문이 막혔다.곧 얼굴 가득 웃음을 얹고 말했다.“그런 뜻이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방금 회의에 들어가셔서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괜찮습니다. 회의 끝날 때까지 기다리죠.”양현은 하설에게 공손히 커피를 내왔다.그 뒤로도 하설 곁에 서서 주영숙의 상태를 묻고, 하율의 인공와우 수술 진행 상황을 묻는 등 하설을 사무실에 혼자 두지 않으려 했다.문교가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자 양현은 겨우 숨을 돌렸다.“대표님, 사모님께서 30분 전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문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문교가 정장 재킷을 벗자 양현은 서둘러 받아 걸었다.“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하설은 고개를 들었다. 이름을 또렷이 불렀다.“배문교, 왜 내 회사 직원한테 일을 멈추라고 지시했어?”문교는 웃으며 양현에게 서류를 가져오라고 눈짓했다.“먼저 흥분하지 말고 이걸 봐.”양현은 서류철 더미에서 한 부를 꺼냈다.하설에게 건넸다.문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이렇게 하고 싶진 않았어. 하지만 너를 위해서고, 그 회사 직원들을 위해서야.”하설은 서류를 받아 빠르게 넘겨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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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할머니도 돌보고, 하율이 수술 간병에도 온전히 신경 쓸 수 있잖아. 수술 후에도 하율이를 더 잘 챙길 수 있고. 솔직히 우리 돈 부족하지 않아. 네가 그렇게 큰 부담을 안을 필요 없어.”그럴듯하게 포장된 말은 가장 교묘한 가스라이팅이었다.겉으로는 ‘내가 너를 걱정한다, 네가 힘들까 봐 두렵다, 내가 너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실제로는 하설의 날개를 꺾어 새장 속 새로 가두려는 것이었다.하설은 자신이 분노로 타오를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그럼 빛담불꽃기획을 BY그룹에서 완전히 분리해. 애초에 만들 때도 BY그룹을 등에 업을 생각은 없었으니까.”“네가 BY그룹 아래 두면 영업이나 세무 처리에서 편하다고 해서 내가 동의했던 거야. 지금 BY그룹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면 내가 빛담불꽃기획을 분리해서 나갈게. 흑자든 적자든, 빛담불꽃기획은 나 혼자 힘으로 운영하는 빛담불꽃기획으로 두겠어.”문교의 미간이 거의 보이지 않게 움직였다.문교는 양현을 보았다.“나가 있어.”양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사무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문교는 일어나 사무실 안을 한 바퀴 돌았다.“앞으로 환경 규제는 점점 더 엄격해질 거야. 전통 불꽃은 언제 금지되거나 도태될지 몰라.”하설은 담담히 웃었다.“걱정하지 마. 그건 내가 고민할 문제야.”문교는 하설의 한 손을 잡았다. 난감하면서도 결국 져주는 사람처럼 보이려 했다.“그런데 빛담불꽃기획을 BY그룹에서 분리하면 주주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 사람들이 못되게 굴면 껍데기조차 네게 남지 않을 수 있어.”그 말을 듣고 하설은 문교가 이미 결론을 정해뒀다는 것을 알았다.하설은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돼?”문교는 마침내 진짜 목적을 꺼냈다.“이미 경쟁력을 잃은 빛담불꽃기획은 접고, 디지털 불꽃쇼 사업으로 전환하는 게 어떨까?”“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채아가 마침 그쪽에서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어. 기술 파트는 채아가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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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하설은 상자를 받아 들었다.“고마워.”그러고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문교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문교는 돌아서서 통유리창 앞에 섰다. 그곳에서는 경운시의 절반 가까이가 내려다보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잠시 뒤.하설이 로비를 나와 길가에서 택시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이재훈이 보낸 보청기 착용 시간 기록을 확인했지만, 문교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래서 하설의 차를 바꿨다....주영숙은 회복이 빨랐다.사흘째 되는 날에는 침대에서 내려와 두어 걸음 걸을 수 있었다.하설이 보온 도시락을 들고 병실 문 가까이 다가갔을 때, 안에서 남희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정말 재밌으세요. 몸 다 나으시면 저 꼭 할머니 고향에 가서 할머님께서 키우신 토종닭 한번 먹고 싶어요.”주영숙은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그때 할미가 토종닭 백숙 해줄게. 한 번 먹으면 또 생각날 거다.”“약속하신 거예요!”하설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노인과 젊은 여자가 동시에 하설을 돌아보았다.하설은 작은 탁자 위에 보온 도시락을 놓고 열었다.“할머니, 식사하세요.”남희는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하설을 보는 눈에 미안함이 묻어났다. 남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날 경매장에 진씨 집안 사람이 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주영숙은 식사하다 말고 궁금해했다.“무슨 경매장?”남희는 주영숙이 아직 그 일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급히 둘러댈 말을 찾았다.그때 하설이 조용히 말했다.“결국 목걸이는 내가 받았어. 진 회장님에게서 다시 샀어.”주영숙은 더 궁금해졌다.하설과 남희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너희 둘이 무슨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는 게냐?”하설도 원래 오늘 목걸이를 주영숙에게 전달하려 했다.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 안에서 직사각형 벨벳 보석함을 꺼냈다.주영숙의 얼굴에 감격이 떠올랐다.“아이고 세상에, 이거 내 혼수... 그때 맡겼던 그거잖아. 어디서 찾아온 게냐?”하설이 말하기도 전에 남희가 급히 끼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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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었다.좋은 소식이라고 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그저 제자리를 찾은 것뿐이었다.하설은 대답했다.“알았어.”문교가 물었다.[사무실 알아봐 줄까?]“됐어. 내가 찾을게. 나중에 양 비서님에게 빛담불꽃기획 관련 자료와 서류, BY그룹과의 해지 계약서 전부 보내달라고 해줘.”문교가 웃었다.[서류 네가 볼 줄 알아?]하설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예전에는 몰랐어. 이제는 내 힘으로 해야 하니까, 모르면 배워서라도 봐야지.”[그래, 그래. 마음대로 해.]통화가 끊기자마자 예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대표님, 큰일 났어요. 장 팀장님이랑 왕 과장님이랑... 아무튼 여러 사람이 저한테 사직서를 냈어요. 대표님한테 전달해달래요. 제가 겨우 붙잡고 있으니까 빨리 와서 설득 좀 해주세요.]하설은 주영숙에게 말하고 곧바로 빛담불꽃기획으로 달려갔다.직원들은 로비에 앉아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모두 익숙한 얼굴이었다.하설이 직접 뽑은 직원들이었다.하설을 보자 직원들은 시선을 피했다. 누구도 하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예지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한쪽에 서 있었다.분해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하설은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본 뒤 조용히 의자 하나 앞으로 가 앉았다.가장 오래 근무한 이서정 과장이 먼저 일어났다.“대표님, 저희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습니다. 빛담불꽃기획이 독립하면 앞날이 불확실합니다.”“예전에는 BY그룹을 등에 업고 있었으니 자원도, 거래처도, 자금도 보장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단독으로 버텨야 한다면...”“죄송합니다. 저희도 먹여 살릴 가족이 있습니다. 대표님은 돈 걱정 없이 도전하실 수 있겠지만, 저희는 그럴 수 없습니다.”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맞장구쳤다.하설이 사직서를 승인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다.물론 노동청에 진정을 넣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절차는 번거롭고 세부적인 문제도 많았다.잘못하면 본인들만 골치 아파질 수도 있었다.하설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한동안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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