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Chapter 71 - Chapter 80

125 Chapters

EPISODE 71

그 오만한 남자에게 갈팡질팡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그저 아무 의미 없이, 자신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남자.더는 그런 남자에게 어떤 풋풋한 기대도, 서글픈 미련도 품지 않기로 결심했다.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선 유진은 차가운 거울 앞에 서서,류가 차 안에서 턱을 움켜쥔 채, 강제로 목에 채워주었던 눈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툭, 풀어버렸다.그리고 수십 억을 호가하는 제왕의 상징물은 이내 그녀의 서랍 안 구석에 무성의하게 처박혀 어둠 속에 버려졌다.같은 시각.지독한 패배감을 안은 채, 류는 로잔의 보 리바쥬 팰리스 호텔로 돌아왔다.오늘 밤, 그의 냉철한 이성은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그리고 위험할 정도로, 기이하고 생경한 감정의 파편들 탓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깨질 듯이 아파왔다.류는 수트 자켓을 거칠게 소파 위로 내던지며 마른세수를 했다.[지금… 내가… 저 꼬맹이를 두고 질투를 하는 건가? 미친 거지? 도대체 왜 이러는 데? 어린 여자애 하나를 맘대로 못해서… 승부욕이라도 걸린 거야? 한심하게?]딩동ㅡ.그가 독점욕의 지옥 속에서 이를 악물고 있던 바로 그때.객실 문이 열리고, 김 비서가 선물 상자 하나를 다이닝 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다.“서유진씨가 일본 회사로 보낸 주신 발렌타인 데이 선물입니다.”“……놓고 나가.”류가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다시 찾아온 정적. 그는 한참 동안이나 테이블 위의 상자를 노려보다 이내 선물 포장을 뜯어냈다.루이비통 머그잔과 수제 초코렛, 그리고 작은 카드.“언제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발렌타인데이를 보내시길 바랍니다.”유진 특유의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예의 바름 하지만 감정 없는 문체.순간 류의 붉은 입술 사이로, 실소 섞인 허탈한 자조가 툭 터져 나왔다.동시에 불과 몇 시간 전, 눈이 벌겋게 뒤집힌 채 꼬맹이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낚아채며 유치하디 유치한 질투의 광기를 불태웠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스스로를 향한 지독한 짜증과 수치심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꼬맹이한테 홀려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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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2

런던에서 제네바 국경까지 전용기로 날아온 류.오직 유진을 구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그는 자신의 최고 변호사 군단과 직통 라인을 통해 대기시켰던 스위스 연방 경찰 총장까지 대동한 채, 제네바 경찰서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탈칵. 타다닥. 탁.무거운 정적 속, 압도적인 제왕의 살벌한 구두 소리만 무섭게 울렸다.마침내 살기로 가득찬 붉게 충혈된 그의 시선 끝자락에,차가운 벤치 위에 위태롭고 앉아 있는 유진의 가녀린 실루엣이 걸려들었다.충격에 넋이 나간 표정으로…사촌 언니 오유정의 품에 안겨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작은 인형.그런데 정작 그를 마주한 유진은 어떤 변명도 하소연조차 뱉어내지 않았다.대신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 서린 눈빛으로, 그저 가쁜 호흡을 몰아쉴 뿐이었다.류는 경찰 총장을 돌아보며 낮고 서늘하게 물었다.“Can she go home now? Could you take care of this? Just do what I explained early and let me update.”(지금 귀가해도 되겠습니까? 여기 알아서 처리 가능하시죠? 제가 좀 전에 설명드린대로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진행사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Of course. We will take care of it. Don't worry. Take her and get her some rest.”(우리가 알아서 다 처리할 테니까 걱정마십시오. 유진양 데려가서서 푹 쉬게 해 주세요.)확답을 받자마자, 류는 유진과 유정을 거칠게 이끌고 가차 없이 경찰서를 빠져나왔다.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대기 중이던 여러 대의 세단의 문이 일제히 열렸다.그때 유진이 앞 서 걷던 류의 팔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말했다.“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괜찮아요.”하지만 그녀의 손길이 그의 팔에 닿는 순간,류의 서늘한 시선에 유진의 목덜미가 적나라하게 걸려들었다.그리고 그녀의 목에 생긴 칼날에 베이고 긁힌 상처와 피로 얼룩진 그녀의 교복 블라우스 카라가 그의 눈에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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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3

다음 날 늦은 아침.포시즌스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거대한 침대 위에서, 유진은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커튼 사이로 쨍한 스위스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밤새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던 류가 아닌.초조한 얼굴의 유정이 대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언니……”“괜찮아?”“응. 그 사람은?”“아침 일찍 일이 있다고 갔어. 그리고 네 옆에 내가 있는 게 편할 거라고. 여기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일주일 너랑 나랑 지내래. 그리고 그 동안 너 여학교로 학교 옮긴다고.”유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진은 이불을 걷어차고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리고 협탁 위에 놓여 있던 휴대폰을 낚아채듯 쥐어 잡았다.그러고는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었던 자신만의 금기였던.류의 직통 번호를 찾아 급하게 전송 버튼을 눌렀다.두르르르-, 두르르르-.류의 수트 자켓 안쪽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거칠게 울렸다.류는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확인했다.액정화면 위로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는 이름 세 글자, 서유진.처음이었다. 유진이 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순간 그의 신경과 맥박이 일시에 멈추어 섰다.류의 심장이 거대한 소리를 내며 쿵, 하고 내려앉았다.전신을 관통하는 낯선 소리.그 짧은 찰나, 이성보다 거대한, 강렬한 확신이 뇌리를 스쳤다.거부할 수 없는 지독한 운명이었다.류는 마른침을 삼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그때 들린 유진의 목소리.“저… 학교 안 옮길거예요.”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저… 여보…세요?”수화기 너머로, 방금 깨어나 아직 고열의 잔열이 남은 듯한 유진의 음성이 들렸다.그의 심장이 미친듯이 아려왔다.“일어났니?”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살짝 경직된 채, 낮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순간 아차 싶었다.다급함에 눈이 멀어, 무턱대고 전화부터 걸었다.그러고는 인사도 예의도 없이, 본론부터 훅 던져 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유진은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그제서야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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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4

사고가 났던 여자 화장실이 당분간 잠정 폐쇄된다는 게시판의 하얀 공지문.다시 학교로 돌아온 유진은,벽면에 붙은 그 짤막하고 건조한 문장을 바라보며 자리에 멈춰 섰다.단 몇 줄의 활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자신도 모르게, 그날 겪어야 했던 끔찍했던 기억이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왔다.*딸각.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 정적의 순간."읍……!"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문이 닫히기도 전,뒤편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거친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그리고 이내 서늘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그녀의 부드러운 목덜미 살결에 차갑게 와닿았다.소름 끼치도록 생생한 금속의 촉감에 유진의 척추를 타고 전율이 일었다.뒤이어 유진의 등 뒤로 무겁게 밀착해 오는 축축하고 뜨거운 숨결.역한 향수 냄새… 그리고 사내의 목소리가 유진의 귓가를 더럽혔다."가만히 있어. 소리 지르면 이 예쁜 목을 확 그어버릴 테니까."공포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뛰어대며 온몸의 피가 식어내리는 기분이었다.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스토커 놈의 손이, 유진의 허벅지를 쓸어 올리며 치마 속으로 잔인하게 파고들었다.거칠고 난잡한 손길이 여린 속살을 아리게 헤집을 때마다 유진은 온몸을 잘게 떨었다."어때…… 기분 좋지? 너도 사실 이런 걸 기다린 거잖아. 학교에서 고고한 척은 다 하더니, 밤마다 날 안달 나게 만든 건 너야, 유진."미친 놈의 착각과 헛소리가 밀폐된 화장실 안에 웅웅거렸다.치마 속을 유린하던 손길은, 이제 거침없이 상의 블라우스 단추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사내의 손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부드러운 손바닥이 유진의 하얗고 말랑한 가슴을 터질 듯 움켜쥐고 주물러댔다."아, 흐윽……!"치욕감과 공포에 본능적으로 유진이 몸을 비틀며 저항하려던 그 순간이었다.스윽-"아앗!"날카로운 칼날이 여린 목덜미의 살결을 깊숙이 스치고 지나갔다.눈처럼 하얗고 투명하던 유진의 피부 위로 붉은 핏방울들이 솟구치더니, 이내 주루룩 흘러내려 쇄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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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5

스위스 제네바의 기숙사 건물 앞.사방을 하얗게 뒤덮는 눈발 사이로, 한 여자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아이보리 양털 무스탕 코트에 어그 부츠까지.온몸을 꽁꽁 싸맨 유진은 마치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았다.차창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류의 입술 끝에.실소 섞인 허탈한 웃음이 나직하게 터져 나왔다.[아무리 날씨가 춥다고 하긴 했어도, 그래도 나름 데이트인데… 무슨 눈밭에 굴러 다닐 것도 아니고 완전 중무장을 하고 나왔네…]그 어떤 섹슈얼한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는.유진의 유아틱하고 귀여운 방한 복장.류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저렇게 입을 거면 차라리 그냥 교복을 입지. 도대체 옷은 뭐하러 갈아 입은 거야?]그때 사정없이 몰아치는 눈보라의 세찬 칼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유진은 작은 상체를 잔뜩 움츠린 채 위태롭게 발걸음을 옮겼다.그녀의 길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강풍에 엉망으로 헝클어지며 새하얀 눈발과 함께 허공으로 어지럽게 휘날렸다.류는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걸고 미끄러지듯 기숙사 입구 앞에 차를 대주었다.철컥. 슈우웅ㅡ.육중한 차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매서운 한기를 피하려는 유진의 작은 몸이 조수석 차 안으로 급하게 구겨지듯 들어왔다.그리고 앉자마자 코트에 쌓인 새하얀 눈들을 조그만 손으로 툭툭 털어냈다.그 모습이 영락없이 털을 고르는 작은 고양이 같았다.류는 본능적으로 그녀에게로 몸을 기울였다.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에 앉은 눈들을 그의 커다란 손으로 조심히 털어 주었다.바로 그때,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그녀의 신비로운 눈동자가 어김없이 류의 시선을 단단히 묶어버렸다.그리고 차 안의 밀폐된 공기 속에서, 유진의 새하얀 피부가 더욱 투명하게 돋보였다.그리고 그 순백의 중심에서 살짝 벌어진 장미빛 탐스러운 입술.척추를 타고 의도치 않은 이성적인 끌림이 날카롭게 내리꽂혔다.순간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만지던 그의 손길이 어색하게 굳어버렸다.[진짜 미쳤구나…… 이런 꼬맹이한테…]그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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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6

창밖으로 몰아치는 거센 눈 폭풍 때문인지,레만 호숫가의 레스토랑 안에는 오직 두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마치 거대한 자연의 고립이, 두 사람만을 위해 독점적인 공간을 만들어낸 것만 같았다.류와 유진은 그 아늑하고도 은밀한 공간 속에서,아주 한참 동안 저녁 식사를 이어 나갔다.그리고 눈발이 날리는 회색빛 호수의 낙조를 배경으로.처음 만났던 마테호른의 눈밭의 시간처럼.둘은 한참을 웃고 떠들며 대화를 쏟아냈다.하지만 분위기가 유연하고 편해질 수록……그때와는 다른 뭔가 알수 없는 은밀하고 위험한 텐션이, 두 사람의 신경을 건드렸다.“트라우마 생겨서 밥도 못 먹고 방에 쳐 박혀 있을 줄 알고 왔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좀 김 새는데.”류의 짓궂은 농담이 섞인 핀잔에도, 유진은 입술 끝에 가벼운 미소를 매달렸다.“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서 며칠은 진짜 그런 척 하긴 했어요. 저… 아침에 일어나는 거, 죽기보다 싫어하거든요.”“아침 몇 시가 기상인데… 죽기보다 싫어?”류가 깊은 동공을 가늘게 좁히며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아침 9시는 되야… 정신이 아주 쬐금 돌아오거든요. 근데 학교 1교시가 8시 30분이니까… 핑계 댈 거라도 있음 다 대서 1교시를 빼먹곤 했는데. 지금 이보다 더 좋은 핑계는 없으니까.”“늦게 일어날 핑계를 찾지 말고 그냥 밤에 좀 일찍 자.”여전히 아이 같은 그녀를 보며, 류는 자연스레 웃음이 났다.하지만 웃음을 삼키며 단호하게 다그쳤다.그러자 유진은 장미 빛깔의 입술을 살짝 내밀며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소용없어요. 9시에 자도 새벽에 자도, 9시 전에 못 일어나요. 그래서 알람을 5개나 맞춰 놓고 자는데… 언제나 유정 언니 손에 맞고 일어나요.”“하하하… 오유정이 고생이네.”유진의 천진난만한 고백.류의 수려한 입술에서, 참지 못한 유쾌한 웃음소리가 길게 터져 나왔다.“그럼 이 핑계로 졸업 때까지 쭉ㅡ 1교시를 빼 먹지. 왜? 마음 바꿨어?”“사실 계속 그러기에는 좀 양심에 찔리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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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7

“너, 하고 싶은 건 뭔데?”류의 낮고 묵직한 질문이 텅 빈 레스토랑의 정적을 깨뜨리며 날카롭게 내리꽂혔다.그저… 말랑하고 설레는 감정 한 조각을 원했을 뿐이었는데…그가 던진 예상치 못한 본질적인 질문 앞에.그녀는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투명하게 빛나던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호수의 물결처럼 사정없이 요동쳤다.그런 그녀의 위태로운 표정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류는 잔인하도록 낮은 목소리로 다시금 읊조렸다.“KL 지키고 싶어?”“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요?”조금은 뺨이 붉게 물든 유진이 턱끝을 치켜올리며, 짐짓 당돌하게 받아쳤다.류의 시선이 그녀의 붉은 입술 위에 잠시 머물렀다.“그럼 계속 꼬맹이로 있어. 너 여기 졸업할 때까지는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난 너희 회사에 투자 한 것 회수 못해서, 너…… 인질로 데리고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대신 6개월 후 회수하는 대로 풀어줄 테니까. 그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그게…… 끝인가요?”철저한 비즈니스 논리 앞에서 유진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서글프게 떨려왔다.여자로서 쥐어짜 낸 자신의 용기를, 가차 없이 쳐내는 그의 태도에 명치 끝이 저려왔다.유진의 애달픈 목소리에 류의 심장이 생으로 도려내 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가지면 안되는 위험한 욕심.아직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아이.그런데 그런 그녀를 욕심내는 순간, 꿈도 꿀 기회조차 없이 그녀의 미래는 먼지처럼 사라진다.평생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그저 남들에게 휘둘리면서 살아야 한다.잠시 세차게 흔들렸던 감정을 다시 차가운 이성으로 무장하고 생각 정리를 끝냈다.류는 더욱 더 냉혹한 포커페이스를 가면으로 썼다.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경고하듯, 유진의 숨통을 조여왔다.“아니. 너에게는 시작이지. KL그룹은 네 거잖아. KL이 잘못 되면 모든 법적 책임은 너에게 갈 거야.”“………”“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회사 사정, 재무, 너에게 호의적인 측근이나 임원들 통해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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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8

아버지를 선택하겠노라 선언했다.그리고 메시지를 보낸 지 정확히 일주일 후.스위스 제네바의 기숙사 로비 안으로.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수십 개의 화려한 명품 쇼핑백들이 줄지어 배달되어 들어왔다.지나가던 학생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와…… 유진, 이게 다 뭐야? 대체 누가 보낸 서프라이즈야?”호기심과 부러움이 가득 섞인 눈빛을 한 학생들이 유진의 주변으로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바로 그때, 유진이 쥐고 있던 휴대폰 화면 위로 짤막하고 서늘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입고 나와.]단 네 글자 속에 담긴 류의 일방적인 명령.몰려든 아이들이 지켜보는 한복판에서.유진은 굳어버린 손가락으로 쇼핑백의 실크 끈을 하나씩 풀어보았다.포장 틈새로 쏟아져 나오는 화려함의 극치들.눈부신 그린 색상 발렌티노(Valentino)의 이브닝드레스.아찔한 굽을 자랑하는 지미추(Jimmy Choo)의 하이힐.스위스 최고급 라프레리(La Prairie)의 스킨케어 화장품 세트들.크리스탈 조명 아래 영롱하게 번뜩이는 티파니(Tiffany & Co.)의 다이아몬드 주얼리 박스.은은하고 매혹적인 향취를 풍기는 산타마리아노벨라(Santa Maria Novella)의 향수.그리고 새 가죽의 고급스러운 질감이 살아있는 색상별 에르메스(Hermès) 가방들이 줄을 지어 드러났다.친구들의 감탄사들이 사방에서 들이쳤지만, 유진은 기분이 더러웠다.인질의 의미.더 이상 그에게 꼬맹이기를 거부하고, 아버지를 선택하겠다고 선언한 자신에게.한 달 만에 돌아온 그의 첫 반응이 고작 이것이었다.[인질…… 그래서 내 하룻밤을 사겠다는 거야?]그때 유정이 흥분해서 유진을 붙잡았다.“역시 클라스가 다르네… 이게 도대체 다 얼마야? 근데 왜 갑자기? 혹시 오늘 D-데이 아니야? 야! 어떻게?”“………”“너 할 거야? 준비 됐냐고?”“더러워.”“혹시 그 여배우와 아직이야?”“상관없어. 그깟 하룻밤이 뭐라고. 그 까짓 것 주면 그만이야.”“야… 그래도 첫 경험인데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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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9

류가 억지로 던져준 화려한 박스 속.그 아찔하고도 매혹적인 드레스로 차려입은 유진이 기숙사 문을 열고 나왔다.그리고 류의 앞에 섰다.마치 달콤한 꿀을 듬뿍 바른 흰 모찌처럼,눈이 부시도록 하얗고 탐스러운 가슴골을 과감하게 드러낸 그린 시스루 쉬폰 튤 드레스.스위스의 서늘한 바람에 드레스의 얇은 원단이 부드럽게 흩날렸다.잔인하도록 아름답고 치명적인 자태였다.그동안 수수함 뒤에 완벽하게 숨겨져 있던 그녀의 미색이 정면으로 그의 신경을 강타하며 그를 옴싹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마음에 드세요?”정면에서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는 유진의 싸늘한 표정.터질 것 같은 욕망의 열기.류는 차가운 냉정을 찾으려 무심하고 비꼬인 어조로 대꾸했다.“오랜만에 인형 놀이… 나쁘지 않군.”순간 유진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미세한 변화가 서늘하게 피어올랐다.가슴 한구석을 송곳에 찔린 듯, 수치심과 짜증에 붉어진 그녀의 새하얀 뺨.자신의 도발에 걸려들어 붉어진 홍조가 그는 미치도록 마음에 들었다.[인형이란 말에 긁혔니? 그럼 표현하란 말이야?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내가 널… 네 마음을 알 수 있게…]류는 일부러 더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녀를 자극했다.“맨날 못난이처럼 입는 거에 익숙해서, 네가 이런 스타일은 안 어울리나 했는데…… 꽤나 잘 어울리네.”“죄송합니다. 그쪽 기대에 제 외모가 한참 모자라서.”“옷 좀 못 입는다는 말 한마디에 파르르 떨 필요 없잖아? 너도 너 예쁜 거 모를 리 없는데 자신감을 좀 가져. 너 정도로 예쁜 여자… 이 세상에 그렇게 흔한 건 아니니까.”자신을 무시하는 자극적인 단어를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더니, 갑자기 예상치 못한 칭찬을 그가 유진에게 툭 던졌다.순간, 유진의 표정이 어쩔줄 모르고 어색하게 흔들렸다.“가자. 약속 시간 늦겠다”*“아빠……!”제네바 포시즌스 호텔의 최고층 루프탑 레스토랑.육중한 유리문이 열리고 안으로 발을 내딛자마자.유진의 황금빛 시선 끝자락에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 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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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80

류가 사라지자마자.혼자 남겨진 서 회장은 탐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리고 맞은 편에 앉은 유진을 매섭게 다그치기 시작했다.“잘했다. 아주 류 회장을 잘 구워 삶았구나. 아주 잘했다. 근데 둘이 어디까지 갔니?”“네?”유진이 제 귀를 의심했다.그녀가 눈동자를 크게 뜨자, 서 회장은 와인을 들이켜며 당연하다는 듯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아빠한테 그런 것까지 말하는 건 좀 부끄럽니? 암튼 지금부터 더 잘해라.원하는 건 다 들어주고, 류 회장 주변에 여자들이 많은 건 알지? 네가 어떻게 해서든 꽉 사로 잡아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아빠!”유진의 가느다란 음성이 수치심으로 파르르 떨렸다.서 회장의 눈 뒤집힌 탐욕은 딸의 비참함을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무슨 말인지 알지? 그리고…… 네가 아직 고등학생이긴 해도 4개월 뒤면 졸업이니까… 혹시라도 임신이라도 할 수 있음 노력해 봐. 나이 어릴 때 가진 아이는 머리도 좋으니까. 네 엄마도 너 일찍 낳았잖니? 암튼 류 회장 보통 깐깐한 사람 아니니까. 최선을 다해서 맞춰 줘. 너 하기에 따라서 우리 KL 그리고 우리 가족 인생이 달라진다. 알았지?”자신의 아버지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잔인하고 추악한 언사.그 칼날 같은 수치스러운 단어들 앞에서.유진의 여린 가슴과 영혼은 가차 없이 갈가리 찢겨 나가 피를 흘렸다.“아빠는… 저보다 사업이 더 중요한 가요?”“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서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이프를 쾅 내려놓았다.“그게 아니면… 어떻게 딸인 저에게… 이런 얘기를…”유진의 투명하게 차오르던 황금빛 눈동자 위로, 끝내 참아내지 못한 뜨겁고 서글픈 눈물이 왈칵 차올라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하지만 딸이 흘리는 그 피눈물 앞에서도.서 회장은 위로는커녕, 도리어 비즈니스 판을 망칠까 봐 짜증스럽다는 듯 미간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혀를 찼다.“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 네 엄마가 살아 있어도 똑같이 말했을 거다. 네 미래를 위해 최고의 남자를 대령해 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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