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Chapter 71 - Chapter 80

100 Chapters

제71화

문교는 언젠가 이혼이라는 말이 하설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처음 들었을 때, 문교는 너무 황당해서 웃었다.“지금 무슨 말 하는지 알아?”하설은 손을 들었다. 가늘고 흰 손가락이 문을 가리켰다.“이혼하든가, 꺼지든가.”문교의 입가에서 웃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내가 그동안 너한테 너무 잘해 줬지. 내가 너를 너무 자유롭게 둔 거지. 맞아?”“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가 줄게.”문교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문이 거칠게 밀려 벽에 부딪혔다가 튕겨 나왔다. 큰 소리가 울렸다.빛담불꽃기획을 떠난 문교는 병원으로 가 왕호를 찾았다.“어떤 바람이 배 대표님을 여기까지 모셔 왔습니까?”“팀장님, 농담도 하십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사모님 덕분에 이 꼴입니다.”왕호는 코웃음을 쳤다. 말투마다 비꼼이 묻어났다.문교는 왕호 앞에 앉았다.그는 한 가지만 알고 싶었다.“팀장님, 어젯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왕호는 눈을 내리깔고 가볍게 웃었다.“배 대표님의 사모님, 참 대단한 분이시더군요. 저를 유혹해서 편의를 봐 달라고 하려 했습니다.”“제가 거절했더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달려들었고요. 제가 단호히 꾸짖자, 화가 난 사모님이 술병으로 제 머리를 내리쳤습니다.”잠깐 멈춘 뒤, 왕호는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이미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배 대표님, 사모님께 전해주십시오. 알아서 처신하시라고. 이번 일은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겁니다.”문교는 어금니를 한번 훑었다.“혹시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제가 아는 제 아내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왕호는 문교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오해요? 어떤 오해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문교는 잠깐 생각했다. 핑계를 댔다.“제 아내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야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팀장님의 뜻을 잘못 알아들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일이 이렇게 커졌을 수도 있고요.”왕호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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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진실이 무엇인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왕호가 하설을 성추행하려 했는지, 아니면 하설이 왕호를 유혹했는지.그런 것 역시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 것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소문과 여론을 잠재우는 것이었다.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저녁 7시쯤.문교는 차에서 내려, 택시에서 막 내린 하설을 가로막았다.손가락 사이에는 담배 한 대가 끼워져 있었다.담배는 이미 반쯤 타들어 간 뒤였다. 희미한 불빛이 어둠 속에서 꺼질 듯 말 듯 흔들렸다.문교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흐릿한 연기가 입가로 천천히 새어 나왔다.“얘기 좀 하자. 나도 화 안 낼게. 너도 감정 앞세우지 말고. 앉아서 얘기해. 우리 제대로 얘기한 지 오래됐잖아.”말을 마친 문교는 뒷좌석 문을 열었다.하설은 그를 한 번 바라본 뒤, 몸을 숙여 차에 탔다.부부는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한 사람이 더 앉을 만큼의 거리가 있었다.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도도히 흐르는 듯했다.그러나 하설은 곧... 강이라는 말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강이라면 언젠가 다리라도 놓일 수 있었다.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향한 마음이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닿을 수 있을 테니까.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그런 마음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하설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 깊은 곳에서 코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시큰함을 눌러 삼켰다.“무슨 이야기?”문교는 담뱃불을 거칠게 눌러 껐다.“왕호를 만났어. 고소는 취하하겠다고 했어.”하설은 짧게 대답했다.“그래?”곧이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그대로 고소할 거야. 성적인 발언과 강제추행 시도에 대해 책임 물을 거야.”문교는 멈칫했다.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그는 가슴속에서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했다.“내가 왕호가 고소 취하하게 만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목소리가 끝내 높아졌다.하설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왜 왕호가 고소를 취하하게 했어? 네 생각에는 내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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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조용한 주택단지 안에 울려 퍼졌다.하설은 온몸의 힘을 끌어모아 문교의 왼쪽 뺨을 세게 때렸다.손바닥이 저렸다.가슴은 그보다 더 저렸다.그 순간, 세상이 텅 비어 버린 듯했다.공기가 멈추고, 온몸의 피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혈관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하게 조여들었다.하설은 멍한 채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귓속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울렸다.예전의 하설은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온갖 비난을 견뎠다.할머니의 거센 반대까지 무릅쓰고 서영준 회장에게 시집갔다.그렇게 10억 원을 직접 문교 앞에 가져다주었다.그런데 그 일이 문교의 눈에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었던 하설의 과거로 남아 있었다.하설은 원래 문교의 배신이 두 사람의 사랑을 배신한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랑 외에도.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 가족처럼 이어진 인연이 있었다.그런데 오늘 밤.하설은 문교가 그 모든 끈을 제 손으로 잘라 내는 것을 보았다.아버지가 문교의 목숨을 구한 은혜.할머니가 문교를 길러 준 은혜.자신이 문교의 자금을 구해준 은혜.이제 보니, 그 모든 것은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농담이 되어 있었다.문교의 고개가 맞은 힘에 옆으로 돌아갔다. 그의 눈에 거친 기운이 치솟았다.“너 진짜 미쳤어?!”문교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손이 허리께까지 올라왔을 때, 이를 악물고 억지로 내렸다.그는 마지막으로 하설을 매섭게 노려본 뒤,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났다.차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에는 망설임이 조금도 없었다.검은색 마이바흐가 빠르게 사라졌다.하설만 홀로 그 자리에 남았다.다리에 힘이 풀렸다.하설은 더 버티지 못하고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았다.눈물은 예고도 없이 차가운 바닥 위로 떨어졌다.한 방울, 또 한 방울.뜨겁게 느껴질 만큼 아팠다.정도, 진심도, 사랑도, 가족이라는 이름도...전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너무 우스웠다.하설이 죽을힘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은,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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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오래 버티다 끝내 힘이 다 빠진 사람처럼 애처로웠다. 손끝만 닿아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우건은 붉어진 하설의 눈꼬리를 바라보았다.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그럽시다.”하설은 자기 팔을 끌어안은 채 앞서 걸었다.우건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길 끝에는 희미한 불빛이 번지는 작은 바가 있었다.하설은 안으로 들어갔다.바 안의 어두운 조명 속에 알록달록한 네온이 잘게 부서져 있었다. 빛은 흐릿하고 쓸쓸했다.하설은 가장 구석진 테이블을 골랐다. 부드러운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우건은 하설 바깥쪽에 앉았다. 앞에는 작은 바 테이블이 있었다.때마침 바텐더가 돌아보았다.“안녕하세요. 두 분 뭐로 드릴까요?”하설은 눈을 내리깔았다. 작은 얼굴은 거의 투명할 만큼 창백했다.“‘좀비’ 한 잔이요.”하설은 마셔 본 적 없었다.우연히 본 적이 있을 뿐이다. 아주 독하다고 했다.바텐더가 잠깐 멈췄다가 친절하게 말했다.“손님, ‘좀비’는 도수가 높은 칵테일입니다. 다른 걸로 바꿔 드릴까요?”하설은 고개를 저었다.“‘좀비’로 주세요.”바텐더는 능숙하게 셰이커를 집었다. 얼음을 넣자 맑은 부딪힘이 났다.손놀림은 매끄러웠다. 손목이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였고, 은색 셰이커는 조명 아래에서 선을 그리며 흔들렸다.바텐더가 잔을 하설 앞에 밀어 놓았다.“‘좀비’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곧이어 우건을 바라보았다.우건이 말했다.“‘모히토’ 한 잔 주세요.”하설은 자기 잔을 들었다. 목 안으로 크게 한 모금씩 들이부었다. 술기운이 세게 올라와 눈가가 아릴 만큼 기침이 나왔지만, 하설은 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계속 마셨다.반쯤 취했을 때, 하설은 결국 말을 멈추지 못했다. 조각난 말들이 두서없이 흘러나왔다.“나 진짜... 진짜 많이 사랑했어요.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욕하고 무시해도, 할머니가 나더러 제정신 아니라고 해도, 난 괜찮았어요. 그냥 그 사람을 돕고 싶었어요...”우건은 조용히 하설을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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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하설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다만 미간은 여전히 찌푸려져 있었다. 꿈속에서도 괴로워하는 듯했다.우건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긴 팔을 뻗어 하설을 안정적으로 안아 올렸다.우건이 하설을 안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지난번 연회장에서도...우건은 약기운에 쓰러진 하설을 이렇게 안고 병원으로 데려갔다.그때로부터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하설은 지나치게 수척해져 있었다. 이어 미세하게 몸을 움직이다가 작은 머리를 우건의 가슴에 기댔다. 그리고 잠결에도 가끔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우건은 하설을 안고 바를 나섰다....하설의 집 문 앞에 도착했다.우건은 한 팔로 하설을 고쳐 안고, 다른 손으로 문을 두드리려 했다.손끝이 문에 닿으려는 그때.우건의 손이 멈췄다.이렇게 늦은 시간.누가 봐도 남녀 단둘이 함께 있었다.게다가 하설은 술에 취해 의식도 없었다.주영숙에게 들키면 틀림없이 끝까지 캐물을 것이다.우건은 원래 남에게 길게 설명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설명해도 오해가 풀리지 않을 수 있었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우건은 손을 거두었다.팔에 힘을 주어 품 안의 지나치게 가벼운 사람을 더 가까이 끌어안고, 몸을 돌려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위층으로 올라갔다.지문 인식음이 나고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우건이 하설을 안고 거실에 들어서자, 따뜻한 노란 조명이 눈앞에 퍼졌다. 작은 그림자 하나가 급히 다가왔다.반원주였다.손에는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우건을 보자마자 반원주는 얼른 태블릿을 등 뒤로 숨겼다.“건이야, 왜 이렇게 늦게 와? 어? 드디어 저 애를 데려왔네!”우건이 반원주를 한 번 훑어보았다.반원주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우건은 곧장 손님방으로 향했다.하설을 부드러운 침대 위에 내려놓고, 이불을 끌어 올려 대충 덮어주었다.우건은 예의에 어긋나는 시선을 두지 않으려 눈을 내리깔고 밖으로 나왔다.막 따라 들어오려던 반원주도 함께 끌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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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공기가 잠시 멎은 듯했다.하설은 헛기침했다. 입가의 미소를 거두기도, 계속 짓기도 애매해져 입술 주변 근육까지 굳어 버렸다.“회장님, 어젯밤은... 감사했습니다.”우건은 짙은 철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몸에 맞게 떨어지는 재단이 깔끔하고 품격 있었다.그는 몸을 비스듬히 돌린 채 하설을 바라보았다.“별말씀을요. 어젯밤엔 영숙 어르신께 폐를 끼칠까 봐, 허락도 받지 않고 심하설 씨를 데려왔습니다.”하설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별일 없으시면 저는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하설은 손가락으로 아래층을 가리켰다.우건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네.”거실을 지나가던 때, 하율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엄마, 엄마가 왜 삼촌 집에 있어?”하설은 몸을 낮춰 하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가 삼촌한테 볼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왔어.”하율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내가 깨어난 뒤로 삼촌은 계속 거실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이어서 작은 손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내가 뭔가 잘못 기억했나?’하율은 하설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엄마, 삼촌이 오늘 나 더 좋은 이비인후과 선생님 만나러 데려가 준댔어.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돼? 엄마가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아이의 귀에 관한 일은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설이 함께 가는 것은 당연했다.“그래. 엄마 집에 내려가서 씻고 옷만 갈아입고 올게.”“응!”하율이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하설은 아래층 집으로 내려갔다.주영숙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코를 움켜쥐었다.“이게 무슨 냄새야? 술 냄새가 온몸에 쩔었잖아!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위도 약한 애가 술을 그렇게 마셔? 이 계집애가 정말 내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작정했구나!”하설은 웃으며 신발을 벗었다.“기분이 좋아서 두 잔 더 마셨어요. 전 씻고 올게요. 조금 있다가 하율이 데리고 병원 가야 해요. 이비인후과 전문의 만난대요.”그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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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한편.병원으로 가는 길.하율은 하설과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작은 입이 종달새처럼 쉴 새 없이 움직였다.하설은 한 번도 대충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대꾸했다.아이가 반복해서 말하는 이야기도 귀찮아하지 않았다.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하설은 하율의 귀를 살짝 만지고 전화받았다.“네, 여보세요?”상대가 신분을 밝혔다.[경찰서입니다.]그 말을 듣자, 하설의 심장이 가는 줄에 매달린 것처럼 조여들었다.“사건에 새로 진행된 게 있나요?”여성 형사의 목소리에는 숨통이 트인 듯한 기색이 있었다.[오늘 아침부터 피해자 두 분이 추가로 신고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왕호에게 업무상 불이익을 빌미로 협박당했고, 강제로 관계를 요구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두 분 다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심하설 씨에게는 좋은 소식입니다.]좋은 소식이었다.하설은 용기를 내 준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전화를 끊은 뒤, 하설은 두 손으로 하율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율아, 엄마 지금 정말 기분 좋아.”하율의 작은 얼굴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가득했다.하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들, 우리는 절대로 나쁜 짓을 하면 안 돼. 나쁜 일을 한 사람은 언젠가 꼭 벌받아.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하율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목소리는 한 글자 한 글자 진지했다.“엄마는 좋은 어른이고, 하율이는 좋은 어린이야.”운전하던 우건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무심코 룸미러를 보았다.어른 하나와 아이 하나.이상할 만큼 잘 어울렸다....우건은 하율을 안고, 하설은 뒤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고개를 들었다.우건을 보자 낮게 웃더니 느릿하게 다가왔다.“몇 년 못 본 사이에 아내에다 아이까지 생긴 거냐?”하설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우건은 흔들림 없이 말했다.“아니야. 형의 아이고, 이쪽은 현재 아이의 보호자야.”관계가 조금 복잡했다.하지만 하서진은 눈치가 빨랐다. 곧장 정리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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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집 안은 고요했다.주영숙이 몇 번 성순을 불렀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 장을 보러 나간 모양이었다.주영숙은 투덜거렸다.“성순 아줌마도 참. 장 보러 나가면서 문도 제대로 안 잠그면 어쩌자는 거야. 빈집 털이라도 들면 어쩌려고.”중얼거리며 계단을 올랐다.큰 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몸이었다.주영숙은 난간을 붙잡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의사도 계단은 천천히 오르라고 했다.한참 만에야 2층에 도착했다.계단 끝에 발을 디디자, 주영숙의 걸음이 멈췄다.2층에서 소리가 들렸다.안방 쪽에서 나는 것 같았다.주영숙은 귀를 기울이며 안방 앞으로 다가갔다.방문은 닫혀 있었지만, 안쪽에서 여자의 숨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그 나이까지 살아온 사람이 모를 소리가 아니었다.주영숙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하지만 안에 있는 남자가 혹시 문교가 아니라면.그 마지막 기대를 붙든 채.주영숙은 문을 밀어 열었다.밖은 영하 10도였지만, 방 안은 난방이 세게 돌아가서 뜨끈뜨끈했다.얇은 이불 하나로는 두 사람이 벌인 짓을 가릴 수 없었다.채아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 있었고, 머리 위에는 문교와 설아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었다.주영숙의 몸이 세차게 떨렸다.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주영숙은 옆 탁자 위 화병을 집어 들고 침대를 향해 힘껏 던졌다.화병은 침대까지 닿지 못했다.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쨍그랑!소리가 한창 흥분상태에 있던 두 사람을 깨웠다.두 사람은 동시에 주영숙을 보았다.문교의 얼굴이 삽시간에 잿빛으로 굳었다. 눈에는 막다른 곳에 몰린 사람의 침묵과 절망이 뒤엉켜 있었다.“할머니?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제가...”주영숙은 손을 들어 눈물로 젖은 얼굴을 훔쳤다.분명 죽을 만큼 화가 났다.분노로 쓰러질 것 같았다.그런데 문교가 입을 여는 것을 듣자,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왔다.아직 채아 곁에서 제대로 물러나지도 못한 주제에 설명부터 하겠다고 한다.‘뭘 설명한다는 거야?’“퉤!”주영숙은 이를 갈며 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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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주영숙은 이제야 드디어 깨달았다. 그토록 은혜를 저버리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문교는 손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끼리끼리 만나는 법이었다.문교 같은 사람에게는 채아 같은 사람이 딱 어울렸다.문교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할머니, 정말 설이와 제가 이혼하길 바라십니까? 설이가 저와 이혼하면 유준이에게 들어가는 고가의 의료장비는 당장 멈춥니다. 그 애는 1분도 버티지 못합니다.”“이 일은 못 본 걸로 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설이는 평생 배씨 집안 안주인입니다. 그건 변하지 않습니다. 유준이와 할머니도 제가 평생 책임지겠습니다.”“할머니는 늘 현명하셨잖습니까? 손익 계산이 제일 확실하신 분 아닙니까? 저는 세상의 많은 남자들이 한 번쯤 저지르는 실수를 했을 뿐입니다.”“이런 일 하나로 유준이를 죽이고, 할머니의 남은 생을 가난 속에 밀어 넣고, 설이가 생계 걱정까지 하게 만드는 게 과연 맞습니까?”문교는 분명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고개도 숙이고 있었다.어깨까지 처져 있어 얼핏 보면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 같았다.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사람의 마음을 찔렀다.‘어떻게 사람이 이 지경까지 갈 수 있을까?’주영숙의 몸이 흔들렸다. 문틀을 붙잡았다.공기가 굳은 듯했다.주영숙은 주먹을 꽉 쥐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뜨거운 빛이 타오르고 있었다.“너도 똑똑히 들어라. 내가 내 손으로 유준이 의료기계를 끄는 한이 있어도, 길에서 밥을 빌어먹는 한이 있어도, 나는 내 손녀를 희생시키지 않는다.”“우리 설이를 너 같은 인간 옆에 묶어 두고 평생 네 얼굴 보며 시들어 가게 살게 하지는 않아.”주영숙은 비틀거리며 두 걸음 물러났다.“내가 가슴 아픈 건 단 하나다. 내가 이렇게 은혜도 모르는 너를 키웠다는 것.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폐렴으로 죽게 놔둘 걸 그랬다. 문교야, 너는 반드시 벌받는다. 반드시...”말을 마친 주영숙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허리는 굽었지만, 등은 누구보다 곧았다. 무거운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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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하설은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했다.그때, 가방 속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하설은 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그래도 바로 전화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십니까?”수화기 너머에서 주영숙의 다급하고도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설아, 지금 어디냐? 할미가 병원 응급실에 있다...]하설은 바로 몸이 굳었다.“할머니, 왜요? 또 심장이 안 좋으세요?”주영숙은 급히 하설을 달랬다.[놀라지 마라. 겁내지 말고. 할미는 괜찮다! 너 혹시 시간 있으면 빨리 와라. 최대한 빨리. 네가 올 때까지 난 응급실 밖으로 못 나간다!]하설은 연달아 물었다.“어느 병원인지 아세요?”주영숙이 말했다.[제일병원.]그 말을 듣자 하설은 응급실 쪽으로 달리며 급히 말했다.“마침 오늘 하율이 검사해 주신 교수님도 제일병원 의사예요. 저 지금 병원 안에 있어요. 바로 갈게요!”하설이 달려 사라지자, 하율은 걱정된 얼굴로 우건의 다리를 꼭 붙잡았다.“삼촌, 빨리 날 안고 엄마한테 가자!”하설은 최대한 빠르게 응급실로 뛰어갔다.그러나 문 앞에서 문교와 마주쳤다.문교는 하설이 올 줄 몰랐는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설아? 네가 어떻게...”하설은 그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바로 응급실 문을 두드렸다.30초도 지나지 않아, 젊은 간호사의 부축을 받은 주영숙이 밖으로 나왔다.“고마워요, 선생님.”하설은 주영숙을 받아 부축했다.주영숙은 손녀의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눈시울이 붉게 젖어 있었다.“설아, 오늘은 할미 말 꼭 들어야 한다. 지금 당장 문교랑 같이 가정법원에 가서 협의이혼 절차부터 밟아라. 이유는 묻지 말고. 이혼 확인서 받고 신고까지 끝내면, 그때 할머니가 전부 말해 줄게.”문교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눈 깊은 곳에는 알 수 없는 빛이 스쳤다. 그리고 중영숙과 하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할머니가 역시 하설이를 불렀어.’‘오래 산 사람의 판단은 무시할 수 없네.’문교는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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