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Chapter 61 - Chapter 70

100 Chapters

제61화

주영숙은 들뜬 얼굴로 직접 문을 열겠다며 일어섰다.“분명히 배 서방이 왔어. 너는 얼른 주방 가서 음식 데워라.”하설은 어쩔 수 없이 주영숙 뒤를 따라가며 허공에 손을 받쳐 노인을 부축했다.주영숙이 문을 열었다.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낮에 봤던 그 얄미운 반원주였다.다만 반원주 옆에 서 있는 젊은 남자는, 정말 보기 드물게 잘생긴 사람이었다.반원주가 주영숙을 가리켰다.“저 사람이야.”“할머니, 왜 안 들어오세요?”하설은 주방에서 나오다 우건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예상치 못한 얼굴이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5분 뒤.네 사람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주영숙은 우건이 하율의 삼촌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우건이 가볍게 사과했다.“늦은 시간에 찾아와 죄송합니다. 외할머니께서 울면서 꼭 여기 오셔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에 먼저 갔다가 퇴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주영숙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이 할망구가 왜 자꾸 따라다닌대?’반원주는 우건의 무릎을 톡톡 쳤다. 손을 들어 하설을 가리키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나 저 애 살래. 돈 줘. 많이 줘.”하설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지난번 병원에서 반원주가 가지 않으려 하자, 주영숙이 외손자에게 돈을 더 받아 오라고 했던 일을 우건에게 설명했다.우건의 눈썹이 희미하게 올라갔다.“그랬군요.”반원주는 가만히 못 있는 사람처럼 우건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돈 줘, 돈 줘, 돈 줘!”우건은 차분한 표정으로 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사람을 사고파는 건 불법입니다. 경찰에 잡혀가서 감옥 가야 합니다.”반원주는 어깨를 움찔했다. 곧바로 찔리는 얼굴로 말했다.“그럼 안 살래. 그냥 데려가자.”우건은 머리가 아팠다.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뒤 반원주는 건이를 찾거나, 먹고 자는 일밖에 없었다.이렇게 낯선 사람을 좋아하고 집으로 데려가려 하는 건 처음이었다.주영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이 애는 내 손녀야. 돈을 얼마나 줘도 안 팔아. 누가 당신 외손자
Read more

제62화

반원주는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너 참 착하다.”주영숙은 몸을 돌려 중얼거렸다.“내일은 가야 해.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이렇게 눌러붙는 노인이 어딨어. 나이만 먹었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으면서, 어디 양로원처럼 자리 잡으려고 해. 세상에 그런 공짜가 어디 있다고.”반원주는 끝까지 웃고 있었다.하설은 반원주를 옆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할머니, 오늘 밤은 여기서 주무세요. 대신 내일 송 비서님이 데리러 오면 얌전히 따라가셔야 해요.”반원주가 하설의 손을 잡았다.“그런데 나...”하설은 일부러 화난 척했다.“할머니가 말 잘 들으면 우리는 계속 친구예요. 그런데 말 안 들으면... 저는 말 안 듣는 할머니랑 친구 안 할 거예요.”반원주는 입술을 오므리고 서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하설은 안방으로 돌아간 뒤 밤새 일을 했다.마침내 입찰서를 완성했다....윤재가 아침 일찍 왔다. 하설은 반원주를 윤재에게 넘긴 뒤 곧장 빛담불꽃기획으로 향했다. 입찰서를 출력하고, 꼼꼼히 봉투에 넣어 봉했다.예지는 9시에 입찰서를 제출하러 갔다.그러나 오전 10시, 하설의 메일함으로 심사 미통과 결과가 도착했다.메일 내용은 간단했다.‘입찰서 심사 미통과’라는 문구.그 결과는 머리 위로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하설은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입찰 심사 담당 부서에 전화했다.상대는 빛담불꽃기획의 이름과 제안서 접수번호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말했다.[종합 평가 결과, 빛담불꽃기획은 업체 요건과 제안 내용이 이번 입찰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습니다.]담당 부서에서 명확한 설명을 해 주었다면, 빛담불꽃기획의 어느 부분이 어떤 요건에 맞지 않는지 짚어 주었다면, 하설은 자신의 준비가 부족했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억지로 따지고 들 생각도 없었다.하지만 지금처럼 애매한 말 한마디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만 하면, 하설은 납득할 수 없었다.하설은 그 뒤로 이틀 동안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번번이 막혔다.그러다 남희
Read more

제63화

하설은 하마터면 제풀에 사레가 들 뻔했다.“그런 말 하면 안 돼요. 또 그러면 저 화낼 거예요!”반원주는 곧장 자기 입술을 손가락으로 집었다.저녁 식사 뒤.남희가 찾아왔다.남희는 다급한 표정으로 하설을 방으로 끌고 갔다.“무슨 일이야?”“언니,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저한테 문화관광과 입찰서 심사 담당자 알아봐 달라고 하신 거, 왜 그러신 거예요?”“문화관광과랑 방송국이 같이 설맞이 불꽃축제 연출을 맡길 업체를 찾고 있어. 그런데 우리 빛담불꽃기획의 서류는 제출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반려됐어. ‘미통과’라는 말뿐이라,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어.”남희의 표정이 조금 어두웠다.한참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제가 식당에서 친구들이랑 밥 먹다가 오빠를 봤어요.”하설이 물었다.“그래서?”남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신발 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오빠가 왕호 팀장이랑 식사하고 있었어요. 게다가... 오빠 옆에는 윤채아 씨가 있었고요...”말을 마치자마자 남희는 급히 덧붙였다.“혹시 오빠가 언니 입찰서 반려된 걸 알고 일부러 왕호 팀장을 만난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왕호 팀장 앞에서 언니를 도와주려고요.”하설은 웃었다.두 손을 들어 남희의 양어깨에 올렸다.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빛담불꽃기획이 BY그룹에서 분리되자마자 아가씨의 오빠가 디지털 불꽃 쇼 전문 회사를 새로 세웠어. 윤채아가 거기 책임자야.”남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믿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오빠가 뭘 하려는 거예요? 미친 거 아니에요?”하설은 고개를 저었다.“몰라.”남희는 어금니를 갈았다.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내일 왕호 팀장이랑 식사하는 자리, 제가 같이 갈게요!”하설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남희는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보였다.하지만 하설의 지친 표정을 보고 손을 살짝 쥐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오빠가 절대 그렇게 사람을 버릴 사람은 아니에요. 예전에 하율이까지 받아들였잖아요.”“그만큼 언니
Read more

제64화

말을 마친 하설은 손을 내밀었다.왕호는 하설의 손을 덥석 잡았다. 3초가 지나도 놓지 않았다.하설은 힘을 주어 왕호에게서 손을 빼냈다.“팀장님, 우선 앉으시죠. 제 지인이 곧 올 겁니다.”왕호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하설의 몸을 대놓고 훑었다.“일부러 친구까지 데려오겠다고요? 제가 뭐라도 할까 봐 겁난 겁니까?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나?”하설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왕호는 코웃음을 쳤다.“심 대표님은 묻고 싶은 게 뭔지 알아요. 빛담불꽃기획 입찰서가 왜 ‘미통과’가 됐는지 궁금한 거죠?”하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왕호가 말했다.“문화관광과와 방송국이 함께하는 큰 행사입니다. 직원이 달랑 네 명뿐인 빛담불꽃기획에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듣기로는 자체 제조 시설도 없다면서요?”하설은 차분히 설명했다.“저희에게 자체 제조 시설은 없지만, 오래 협업해 온 업체가...”왕호가 바로 말을 끊었다.“하지만 지난해 문화관광과와 무형문화예술협회가 함께 진행한 행사에서는, 최종 선정된 업체도 소규모 업체에서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왕호의 눈썹이 구겨졌다.“준비를 꽤 많이 했네요.”하설은 왕호의 말 속에 담긴 불쾌함을 알아차렸다. 잠시 말을 아꼈다.왕호의 시선은 더 거리낌 없어졌다.“심 대표님, 예쁘시네요. 딱 제 취향입니다. 오늘 밤 저랑 같이 있어 주면, 제가 장담하는데...”하설의 표정이 굳었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 했다.그러나 왕호가 먼저 하설의 팔을 붙잡았다. 세게 끌어당겨 테이블 위로 눌렀다.“심 대표님, 상황 파악 좀 해요. 빛담불꽃기획 오래 끌고 가고 싶으면 오늘은 얌전히 굴어야죠.”하설은 힘껏 몸부림쳤다.왕호는 키와 체격으로 하설의 몸을 짓눌렀다.“가만있어요. 제가 잘해 줄게요.”말을 하며 허리를 굽혔다.하설은 고개를 옆으로 거칠게 돌리고 이를 악물었다.“감히 그래 보세요. 배문교 대표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Read more

제65화

하설은 차에 올라 남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일이 끝났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핸드폰을 내려놓은 뒤, 하설은 룸미러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안색은 창백했다.하설은 곧장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울지 말자.’‘배문교는 그럴 가치도 없어!’...문교는 소파에 앉아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채아는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두 사람은 부부처럼 지냈다.채아는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밝은 목소리로 문교를 불렀다.“배 대표님! 식사하세요.”문교는 랩탑을 내려놓고 식당으로 갔다.채아의 허리를 끌어안고 자기 쪽으로 당겼다. 먼저 길고 깊은 입맞춤을 나눈 뒤 말했다.“고생했어.”채아는 얼굴을 붉히며 문교를 살짝 밀었다.“젓가락 가져올게.”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채아는 기대에 찬 눈으로 문교가 음식을 집는 모습을 보았다.“내 솜씨 어때?”문교는 한입 먹어 보았다.맛은... 그럭저럭이었다.먹을 수는 있었다.하지만 하설의 음식 솜씨와 비교하면 꽤 차이가 났다.그래도 문교는 좋은 평가를 해 주었다. 노력은 했으니까.게다가 채아는 그를 기쁘게 해 주려고 만든 것이었다.이 어린 여자는 주방일을 좋아하지 않았다.이렇게 한 번 요리한 것만으로도 드문 일이니, 격려해 줘야 했다.채아는 기쁘게 웃었다.“그러고 보니, 어젯밤 우리가 왕호랑 먼저 식사하면서 그 사람 성격을 봐 두지 않았다면, 언니 말을 정말 믿을 뻔했어. 왕호가 언니한테 이상한 짓 하려고 했다고 말이야.”하설의 이름이 또 들리자, 문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목소리도 차가워졌다.“요즘 하설이는 나를 정말 실망하게 하고 있어.”채아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굴렀다.“어쩌면 언니가 오빠한테 풀어줄 계기를 만들려고 한 걸 수도 있지. 오늘 전화받고 오빠가 허겁지겁 언니 구하러 갔으면, 둘이 만나자마자 부부 사이가 다시 좋아졌을 테니까.”문교가 짧게 웃었다.“그 계기는 너무 쉽게 올라타는 계기가 됐겠지.”게다가 정말 갔다면 왕호를 적으로 돌
Read more

제66화

하설은 무의식적으로 팔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검은색 컬리넌이 그녀의 차 뒤에 멈췄다.헤드라이트가 꺼졌다.차문이 열렸다.우건이 차에서 내렸다. 검은 트렌치코트에는 옅은 술 냄새가 배어 있었다. 아마 식사 자리에서 묻은 냄새일 것이다.달빛 아래에서도 우건의 몸은 곧고 단단했다. 눈매는 날카로웠다.“이렇게 늦게 돌아온 거예요?”하설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지금 나가려는 길입니다.”하설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머릿속이 엉망이었다.더 설명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우건도 단지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그런데 불행은 겹쳐 찾아온다.하설의 차는 아무리 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완전히 죽은 것 같았다.하설은 액셀을 한 번 세게 밟았다가 고개를 들어 우건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건은 거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하설은 곧바로 차에서 내려 큰 소리로 불렀다.“회장님, 잠시만요.”우건은 걸음을 멈췄다. 몸을 돌려 아무 말 없이 뛰어오는 하설을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에요?”하설은 난처함을 무릅쓰고 입을 열었다.“회장님, 제 차가 고장 났습니다. 혹시 회장님 차를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이 시간에 어디에 가는데요?”“저는...”“사생활을 캐묻는 건 아니에요. 다만 차를 빌려드리면 제게도 책임이 생기잖아요.”“알고 있습니다. 경찰서에 가야 합니다.”우건은 조금 놀란 듯 보였지만, 결국 차 키를 하설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하설은 정말 고맙다고 급히 인사했다.차 키를 쥐고 다시 달려갔다....“왕호 씨가 심하설 씨를 상해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무릎으로 아랫배를 가격하고, 술병으로 머리를 내리쳐 상해를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진술하실 내용 있으십니까?”하설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았다. 두 손을 탁자 위에 가지런히 포갰다.눈을 들어 마주 앉은 젊은 남녀 경찰관을 바라보았다.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형사님, 사실은 왕호 씨가 말한 것과 다릅니다. 오늘 밤 제가 왕호 씨에게 만남을 요청한 건 맞습니다.”“저희
Read more

제67화

하설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문교에게 전화를 걸었다.뚜... 뚜... 뚜...통화음만 이어지다 끊겼다. 문교는 전화받지 않았다.‘그럼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까?’‘엄마? 막 모녀 관계를 끊었는데...’‘예지 씨?’예지는 일 때문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깨워 먼 경찰서까지 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하설은 고개를 들어 여성 형사를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물었다.“아무도 와서 신원 확인을 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여성 형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공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희미한 연민이 어려 있었다.“그 경우에는 바로 귀가하시기 어렵습니다. 조사가 이어질 수 있고, 필요하면 경찰서에서 더 대기하셔야 합니다.”그 말을 듣고 하설은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내일 낮에 다시 연락할 사람을 찾아봐도 될까요?”여성 형사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한숨을 쉬었다.“가능은 합니다. 다만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셔야 해요. 안에는 몸을 제대로 펼 수도 없는 긴 의자 하나뿐입니다.”하설은 오히려 안도했다.몸을 기대고 있을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하설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여성 형사는 하설을 유치 대기실로 데려갔다. 잠시 뒤 다시 돌아와 담요 한 장을 건넸다.“제 개인 담요예요. 이쪽 건물이 오래돼서 새벽 지나면 난방이 약해져요. 덮고 계시면 조금은 나을 겁니다.”하설은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여성 형사는 조용히 돌아 나갔다.하설은 좁은 긴 의자 위에 몸을 눕혔다. 담요는 반쯤 밑에 깔고, 나머지 반은 몸 위에 덮었다.웅크린 몸이 담요 안에 작게 가려졌다.하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하설은 이해할 수 없었다.‘배문교는 애초에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어느 날부터 사랑하지 않게 된 걸까?’‘그렇게 내가 서영준 회장과 결혼했던 과거를 마음에 걸려 하면서...’‘왜 목숨이라도 건
Read more

제68화

전화 너머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하지만 우건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심하설 씨는 괜찮아요?]“네.”하설은 대답했다. 다시 한번 처참하게 망가진 뒷범퍼를 보았다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차가 좀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뒷부분이 찌그러졌고 테일램프도 깨졌습니다. 보험 처리를 하려면 차주 확인이 필요한데, 제가 차주가 아니라 대신 서명할 수가 없습니다.”전화 너머가 다시 조용해졌다.하설은 우건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지금 어디예요?]“경찰서입니다.”[20분 안에 송 비서를 보낼게요.]전화가 끊겼다.하설은 핸드폰을 든 팔을 천천히 내렸다. 망가진 차 뒤에 서 있자니, 요즘 들어 차와 지독하게도 악연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먼저 새로 뽑은 벤츠를 제 손으로 때려 부쉈고, 오래 타던 벤츠는 고장이 났으며, 이제는 우건의 차까지 망가졌다.20분 뒤.윤재가 서둘러 도착했다.“심 대표님, 괜찮으십니까?”하설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저는 괜찮습니다. 사고 났을 때 차 안에 없었습니다.”곧이어 교통조사 담당 경찰과 보험사 현장 담당자가 함께 도착했다.사고 경위를 확인하고 보험 처리 서류에 필요한 서명이 오갔다.컬리넌은 견인차에 실려 갔다.윤재가 정중히 하설을 바라보았다.“심 대표님,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하설은 민망한 듯 손끝을 만지작거렸다.“저기, 송 비서님... 혹시 제 신원 확인도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윤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10분 뒤.하설은 윤재의 차에 올라탔다.“정말 여러모로 폐를 끼쳤습니다.”윤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괜찮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다만 이런 사건은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는 해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하설은 한숨을 내쉬었다.“알고 있습니다.”윤재는 더 묻지 않았다.하설이 알려 준 빛담불꽃기획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하설은 차에서 내려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
Read more

제69화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놀람, 의심, 조롱,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그중에서도 가장 짙은 것은 엄청난 소문을 들었다는 충격이었다.곧 여기저기서 낮은 수군거림이 번지기 시작했다.잘게 흩어진 목소리들이 한데 엉켜 물결처럼 밀려왔고, 문교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배 대표 사모님이 정말...”“그걸 물어봐야 알아? 끝까지 갔다가 왕호가 거절하니까 머리 깬 거겠지. 공짜로 이용당했다고 생각했나 보네.”“그런데 그 사모님이 뭐가 아쉬워서? 배씨 집안이면 경운시에서도 손꼽히는 집안인데, 불꽃 프로젝트 하나 따내자고 그런 짓을 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재벌가 사모님이 할 짓은 아니지.”“재벌가 사모님이면 뭐 해? 배 대표가 요즘 연회마다 누구를 데리고 다니는지 다들 못 봤어?”“빛담불꽃기획도 BY그룹에서 떼어 냈다길래 처음엔 이해 안 됐는데, 생각해 보면 그쪽 수익을 그 사모님은 한 푼도 못 가져갔잖아.”“매일 아내 말 잘 들어서 성공한 남편 이미지 팔던 사람이 있지. 그런 말 믿는 사람들만 바보야. 난 진작부터 보기 불편했어.”“...”쨍그랑!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가라앉았다.사방의 시선이 문교에게 몰렸다.문교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잔이 깨지자 손에서는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다.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연회장을 빠져나갔다.문교가 떠나자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더 거리낌없이 커졌다.“내가 보기엔 배 대표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야. 아내가 귀가 잘 안 들린다고 밖에서 제멋대로 구는 거잖아. 지난번엔 내가 직접 봤어. 자기 비서랑 차 안에서 아주 가관이더라.”“그럼 왜 귀 안 들리는 아내랑 이혼은 안 해?”“몰라서 물어? 배 대표가 아내 청각장애 명분으로 공익재단을 통해 따낸 돈이랑 사업이 얼마나 많은데. 이혼하면 손해가 막심하지. 게다가 BY그룹은 상장까지 했잖아. 배 대표 결혼 상태가 주가에도 계속 영향을 준다더라.”“그랬구나. 난 예전에 두 사람 진짜 사랑꾼 부부인 줄 알았는데.”“...”빛담불꽃기획 사무실.빛담불꽃기획에
Read more

제70화

예지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대표님, 괜찮으시겠어요?”하설은 고개를 끄덕였다.“너희는 하던 일 해. 난 괜찮아.”문교는 검은색 소파에 앉아 있었다.셔츠 목깃을 풀어 헤쳤고, 넥타이는 비뚤게 목에 걸려 있었다. 잘생긴 얼굴과 어우러져, 방탕한 부잣집 아들의 초췌함이 묻어났다.“네가 키운 직원이 저 모양이야. 유치하고, 막무가내에, 예의도 없어.”“예지는 우리 회사 규정대로 한 거야. 이 회사는 작아도 갖출 건 다 갖췄어.”문교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이 회사... 바로 접어. 내가 너 먹여 살릴게. 한 달에 용돈 3천만 원 줄게. 네가 종일 발에 불나게 뛰어다녀 봐야, 이것저것 떼고 나면 이 회사 수익은 아직 천만 원도 안 될 텐데.”하설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나를 먹여 살린다고?’‘그런 듣기 싫은 말을 입에 담아?’문교의 진짜 모습을 몰랐던 때에도 하설은 일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하설은 눈을 내리깔고 차분하게 말했다.“거절할게.”쾅!문교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대체 뭘 원하는 거야? 채아가 내 곁에서 비서로 있는 게 싫다며. 그래서 내가 채아를 새 회사로 옮겼어. 그것도 부족해?”하설은 고개를 들었다. 단단한 눈빛이었다.“이 일은 윤채아와 아무 상관 없어. 윤채아가 있든 없든, 나는 내 일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내 회사도 계속 운영할 거야.”문교는 뒤로 몸을 젖혔다. 등이 소파에 무겁게 닿았다.쉰 목소리에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네가 나를 경운시 사교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건 알고 있어? 난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할 수 있어. 나는 너한테 한번도 박하게 군 적 없어.”하설은 눈을 깜빡였다.“나는 내 일을 성실하게 했을 뿐이야. 그게 왜 웃음거리가 되어야 해?”문교가 거친 눈으로 하설을 바라보았다.“어젯밤 너와 왕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하설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어젯밤 왕호가 나를 덮치려 했을 때 나는 네게 전화
Read more
PREV
1
...
567891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