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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형수의 밤: Chapter 121 - Chapter 130

133 Chapters

121. 드러난 시간의 빈틈

다음 날 오전, 건우의 차는 도심 외곽으로 향하고 있었다.도심을 벗어날수록 건물은 낮아졌고, 도로 옆 풍경도 점점 단순해졌다. 회사 차량을 관리하던 정비소는 본사에서 조금 떨어진 산업단지 쪽에 있었다. 윤시우가 평소 회사 차량을 맡기던 곳이기도 했고, 회사와 오래 거래해 온 곳이라 정비 기록도 비교적 체계적으로 남아 있는 편이었다.건우는 운전대를 잡은 채 말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조수석에 앉은 하나는 휴대폰 화면을 잠시 확인하다가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이라 도로 위 차량도 많지 않았고, 산업단지 쪽은 특히 더 한산해 보였다.잠시 후 하나가 말했다.“어제 통화한 사람.”그녀의 시선은 도로 끝을 향하고 있었다.“정비팀장이었지.”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형이 오래 같이 일했던 사람이야.”잠시 후 그는 말을 덧붙였다.“차량 관리 거의 다 맡고 있었지.”하나는 잠시 생각했다.“그 사람이면 기록은 정확히 알고 있겠네.”건우는 짧게 대답했다.“그래서 연락한 거야.”차는 곧 산업단지 안쪽 도로로 들어섰다.양쪽에는 작은 공장 건물들이 이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정비소 간판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몇 분 뒤 건우는 회색 철문이 있는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정비소 간판에는 회사 이름이 작게 적혀 있었다.세한 모터스건우는 잠시 간판을 바라보다가 차에서 내렸다.하나는 뒤따라 내렸다.철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기름 냄새와 금속 냄새가 섞인 공기가 느껴졌다. 안쪽에서는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리프트 위에 올라간 차량 밑에서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공구를 움직이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압축 공기가 짧게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건우가 안쪽으로 몇 걸음 들어가자 누군가가 고개를 들었다.“건우야?”중년의 남자였다.정비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선배님.”남자는 장갑을 벗으며 다가왔다.“오랜만이다.”그의 시선이 하나에게 향했다.“같이 온 분은?”건우가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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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십 분의 시간

정비소 사무실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기록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기록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14:32차량 인수 시간.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정비팀장의 기억.차 키를 받은 뒤 바로 출차하지 않고, 혼자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던 김도현.그리고. 십 분.건우는 모니터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그때.”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주차장 쪽 CCTV 있습니까.”정비팀장은 고개를 저었다.“여긴 그런 거 없다.”그는 짧게 웃었다.“호텔이랑 다르게 여긴 동네 정비소야.”잠시 후 덧붙였다.“주차장도 그냥 뒤쪽 공터다.”하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정비소 구조를 생각하면 이해되는 이야기였다. 대형 서비스 센터라면 모를까, 이런 개인 정비소에 차량 하부까지 촬영되는 CCTV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건우는 다시 물었다.“그때.”잠시 후 말을 이었다.“누가 같이 있었습니까.”정비팀장은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좁혔다.“그 시간대면.”그는 기억을 더듬듯 말했다.“다들 안에서 작업하고 있었을 거다.”잠시 후 덧붙였다.“밖에 나간 사람은 없었던 것 같고.”그 말은 하나의 가능성을 더 분명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정비소 뒤쪽 공터.사람 없는 시간.차 키를 받은 뒤 혼자 걸어간 김도현.그리고. 십 분.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 장면이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었다.차량을 찾으러 왔다.차 키를 받았다.그리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차를 바로 몰고 나가지 않았다.십 분 동안.그 차와 단둘이 있었다.건우는 천천히 말했다.“그 사람.”잠시 후 이어 말했다.“그때 차를 건드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정비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이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그는 잠시 건우를 바라보다가 말했다.“사고 얘기.”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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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십 분의 공백을 채우는 것

정비소 사무실을 나서자 바깥 공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햇빛은 여전히 밝았지만, 건우의 시야에는 방금 들은 이야기만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브레이크는 정상이었다.차를 가져간 사람은 김도현이었다.그리고 그 뒤.십 분.건우는 정비소 뒤쪽 공터를 잠시 바라봤다.지금은 몇 대의 차량이 세워져 있었고, 한쪽에서는 정비가 끝난 차가 천천히 출차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범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어제까지는 단순한 정비소였던 이 장소가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보이고 있었다.형의 차가 마지막으로 멈췄던 곳.그리고,누군가가 그 차에 손을 댔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하나는 건우 옆에 서 있었다.“건우.”그녀가 낮게 불렀다.건우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응.”하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지금 상황.”그녀의 말은 차분했다.“거의 맞춰졌어.”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지금까지 확인된 흐름은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윤시우는 회사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그 끝에서 김도현의 이름을 발견했다.사고 전날.윤시우의 차량은 정비소에 들어갔다.그리고 그 차를 찾아간 사람은 김도현이었다.차는 정상이었다.하지만, 그 뒤 십 분 동안. 그 차는 김도현과 단둘이 있었다.하나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문제는.”그녀의 시선이 공터 바닥을 향했다.“증거야.”건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는 낮게 말했다.“지금까지는 다.”잠시 후 이어 말했다.“정황이다.”정황은 충분했다.하지만 법적으로 누군가를 몰아세우기에는 부족했다.김도현이 차를 가져갔다.차를 혼자 가지고 있었다.브레이크가 사고 직전에 망가졌다.이 모든 흐름은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었다.그때 서하가 천천히 말했다.“그래도.”그녀는 공터를 바라보며 덧붙였다.“거의 확실하잖아.”건우는 잠시 웃었다.하지만 그 웃음에는 기쁨이 없었다.“확실한 거랑.”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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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남겨진 서명

정비소 사무실 안 공기가 다시 가라앉았다.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이야기의 흐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한 걸음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정비팀장이 말한 ‘서명’.그 한 단어가 공간의 무게를 바꾸고 있었다.건우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정비팀장을 향해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음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다.차량 인수 기록.그리고 그 위에 남아 있을 이름.하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그 기록.”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분명했다.“지금 확인할 수 있습니까.”정비팀장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있다.”그는 사무실 한쪽 선반을 가리켰다.“서류로도 남아 있고, 시스템에도 저장돼 있다.”잠시 후 덧붙였다.“근데.”그의 시선이 건우에게 향했다.“그거 확인한다고 해서.”그는 말을 천천히 이어갔다.“바로 끝나는 건 아닐 거다.”건우는 짧게 대답했다.“알고 있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서명 하나로 모든 게 끝나지는 않는다.하지만. 그 서명은 분명히.지금까지 이어져 온 흐름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일 수 있는 조각이었다.정비팀장은 파일 캐비닛을 열었다.철제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서류 묶음이 드러났다. 그는 몇 장의 파일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날짜가 사고 전날이니까.”그는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이쪽이다.”종이 넘기는 소리가 조용히 이어졌다.그리고 그의 손이 멈췄다.“여기.”그가 한 장의 서류를 건우 쪽으로 밀었다.건우와 하나의 시선이 동시에 그 종이 위로 떨어졌다.차량 번호.정비 내역.인수 시간.그리고. 서명란.그 칸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김도현. 건우의 눈이 잠시 멈췄다.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차를 가져간 사람이 김도현이라는 것.하지만, 이건 다르게 느껴졌다.기억이 아니라. 기록.추측이 아니라. 문서.건우는 천천히 종이를 손에 들었다.종이의 질감이 손끝에 분명하게 느껴졌다.그 아래.서명. 김도현의 이름이 직접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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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하나로 이어진 선 끝에서

정비소 사무실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방금 전까지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면서 공간의 공기까지 달라진 듯 느껴졌다.공구 가방. 그 단어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차량을 건드릴 수 있는 도구를 직접 들고 왔다는 의미였고, 우연이 아니라 준비된 행동이라는 뜻이었다.건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다시 한 번 내려다봤다.차량 인수 기록.김도현의 서명.그리고, 정비팀장의 기억.차를 바로 가져가지 않고 혼자 주차장으로 이동했던 시간.십 분. 그는 조용히 말했다.“준비하고 온 거네요.”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정비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역시 같은 생각에 도달해 있었다.우연히 공구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처음부터 차량을 건드릴 생각으로 준비해 온 사람의 행동.하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지금까지 나온 걸 정리해 보면.”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사고 전날.”잠시 후 이어 말했다.“김도현이 정비소에 와서 차를 가져간다.”건우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하나는 말을 이어갔다.“브레이크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정상이라는 걸 듣는다.”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리고.”그녀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공구 가방을 들고 혼자 나간다.”사무실 안이 조용해졌다.하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십 분.”그 단어가 떨어지자 공간이 더 무거워졌다.건우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지금까지의 흐름은 충분히 명확했다.김도현은 브레이크가 정상이라는 걸 확인했다.그리고 그 상태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직접 차를 건드릴 시간을 확보했다.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의도였다.건우는 천천히 말했다.“그 사람.”잠시 후 이어 말했다.“처음부터 알고 있었네요.”하나는 고개를 들었다.“뭘.”건우의 시선이 서류 위에 머물렀다.“형이.”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여기까지 올 거라는 거.”그 말은 사건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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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선을 넘는 방법

정비소를 나서자 낮의 빛이 조금 기울어 있었다.산업단지 위로 내려앉은 햇빛은 여전히 밝았지만, 공기는 아침보다 한층 무거워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가 얇게 일었다가 가라앉았고, 건물 사이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도로를 덮고 있었다.건우는 차 문을 열지 않고 잠시 서 있었다.정비소 안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서명.공구 가방.십 분.그 조각들은 이제 서로를 설명하고 있었다.우연으로 흩어져 있던 시간들이 하나의 의도로 연결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하나는 차 옆에 기대 선 채 건우를 바라봤다.“건우.”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건우는 고개를 들었다.“응.”하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말했다.“이제 거의 확정이지.”그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건우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그래.”그의 대답은 짧았지만 단단했다.김도현이 차를 가져갔다.브레이크 상태를 확인했다.공구를 들고 있었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이 모든 흐름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의도.그것이 이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건우는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하나도 조수석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 바깥 소음이 다시 한 번 멀어졌다.시동을 걸기 전, 건우는 잠시 핸들을 잡은 채 그대로 있었다.그는 낮게 말했다.“형이.”잠시 후 말을 이었다.“그날 왜 만났는지 이제 알 것 같다.”하나는 고개를 돌렸다.건우의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었다.“확인하려고 한 게 아니야.”그의 목소리는 조용했다.“끝내려고 한 거다.”차 안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하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윤시우라는 사람을 떠올리면 그 말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았고, 확신이 생긴 뒤에는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건우는 말을 이어갔다.“형이 그날.”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김도현을 만난 이유는.”그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좁아졌다.“경고가 아니라.”잠시 후.“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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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같은 곳을 향해 흐르는 침묵

도심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의 공기는 더 이상 단순한 정적이 아니었다.말이 없어도 방향이 공유된 상태에서의 침묵은 오히려 다음 움직임을 준비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지만, 건우의 시선은 줄곧 도로 위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정비소에서 확인한 내용은 충분히 무거웠다.이제 사건은 ‘가능성’의 단계에서 벗어나, ‘의도’의 단계로 들어와 있었다. 그 차이를 건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의도가 확인되는 순간부터 사건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갖는다.하나는 조수석에서 조용히 물었다.“건우.”그는 짧게 반응했다.“응.”“김도현.”그녀의 말은 단순했다.“지금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을까.”건우는 잠시 생각했다.“모르는 척은 하고 있겠지.”그의 말은 느리게 이어졌다.“근데.”잠시 후 덧붙였다.“완전히 모르는 건 아닐 거다.”하나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건우는 말을 이어갔다.“형이 죽은 뒤로도.”그의 시선이 앞을 향한 채였다.“회사 안에서 이상한 흐름이 있었을 거야.”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그리고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눈치챘을 가능성 높다.”차 안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하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그럼 지금은.”그녀의 시선이 건우에게 향했다.“서로 알고 있는 상태네.”건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겉으로는 모르는 척.”잠시 후 덧붙였다.“속으로는 다 알고 있는 상태.”그 말은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었다.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있고,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상태.균형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지만, 그 균형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서하가 뒷좌석에서 말했다.“그럼.”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선명했다.“먼저 흔들면 되겠네.”건우의 시선이 백미러를 통해 그녀에게 향했다.“어떻게.”서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정보.”그녀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그 사람이 제일 신경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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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화면 너머로 흘려보낸 균열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낮 동안 분주하게 움직이던 직원들의 발걸음과 대화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지만, 건우에게는 그 모든 것이 얇은 막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 숨어 있는 균열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층수가 올라갈수록 숫자가 하나씩 바뀌었고, 그 단순한 변화가 오히려 긴장감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문이 열리자 복도가 나타났다.형이 매일 걸어 다니던 길이었다.건우는 잠시 그 복도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하나는 그의 옆을 따라 걸었고, 서하는 조금 뒤에서 느리게 발걸음을 맞췄다.사무실 문을 열자 직원 몇 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오셨습니까.”짧은 인사가 오갔다.건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향했다.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출근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완전히 달랐다.자리에 앉은 건우는 노트북을 켰다.화면이 켜지는 동안, 그는 잠시 사무실 안을 훑어봤다.이곳 어딘가에서. 김도현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아무 일도 없는 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하나는 건우 옆에 서서 낮게 말했다.“어디서부터 시작할 거야.”건우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작게.”그의 목소리는 조용했다.“확실하게.”하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모든 정보를 한 번에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상대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단서만 흘린다.그 정도면 충분했다.건우는 메일 프로그램을 열었다.수신자 목록을 잠시 훑다가 몇 명을 선택했다.재무팀, 감사팀, 그리고 몇몇 임원들.김도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었다.하나는 그 화면을 보며 물었다.“내용은.”건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문장은 길지 않았다.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최근 일부 계좌에서 반복적인 자금 이동 패턴이 확인되었습니다.특정 개인 계좌와 연결된 흐름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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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먼저 움직이는 사람

메일이 발송된 뒤, 사무실의 시간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흘러갔다.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낮은 대화가 이어졌고, 복도를 오가는 발걸음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평온함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균열이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건우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노트북 화면을 켜 둔 채, 아무 작업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선은 사무실 안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다.조금 전. 김도현이 사무실을 나왔다.그리고 그 순간. 공기의 결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하나는 건우 옆에 서 있었다.“봤지.”그녀가 낮게 말했다.건우는 짧게 대답했다.“응.”그의 시선은 복도 끝을 향하고 있었다.“평소보다 빠르다.”그 말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었다.김도현은 원래 움직임이 느린 사람이었다. 서두르지 않았고, 항상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방금은 달랐다. 걸음이 짧았고, 시선이 흔들리고 있었다.하나는 조용히 말했다.“메일 봤네.”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하다.”잠시 후 덧붙였다.“내용도 이해했고.”그 말이 떨어지자,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이제 상황은 분명해졌다.정보는 전달됐다.그리고, 상대는 반응했다.서하는 창가에 기대 선 채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생각보다 빠르네.”그녀가 말했다.건우의 시선이 백미러 대신 창가 쪽으로 향했다.서하는 가볍게 웃었다.“급한 사람일수록.”잠시 후 덧붙였다.“첫 반응이 티 나거든.”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말은 사실이었다.완전히 준비된 사람은 움직임을 숨긴다.하지만, 갑작스럽게 흔들린 사람은 움직임이 먼저 나온다.건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하나는 그를 바라봤다.“어디 가.”건우는 짧게 말했다.“확인.”그는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하나도 뒤따라 움직였다.복도를 따라 걷는 동안, 건우의 시선은 주변을 훑고 있었다. 직원 몇 명이 서류를 들고 지나갔고, 멀리서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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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흔들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남는다

복도를 빠져나오자, 아까와 같은 사무실인데도 온도가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누군가는 여전히 보고서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전화를 받으며 웃고 있었지만, 건우의 감각은 그 평온함의 표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방금 마주한 짧은 대화가, 이제부터 이어질 시간의 방향을 분명하게 틀어 놓았기 때문이다.건우는 곧장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복도를 끝까지 걸어가 비상계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공간으로 들어서자, 발걸음 소리가 더 또렷하게 울렸다.문을 밀고 들어간 계단실은 조용했다.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소리와, 위층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문 여닫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하나는 뒤에서 문을 닫으며 물었다.“왜 여기로 왔어.”건우는 난간에 손을 얹은 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시간 벌려고.”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안정되어 있었다.하나는 한 발짝 다가섰다.“뭘.”건우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지금쯤.”잠시 후 덧붙였다.“움직이고 있을 거다.”그 말은 추측이 아니라, 이미 계산된 흐름에 가까웠다.김도현은 방금 건우를 만났다.메일의 내용도 확인했고, 건우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도 대략 짐작했을 것이다.그 상태에서 가만히 있을 가능성은 낮았다.하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증거.”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지우거나.”그의 말이 이어졌다.“옮기거나.”서하는 계단 중간에 앉아 있었다.그녀는 무릎 위에 턱을 괴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사람은.”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숨길 게 생기면 손이 먼저 움직여.”건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중요한 건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건우는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짧게 번호 하나를 눌렀다.전화는 한 번에 연결됐다.“네, 검사님.”낯익은 목소리였다.건우는 낮게 말했다.“지금 회사 내부.”잠시 후 덧붙였다.“서버 로그 확인 가능합니까.”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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