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211 - Chapter 220

358 Chapters

211. 봉서가 가는 길

예부 관원의 붓이 마지막 획을 긋고 멈췄다.기록칸에 심월령의 이름이 남았다. 그 옆에는 이미 섭정왕 위지헌의 이름이 있었다. 두 이름이 한 줄에 나란히 놓이는 데 삼 년이 걸렸다.경화제가 보낸 내관이 붉은 봉서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폐하께서 예부에 명하시어, 납채의 봉서를 심가에 보내라 하셨습니다."돌길 위의 대신들이 낮게 몸을 숙였다.혼약이 어전의 뜻으로 열린다는 말이었다. 밀서가 봉인된 채 삼 년을 기다린 자리에, 오늘 처음 어보의 빛이 닿았다.월령은 그 봉서를 보지 않았다.봉서보다, 제 손을 아직 놓지 않은 손을 먼저 느꼈다. 붕대 너머의 체온은 세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약한 힘이, 어전의 봉서보다 그녀를 더 단단히 세웠다."왕야."월령이 낮게 불렀다."손을."주위에 눈이 많았다. 종친가의 주렴도, 병부의 장수도, 예부의 관원도 이 손을 보고 있었다.위지헌은 곧바로 놓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을 하나씩 풀었다. 마지막 손끝이 떨어질 때, 그의 엄지가 그녀의 손등을 한 번 느리게 쓸었다.놓기 전에 남긴 한 획 같은 손짓이었다."봉서는 심가로 간다."그가 말했다."그대는 오늘 왕부로 오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어머니 곁에 있어라."약혼자가 되었다 하여 곧장 데려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월령은 그 거리가 서운하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 오히려 그다웠다."예.""다만."위지헌의 시선이 잠시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봉서가 도착하거든, 나쁜 말이 함께 올 것이다."월령은 그 뜻을 알아들었다.섭정왕이 어보 없이 군을 냈고, 거짓 게시를 붙였으며, 그 값으로 한 달간 도성 순검패를 잃었다. 그런 사람이 진북대장군의 딸과 혼약을 맺는다. 이 혼사를 두고 좋은 말만 오갈 리 없었다."압니다."월령이 말했다."나쁜 말은 늘 좋은 일 곁에 붙습니다. 오늘은 그 나쁜 말도 함께 받겠습니다."위지헌의 눈빛이 조금 깊어졌다.그는 더 말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났다. 검은 관복 자락이 돌길 위에서 낮게 흔들렸다. 비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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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여덟 그릇

납채 봉서가 심가 대문에 든 날, 심가는 잔치를 열지 않았다.유씨는 봉서를 받아 향안 위에 올린 뒤, 먼저 여덟 개의 찬합을 마당에 늘어놓게 했다.회암에서 돌아오지 못한 일곱 사람과, 동문에서 죽은 장목. 여덟째 이름까지 여덟 집이었다."혼사보다 상이 먼저다."유씨가 말했다."우리 집에 좋은 일이 들었다 하여, 그 좋은 일의 값을 치른 집들을 뒤로 미룰 수는 없다."월령은 어머니 곁에서 찬합의 수를 함께 셌다. 쌀자루와 베 필, 조문금 봉투가 여덟 몫으로 나뉘어 있었다. 마지막 여덟째 찬합 위에는, 작은 나무 물고기 하나가 얹혀 있었다.임학의 동생이 새기던 그 손으로, 이번에는 물고기를 새겼다."물고기는 밤에도 눈을 뜨고 있대요."아이가 그 물고기를 심가에 보내온 편에 그렇게 적어 두었다."그러니까 형이 밤길에 무섭지 말라고요."월령은 그 나무 물고기를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새 한 마리가 형의 길을 밝히더니, 이번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밤을 지킨다. 그 작은 손이 죽음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월령의 목 안쪽이 뜨거워졌으나, 눈물은 찬합 위로 떨어뜨리지 않았다.*장례 행렬에는 왕부 군사가 붙지 못했다.위지헌이 한 달간 도성 순검권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순검패 없는 왕부 군사가 성안에서 대오를 이루면, 그 자체가 새 흠이 되어 혼약 위에 얹혔다.월령은 그 사정을 먼저 읽었다."북문군에 청하겠습니다."그녀가 유씨에게 말했다."아버지의 옛 부하들이 도성 밖 둔소에 있습니다. 회암의 군졸들은 북문 소속이었으니, 같은 군영이 제 식구의 상을 지키는 것은 흠이 되지 않습니다. 왕야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죽은 이의 이름으로 대오를 세우는 겁니다."유씨가 딸을 보았다."그이 손을 빌리지 않고 네 손으로 하겠다는 게냐.""왕야의 손이 지금 묶여 있습니다. 그 묶인 손을 대신 쓰는 것이 아니라, 제 손이 따로 있음을 보이려 합니다."유씨는 오래 딸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월령이 직접 붓을 들어 북문 둔소에 서찰을 적었다. 진북대장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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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빈틈을 세는 자

도성의 순검패가 한 달간 왕부를 떠나자, 그 틈을 먼저 센 것은 저잣거리의 소금이었다.염로의 값이 사흘 새 두 번 올랐다.소금은 관에서 값을 정해 파는 물건이었다. 순검이 느슨해지면 그 값을 몰래 올려 차익을 삼키는 손이 반드시 나왔다. 위지헌이 순검패를 쥐고 있을 때는 그 손이 숨었고, 패가 사라지자 그 손이 나왔다.허도겸이 호부 장부를 들고 왕부로 왔다."염창 세 곳의 출고 장부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남원 상납처를 지나던 물표가, 이번에는 동시의 소금으로 옮겨 붙었습니다."위지헌은 장부를 펴 보았으나, 순검패 없이는 염창의 문을 열 명분이 없었다."내 손으로는 못 연다."그가 낮게 말했다."지금 왕부 군사가 염창에 들면, 순검권을 잃은 자가 사사로이 관물을 뒤졌다는 새 흠이 된다. 저쪽은 그 흠을 기다리고 있다."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빈자리를 만들어 놓고, 그 자리로 걸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판이었다. 위지헌은 그 판을 읽었으나, 읽는 것과 넘지 않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같은 판을, 심가의 약방에서 월령도 보고 있었다.은매가 저잣거리에서 소금 값 이야기를 듣고 왔다."아가씨, 소금이 너무 올라서 아랫사람들 김치도 못 담근다고 다들 걱정입니다. 관에서 파는 소금인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요."월령은 소매 안의 두 돌을 굴리다 손을 폈다.관물의 값은 왕부가 순검할 일이었다. 그러나 값을 못 견디는 것은 저잣거리의 살림이었다. 왕야의 손이 묶인 지금, 이 일을 관의 문제가 아니라 살림의 문제로 옮기면, 순검패 없이도 움직일 길이 생겼다."청아야.""예, 아가씨.""어머니께 여쭙자. 심가가 곳간의 소금을 풀어, 죽은 여덟 집과 그 이웃에게 값대로만 나누어 팔 수 있는지."청아가 눈을 크게 떴다."그건 장사가 아니라 손해예요.""장사가 아니야. 심가가 소금을 값대로 파는 집이라는 걸 보이는 거야. 관의 소금이 두 배가 되는 동안, 심가의 소금은 어제 값 그대로다. 그러면 사람들이 묻겠지. 어느 쪽이 정직한 값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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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형부의 붓

주내관과 연무는 형부로 넘어갔다.섭정왕이 순검패를 잃은 뒤라, 두 사람의 심문은 왕부가 아니라 형부의 붓으로 적혔다. 위지헌은 그 자리에 들지 못했다. 대신 허도겸이 호부의 이름으로 배석해, 오가는 말을 장부에 옮겼다.주내관은 입이 무거웠다.죽은 여덟 사람의 이름을 형부 서리가 하나씩 읽는 동안에도, 그는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곽진에서 장목까지, 여덟 번째 이름이 불릴 때 그의 눈꺼풀이 한 번 떨렸을 뿐이었다."군량패와 장부를 옮기라 명한 것은 인정하는가."형부 낭중이 물었다."명은 위에서 왔습니다.""위가 누구냐."주내관은 오래 말이 없었다."자녕궁 문상궁의 패가 왔습니다.""문상궁이 직접 주었느냐.""패만 왔습니다. 얼굴은 보지 못했습니다."허도겸의 붓이 그 대목에서 잠시 멈췄다.문상궁의 패는 왔으나, 문상궁의 얼굴은 없었다. 오상궁도 같은 말을 했고, 연무도 같은 말을 했다. 세 사람이 모두 패만 보고 사람은 보지 못했다. 누군가 문상궁의 이름을 세 번 빌려 쓴 셈이었다.이름을 빌린 손은, 아직 이름이 없었다.*연무는 주내관보다 겁이 많았다.부러진 손목을 나무판에 묶은 채, 그는 제 목숨값을 셈하는 눈으로 형부 낭중을 보았다."소인은 심부름만 했습니다.""그 심부름의 값이 여덟 사람이다."낭중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연무의 입술이 떨렸다."패를 건네준 여인이 있었습니다. 자녕궁 뒤편 수문에서 받았습니다. 얼굴은 장막에 가려 못 보았고, 목소리는 낮았습니다. 다만 그 여인이 쓰던 봉랍에…""봉랍에.""작은 글자가 하나 있었습니다."허도겸이 고개를 들었다.연무가 마른침을 삼켰다."연, 이라는 글자였습니다."형부 서리의 붓이 그 글자를 종이에 옮겼다.연.문선이 물길에서 남긴 종이 조각에도 같은 글자가 있었다. 자녕궁의 이름을 빌리는 여인, 장막을 쓰고 목소리를 낮추는 여인, 봉랍 끝에 연이라는 글자를 남기는 여인. 같은 손이 세 번 지나갔다.허도겸은 그 글자를 장부 한쪽에 조용히 적어 두었다.*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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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부르지 않은 이름

삼황자부의 밤은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위명서는 남문 게시문의 필사본을 태우지 않고 두었다. 그 옆에는 예부에서 흘러나온 납채 봉서의 사본이 있었다. 심월령의 이름과 위지헌의 이름이 한 줄에 적힌 종이였다.그는 그 두 이름을 오래 보았다.후원에서, 별궁에서, 그는 그 아이를 다듬으면 쓸모 있겠다고 여겼다. 곁에 두면 황좌의 문이 넓어질 것이라고. 지금 그 아이의 이름은 다른 이름 곁에 적혀, 어보의 빛을 받고 있었다.다듬어질 아이가 아니었다. 이미 제 발로, 다른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가 섰다.위명서의 손끝이 봉서 사본 위에서 멎었다.그가 지금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신도 이름 붙이지 못했다. 잃은 것에 대한 아쉬움인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오기인지, 이용하려다 놓친 패에 대한 분함인지. 세 가지가 같은 온도로 섞여, 어느 하나로 갈라지지 않았다.*주란이 새 차를 들고 들어왔을 때, 그는 봉서 사본을 덮지 않았다.주란의 시선이 그 종이 위의 두 이름에 닿았다.심월령.그녀는 그 이름을 알았다. 저하가 태우지 않고 남겨 둔 게시문도, 밤마다 오래 보는 종이도, 모두 그 이름과 닿아 있었다.주란은 차를 따랐다.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봉서가 심가에 들었다고 들었습니다.""들었느냐.""저하께서 태우지 않으신 종이가, 요즘은 늘 그 이름을 향하고 있어서요."위명서가 고개를 들었다.주란은 웃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제가 저하 곁에 있는 것은, 저하께서 제 이름을 부르시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부르지 않으셔도 저는 옵니다. 다만…"그녀의 목소리 끝이 아주 조금 갈라졌다."부르지 않는 이름 곁에서, 부르고 싶어 견디는 이름을 밤마다 보는 건, 조금 아픕니다."위명서는 답하지 않았다.답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주란도 이제 알았다. 그녀는 빈 잔을 거두려 손을 뻗었다.그때 위명서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주란의 숨이 멎었다. 저하가 먼저 손을 뻗은 것은 처음이었다."주란."그가 그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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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봄의 부름

자녕궁의 봄은 문상궁 없이 열렸다.봉함이 그어진 뒤로 문상궁은 방 하나에 머물렀고, 그 자리를 설련이 조금씩 대신했다. 찻잔을 살피던 손이 이제 향안의 기록까지 살폈다.숙비는 그 손을 지켜보았다."설련아. 네 손이 요즘 부지런하구나.""고모님께 누가 될까 하여, 배우는 중입니다.""누가 되는 것이 두려우냐."설련의 손끝이 잠시 멎었다.숙비는 그 멎음을 보았다. 이 아이는 늘 누가 될까 두려워하며 산다. 두려움이 큰 아이는 다루기 쉽다. 두려움을 준 손만 바라보기 때문이다."두려워 마라. 봄에 네게 맡길 일이 있다.""제게요?""황후께서 정비가 될 아이의 부덕을 살피시겠다 하셨다. 심가의 딸을 내명부로 부르는 자리다. 그 자리에 네가 함께 든다."설련의 눈이 흔들렸다."제가 무엇을…""보기만 하면 된다. 그 아이가 어떤 얼굴로 서는지, 어디를 먼저 보는지, 무엇에 손이 떨리는지. 너는 겁이 많으니, 겁 많은 사람의 눈에는 다른 사람의 겁이 잘 보인다."숙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설련은 고개를 숙였다."예, 고모님."대답은 순했다. 그러나 대답을 하면서, 설련의 시선은 향안 위에 놓인 낡은 명패 하나로 갔다. 지난 국청에서 돌아온 물건들 틈에 섞여 온, 작은 새가 새겨진 나무패였다.죽은 군졸의 것이었다. 가족을 찾아 돌려보내야 할 패가, 아직 자녕궁 한쪽에 남아 있었다.설련의 눈이 그 새에 오래 머물렀다.정비라는 두 글자보다, 그 작은 새가 설련에게는 더 오래 남았다.*봄의 부름이 있으리라는 말은, 그날 저녁 왕부에도 닿았다.위지헌은 그 소식을 듣고 오래 말이 없었다.내명부의 문은 섭정왕의 칼도 열지 못했다. 황후가 부르면, 정비가 될 사람은 혼자 그 문 안으로 들어야 했다. 그가 궁문 밖에 서던 날들이 다시 올 참이었다."기윤.""예, 전하.""황후전에 내 편이 있느냐."기윤이 잠시 말을 골랐다."황후마마께서는 지난 국청에서 심 소저의 곧음을 보셨습니다. 마마의 마음은 아직 어느 쪽도 아니지만, 숙비 쪽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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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비녀를 올리는 날

납채 봉서가 든 뒤, 심가에서는 먼저 계례를 의논했다.혼례에 앞서 여자는 성년의 문턱을 넘어야 했다. 땋아 내린 머리를 올려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가, 여아를 혼인할 수 있는 여인으로 세우는 의례였다. 가례는 종친부가 살피지만, 계례는 가문이 주관하는 집안일이었다.유씨는 병색이 옅어진 손으로, 오래 간직한 비녀함을 열었다.함 안에는 유씨가 시집올 때 어머니에게 받은 백옥 비녀가 있었다. 세월에 빛이 조금 죽었으나, 옥의 결은 그대로였다."이걸로 하자."유씨가 말했다."금비녀도, 산호 떨잠도 있다. 그러나 네 계례에는 어미가 어미에게 받은 이것을 올리고 싶구나."월령은 그 비녀를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지위를 보이는 물건이 아니었다. 어미의 손을 타고 딸의 손으로 오는 물건이었다. 전생에는 이 비녀를 올려 보지 못하고, 남이 정한 봉관부터 이마에 얹었다."어머니께서 올려 주세요.""내가?""계례의 큰손은 집안의 어른이 맡는다 들었습니다. 제 어른은 어머니십니다."유씨의 눈가가 붉어졌다.붙잡지는 않았다. 다만 딸의 땋은 머리를 손으로 한 번 쓸어 보았다. 오래 빗어 준 머리였다.*같은 날 저녁, 위지헌이 심가에 들었다.약혼이 어전의 봉서로 열린 뒤, 그가 심가의 문으로 정식으로 드는 첫걸음이었다. 순검패를 잃은 몸이라 수행은 단출했다. 기윤과 윤백만 대문 밖에 두고, 그는 혼자 서원당으로 들었다.유씨 앞에서, 위지헌은 몸을 낮추어 예를 갖췄다."심 부인. 늦게 왔소.""왕야께서 이 집의 문을 낮추어 드시니, 도리어 이 집이 높아지는 듯합니다.""낮춘 것이 아니오. 이 집이 본디 높소."유씨가 낮게 웃었다."딸을 데려가려는 사람의 말치고는, 값을 후하게 치르시는군요.""값이 아니라 사실이오."위지헌의 대답은 짧았다. 그러나 그 짧음 안에, 오래 눌러 둔 무엇이 있었다.월령은 문가에 서서 그 대화를 들었다.어머니 앞에서 그는 늘 말을 낮추었다. 황제 앞에서도 고개를 깊이 숙이지 않던 사람이, 유씨 앞에서만은 먼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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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북에서 온 먼지

계례를 사흘 앞둔 새벽, 북에서 급보가 왔다.말 한 필이 도성의 북문을 넘어 곧장 왕부로 달렸다. 말의 다리에는 마른 흙이 두껍게 엉겨 있었다. 진북 관문 너머, 삭원과 흑령산맥 쪽에서 온 흙이었다.위지헌은 급보를 새벽빛에 펼쳤다.흑령의 부족들이 겨울을 앞두고 국경의 봉수대 둘을 태웠다. 진북대장군 심도윤이 북문군으로 막고 있으나, 병력이 얇았다. 군량은 지난 회암의 소란으로 이미 축이 났다.위지헌의 눈이 급보의 마지막 줄에서 멎었다.'섭정왕의 친정을 청함.'기윤이 곁에서 낮게 말했다."조정이 전하를 부를 것입니다. 북경군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전하뿐입니다."위지헌은 급보를 접었다.떠나야 한다는 것을, 그는 첫 줄에서 이미 알았다. 다만 지금은 때가 나빴다. 순검패를 잃은 몸으로 도성을 비우면, 그 빈자리로 자녕궁의 손이 들어온다. 봄에 있을 내명부의 부름 앞에, 월령은 혼자 남는다.그리고 계례가 사흘 뒤였다.*같은 새벽, 심가에도 북문에서 온 전갈이 닿았다.진북대장군의 짧은 서찰이었다. 딸의 계례를 축하하는 말은 한 줄뿐이었고, 나머지는 군량과 병력과 겨울에 관한 것이었다.유씨는 그 서찰을 읽고 오래 창밖을 보았다."네 아버지가, 이번 겨울은 길겠다 하시는구나."월령은 어머니 곁에 앉았다.아버지의 글씨는 여전히 곧고 좁았다. 급한 군보에서도 마지막 획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서찰의 끝 획 하나가, 평소보다 조금 짧았다. 손가락 둘을 잃은 손이 오래 쥐고 있었던 붓의 흔적이었다.월령은 그 짧은 획을 손끝으로 짚었다.전생에도 이 겨울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북에서 겨울을 났고, 봄이 오기 전에 도성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멀리 있는 사이, 심가의 담장 안으로 손들이 들어왔다.이번에는 그 손들을, 아버지 없이 그녀가 막아야 했다."어머니.""말해라.""왕야께서 북으로 가실 겁니다."유씨가 딸을 보았다."어찌 아느냐.""흑령이 봉수대를 태웠다면, 북경군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왕야뿐입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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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반드시 돌아온다

계례는 가을 아침에 조용히 치러졌다.서원당 마당에 자리가 깔리고, 유씨가 큰손을 맡았다. 땋아 내렸던 월령의 머리가 처음으로 올려져 쪽을 이루었다. 유씨의 손이 어머니에게 받은 백옥 비녀를 그 위에 꽂았다.빗살이 마지막으로 지날 때, 유씨의 손이 잠시 떨렸다."이제 너는 여인이다."유씨가 낮게 말했다."어미가 지켜 주던 자리에서, 네가 서는 자리로 옮겨 간다."월령은 고개를 숙였다.계례가 끝난 뒤, 그녀는 위지헌이 두고 간 흰 비단을 폈다. 살구나무 비녀를, 어머니가 올린 백옥 비녀 곁에 나란히 두었다.봄에 먼저 피는 나무라 했다. 가을에 올린 성년의 머리 곁에, 봄 하나가 놓였다.*출정 전날 밤, 위지헌이 심가에 왔다.이번에는 대문 안까지 들지 않았다. 서원당으로 난 협문 밖, 달빛이 닿는 담장 아래에 섰다. 내일 북으로 떠나는 사람이, 계례를 마친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러 온 걸음이었다.월령이 협문을 열고 나왔다.올린 머리 위에 백옥 비녀가 맑은 빛으로 남아 있었다. 위지헌의 시선이 그 비녀에 잠시 머물렀다."여인이 되었구나.""예.""곁에서 보지 못했다."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아쉬움이 옅게 배어 있었다.월령은 소매 안에서 살구나무 비녀를 꺼냈다. 계례에 함께 두라던 그 비녀였다."곁에 계셨습니다. 이것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요."위지헌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담장 아래 달빛이, 두 사람 사이의 좁은 거리를 하얗게 비췄다.닿기 전의 거리가, 오늘은 유난히 짧았다.계례를 마친 여인과, 내일 전장으로 가는 남자였다. 둘 사이를 막던 많은 것들이 오늘 밤에는 얇아져 있었다.위지헌의 손이 올라왔다. 월령의 뺨 옆, 비녀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 한 올에 손끝이 닿을 듯 다가왔다.그러나 그는 그 손을, 머리카락 대신 그녀의 손 위에 내렸다."돌아온다."낮은 목소리였다."반드시 돌아온다. 봄이 오기 전에."월령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전생에도 그는 늦게 왔다. 그녀가 이미 다 잃은 뒤에야, 빗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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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먼저 가는 사람

출정의 아침, 도성의 북문 앞에 북경군이 도열했다.순검패를 잃은 섭정왕이 도성을 비운다는 말에, 대신들의 얼굴이 갈렸다. 흑령을 막을 사람이 그뿐이라 보내야 한다는 쪽과, 순검권도 없는 자가 군을 끌고 나가면 도성이 빈다는 쪽이 나뉘었다.위지헌은 그 갈린 말들 한가운데를 지나, 말에 올랐다.검은 갑주 위로 아침빛이 서늘하게 미끄러졌다. 비어 있던 옥대 자리에는, 오늘 대신 흑옥 군패가 걸렸다. 순검패는 잃었으나, 군패는 그의 것이었다.기윤이 곁에 섰다."도성은 어찌합니까.""강무진을 남긴다."위지헌이 말했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가를 지켜라. 앞에는 서지 마라. 순검패 없는 왕부 군사가 심가 앞에 서면, 그것이 새 흠이 된다. 그림자로만 있어라.""봄의 부름은요."위지헌의 눈이 잠시 남쪽 궁성 쪽으로 향했다."그 문은 내 칼이 못 연다. 그 안에서는, 그 사람이 혼자 서야 한다."그는 그 말을 하며 손끝을 한 번 굽혔다.혼자 세우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보다 더 잘 아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문밖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문이 닫혀도 그녀가 나올 문을 지키는 것뿐이라는 것.*북문 성루 아래, 배웅하는 사람들 틈에 월령이 있었다.정비가 될 사람이 출정하는 약혼자를 공공연히 배웅하는 것은 아직 일렀다. 그래서 그녀는 심가의 딸로, 아버지의 군영에 겨울 군량을 보태는 사람의 자리에 섰다.북문군의 수레에는 심가가 마련한 쌀과 소금이 실려 있었다. 저잣거리 값 그대로 판 그 소금의 남은 몫이었다.위지헌의 말이 성문을 지나기 전, 그의 시선이 그 수레 곁의 푸른 옷자락에 닿았다.두 사람은 서로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다만 위지헌이 말 위에서 아주 짧게 고개를 숙였다. 예를 갖추는 것도, 명을 내리는 것도 아닌 움직임이었다.봄 안에 있겠다는 약속을, 그는 그 한 번의 끄덕임에 다시 담았다.월령도 고개를 숙였다.늦지 말라는 말을, 그녀는 그 한 번의 숙임에 다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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