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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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하설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주영숙은 울음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네 집에서, 네 방에서 그랬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우리를 대체 뭘로 보는 거냐? 우리 집안 전체를 우습게 본 거야.”하설의 마음에는 놀람과 안도가 동시에 밀려왔다.하설은 원래 할머니가 낡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자신에게 참고 이혼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아직도 주영숙 세대의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폐쇄적인 작은 동네에서는, 이혼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뒤에서 수군대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주영숙도 그런 환경에서 오래 살았으니, 어느 정도 영향받은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아니었다.전혀 아니었다.문교의 외도를 안 할머니는, 오히려 모든 것을 걸고 하설의 이혼을 지지했다.하설은 눈가를 문질렀다.“할머니, 하실 말씀이 있으면 집에 가서 해요. 이 일은 할머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간단하지 않아요.”문교는 그 말을 듣자 심장 위에 얹힌 돌덩이 하나가 내려가는 듯했다. 입가에는 얕은 웃음이 스쳤다.‘역시... 심하설은 나를 떠나지 못해!’문교는 헛기침했다.“일은 나중에 내가 설명할게. 먼저 할머니 모시고 돌아가. 할머니 마음부터 가라앉히고.”하설은 문교를 상대하지 않았다.반쯤 끌고, 반쯤 부축하듯.주영숙을 데리고 그곳을 벗어났다.문교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엘리베이터 모퉁이에서 사라질 때까지 똑바로 바라보았다. 곧 플라스틱 대기 의자에 앉아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댔다.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문질렀다.이유 없이 짜증이 치밀었다.문교는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잡아당기고 숨을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주영숙은 콧물과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하설을 꼭 끌어안았다.“네가 말한 게 다 사실이냐?”하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주영숙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이 상황에서 제가 할머니를 속이겠어요? 그동안 말씀 못 드린 건 할머니 심장이 걱정돼서 그랬어요.”“한 달만 지나면 병세도 안정되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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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그해 배문교 어미가 아들을 데리고 우리 옆집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그 애가 얼마나 마르고 초라했는지. 내가 미음 한 숟가락씩 떠먹여서 키웠어...”하설은 말을 끊지 않고 조용히 들었다. 할머니에게도 해묵은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친손자처럼 아끼던 문교가 하루아침에 자신을 속이고, 손녀를 배신했다. 한때 반듯했던 아이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렸다.귀하게 품어 키운 사람이 끝내 등을 돌렸고, 그 상처는 집안 사람들 모두의 가슴에 하나씩 박혔다.이런 일을 누가 쉽게 견딜 수 있을까?말하게 두는 편이 나았다.쏟아 내면 조금이라도 분이 풀릴 것이다.가슴에 묻어 두면 병이 된다....밤.우건은 하율의 방에서 나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거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하율이는 언제 데려올 거냐?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곧이요.”[곧이 언제냐? 오늘은 날짜를 정확히 말해라. 아니면 내가 사람을 보내 직접 데려오겠다.]우건은 수화기 너머 늙은 목소리를 들으며 한 손으로 미간을 눌렀다.핸드폰을 든 채 발코니 앞까지 걸어갔다.창밖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사흘 뒤 하율이 수술 준비로 입원합니다. 보름 뒤 본가로 데려가겠습니다.”진태국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서진이 그놈이 제대로 할 수 있겠냐? 어릴 때부터 엉뚱한 짓만 하더니 어쩌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믿을 만해?]우건이 비웃듯 웃었다.“그럼 할아버지가 집도하시겠습니까?”진태국은 할 말을 잃었다.잠시 뒤 헛기침하더니 말했다.[네 작은아버지 전우 중에 의술이 괜찮은 사람이 있다. 뇌 쪽을 전문으로 한다더구나. 네가 언제 시간 내서 네 머리...]우건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막 잠을 자러 가려던 참이었다.그때 아래층에서 스치듯 하설의 모습이 보였다.하설의 차는 아직 수리가 끝나지 않은 듯했다. 길가에 서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단지 앞에는 택시가 꽤 오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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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하설은 몇 초 동안 그대로 멍해졌다.곧장 대답하며 급히 감사하다고 인사했다.[네... 감사합니다.]우건의 입가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살짝 올라갔다. 목소리는 여전히 안정적이었다.“5분만 기다려요.”5분 뒤.검은색 제네시스가 하설 앞에 멈췄다.차창이 내려갔다.노란 가로등 불빛 속에 우건의 얼굴이 드러났다. 짙은 회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소매는 팔꿈치 아래까지 걷혀 있었다. 손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깔끔했다.“타요.”하설은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했다.조수석 문을 열고 앉았다.“정확한 위치요.”“한빛연화 제조공장입니다. 외곽에 있어서 한 시간쯤 걸릴 거예요.”“알았어요.”우건은 짧게 대답하고 오른손으로 기어를 조작했다.그제야 하설은 이 차가 수동 변속기라는 것을 알아챘다.“요즘은 수동 차를 구하기 어렵지 않나요?”우건은 앞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꾸했다.“네. 일부러 제작 요청했어요.”“아...”하설은 작게 대답했다.차 안은 곧 조용해졌다. 하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몰래 우건을 흘끗 보았다.우건은 앞만 보고 있었다. 옆얼굴의 선이 반듯하고, 턱선은 칼로 그은 듯 날카로웠다.“뭘 보고 있어요?”우건이 갑자기 물었다.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몰래 보던 것을 들킨 하설의 얼굴이 뜨거워졌다.“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참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괜찮아요.”“지난번에 회장님 차 망가뜨린 일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전부 책임질 수 있습니다.”“괜찮아요. 보험이 있어요.”“네...”하설은 팔을 문질렀다.우건은 말없이 차량 온도를 1도 올렸다. 차는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중간쯤 갔을 때, 하설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문교의 전화였다.하설은 잠시 생각하다가 받았다.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무슨 일이야?”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는 가장 좋아했던 부드러움이었지만, 이제는 역겨웠다.[들었어. 주길웅 공장장이 너랑 더는 거래하지 않겠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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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그래서 하설은 반대를 무릅쓰고 주길웅과 손을 잡았다.지난 2년 동안 하설은 한빛연화 제조공장공장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주고, 공정을 개선해 주었으며, 고객까지 소개했다. 추석 때 주길웅은 직접 찾아와 선물 세트를 건네며, 입만 열면 하설이 자기 가족을 살렸다고 했다.그런데... 결국 하설이 돌려받은 것은 문전박대였다.한빛연화 제조공장공장은 문을 닫아걸었다.하설은 주길웅이 가장 힘들 때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주길웅은 하설이 가장 힘들 때 버팀목을 빼 버렸다.이것이 사람 마음이었다.하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하설은 몸을 돌려 차로 돌아왔다.정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것을 우건이 모를 리 없었다.“다음은 어디예요?”하설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빛연화 제조공장공장 말고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공장 한 곳을 가리켰다.“저기도 한번 가 볼게요. 운 좋으면 뭐라도 얻어걸릴지도 모르잖아요.”돌잔치 행사는 이미 계약금을 받은 상태였다. 위약하면 계약금의 두 배를 물어야 했다.하설이 그 돈을 못 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건 커리어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고객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한 번 더 해 보자.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우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그 공장 앞에 세웠다.하설은 서둘러 내렸다.공장 안에서 직원들과 함께 야근하던 젊은 공장장을 찾아냈다.“안녕하세요.”네이비색 작업복을 입고 온몸이 먼지로 더러워진 남자가 돌아섰다. 그런데 얼굴은 젊고 꽤 잘생겼다.“저를 찾으셨어요?”하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이곳 공장장님이세요?”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설은 곧장 자신의 용건을 설명했다.상대는 하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정말요? 우리 공장 소문 못 들으셨어요?”하설은 고개를 저었다.사실 공장 간판에 적힌 이름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젊은 남자가 피식 웃었다.“정말 ‘활활연화 제조공장’ 못 들어 보셨어요?”하설은 그대로 멈췄다.활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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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타닥-다닥-불꽃과 스파크가 뒤엉킨 듯한 소리가 귀를 때렸다.그 소리는 꼬박 십여 초나 이어졌다.마침내 소리가 멎었을 때, 하설의 얼굴은 검댕으로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하설은 거칠게 기침을 토해 냈다. 입안에는 매캐한 연기 맛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차윤은 폭발에 머리가 사방으로 뻗은 채 연신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이렇게 보니 진짜 전문가 맞네요. 그럼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됩니까? 저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말을 마치고 차윤은 직원한테 물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했다.직원 하나가 급히 구석으로 뛰어가 생수 한 병을 가져왔다.하설은 물로 입을 헹군 뒤에야 말했다.“불순물의 경도가 높으면 혼합기 안에서 고속으로 섞이는 동안 서로 강하게 부딪히고 마찰열이 발생합니다.”“그 과정에서 국소적으로 압력과 온도가 치솟으면, 작은 충격만으로도 폭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하설은 몸을 돌려 작업장 안을 둘러보았다.차윤은 분진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바닥 시멘트 틈새에는 흰 가루가 눌어붙어 있었고, 압착 금형 가장자리에는 손만 스쳐도 베일 듯한 거친 버가 올라와 있었다.하설의 마음에 절망이 스쳤다.차윤의 활활연화 제조공장은 불꽃 제조과정의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는 상태였다.하설은 한숨을 쉬었다.“그래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까?”차윤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하설이 물었다.“그럼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실 수 있어요?”차윤은 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설은 차분하게, 서두르지 않고 말했다.“이 원료는 지금 즉시 사용 중단하세요. 납품처에 연락해서 원산지와 유통 경로를 확인하고, 설비 정비 이력도 전부 받아 오세요.”“금형 가장자리에 올라온 버는 하나도 남기지 말고 제거하고, 표면도 다시 매끄럽게 정리하세요. 내일 오전에는 공장 전체 분진 청소부터 다시 하시고요.”차윤은 완전히 눌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네, 네. 알겠습니다.”하설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내일 아침 일찍 제가 시제품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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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우건의 날카로운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하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일렀다.“그럼 우리 지금 돌아가요.”차는 집으로 향했다.시간은 이미 새벽 1시가 넘었다.외곽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은 인적이 드물어 마음까지 서늘해졌다. 길 양옆에는 논밭과 빈터가 이어졌고, 가끔 작은 숲을 지나쳤다. 몇몇 구간은 가로등이 고장 난 채 방치되어 있었다.창밖을 바라보며 하설은 속으로 생각했다.‘혼자 왔더라면 무서웠을지도 몰라.’그때, 차가 갑자기 덜컥거리더니 길가에 멈췄다.하설은 의아하게 우건을 보았다.우건의 시선은 보닛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그곳에서 희미한 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하설의 눈이 커졌다.“설마...”우건이 문을 열고 내렸다.하설도 뒤따라 내렸다.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우건이 보닛을 열자 코를 찌르는 냄새가 확 올라왔다.두 사람은 잠시 살펴보았다.우건이 숨을 내쉬었다. 목소리에는 옅은 난감함이 섞여 있었다.“냉각수가 새는 것 같아요. 라디에이터도 문제인 것 같고.”우건은 핸드폰을 꺼내 정비소에 연락하려 했다.“신호가 안 잡혀요. 심하설 씨 핸드폰은요?”“확인해 볼게요.”하설은 급히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제 것도 안 잡혀요.”한겨울 밤바람이 두 사람의 체온을 빠르게 빼앗았다.우건이 말했다.“일단 차 안으로 들어갑시다. 방법은 거기서 생각하죠.”하설은 고개를 끄덕이고 빠르게 차 안으로 향했다.우건은 트렁크 쪽으로 돌아가 예비 외투를 꺼냈다.차에 올라탄 뒤, 그것을 하설에게 내밀었다.짧은 말이었다.“입으세요.”우건도 짙은 회색 셔츠 한 장뿐이었다.그에 비하면 하설은 조금 나았다.“괜찮습니다. 저는 외투 입고 있어요. 회장님이 입으세요. 곧 차 안에 남은 온기도 빠지면 추워질 겁니다.”말을 마친 하설은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두 사람 사이 센터콘솔 위에 올려놓았다.우건이 그것을 보았다.“오래 못 갈 것 같아요.”하설은 입술을 눌렀다.“길에 불빛이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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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하설은 민망한 얼굴로 우건을 보았다.우건은 평생 이렇게 낡고 허름한 차에 타 본 적이 없을 것 같았다.우건은 잠시 말이 없었다.하설은 허둥대며 설명했다.“저는 빨리 돌아가야 해서요. 회사에 일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 회장님은 여기서 송 비서님을 기다리시는 게...”우건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같이 가죠.”차윤은 바로 차에서 내렸다.가운데 좌석에 있던 각종 원료 상자를 한꺼번에 뒤쪽으로 밀어 넣자, 먼지가 사방으로 일어났다.하설은 콜록거렸다.겨우 두 사람이 앉을 자리가 생겼다.차윤은 열성적으로 하설을 보았다.“올라타세요! 심 대표님, 이분이 그 바람피운 남편이에요? 와, 얼굴은 진짜 나보다 낫네요.”하설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아니에요. 제... 지인입니다. 어젯밤 저를 데려다주신 분이에요.”차윤은 그제야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몰래 우건을 몇 번 훔쳐보았다.‘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은...’‘우리 아버지가 옷걸이 막대를 들고 눈앞에 섰을 때보다 훨씬 컸어압도적이야.’두 사람은 차에 올랐다.차윤의 낡은 차는 다시 덜컹거리며 출발했다.“이쪽은 신호가 잘 안 잡혀서요. 저는 밖에 나올 때 휴대용 와이파이를 들고 다닙니다. 연결하셔도 돼요.”하설은 낮게 말했다.“저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요.”차윤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수납함칸을 뒤적였다. 보조배터리를 찾아 뒤로 던졌다.“고맙습니다.”하설은 바로 말했다.보조배터리에는 마침 케이블이 두 개 달려 있었다. 두 사람은 하나씩 연결했다.우건의 핸드폰이 켜지자마자 윤재의 전화가 들어왔다.[회장님, 어디 계십니까? 차량 위치가 공항 쪽 도로에 멈춰 있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우건은 짧게 대답했다.“차가 고장 났다. 사람 보내서 견인하게 해. 나는 돌아가는 중이다.”윤재는 그제야 숨을 놓았다.한 시간 남짓 걸리는 길을, 차윤은 거의 두 시간에 걸쳐 달렸다.마침내 도착했다.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차윤은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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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우건이 물었다.“이제 내 개인사까지 관리하나?”윤재는 급히 웃으며 말했다.“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방금 태국 어르신께서 다시 전화하셔서 하율 도련님 수술 진행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답했습니다.”우건은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응.”짧게 대답했다.앞쪽 모퉁이를 돌고 2킬로미터만 더 가면 JZ그룹 본사였다.하지만 모퉁이를 돌기 전.우건이 갑자기 말했다.“상담실로 가.”윤재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대로 따랐다....심리상담실.문희서는 우건을 보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눈썹을 올렸다.“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어?”우건은 안으로 들어와 치료용 의자에 앉았다.조용히 눈을 들어 희서를 보며 말했다.“어젯밤 차가 중간에 고장 났어. 주변에는 신호도 안 잡혔고, 전화도 걸 수 없었어. 밀폐된 차 안에 있었는데...”말이 끝나기도 전에 희서의 표정이 긴장으로 굳었다.“증상 왔어?”그 한마디에 우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아니.”희서는 놀란 듯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답답하거나 불편한 느낌은?”우건은 잠시 짚어 본 뒤 고개를 저었다.희서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러다 핵심을 잡은 듯 물었다.“혼자 있었어?”우건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희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상대가 충분히 안정감을 준 거야. 인정하든 안 하든, 넌 그 사람에게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은 거고.”우건은 헛웃음을 흘렸다.고개를 저었다.“그럴 리 없어.”희서도 웃었다.“물어봐도 돼? 상대 성별은?”우건이 짧게 답했다.“여자.”희서 얼굴에 묘한 호기심이 스쳤다.“여자친구?”우건은 미간을 찌푸렸다.“아니.”“아...”희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그 사람하고 조금 더 지내봐.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니까.”우건은 짧게 말했다.“쓸데없는 일이야.”희서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애가 왜 쓸데없어?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재미를 모르는 거지. 직접 해 보면 알게 될걸.”“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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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예지는 입술을 삐죽였다.목소리를 낮췄다.“어쨌든 좋은 사람은 아니야. 길에서 보이면 침이라도 두 번 뱉어서 우리 대표님 속 좀 풀어줘.”태찬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예지는 헛기침했다.“너희 취업 준비생들 취업하기 쉽지 않은 거 알아. 공백기 생기는 것도 싫어서 작은 회사라도 일단 들어와 발판으로 삼으려는 마음도 이해하고.”그 말에 조문강과 태찬의 얼굴에 어색함이 떠올랐다.예지는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그래도 걱정하지 마. 우리 대표님은 좋은 사람이야. 지금은 규모가 작지만, 대표님만 따라가면 빛담불꽃기획은 반드시 잘될 거야. 앞날이 밝다고!”태찬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며칠 같이 일해 보니 우리 대표님이 정말 좋은 분 같아요.”예지는 기분이 확 좋아졌다. 엄지를 치켜세웠다.“눈썰미 좋네. 내일 내가 밀크티 쏜다.”조문강이 일부러 크게 헛기침했다.예지는 웃으며 말했다.“알아, 알아. 너도 안 잊어.”...참 묘하게도 피하고 싶은 사람은 마트에서도 마주쳤다.하설은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문교와 채아를 만났다.문교는 카트를 밀고 있었고, 채아는 앞쪽에 서 있었다.두 사람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보였다.하설은 먼저 해산물 코너로 가려고 했다.그런데 채아가 하설을 불렀다.“언니!”하설은 오늘 보청기를 끼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척 그대로 걸었다.다섯 걸음도 가지 못해 팔을 붙잡혔다.하설은 고개를 돌렸다.문교의 눈과 마주쳤다.문교의 시선이 하설의 귀 쪽을 스쳤다. 곧 두 손으로 수어를 했다. 너무 오래 하지 않아서인지 움직임이 조금 서툴렀다.“얌전히 집으로 돌아와. 그러면 주길웅 공장장이 계속 네 불꽃 연출 설계를 맡도록 해 줄게.”하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목소리도 담담했다.“말했잖아. 더 할 말 없어.”문교의 손가락 움직임이 빨라졌다.“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부부가 따로 살고, 원수처럼 굴고. 설이, 너는 원래 착하고 말을 잘 들었잖아. 조금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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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채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문교는 다음 진열대 앞에서 하설을 따라잡았다.“설아, 왕호 일 들었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거야. 이 일은 내가 사과할게. 그날 밤... 너 괜찮았어?”이미 늦어 버린 사과.악의적으로 의심하고 난 뒤에야 나온 사과.아무 의미도 없었다.시든 꽃에 물을 주는 일은 소용이 없다.너무 늦게 도착한 것은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음식과 같았다.예전에는 아무리 중요했더라도.이제는 의미가 없었다.더 생각하면 속이 뒤집힐 뿐이었다.하설은 고개를 저었다.“비가 그친 뒤에 우산을 주는 건 아무 의미 없어. 비켜, 내 길 막지 말고.”문교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비켜섰다.하설이 카트를 밀고 떠나려던 때, 문교가 하설의 손을 붙잡았다.“약속할게. 채아를 보낼게.”하설은 잠시 멈칫했다. 곧 문교의 손을 밀어냈다. 카트를 밀며 앞으로 걸었다. 목소리는 멀고 가벼웠다.“행동으로 옮기고 나서 말해.”...하설은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렸다.여덟 가지 반찬에 국 하나.요리하는 동안, 두 할머니는 하율과 거실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반원주는 휴지를 코에 대고 말했다.“저 악당이 너무 불쌍해. 매번 맞고 날아가잖아. 너무 가엾어서 못 보겠어...”주영숙은 완전히 지친 얼굴이었다.하율은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자꾸 친구들을 괴롭히려고 해서 그래.”반원주는 입술을 깨물었다.“그래도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생각한 것뿐이잖아. 꼬치구이, 전골, 갈비찜, 곰탕, 매운탕... 나도 먹고 싶다.”입에서 자꾸 군침이 돌다 못해 흘러내릴 기세였다.주영숙은 질색하며 휴지를 몇 장 뽑아 반원주의 턱에 대 주었다.“정말 못 당하겠네. 난 우리 손녀 도와주러 부엌 간다. 더는 같이 못 봐.”주영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할머니, 안 도와주셔도 된다니까요. 얼른 쉬세요.”“난 가만히 쉬는 게 더 힘들다.”하설은 말문이 막혔다.“그 할망구, 제정신 아니잖아!”“알츠하이머라고요.”“나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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