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198. 동문의 칼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4 23:02:41

칼날은 말할 수 있는 사내의 목으로 곧장 들어갔다.

수레에 붙어 있던 호위가 손목을 쳐냈다. 날이 빗나가 쇄골 아래를 깊이 갈랐다.

"악!"

붕대를 감은 사내가 몸을 일으키다 약재 궤짝에 머리를 부딪쳤다. 말린 천궁과 황기가 후두둑 쏟아졌다. 회색 옷의 자는 손목이 꺾인 채로 몸을 비틀어 호위의 턱을 찼다.

철컥.

동문 빗장이 내려왔다. 문 안의 상인들이 한꺼번에 밀리며 비명을 질렀다. 회색 옷은 약재 더미를 걷어차고 사람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살려 줘!"

"길을 비켜라!"

관군이 창을 세웠으나 아이를 업은 여인과 짐꾼들이 엉켜 날을 내밀지 못했다. 회색 옷은 그 틈을 갈라 시장 안쪽으로 달렸다. 벗겨진 신발 한 짝이 문턱 아래 남았다.

수레 위에서는 피가 멎지 않았다.

왕부 의원이 상처를 누르자 사내의 손이 허공을 더듬었다. 옆에 누워 있던 생존자 하나가 그의 손을 잡았다.

의원은 천을 겹쳐 눌렀다가 약가루를 쏟았다. 흰 가루가 피에 닿자 곧 붉게 젖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뛰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61. 부름

    밤이 깊어서야, 위지헌이 그 말을 꺼냈다."혼자."옥대 매듭 위에서 손이 멎어 있었다. 저녁 밥상에서부터, 내내."안 된다.""가야 해요."월령이 말했다."병중의 후궁이 청했는데 안 가면, 제가 후궁을 업신여긴 게 돼요. 가지를 다 친 게 저인데, 나무가 부르는데 안 가면요.""…그 방에서 무슨 일이 나면, 나는 그 문 안에 못 든다.""알아요. 그래서 그 방에 든 사람이, 저여야 해요."위지헌은 오래 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강무진을 불렀다."자녕궁 담 밖에 서라. 담 안에서 소리가 나면—""…어느 정도 소리입니까.""네가 듣고 안 되겠다 싶은 소리."강무진이 그 말을 곱씹는 얼굴로 물러났다.설련이 문가에 서 있었다. 월령이 그 아이를 보았다."…같이 갈래.""못 가요. 저는 그 방에서 나온 사람이라, 그 방이 저를 못 들여요."설련이 낮게 말했다."대신 하나만요. 그 방에서 차를 내면, 잔이 둘일 거예요. 마마님 잔은 늘 손잡이가 오른쪽으로 놓여요. 그 잔은 마셔도 돼요. 왼쪽이면—""왼쪽이면.""…마시지 마세요."*가마에 오르기 전, 방어멈이 월령의 소매를 잡았다."아씨.""어멈.""…봄이 젖 먹일 시각까지는 돌아오세요."그것이 방어멈이 하는 걱정이었다. 월령은 그 손을 한 번 쥐고 놓았다.*자녕궁은 조용했다.궁인들의 발소리가 낮았다. 그 낮은 발소리가 숙비를 대신 말했다. 이 처소의 주인은 아직 병풍 뒤에 있다고.월령은 안쪽 방으로 들었다. 병풍이 있었다. 그리고 병풍 앞에, 찻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잔이 둘이었다."…앉으시게."병풍 너머에서, 목소리가 왔다. 낮고 느렸다.월령이 앉았다. 병풍 너머의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고는, 병풍이 한쪽으로 접혔다.*숙비였다.병자의 얼굴이었다. 야위었고, 입술에 핏기가 없었다. 그런데 눈이 야위지 않았다. 그 눈이 월령을 보았다. 물건을 읽는 눈으로."…비녀가, 어머니 손을 탔군."숙비가 말했다.월령의 손이 소매 안에서 접혔다. 첫마디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60. 가지를 친다

    "…제 곁에요.""네 곁이 제일 춥지 않으냐. 어미 처소보다."경화제가 웃었다. 위지헌은 웃지 않았다."그 아이가 제 곁에 서면, 월령을 봅니다.""그래서 네 곁이다."경화제가 옥필로 탁자를 톡, 쳤다."보라지. 보고도 못 갖는 걸 배우는 게, 황제가 되는 첫 공부다."*왕부로 돌아온 위지헌은, 그 말을 월령에게 옮기지 않았다. 문을 열기 전에 말하마, 하고 약조한 것이 어젯밤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에 말했다."…형님이, 명서를 내 곁에 두라 하신다."월령의 손이 봄의 배냇저고리 위에서 멎었다."…언제부터요.""가지를 다 친 뒤에.""그럼 가지부터 쳐요."월령이 저고리를 개키며 말했다. 손이 조금 빨랐다.*첫 가지는 옥리였다.강무진이 옥리를 잡아 왔을 때, 윤백은 이미 옥리의 집에서 나온 자녕궁 물표를 목갑에 담아 두고 있었다."…언제 다녀왔느냐.""기윤이 말했습니다."윤백이 답했다. 강무진이 그를 흘겨보았다."나는 사람을 잡고, 너는 물건만 잡고.""물건이 말을 더 잘합니다."윤백의 말에 강무진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옥리의 허리띠를 놓아 주었다.*둘째 가지는 절이었다.시주 명단의 자녕궁 물표가, 절의 주지를 어전으로 끌어냈다. 주지는 오상궁의 이름을 댔다. 오상궁은 그날로 자녕궁 밖으로 불려 나와, 종친부 앞마당에 세워졌다.오상궁은 끝까지 숙비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다만 향을 짓던 손으로 제 옷자락을 쥔 채, 설련을 보았다.설련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고 싶은 얼굴로, 피하지 않았다."…아가씨가, 많이 컸구나."오상궁이 낮게 말했다.설련은 답하지 않았다. 돌아서서, 월령의 반 걸음 뒤에 섰다.*셋째 가지는 명부지기였다."황후마마 처소로 옮깁니다."월령이 황후에게 아뢰었다."옥에는 자녕궁 손이 닿아요. 곤원전에는 못 닿아요."황후 하문정은 오래 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그 늙은 것이, 내 아이의 이름도 적었느냐."월령은 답하지 못했다. 황후는 그 못 함을 읽었다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59. 어전의 한 장

    촛불이 제풀에 꺼진 뒤에도, 두 사람 다 잠들지 않았다.월령은 등을 보인 채였다. 그 등 뒤에서 그의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고르지 않은 것을 감추려는 숨이었다."…옥리를 잡은 건 너다."한참 만에, 그가 말했다."절의 시주 명단도. 나는 문만 열어 뒀다. 그 문으로 뭘 들고 들어갈지는, 네가 정했고.""문을 열어 뒀다는 걸, 저한테는 안 알려 주셨어요.""알렸으면 네가 사흘을 그 문만 봤을 거다."월령은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맞아서 더 서운했다.그가 다시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다음엔, 문을 열기 전에 말하마.""열기 전에요.""열기 전에."월령은 돌아눕지 않았다. 대신 뒤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찾았다. 그가 그 손을 잡았다.*새벽에 청아가 세숫물을 들고 왔다.문틈으로 대야만 들이밀다가, 방 안 탁자 위에 흩어진 종이를 보았다. 그러고는 얼른 눈을 내렸다. 귀 끝이 붉었다."…마마님. 장부가, 바닥에.""주워 다오. 접지 말고.""예."청아가 종이를 한 장씩 주웠다. 그러다 한 장이 침상 발치까지 밀려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한참 망설였다. 그 사이 위지헌이 먼저 그것을 집어 청아에게 건넸다. 청아는 받지 못하고 굳어 있다가, 방어멈이 부엌에서 부르는 소리에 살았다는 얼굴로 뛰어나갔다."…저 아이는, 아직도 나를 무서워하는군.""부군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부군 앞의 저를 못 보는 거예요."*진시, 편전.경화제는 옥필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고 있었다. 위지헌이 장부 한 장과 절의 시주 명단을 탁자에 놓자, 옥필이 멎었다."…이 한 장으로, 짐더러 뭘 하라는 거냐.""보시라는 겁니다.""봤다."경화제가 장부의 마지막 줄을 오래 보았다. 옥필이 다시 굴렀다. 이번엔 느렸다."그 아이 이름이, 이 값 자리에 있구나.""예.""…네 딸이, 짐의 조카다.""예."경화제가 고개를 들었다. 웃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위지헌은 형에게서 몇 번 보지 못했다.*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58. 자녕궁의 손

    강 건너 마을은 개 짖는 소리로 밤을 알렸다.기윤은 지붕 위에 엎드려 있었다. 아래 초가에서 여인이 물을 길어 들이고, 그 뒤를 대여섯 살 사내아이가 따랐다. 아이가 넘어졌다. 여인이 돌아서서 아이를 일으키다가, 사립문 밖의 그림자를 보고 굳었다.그림자는 기윤이 아니었다.먹빛 소매의 여인이었다. 향을 짓는 손이 사립문을 밀었다. 여인이 아이를 제 뒤로 숨겼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기윤은 지붕에서 그 문을 밤새 보았다.새벽에 문이 다시 열렸을 때, 아이는 없었다.*"오상궁이에요. 자녕궁 향방을 맡은."설련이 그 이름을 댄 것은, 기윤이 강을 건너기 전이었다."향을 짓는 손이, 옥에는 왜 드나들지.""향을 짓는 손이라서요. 숙비마마는 손에 아무것도 안 쥐어요. 쥐는 건 늘 오상궁이었어요. 명부도, 향도, 저도."설련이 마지막 말을 조금 늦게 붙였다. 위지헌은 그 늦음을 흘려듣지 않았으나, 묻지도 않았다."기윤."그림자가 답했다."오상궁의 하루를 가져와라. 어디서 자고, 누구 집 문을 두드리는지."*기윤이 돌아온 것은 이틀 뒤 저녁이었다.옷자락에 흙이 묻어 있었다. 강 건너 흙이었다."도성 밖 강촌입니다. 명부지기의 며느리와 손자가 거기 삽니다. 오상궁이 그 집 문을 두드렸고, 새벽에 손자가 사라졌습니다.""…사라져.""자녕궁 소속 절에 맡겼습니다. 공부시켜 준다는 명목으로."월령의 소매 안 손끝이 접혔다."명부지기가 옷자락을 쥔 까닭이, 그거였군요.""손자를 찾아옵니까."강무진이 물었다."찾아오면 자녕궁이 안다. 알면 다른 이름을 잡는다."위지헌이 말했다."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켜라. 절 담 밖에 사람을 둬. 아이가 절 안에서 한 발도 안 나오게.""…어느 정도로 안 나오게 합니까.""제가 절 밖으로 나오고 싶어질 때까지."강무진이 그 말을 곱씹더니, 알겠다는 얼굴로 나갔다.*그날 밤, 월령은 늦도록 장부를 펴 놓고 있었다.문상궁의 봉함 기록이 그 곁에 있었다. 오래전 봉해진 이름. 그 봉함을 청한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57. 말을 바꾼 입

    "…뭐라고 바꿨지.""제가 혼자 한 일이라고요. 위에서 시킨 게 아니라, 늙은 것이 제멋대로 사람을 지웠다고. 어젯밤까지 '위에서'라던 입이."강무진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밤사이 옥에 누가 들었느냐.""옥리 말로는, 아무도.""옥리 말 말고.""…그건 제가 물어 온 게 아니라서."강무진이 솔직하게 답했다. 위지헌은 그 솔직함에 고개만 까딱이고 일어섰다.*옥은 눅눅했다.명부지기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손이 달랐다. 어제는 무릎 위에 포개 두었던 손이, 오늘은 옷자락을 쥐고 있었다."…혼자 했다고."월령이 물었다."예. 제가 혼자 했습니다. 마마님이 누굴 잡으려 하시는지 알지만, 그 위에는 아무도 없어요.""어제는 있다 하셨는데요.""늙은 것이 헛소리를 했지요."명부지기는 월령을 보지 않고 답했다. 옷자락을 쥔 손가락이 하얬다.월령은 그 손가락을 보았다. 그러고는 물음을 바꿨다."…손자가, 몇 살이에요."명부지기의 손이 멎었다.*"…그런 건 왜 물으십니까.""어제는 없던 겁이, 오늘 있으니까요."월령이 낮게 말했다."누가 밤에 와서, 손자 이름을 대고 갔군요."명부지기는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으로 답했다.월령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옥리를 불렀다."어젯밤 이 옥에 든 사람, 옥리 말고 또 누가 있지요.""…없습니다.""그럼 옥리 당신이 들었네요."옥리의 얼굴이 굳었다."저, 저는 옥을 지킨 것뿐입니다.""지켰으면, 문을 연 손도 봤겠네요."옥리가 침을 삼켰다. 명부지기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가, 옥리가 먼저 눈을 내렸다."…상궁 하나가, 왔습니다. 잠깐 얼굴만 보고 간다고.""어느 처소.""…그건 말 안 했습니다.""말 안 해도, 향은 남지요."월령이 옥 안의 공기를 한 번 맡았다. 눅눅한 냄새 아래, 옅게 다른 것이 있었다. 자녕궁의 그 향이었다.*옥을 나오며, 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뒤집힌 것을, 도로 뒤집을 셈이냐."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356. 그을린 한 장

    "…이 값은, 아직 안 치러졌군."위지헌이 월령의 어깨 너머로 그 줄을 읽었다.값 자리에 먹이 마르지 않은 채, 숫자 대신 획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매기다 만 셈이었다."치러지기 전에 태우라 하셨소."독고진겸이 낮게 말했다."그 줄이 마르기 전에, 내가 먼저 도성을 뜨라고.""…누가 치르지.""돈이야 상단이 치르지. 그런데 그 돈이 나가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따로 있소. 나도 그 얼굴은 병풍 너머로만 봤고."*기윤이 창턱에서 소리 없이 내려섰다."밖에 발소리 둘. 상단 사람은 아닙니다."위지헌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것으로 기윤은 다시 그림자가 됐다.월령은 장부를 소매 안에 넣지 않았다. 접지도 않았다. 펴진 채로 품 안에 붙여 들고, 아궁이의 남은 불을 한 번 더 보았다."…이 사람은요.""데려간다."위지헌이 독고진겸을 보지 않고 말했다."살려 두면 값이 되고, 죽으면 숙비의 값이 된다. 강무진.""예.""뒷덜미 말고 허리띠."강무진이 낮게 헛기침을 하고 독고진겸의 허리띠를 잡았다.독고진겸은 끌려가며 한 번 돌아보았다. 월령이 아니라, 아궁이를 보았다. 다 타 버린 장부들의 재를."…그 재 속에, 내 이름도 있소.""압니다."월령이 답했다."그래서 데려가는 거예요. 재가 되기 전에."*돌아오는 길, 마차 안은 어두웠다.월령은 펴진 장부를 무릎 위에 놓고, 그 위에 두 손을 얹었다. 위지헌이 그 손을 보았다."…손이 차다.""불 앞에 오래 있었는데도요."그가 제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덮었다. 장부째로. 그 손이 무거워서, 월령은 잠깐 눈을 감았다."…이 한 장으로, 될까요.""안 된다."위지헌이 바로 답했다. 월령이 눈을 떴다."이 한 장으로는 안 돼. 그런데 이 한 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왕부에 닿은 것은 새벽이었다.방어멈이 대문 안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밤새 잠을 안 잔 얼굴이었다."애 젖 먹일 시각에 어미가 들어오는 집이 어디 있답니까.""어멈.""죽 데워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7. 온기

    회색 실은 따뜻한 물 위에 놓이자 조금씩 풀어졌다.청아는 작은 사기 대접에 손을 얹고 앉아 있었다. 물이 식지 않도록 대접 아래에 천을 두 겹 깔았고, 옆에는 깨끗한 마른 수건을 세 장이나 준비해 두었다. 평소 같으면 필요보다 많은 준비라며 스스로 민망해했을 아이가,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은매는 그 앞에서 숨만 쉬었다.실은 동생의 손목에 있던 것과 같았다. 어미가 낡은 속곳 자락을 꼬아 만들었다던 빛. 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 약하게 한 번, 세게 한 번 묶는 버릇까지 같았다.하지만 손은 없었다.그 사실이 방 안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0. 등불

    자녕궁에 가는 날, 경성의 거리에는 낮부터 등틀이 세워지고 있었다.상원절은 이미 지났지만, 대연의 봄에는 작은 등놀이가 자주 열렸다. 남쪽 수해지에서 올라온 장인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종이등을 만들었고, 궁은 그것을 사들여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양을 갖췄다. 거리의 아이들은 등불을 좋아했고, 어른들은 쌀값을 생각하며 그 빛을 보았다.빛은 늘 아름다웠다.그러나 빛을 밝히는 기름값은 누군가의 장부에 적혔다.마차 안에서 서윤은 말이 없었다.오늘의 서윤은 옅은 연두빛 치마를 입었다. 한씨가 골라 준 옷이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9. 이름

    허도겸은 약속한 시각보다 이른 때에 왔다.아침 안개가 아직 대문 밖 버드나무 잎에 걸려 있을 때였다. 심가의 하인들은 물을 뿌린 마당을 쓸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찹쌀을 씻는 소리가 낮게 났다. 심 부인의 약을 달이는 냄새가 서원당 쪽에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집은 깨어나고 있었으나, 아직 하루의 얼굴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다.그 틈에 온 사람은 늘 급한 일을 품고 있다.허도겸은 정청이 아니라 서고 앞 작은 툇마루에서 월령을 보겠다고 했다. 둘째 숙부는 불쾌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으나, 호부 낭중의 말은 예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8. 장부

    아이의 이름은 은호였다.은매가 처음 그 이름을 부를 때, 목소리는 거의 소리라기보다 숨에 가까웠다. 은호야. 그 두 글자가 입술 밖으로 나오자마자 은매는 다시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울지는 않았다. 동생이 깰까 봐 참는 울음이었다.은호는 작았다.일곱 살이라 들었지만, 마른 몸은 그보다 더 어려 보였다. 손목에는 회색 실이 묶여 있던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기침을 참을 때마다 혀끝으로 이를 쳤다. 딱, 딱. 작은 소리는 방 안 사람들의 숨을 매번 붙잡았다.왕부 의원은 은호의 맥을 짚고 오래 말이 없었다.청아는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