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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형수의 밤: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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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선택의 경계

CCTV 영상 속 남자의 얼굴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체형과 걸음걸이, 휴대폰을 조작하는 손의 각도까지 분석한 결과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계열사 보안팀 외주 계약자 중 한 명, 사고 당시 형의 동선 근처에서도 기지국 위치가 겹쳤던 인물이었다.확정은 아니었지만, 우연이라 보기엔 겹침이 지나치게 많았다.하나는 자료를 정리하며 말했다.“이 사람, 형 사고 직전에도 근처에 있었어.”건우의 눈빛이 달라졌다.“그럼 연결선이 생겨.”“아직은 선이야.”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점이 아니야.”그 말은 냉정했다.감정으로는 이미 확정이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가설이었다.그 순간, 감사관에게서 연락이 왔다.외부 압력으로 사건의 관할을 상부 특별팀으로 이관한다는 통보였다.공식 이유는 ‘공정성 확보’였다.하나는 통화를 끊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이관이래.”그녀가 낮게 말했다.건우는 바로 이해했다.사건을 빼앗는 방식이었다.“그럼 넌.”그가 묻자, 하나는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난 완전히 빠져.”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빛은 흔들렸다.“기록은 넘어가. 내가 모은 자료도.”그 말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었다.이건 싸움의 주도권을 잃는다는 뜻이었다.건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알고 있었다.이관은 수사를 정리하는 가장 깔끔한 방법이라는 걸.“넌 괜찮아?”그가 물었다.하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괜찮지.”그러나 그 한 단어에는 오래 붙잡고 있던 무게가 실려 있었다.“내가 계속 들고 있으면 더 흔들려. 저쪽은 나를 공격하는 걸 멈추지 않을 거야.”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특별팀이 맡으면, 적어도 표면은 깨끗해져.”그녀의 선택은 전략이었다.그러나 그 전략은, 동시에 자신을 뒤로 빼는 일이기도 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건우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했다.“그럼 여기까지야?”그 질문은 사건을 향한 것인지, 감정을 향한 것인지 모호했다.하나는 운전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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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방향의 설정

특별팀은 빠르게 움직였다.이관 발표 사흘 만에 공식 브리핑이 열렸고, 사건의 초점은 ‘기업 내부 보안 관리 미흡’으로 재정리되었다. 형의 사고는 직접적 타살 가능성이 아닌, 관리 소홀과 외주 계약자의 일탈 가능성으로 방향이 잡히고 있었다.하나는 화면을 조용히 껐다.“선이 바뀌었어.”그녀가 낮게 말했다.건우는 고개를 들었다.“어떻게.”“구조에서 개인으로.”그녀의 말은 차분했지만 날카로웠다.“외주 계약자 하나가 독단적으로 움직였다는 그림으로 가고 있어.”건우는 잠시 생각했다.“그럼 위는 깨끗해.”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빠르게 움직이는 거야.”특별팀은 분명 수사를 하고 있었다.문제는 방향이었다.형의 브레이크 절단 정황과 지하 통로 조명 제어 기록은 모두 ‘현장 단위’의 문제로 묶이고 있었다. 시스템을 흔드는 선은 의도적으로 건드리지 않는 느낌이었다.“이관이 정리가 될 수도 있겠네.”건우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그를 바라봤다.“이대로 덮으려는 거야.”그 말은 단정이 아니라 우려였다.그날 저녁, 하나는 외부 감사관에게서 비공식 연락을 받았다.특별팀 내부에서 그녀가 남긴 기록 일부를 ‘감정적 판단’으로 분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하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예상했어.”그녀는 담담히 말했다.“내 이름이 들어간 자료는 신뢰도에서 먼저 깎일 거야.”건우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묘하게 조여왔다.“그럼 네가 빠진 게 의미 없어지는 거잖아.”하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녀의 눈빛이 또렷해졌다.“내가 빠졌기 때문에 그쪽이 이렇게 정리하는 게 보여.”그녀는 테이블 위에 자료를 펼쳤다.“특별팀이 손댄 구간만 보면, 상층 연결 고리는 다 비켜가.”건우는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느꼈다.이건 단순 수사가 아니라, 방향 설정이었다.“다시 해야 할지도 몰라.”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그를 바라봤다.“무슨 뜻이야.”“처음부터.”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결이 달라졌다.“형 사고, 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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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지워진 두 번째 기록

특별팀의 발표는 예상보다 빨랐다.외주 보안 계약자 한 명이 조사를 받았고, 내부 자료 관리 미흡과 개인적 금전 문제로 인해 단독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브리핑 문장은 조심스러웠지만, 결론의 흐름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하나는 그 발표 자료를 읽다가 결국 파일을 덮었다.“이렇게 끝내려는 거네.”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안쪽에는 오래 참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건우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는 노트북 화면을 천천히 넘기고 있었다.“끝내는 게 아니라.”그가 낮게 말했다.“끝난 것처럼 만드는 거지.”하나는 고개를 들었다.“뭐 찾았어?”건우는 잠시 말을 아꼈다가 화면을 돌렸다.“형 사고 당일, 블랙박스 두 개가 있었어.”“두 개?”“차량 블랙박스 말고.”그는 화면을 확대했다.사고 지점 바로 옆에 있던 상가 건물 외벽 카메라였다.“이거.”건우가 손가락으로 시간을 짚었다.“사고 직전 7분.”영상이 끊겨 있었다.하나는 눈을 좁혔다.“삭제됐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문제는.”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삭제된 기록이 형 사고 영상보다 먼저라는 거야.”그 말은 의미가 컸다.누군가 사고가 나기 전부터 주변 기록을 지우고 있었다는 뜻이었다.“준비된 사고.”하나의 입에서 낮게 흘러나왔다.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이미 결론에 가까워져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하나가 천천히 말했다.“이거.”그녀는 화면을 다시 바라봤다.“특별팀에 줄 거야?”건우는 잠깐 웃었다.웃음이라기보다, 숨에 가까운 반응이었다.“주면 사라질 수도 있어.”하나는 고개를 들었다.“그럼.”“증거를 쌓아야 해.”그는 차분하게 말했다.“이건 시작이야.”하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건우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다.끝까지 가는 사람. 문제는 이번에는 그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다.“건우.”그녀가 조용히 불렀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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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비어 있는 시간

사고 직전 7분. 그 시간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CCTV 서버 기록에는 삭제 로그가 남아 있었지만, 실제 영상 파일은 복구되지 않았다. 관리 프로그램을 여러 번 돌려도 같은 결과였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있었다.건우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커서를 몇 번 움직이다가 결국 마우스를 내려놓았다.“이렇게 지운 거면.”그가 낮게 말했다.“현장 서버만 건드린 게 아니야.”하나는 그의 옆에 서 있었다.“백업?”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면 원본도 같이 정리했을 가능성이 커.”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의자를 끌어 앉았다.“보통 CCTV 백업은 두 군데야.”그녀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건물 서버랑 외부 관리 서버.”건우가 고개를 들었다.“외부?”“보안 관리 업체.”그녀는 키보드를 천천히 두드리며 말했다.“건물에서 직접 관리 안 하는 경우가 많아.”잠시 후, 업체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건우의 시선이 멈췄다.그 회사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형의 회사와 같은 계열 자회사였다.“우연인가...”건우가 말했다.그 말은 사실상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었다.하나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이거.”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사건 범위가 커진다.”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알고 있었다.형의 사고는 단순히 한 사람을 제거하는 사건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밤이 늦어질수록 공기는 무거워졌다.하나는 커피를 내려 테이블에 올려두었다.“너 잠깐 쉬어.”그녀가 말했다.“두 시간째 같은 화면 보고 있어.”건우는 컵을 들었다.“생각 중이야.”“뭘.”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그리고 결국 말했다.“형.”하나는 고개를 들었다.“형이 죽기 전에.”그가 조용히 이어 말했다.“지분 정리 얘기 했었어.”하나의 눈빛이 달라졌다.“회사.”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형이 말했어.”그의 목소리는 낮았다.“회사 안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고.”잠시 침묵이 흘렀다.하나는 숨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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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마지막 약속

삭제된 영상 파일은 끝내 복구되지 않았다.그러나 건우는 포기하지 않았다.파일이 사라졌다면 그 파일이 이동하거나 접근했던 흔적이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그래서 그는 영상 자체가 아니라 서버 접속 기록을 보기 시작했다.수십 개의 로그가 화면 위에 올라왔다.접속 시간, 접속 IP, 접근 경로.대부분은 자동 백업 기록이었지만, 그 사이에 하나가 눈에 띄었다.사고 당일 밤.영상이 삭제된 바로 직전.외부 접속 기록이 하나 있었다.건우의 손이 멈췄다.“이거.”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봤다.“외부 접속?”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보안 업체 서버에서 직접 들어왔어.”“삭제 요청?”“아니.”건우는 로그를 더 확대했다.“확인 접속이야.”그 말의 의미는 분명했다.누군가 사고 직전에 그 구간 영상을 미리 확인했다는 뜻이었다.하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사고가 나기 전에.”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이미 보고 있었다는 거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잠시 침묵이 흘렀다.그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같은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건우는 로그를 다시 넘겼다.그리고 또 하나의 기록을 발견했다.사고가 나기 약 두 시간 전. 형의 휴대폰 위치 기록이었다.“여기.”건우가 화면을 가리켰다.“이 위치.”하나는 지도 위를 바라봤다.“여기 카페야.”“응.”건우는 말을 이어갔다.“형이 사고 나기 전에 여기 들렀어.”하나는 눈을 좁혔다.“누굴 만나려고?”건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그게 문제야.”그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형 일정에 없는 약속이야.”그 말은 의미가 컸다.형은 누군가를 공식 기록 없이 만나려 했다.밤이 늦어지자 거실의 공기는 더 조용해졌다.하나는 창가에 서 있었다.건우는 노트북을 덮었다.“하나.”그가 불렀다.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왜.”건우는 잠시 말을 찾다가 말했다.“너.”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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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이례적 동선

형이 사고 직전에 들렀던 카페는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회사 근처도 아니었고, 집과도 가까운 위치가 아니었다. 굳이 들르지 않아도 될 동선이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건우는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은 평범했다. 낡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눈에 띄지도 않는 장소였다.“여기 맞아.”하나가 휴대폰 지도를 확인하며 말했다.건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형이 여기 온 이유.”그가 조용히 말했다.“누군가 만나려고 한 거야.”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가능성이 가장 높지.”카페 문을 열자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이라 손님은 거의 없었다.카운터에 서 있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두 분이세요?”하나는 잠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요.”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형의 사진이었다.“이분 혹시 여기 오신 적 있나요?”직원은 잠시 사진을 바라봤다.“잠깐만요.”그는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좁혔다.“어… 이분.”직원이 말했다.“본 것 같아요.”건우의 시선이 멈췄다.“언제요.”직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며칠 전은 아니고… 꽤 됐는데.”하나는 바로 물었다.“사고 나기 전날?”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그날이었을 거예요.”잠시 후, 직원이 덧붙였다.“근데 혼자는 아니었어요.”공기가 조용히 굳었다.건우가 천천히 물었다.“누구랑.”직원은 머리를 긁적였다.“여자였어요.”그 말이 떨어지자 하나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여자요?”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두 분이 창가 자리 앉아서 얘기했어요.”건우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얼굴 기억나요.”직원은 고개를 저었다.“멀리 앉아서 잘 안 보였어요.”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근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어요.”“어떻게요.”직원은 말을 고르며 말했다.“싸우는 건 아닌데.”그는 잠시 멈췄다.“뭔가… 심각한 얘기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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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남겨진 봉투

카페 직원의 기억은 생각보다 더 오래 남아 있었다.하나는 다음 날 다시 그곳을 찾았다.이번에는 손님이 거의 없는 이른 시간이었다. 카운터 뒤에 서 있던 직원은 전날보다 조금 여유가 있어 보였다.“어제 말씀드렸던 분 기억나세요.”하나는 다시 형의 사진을 보여주었다.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창가 자리 앉았던 분.”하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혹시 그날… 뭔가 남긴 건 없었나요.”직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아.”그는 기억이 떠오른 듯 손가락을 튕겼다.“봉투.”건우의 시선이 멈췄다.“봉투요?”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 여자분이 먼저 일어나서 나갔는데… 그분이 계산하면서 봉투 하나 맡기고 갔어요.”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누구에게요.”건우가 물었다.“저요.”직원은 어깨를 으쓱했다.“근데 그 남자분이 바로 따라 나가서 못 드렸어요.”하나는 숨을 아주 천천히 들이마셨다.“지금도 있나요.”직원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날 밤에 어떤 남자가 와서 찾아갔어요.”건우의 눈이 좁아졌다.“어떤 남자요.”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얼굴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정장 입고 있었어요.”잠시 후 덧붙였다.“되게 급해 보였어요.”하나는 더 묻지 않았다.이미 충분했다.형이 사고 직전에 만난 여자는 무언가를 남기고 갔고, 그 봉투는 그날 밤 다른 누군가가 찾아갔다.그 시간은 형이 사고를 당한 직후였다.카페를 나와 차에 올라탄 뒤에도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건우는 운전석에 앉은 채 핸들을 잡고 있었다.“봉투.”그가 낮게 말했다.“형한테 전달하려던 거겠지.”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잠시 침묵이 흘렀다.건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근데 형이 못 받았어.”그 말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질문이었다.“그럼.”하나가 말했다.“누가 가져간 거지.”건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사고 난 걸 알고 움직인 사람.”그 말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가능성을 가리켰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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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감정의 분열

카페 직원의 기억은 생각보다 더 구체적이었다.하나는 그날 다시 카페를 찾았고, 직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그 여자분… 결제는 안 했어요.”건우가 눈을 들었다.“카드 안 썼어요?”직원은 고개를 저었다.“남자분이 계산했어요.”그 말은 이상하지 않았다.그러나 직원이 이어서 한 말이 문제였다.“근데요.”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명함 같은 거 봤던 것 같아요.”하나의 시선이 멈췄다.“명함?”“네. 테이블 위에 잠깐 올려놨었어요.”건우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어떤 거였어요?”직원은 머리를 긁적였다.“회사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말했다.“로펌이었어요.”공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하나는 직원의 말을 천천히 반복했다.“변호사.”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런 느낌이었어요.”카페를 나와 차에 올라탄 뒤에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건우는 핸들을 잡고 있었지만 시동을 걸지 않았다.“형.”그가 낮게 말했다.“왜 변호사를 만났지.”하나는 잠시 생각했다.“회사 문제인가.”그녀가 말했다.“아니면 개인 문제.”건우는 고개를 저었다.“형 성격 알잖아.”그는 창밖을 바라봤다.“공식으로 처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하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그럼.”그녀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누군가 몰래 만나야 할 상황이었겠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잠시 침묵이 흘렀다.차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하나는 결국 물었다.“건우.”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혹시.”잠시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형이… 누굴 고발하려 했던 건 아닐까.”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충분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거실에 들어와도 분위기는 비슷했다.하나는 테이블 위 서류를 정리했고, 건우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그러다 하나가 말했다.“건우.”그는 고개를 들었다.“왜.”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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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밀폐된 조각

카페에서 돌아온 뒤, 하나는 곧바로 노트북을 켰다.변호사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작점은 필요했다.“변호사라면.”그녀가 조용히 말했다.“형이 만난 사람.”건우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었다.“로펌 소속일 수도 있고.”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니면 개인 변호사.”그녀는 형의 회사와 관련된 법률 자문 기록을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다.회사 계약 로펌 목록.외부 법률 자문 계약.최근 2년 동안 새로 연결된 법률사무소.화면 위에 이름들이 하나씩 올라왔다.그러나 이상하게도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건우.”하나가 말했다.“이거 봐.”건우가 고개를 들었다.“형.”그녀는 화면을 돌렸다.“최근에 개인 법률 상담 기록이 있어.”건우의 눈이 멈췄다.“개인?”“응.”하나는 키보드를 조금 더 두드렸다.“회사 기록 말고.”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개인 계좌로 결제된 상담.”건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형이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찾았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언제.”그가 물었다.하나는 화면을 가리켰다.“사고 나기 일주일 전.”공기가 아주 미묘하게 가라앉았다.잠시 후.하나는 화면을 더 확대했다.“이름은 가려져 있어.”그녀가 말했다.“근데.”잠시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로펌 아니야.”건우는 고개를 들었다.“그럼.”하나는 화면 아래쪽을 가리켰다.“개인 사무소.”그리고 그 아래에 남아 있는 단서 하나.이니셜 : J건우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J.”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름일 수도 있고.”“사무소 이름일 수도 있고.”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그 짧은 이니셜 하나가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저녁이 깊어질수록 집 안 공기는 조용해졌다.하나는 부엌에서 컵을 정리하고 있었다.건우는 거실에 서 있었다.“하나.”그가 불렀다.그녀가 돌아봤다.“왜.”건우는 잠시 말을 찾다가 말했다.“오늘.”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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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준비된 증언

이니셜 J.그 한 글자는 생각보다 많은 이름을 만들어냈다.하나는 변호사 협회 등록 명단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변호사 중 J로 시작하는 이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지역이었다. 형이 활동하던 도시와 인근 지역까지 범위를 넓히자 후보는 열 명 가까이로 늘어났다.“이 중에 있어.”하나가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건우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 앉아 있었다.“확률이 높은 사람부터 보면 돼.”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형이 굳이 개인 변호사를 찾았다는 건.”그녀는 말을 이어갔다.“회사 로펌을 피하려 했다는 뜻일 수도 있어.”건우는 그 말에 동의했다.형의 성격을 생각하면, 회사 문제라면 오히려 공식 채널을 썼을 것이다. 굳이 개인 변호사를 찾았다면 그건 회사 안에서 처리할 수 없는 문제였을 가능성이 높았다.“찾았다.”하나가 화면을 멈췄다.건우가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뭐야.”하나는 모니터를 돌렸다.정지윤 변호사개인 법률사무소.주요 분야는 기업 내부 고발과 금융 범죄였다.건우의 눈이 미묘하게 좁아졌다.“내부 고발.”그가 낮게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형이 왜 이 사람을 찾았는지.”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이제 조금 보이네.”잠시 후. 건우는 창가로 걸어갔다.형이 사고 직전에 변호사를 만났고, 그 변호사는 내부 고발 사건을 다루는 사람이었다.그 사실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형은 죽기 전에 누군가를 고발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그 봉투.”건우가 말했다.하나는 고개를 들었다.“응.”“자료였겠지.”그의 말은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고발 자료.”잠시 정적이 흘렀다.건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래서.”그가 말했다.“누군가 그걸 가져간 거야.”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형은 그걸 넘기기 전에 죽었고.”그 말은 조용했지만 무거웠다.밤이 깊어질수록 집 안은 조용해졌다.하나는 서류를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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