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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로맨스를 새로고침.: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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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캠핑_ 씨발, 맞네

맞은편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준호의 머릿속에 원치 않는 생각이 스쳤다. 친구 사이라 하기엔 가까워도 너무 가까워 보였다. 어쩌면 두 사람의 사이가 이미 깊어진 관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술의 도움이 필요했던 준호는 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알코올이 식도를 무자비하게 쓸고 갔다. 좁은 길을 남김없이 태우고 위벽까지 녹이는 것 같았다. 역류성 식도염이 다시 도진 것처럼 지독하게 쓰렸다.그때, 소라가 의논할 것이 있다며 현준을 불렀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소라 옆에 있던 지은이 현준에게 자리를 내어줬다. 자리를 바꿔 앉은 지은이 술자리의 분위기를 돋웠다. 정현과 합을 맞추며 술 게임을 시작했다. 이미 취기가 오른 이수는 게임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벌칙주를 거절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건만 이수는 주는 술을 홀짝홀짝 다 받아 마셨다. 이수가 연달아 잔을 비우게 되자 준호가 그녀의 손에 들린 잔을 빼앗아 단숨에 들이켰다."와, 뭐야! 흑기사임?? 좀 멋졌다!"지은이 의자 팔걸이를 연신 두드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소리에 힐끔 상황을 살핀 현준은 뭉근하게 화가 치솟았다. 현준이 어금니를 꽉 깨물자 잘빠진 턱 선에 근육이 불끈 튀어나왔다.멀리서 봐도 이수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걱정이 된 현준은 휴대폰을 들어 조용히 메시지를 보냈다. 테이블 위에 무방비하게 놓여 있던 이수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어스름한 저녁 하늘 아래 이수의 휴대폰 화면이 번쩍였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준호의 시선이 자연스레 액정 위에 머물렀다.[ 나의 현준❤️ / 이수야 너무 무리하지 마. ]씨발, 맞네.두 사람의 사이를 확실히 알게 된 준호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린 세월이 자그마치 반 년이었다. 그 사이에 남자친구가 생겼을 줄이야. 미간을 있는 대로 구기며 현준을 쏘아봤다. 번쩍이는 불빛을 확인한 현준 역시 자신을 향한 독기 어린 준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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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캠핑_ 진실 게임

"어르신들도 없는데 진실 게임이나 할까?""오! 재밌겠다! 하자!"동영상 시청에 지루해하던 정현이 제안을 하자, 지은이 박수로 맞장구쳤다. 모두 함께 일하는 팀인 만큼 수위가 높거나 너무 짓궂은 질문은 삼가기로 했다. 또한 한 사람에게는 두 명만 질문할 수 있게 하고, 한 사람이 연달아 벌칙자가 되면 병을 다시 돌리기로 했다.신이 난 정현이 자처해서 호스트를 담당했다. 그는 바닥에 있던 빈 소주 병을 집어 테이블 중앙에서 힘껏 돌렸다.묵직한 유리 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고는 한 곳을 향해 서서히 멈췄다. 현준이었다. 기다렸던 지은이 손을 번쩍 들며 질문을 던졌다."마지막으로 한 키스는?""점마는 여자 만나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질문 하나 버렸다."정현은 눈을 찡그리며 옆에 있던 지은을 팔꿈치로 툭 쳤다."그러니까. 이상하잖아. 뒤에서 몰래 만나는 걸지도 모르지."지은의 상체가 무릎보다 앞서 나갔다. 현준을 직시하며 실실 웃었다. 한창 성욕이 폭발할 20살에 저 얼굴을 하고 아무도 안 만나는 게 말이 안 됐다. 지은의 상식으로 이미 여러 명 거쳤어야 했다.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고 모든 비밀을 캐낼 기세로 몰아붙였다.이수와 눅진한 숨을 뒤섞은 건 바로 어제였지만, 비밀이었다. 현준은 입가를 늘리며 잔에 담긴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뭐야, 뭐야! 딱 걸렸어!"흥분한 지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쭉 뻗은 손가락으로 현준을 가리키며 정현의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쳤다."아, 씨! 난 왜 때리는데!""야, 빨리 누가 이어서 캐 봐!"그때,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던 준호가 매서운 눈빛으로 현준을 쏘아보며 말했다."여자친구 있지?""그래, 그렇지!! 준호, 잘했어! 잠깐, '있어'도 아니고 '있지'는 뭐야? 준호, 너 뭐 알고 있구나!"지은이 준호를 짧게 일별하고는 현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누나. 곤란한 질문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에요?""뭐야, 곤란할 게 뭐 있지? 없으면 없다, 하면 되는데. 뭐 구린 게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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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캠핑_ 밤산책

진실 게임에서 오갔던 내용이 현준의 속을 뒤집어 놨다. 준호의 도발적이었던 눈빛이 신경을 제대로 긁었다. 불쾌했던 감정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속이 콱 막힌 것이 분명한 처방이 필요해 보였다. 현준은 데크 의자에 앉아 턱을 괸 채, 다리를 꼬고 발을 천천히 까딱이며 이수를 기다렸다. 샤워를 마친 이수는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털어내며 자갈밭을 지나 텐트 쪽으로 걸어갔다. 사그락 사그락- 뒤에서 이수의 느린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자갈을 조심스럽게 짓이기는 소리가 현준의 속을 달래줬다. 현준이 고개를 뒤로 젖혀 이수에게 손을 뻗었다. 가지런한 치열이 그의 휘어진 입매를 돋보이게 했다. 어쩔 수 없나 보다. 현준은 이수의 얼굴만 보면 자동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장의 시름을 잊게 하는 이수는 과연 그에게 확실한 처방이었다. 이수는 씨익 웃으며 현준의 손을 잡고 그 옆에 앉았다. 현준의 고개는 이수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긴 다리를 느긋하고 꼰 현준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스듬히 받치고 이수를 천천히 훑었다. 손으로 이수의 손을 부드럽고 쓸고 끝을 지그시 눌러 만지작거렸다. 현준의 단 한 번의 손길에도 반응하는 이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쑥스러워하는 이수였지만 현준은 끈적한 시선을 거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수줍게 발그레해진 그녀의 얼굴을 더욱 노골적으로 응시하고 있었다."그, 그만 봐.""안경 썼네. 귀엽다." 아… 안경… 고요한 밤에 피는 꽃처럼 수려한 그의 모습에 홀렸나 보다. 정작 자신은 안경 낀 바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안경을 쓰면 평소보다 눈이 작아 보였다. 안 그래도 미모 차이가 나는데 못생겨 보이는 이 모습을 그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낭패였지만, 이왕 보인 거 어쩔 수 없었다. "학교에서 우리 우연히 만났을 때 기억나? 네가 안경 떨어뜨리고 갔잖아." "응, 그랬지."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글쎄." 이수가 현준을 비스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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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캠핑_ 낙장 불입

준호는 정말 현준이 올 때까지 같이 있어줄 태세였다. 준호가 돌아가지 않자 이수는 주변에 맴도는 어색한 공기에 숨이 막혔다. 입안의 물이 바짝 말라 마른 입술만 짓이겼다."아까…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아… 응." 그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진 것 같은 건 착각인가 싶었다. 이수는 바다를 바라보는 척 준호의 표정을 살폈다. 아 차, 처음부터 집요했던 그의 시선을 잠시 잊었다. 허공에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고 이수는 당황했다. 역시… 빨리 보내는 것이 좋겠어. "이만 들어가 봐." "갈 거야. 남현준 오면. 이 시간에 너 혼자 있는 건 위험해. 보시다시피 사람들이 빠지고 있으니까." 그의 말에 이수가 둘러보니 그 몇 분 사이에 바닷가를 배회하던 사람들이 줄었다. 그래도 캠핑장과 가까이에 붙어 있고 다 큰 성인인데 현준을 기다리는 새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까. 하지만 어린 여동생을 둔 준호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지며 혼잣말을 곱씹었다. "벌써 5분이나 지났는데 뭐 하느라 늦는 거야? 5분이면 무슨 일이 충분히 생기고도 남을 시간인데…" 준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치솟는 짜증을 억눌렀다. "난 괜찮아. 현준이 금방 올 거야." 준호는 대꾸도 않고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이수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떠올랐다. "저… 아까 진실 게임에서 관심 있다고 한 사람 말야." 이수의 질문이 자신을 향하자 그제야 준호는 고개를 돌려 눈을 맞췄다. 뜸 들이는 이수를 기다리다 못한 준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이내 날카로운 눈매로 이수를 내려봤다. "왜, 널까봐?" 자신을 보며 조소를 터트리듯 피식 웃는 준호를 보니, 이수는 묘한 불쾌감이 올라왔다. 생김새 그대로 행동하는 준호가 오히려 납득이 되었다. 오래 붙들어 온 제 소신, 인상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것을 다시 움켜쥐었다."그게 너라면? 너는 어떤데?" "아니… 아니었음 좋겠어." 잠시의 고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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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탐스러운 과일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은 깊은 밤으로 향해 갔다. 모래사장 끝에 즐비한 식당들도 하나둘 불이 꺼졌다. 좁은 2차선 도로엔 이따금 오가는 차 몇 대만 있을 뿐, 해변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난 이곳은 두근거리는 고요함만 짙게 깔렸다. 달빛이 잔잔한 파도 위에서 은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일렁이는 윤슬은 보석보다 깊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바다 내음을 품은 밤공기는 이상하게 달았고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는 서정적인 멜로디 같았다. 모든 것이 낭만 그 자체였다. 현준은 이수의 손에 들린 신발을 뺏어 자신의 것과 함께 한 손에 쥐었다. 현준은 이수의 어깨를 이수는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걸었다. 사락사락- 발바닥에 닿은 모래의 감촉이 밀가루 밟듯 부드러웠다. 현준이 이수를 끌고는 모래사장 안쪽에 앉혔다. 이수가 바다를 향해 앉자, 현준은 이수을 마주 보며 그 앞에 털썩 앉았다. 이수가 세운 무릎 아래로 팔을 넣어 다리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무릎 위에 턱을 괴었다. 한참을 말없이 이수를 바라보다 고개를 뉘고 눈을 감았다. 드디어 갖게 되는 둘만의 오롯한 시간이었다. 비록 이수를 만나기 직전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거북했었다. 하지만 이수와의 시간이 더 달게 느껴지려고 그랬나 보다. 억눌렀던 분노는 간데없이 사라졌다.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기댄 현준을 잠시 바라봤다. 이렇게나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 남자친구라는 사실에 가슴이 한 곳이 시큰거렸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수는 현준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어린 이수가 졸릴 때면 재희는 늘 머리를 쓸어줬었다. 이수는 애정이 담긴 그 온기가 좋았다. 현준에게도 제 손길이 그렇게 닿기를 바라며 쓸었다. ”너무 좋다… 더해줘.“ 눈을 감은 채 현준이 속삭였다. 이수는 피식 웃으며 처음보다 조금 더 길어진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파도가 다가왔다 멀어지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이수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감상했다. 마치 그려놓은 듯한 헤어라인과 가지런한 눈썹, 오뚝한 콧날과 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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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본능이

숨을 길게 한 내쉰 현준이 이수의 입술을 가볍게 맞췄다. "가자, 이수야." 현준은 이수의 손을 잡아 올렸다. 그 순간, 이수가 균형을 잃고 현준의 품에 와락 안겼다. "하하하, 미안. 고의가 아니었어." 현준은 멋쩍은 웃음을 터트렸다. 사과를 하며 이수의 얼굴을 단장해 줬다. 자신의 타액으로 번진 이수의 입술을 엄지로 부드럽게 닦아내고, 흐트러진 잔머리를 쓸어 귀 뒤로 넘겨줬다. 그대로 돌아가기가 못내 아쉬웠다. 이대로 단둘이 밤을 불태울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냥 정말 떠날까? 마음의 절반은 이미 어디론가 떠나버렸지만 생각을 다잡고 이수를 꽉 끌어안았다. 빈틈 없이 서로의 가슴이 맞닿았다. 묵직하게 울리는 심장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체온이 내려갈 새도 없이 열기가 잔잔하게 올랐다. 그런데 그를 안는 순간 이수의 아랫배 쪽에 단단한 양감이 느껴졌다. 정말 이쪽으론 하얀 백지와 같은 이수였다. 이게 대체 뭘까, 쿡 찌르는 목석같은 거. "잠깐만, 뭐가 느껴지는 데.""응? 뭐?"이수가 손을 넣었다. "배 쪽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이수가 현준의 몸을 더듬거렸다. 현준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너만 괜찮다면 만져도 좋아." 여깄다...! 콱 움켜쥔 목석은 단단하지만 생각보다 딱딱하지 않았고, 어물어물 만져보니 막, 원형 기둥에… 뭔가 남의… 신체 일...부 같은… "끼아악-!!" 이수는 현준을 힘을 다해 밀쳐냈다. "뭐야, 그거!""이렇게 만난 게 좀 부끄럽지만, 내 ‘본능이’야. 인사해."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물건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될 줄이야. 현준은 상상해 본 적 없던 상황에 헛웃음만 나왔다. 한 손으로 얼굴 반쪽을 가리고 크큭거렸다. 이수의 얼굴에 열감이 번졌다. 어쩐지 능글맞은 현준이 얄미웠다. 이수는 불끈 움켜쥔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현준은 킥킥대며 팔을 들어 방어하다 이수의 주먹을 잡았다. 솜사탕처럼 달콤해서 사실 계속 맞아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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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한계

아침 식사 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근처 바닷가에서 패들 보딩을 하기로 했다. 서핑 카페로 들어가 대여한 패들 보드를 들고 바다로 향했다."우와~ 이정현! 출세했다! 이런 것도 해보고~!"경상도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후 앞만 보고 달린 세월만 2년 차. 정현은 캠핑도 처음이고 패들 보딩도 처음이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덜렁거리며 걷다 보니, 정현과 함께 보드를 들고 가는 지은의 겨드랑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촐랑거리는 걸음에 보드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지은의 겨드랑이를 자꾸만 쳐댔기 때문이었다."아, 씨!! 이정현! 물에 담가 버린다!! 얌전히 가라!"현준과 이수는 서로를 보며 킥킥댔다. 현준은 먼저 바다에 보드를 띄우고 이수를 기다렸다. 보드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이수가 바다로 걸어오는 모습을 지그시 지켜봤다.어제와 달리 이수는 비키니 톱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타월 재질의 짧은 숏츠와 매치했다. 어깨 스트랩에는 은은한 노란색 프릴이 하늘거렸다. 사랑스러운 이수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이수는 휑한 제 모습이 부끄러웠다. 양손으로 모자챙을 잡고 움츠리고 걸었다. 지은이 이수의 티셔츠를 강제로 벗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던 현준은, 이수의 비키니 차림을 보는 순간 넋이 나갔다. 그녀의 유려한 몸의 곡선이 아름다웠고 동시에 야릇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수가 가까워질수록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손으로 바닷물만 휘적거렸다."위에 티셔츠 안 입었네.""지은 언니가 벗겼어. 역시 좀 그렇지…?""아냐, 예뻐. 오늘도 너무 예뻐."이수가 달아오른 현준을 향해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와, 씨… 개 이뻐…자꾸 시야에 이수의 가슴 골이 들어오자 현준은 차라리 고개를 먼바다로 돌렸다. 이대로 그냥 물속에 몸을 담가야 하나, 한 번 달아오른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반면 패들 보딩이나 여름 액티비티에 전혀 관심이 없던 준호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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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로컬 서점

서점 앞에 도착한 이수는 소리 없는 탄성을 내뱉었다. 한국에 아직도 이렇게 오래된 책방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재개발을 앞둔 건물 1층에 나무 기둥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오래된 나무 미닫이문을 열었다. 부유하는 책 먼지 사이로 햇살이 들이쳤다. 발밑에 있는 계단을 세 개쯤 내려가고 나서야 허리를 펴고 설 수 있었다. 숨을 들이 때마다 책의 오래된 냄새가 이수의 후각을 자극했다. 색이 누렇게 변한 벽걸이용 에어컨을 통해 서점의 세월을 가늠할 수 있었다. 수명이 다 되어가는지 숨을 껄떡대는 요란한 에어컨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세월이 묻어나는 것을 좋아했던 이수에게 오래된 로컬 서점은 설렘 그 자체였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빈티지한 공간 구석구석을 천천히 시야에 담았다.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컸다. 열세 평 남짓 되는 공간, 사면이 책으로 빼곡히 둘러싸여 있었고 심지어 바닥에도 책이 뭉치로 쌓여 있었다. 중앙에는 천장까지 닿는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두세 겹으로 꽂혀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반 층 정도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놓여 있었고 그곳도 책들로 가득했다. 호기심이 잔뜩 서려 있는 어린아이와 같이 책을 훑는 이수의 눈에 천진함이 가득했다. 이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은 감탄을 내뱉었다. 가운데 책장에 꽂혀있던 것들 중 관심이 가는 책을 발견했다. 이수는 손을 뻗어 서가에서 책을 간신히 뽑아 들었다. 그 순간 주변에 우후죽순 꽂혀 있던 책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얼굴이 빨개진 이수는 사장님께 죄송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주저앉아 책을 주웠다. 한 권 한 권 줍다 보니 고맙게도 누군가 다가와 손을 거들어 주었다."아.... 고맙습니다."이수는 책을 줍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이수는 소름이 돋았다. 동그란 눈이 미세하게 커지고 동작을 멈췄다. 준호였다.준호가 말을 걸었지만 무슨 소리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이수는 귀에 이어버드를 끼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할 말을 잃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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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노란 우산과 검정 장갑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이수를 처음 봤던 날은 눈이 내렸다.코끝이 얼얼해질 만큼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던 날이었다. 날이 몹시 추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날카로운 공기가 폐부를 인정사정없이 찔러댔었다.대학 입시를 포기한 준호는 아는 형, 중섭의 권유로 주말마다 현장을 다니며 일을 배우기 시작할 즈음이었다.처음 가보는 동네였다. 2년 전부터 구옥 특유의 분위기가 입소문을 타더니 빈티지한 숍들이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했다.준호가 처음 맡는 현장은 오래된 가정집을 북 카페로 개조하는 인테리어 공사였다. 초반 작업을 위해 찾은 현장은 말이 개조이지 탈바꿈 수준이었다.처음 공정에 필요한 부분이 끝나고 본격 인테리어 공사가 마칠 때까지 한 달이 걸렸다. 조명과 콘센트, 스위치 등 마지막 설치를 위해 다시 현장을 찾은 준호는 그 사이 한 단계 실력이 발전되어 있었다. 스위치나 콘센트 커버 설치쯤은 이제 일도 아니었다. 조명 설치까지 마무리가 되어 갈 때쯤 카페 사장이 점검차 들렸다. 특별한 날에 일을 맡겼던 것이 미안했는지, 커피와 이름난 빵들을 양손 가득 사 와 내밀었다."어우, 너무 미안해요. 나 지금, 이브까지 사람들 불러서 일 시키는 완전 악질인 거지~? 미안해요! 연초에는 오픈하고 싶었는데 늦어지는 바람에…"사장이 현장을 둘러보는 사이 중섭이 준호의 어깨를 툭, 치며 커피를 건넸다. 카페의 고급 스피커에선 사장이 튼 재즈 캐럴이 흘러나왔다."준호야, 커피 한잔해."하얀 종이컵에 담긴 커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어, 눈 오네!"같이 일하는 팀원이 소리치자 모두가 일제히 창밖을 봤다. 준호는 커피를 한 모금 넘기며 창가로 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둑어둑 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천천히 흩날리기 시작한 눈은 갑자기 켜진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다시 커피를 마시며 앞을 본 순간, 하얀 목도리를 한 여학생이 떡볶이 코트를 입고 서 있었다. 멀리서 봐도 앳된 얼굴이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몹시 추운 날임을 증명하듯 여학생의 볼과 코끝이 빨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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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손잡아 줘

집요하게 이수를 쫓는 준호의 시선은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준호는 참담했다. 처음엔 이수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었다. 당연하게 없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을 향하는 시간에 도서관에나 다녀올 법한 차림으로 새벽별 앞에서 마주쳤던 이유로 속단해 버렸다. 치솟는 분노는 현준을 향한 적대감으로 변했다. 매 순간 전쟁을 치르듯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삶이었다. 그런 준호에게 누군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사치였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내다 버린 지 오래였다. 엉망인 가정사와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 형편을 받아 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치부를 드러내며 관계 속에 약자로 있기 싫었다. 비단 이성 관계뿐만 아니라, 준호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바르게 행동했고, 인정받기 위해 늘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그간 해 오던 노력이 무색하게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를 탐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지켜온 신념을 뒤집어버리고 싶을 만큼 이수를 강렬히 원하는 자신의 상태를 준호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원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마저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에 불덩어리가 장기를 다 태우는 것 같았다. 복잡한 자신의 심정을 토해내듯 준호는 바닥을 향해 가늘고 긴 숨을 내뱉었다. 드르륵 오래된 나무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방금까지 환하게 웃던 이수의 얼굴이 자신을 보자 굳어버렸다. 준호는 잇새로 옅은 조소가 터져 나왔다. "저… 모두 OOO식당에 가 있대." "어, 정현이 형한테 연락 받았어." 준호는 고개를 까딱인 뒤, 먼저 한 발을 내디뎠다. 현준만큼 큰 키는 아니었지만 준호의 보폭은 컸다. 이수는 차라리 잘됐다 싶어, 일부러 두세 걸음 뒤처져 걸었다. 그때, 준호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이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빨리 좀 걷지. 나랑 같이 가는 게 그렇게 싫어? 아님 남현준 눈치 보는 건가?""우리가… 같이 걸어갈 만큼의 사이는 아니잖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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