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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형수의 밤: Chapter 101 - Chapter 110

133 Chapters

101. 부재의 증명

서재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아침 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밤을 버티고 나온 시간의 빛은 언제나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완전히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둠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의 색. 형의 집 안 공기는 그 빛처럼 묘하게 고요했다.건우는 노트북을 닫은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 안에는 형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서랍 속 정리된 서류, 벽에 걸린 시계, 책장 위에 놓인 오래된 상패까지. 누군가가 살다가 갑자기 사라진 집은 늘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물건들은 그대로인데, 그걸 사용하던 사람만 빠져 있는 공간.그 어색한 공백이, 오히려 사람의 부재를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하나는 노트북을 다시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이 자료.”건우가 고개를 들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야.”그녀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의미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형이 남긴 계좌 흐름과 메모, 그리고 김도현이라는 이름까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사건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정보였다.건우는 잠시 창문 밖을 바라봤다.거리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출근 시간 전이라 그런지 자동차 몇 대만 지나가고 있었고, 먼 곳에서 청소차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아무 의미 없는 풍경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평범함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누군가는 형을 죽였고, 그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그 사실을 알고 난 뒤로는 세상이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건우는 다시 하나를 바라봤다.“지윤 변호사.”그가 말했다.하나는 곧바로 이해했다.“형이 만나려고 했던 사람.”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형이 이 자료를 들고 가려고 했던 이유가 그거라면.”그의 말은 천천히 이어졌다.“지윤 변호사가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어.”하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형이 직접 정리한 자료를 가지고 변호사를 찾으려 했다면, 단순한 상담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법적인 절차를 준비하려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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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방문 기록

형의 집을 나설 때는 이미 아침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밤새 머물던 공기가 서서히 밀려나고, 낮의 기척이 골목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출근 시간에 가까워지면서 차량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고, 길 건너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렸다. 세상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건우에게는 그 평범한 풍경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차에 올라탄 뒤에도 그는 곧바로 시동을 걸지 않았다.형의 서재에서 확인했던 문장들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확인 필요 - 지분 이전 전.그리고 그 아래에 적혀 있던 이름.김도현.형이 마지막까지 확인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증명하느냐였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하나가 조용히 말했다.“건우.”그는 고개를 돌렸다.“아까 했던 얘기.”하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어 말했다.“형 집에 누가 들어왔는지 확인해 보자던 거.”건우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경찰 기록.”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사건 이후에 출입 기록은 남아 있을 거야.”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낮게 울리며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경찰 기록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어.”그가 말했다.“왜?”하나는 그를 바라봤다.건우는 차선을 바꾸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형 집은 회사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어.”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장례 준비할 때도 그렇고, 회사 정리할 때도 그렇고.”하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그러니까 경찰이 전부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거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특히 회사 사람들.”차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하나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그래도 기록부터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그녀의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확신이 있었다.“형 집에 누가 들어왔는지 알면.”잠시 후 그녀가 이어 말했다.“누가 먼저 움직였는지도 보일 수 있잖아.”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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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조문의 가장

경찰서 자료실의 형광등은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창문으로 들어오는 낮빛과 섞이면서 방 안의 공기가 어딘가 희미하게 떠 있는 느낌을 만들고 있었다. 서류 보관용 철제 캐비닛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오래된 종이 냄새가 조용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건우는 방금 덮었던 서류를 다시 펼쳤다.김도현.그 이름은 단순한 방문자 기록처럼 보였지만, 그 줄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보다 훨씬 무거웠다.형이 죽은 다음 날.그리고 오전 열 시.건우는 그 시간을 한 번 더 눈으로 따라갔다.입실 10:12퇴실 11:03거의 한 시간.그 시간 동안 김도현은 형의 집 안에 있었다.하나는 기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었다.“너 그날 기억나?”그 질문은 부드러웠지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건우는 잠시 시선을 서류에서 떼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이후의 기억은 전체적으로 흐릿했다. 장례 준비가 이어졌고, 경찰이 몇 번이나 집을 오갔으며, 회사 사람들도 찾아왔다. 그 사이에서 그는 거의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었다.그날 집에 누가 왔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잘 기억 안 나.”하나는 그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것 같았어.”그녀는 다시 기록을 내려다봤다.“근데.”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조문이면 보통 장례식장으로 가지.”건우의 시선이 움직였다.하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집으로 바로 오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그 말은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들렸지만, 의미는 분명했다.특히 사건 직후라면 더 그렇다.형의 집은 그날 경찰이 조사하고 있었고, 상황 자체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집을 굳이 찾아온다는 건 단순한 조문 이상의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건우는 기록을 다시 한 번 훑어봤다.방문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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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서재의 두 번째 서랍

경찰서 자료실을 나왔을 때, 밖의 공기는 이미 낮의 온도로 올라와 있었다.사람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고, 도로 위 차량 흐름도 점점 촘촘해지고 있었다. 세상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건우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확인한 이름 하나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김도현.형의 죽음 다음 날, 형의 집에 들어온 사람.단순히 조문이라고 넘기기에는 기록이 남긴 여백이 너무 많았다.차에 올라탄 뒤에도 건우는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은 채 잠시 핸들을 잡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다시 가보자.”건우가 고개를 들었다.“어디를.”“형 집.”그녀의 말은 짧았지만 망설임이 없었다.“어제도 봤지만… 서재는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어.”건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어제 형의 집을 한 번 살펴보았고, 노트북과 문서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 자료실에서 기록을 본 뒤로는 그 집이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지고 있었다.김도현이 그날 한 시간을 머물렀다.그 시간 동안 그가 어디까지 움직였는지, 무엇을 확인했는지 아무도 모른다.건우는 시동을 걸었다.차가 도로 위로 천천히 나왔다.집까지 가는 동안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라디오도 켜지지 않았고,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의 방향은 비슷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형이 무엇을 남겼는지.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찾으려고 했는지.형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골목은 여전히 조용했다. 건우는 차에서 내려 잠시 현관 앞에 서 있었다.이 집은 여전히 익숙했다.어릴 때부터 형을 따라 몇 번이나 들렀던 집이었고, 형이 회사를 키워 가던 시절에도 종종 와서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곳이었다.그런데 형이 없는 집은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공기가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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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행방의 유예

서재 창문으로 들어오던 낮빛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한낮의 직선적인 밝음이 서서히 부드러워지면서 방 안의 그림자도 길어지고 있었다. 책장과 책상 사이에 놓인 공기마저 조금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건우는 서랍 밑에서 꺼낸 종이를 여전히 손에 들고 있었다.종이는 평범한 복사용지였다. 오래 숨겨져 있었던 것치고는 구겨진 흔적도 거의 없었고, 접힌 자국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형이 일부러 접어 숨겨 둔 문서라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하나는 건우 옆에서 그 종이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계좌 번호 몇 개와 숫자들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 형의 글씨가 남아 있었다.지분 이전 전 마지막 거래 그리고 그 밑에 적힌 이름.김도현.그 이름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형이 직접 남긴 문서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었고, 지금 손에 들려 있는 종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응.”“이거… 형 글씨 맞지?”건우는 잠깐 종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짧은 대답이었지만 확신이 담겨 있었다.형의 글씨는 오래 봐 온 사람에게는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숫자를 쓸 때의 방식이나, 글자 끝이 약간 기울어지는 습관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하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형이 이 종이를 일부러 숨겼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무게를 가지기 시작하고 있었다.그때까지 조용히 종이를 바라보던 건우가 입을 열었다.“지분 이전.”그가 낮게 말했다.“형이 준비하고 있었던 거겠지.”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김도현 지분을 정리하려 했을 수도 있고.”건우의 시선이 조금 움직였다.그 가능성은 충분했다. 형이 회사 지분 구조를 바꾸려 했고, 그 과정에서 김도현의 움직임을 발견했을 수도 있었다.형이 그걸 그냥 넘길 사람은 아니었다.건우는 종이를 다시 한 번 펼쳐봤다.숫자들은 단순한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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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남겨진 문장의 방향

서재 안 공기는 조금 전보다 더 고요해져 있었다.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빛이 책상 위로 비스듬히 떨어지고 있었고, 그 빛 위에 방금 발견한 종이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 적혀 있는 숫자와 이름이 가진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건우는 책상 옆에 서서 그 종이를 다시 펼쳐 보았다.형의 글씨는 여전히 차분했다. 급하게 쓴 흔적은 없었고, 숫자들도 일정한 간격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숫자를 다뤄 온 사람이 가진 습관 같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하나는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형이 이걸 숨겨 둔 건.”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누가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건우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형은 신중한 사람이었다. 중요한 자료를 아무렇게나 두는 성격은 아니었고, 특히 회사와 관련된 문제라면 더더욱 그랬다.그는 천천히 말했다.“아마.”그리고 잠시 후 덧붙였다.“누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겠지.”그 말은 조용했지만 무겁게 내려앉았다.하나는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바라봤다. 어제 확인했던 계좌 흐름 파일이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해외 계좌를 거쳐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돈의 흐름, 그 중간에 끼어 있던 회사 계좌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했던 이름.김도현.형이 마지막까지 의심하고 있었던 사람.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었다.“형이 이걸 변호사한테 넘기려고 했던 거라면.”그녀의 말이 이어졌다.“단순한 의심은 아니었을 거야.”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형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법적으로 넘길 사람은 아니었다. 최소한 어느 정도의 증거와 흐름을 정리한 뒤에 움직이는 사람이었다.그렇다면. 형은 이미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건우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그 안에 적힌 숫자들은 단순한 거래 기록처럼 보였지만, 형이 남긴 문장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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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경로의 우회

서재 안에 남아 있던 빛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창문 밖의 햇빛이 책장 사이로 길게 늘어지면서 방 안의 색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오후가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였다.건우는 서랍에서 발견한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어 노트북 옆에 내려놓았다.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위에 적힌 문장은 이제 사건의 중심을 향해 방향을 잡아 주고 있었다.지분 이전 전 마지막 거래형은 그 거래를 마지막 기준점으로 삼고 있었다.하나는 책상 옆에 기대 서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조금씩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계좌 흐름.형이 남긴 메모.그리고 형의 집에 찾아왔던 사람.김도현.하나는 조용히 말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었다.“지금 당장 그 사람을 만나겠다는 거야?”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아까 서재에서 했던 말은 단순한 감정의 반응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모은 조각들이 가리키는 이름이 하나로 모이고 있었고, 그 이름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하나는 조금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네.”건우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해가 기울면서 유리창에 희미하게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지금 가면.”그의 말이 이어졌다.“우리가 뭘 알고 있는지 바로 눈치챌 거야.”그 말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에 가까웠다.김도현이 정말 이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는 이미 여러 번 상황을 정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에게 갑자기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경고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하나는 조용히 물었다.“그럼.”그녀의 말이 이어졌다.“다른 방법이 있어?”건우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시선이 서서히 내려왔다.“형 회사.”그가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들었다.“응.”“지분 이전.”그의 말은 천천히 이어졌다.“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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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기록의 틈

해가 더 기울어지자 서재 안의 빛도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낮 동안 방 안을 채우고 있던 밝음이 부드럽게 흐려지면서 책장 사이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창문 너머로는 저녁을 준비하는 도시의 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건우는 책상 앞에 서서 형이 남겨 둔 종이를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있었다.종이 위에는 여전히 같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지분 이전 전 마지막 거래 그 문장은 짧았지만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형이 어떤 사건의 경계선을 설정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거래 이전과 이후가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하나는 책장 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건우.”그는 시선을 돌렸다.“형이 이걸 숨겼다는 건.”그녀의 말이 천천히 이어졌다.“그날 집에 누가 올 거라고 예상했을 가능성도 있어.”건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형이 죽기 전까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그 마지막 며칠 동안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아직 완전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형은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의심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길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건우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잠시 낯설게 느껴졌다. 형의 사건을 쫓기 시작한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지만, 이제야 조금씩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그 윤곽의 중심에는 여전히 같은 이름이 있었다.김도현.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형이 지분 정리를 준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렇게 생각했어.”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회사에서 지분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보통 그 전에 돈의 흐름이 먼저 바뀌거든.”건우의 시선이 다시 종이로 향했다.형이 기록해 둔 거래가 바로 그 변화의 시작일 수도 있었다.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혹시.”그녀의 말이 이어졌다.“그 거래가 마지막 경고였을 수도 있어.”건우가 물었다.“경고?”하나는 잠시 말을 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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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지연된 파국

서재 안의 빛이 거의 사라질 무렵이었다.창문 너머로 저녁이 내려앉고 있었고, 책장과 책상 사이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한층 깊어졌다. 형이 남긴 기록을 하나씩 확인하다 보니 시간 감각이 흐려져 있었지만, 방 안 공기가 달라진 것을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건우는 방금 덮은 회색 파일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도현 - 이미 알고 있음형의 글씨로 남겨진 그 짧은 문장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과, 그 사람이 이미 상황을 눈치챘다는 걸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단계의 이야기였다.하나는 책상 옆에 기대 서서 건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건우.”그녀가 부르자 건우는 고개를 들었다.“형이 저렇게 적어 놨다는 건.”하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어 말했다.“둘 사이에 이미 뭔가 오간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건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서재 안 공기가 조용하게 가라앉고 있었다.형은 원래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특히 회사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는 더 그랬다. 중요한 일이 생기면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먼저 상황을 정리하고,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편이었다.그런 형이 누군가의 이름 옆에 저런 문장을 남겨 놓았다.이미 알고 있음.그 말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어떤 순간을 지나온 사람의 기록처럼 보였다.건우는 조용히 말했다.“형이 직접 말했을 수도 있어.”하나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김도현한테?”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안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었으면.”그의 말이 이어졌다.“언젠가는 마주쳤겠지.”그 가능성은 충분했다.지분 정리나 자금 흐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움직임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었다.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하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럼.”그녀의 말이 이어졌다.“형이 먼저 경고했을 수도 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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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아직 닿지 않은 자리

서재 창문 밖으로 저녁이 완전히 내려앉고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골목 위로 번지면서 창문 유리에는 흐릿한 노란색이 비쳤고, 책장 사이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낮과는 전혀 다른 깊이를 가지기 시작했다. 낮 동안에는 단순한 방처럼 보였던 공간이 어둠이 내려오자 갑자기 다른 장소처럼 느껴졌다.건우는 책상 앞에 서 있었다.형이 남겨 둔 종이와 파일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서랍 아래에서 발견한 문서, 회색 파일 속에 남겨진 메모, 그리고 노트북에 정리되어 있던 계좌 흐름까지. 지금까지 확인한 것들은 하나씩 이어지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형은 돈의 흐름을 발견했다.지분 정리를 준비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도현이라는 이름이 계속 등장했다.하나는 창문 가까이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확인한 기록들은 단순한 우연이나 오해로 넘기기에는 너무 정확하게 맞물리고 있었다.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었다.“형이 여기까지 정리해 놓은 거라면.”하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어 말했다.“이미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을 거야.”건우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형은 감정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정리하고, 그 다음에야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지금 발견된 기록은 그 과정의 중간쯤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완전히 끝난 증거는 아니지만, 방향은 분명히 가리키고 있었다.건우는 조용히 말했다.“그래서 변호사를 만나려고 했겠지.”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형이 마지막으로 남겨 둔 일정에도 그 이름이 있었다. 지윤 변호사와의 약속. 그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형이 그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서재 안에는 책 넘기는 소리도, 키보드 소리도 없었다. 세 사람의 생각만 조용히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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