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는 두 번 죽지 않는다의 모든 챕터: 챕터 21 - 챕터 30

30 챕터

제21화

노부인은 서안하의 몇 마디 말 속에서 다른 기척을 읽어냈다.후작부의 비밀이라니, 그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그동안 그녀는 아들을 위해 온갖 계략을 꾸미며 큰방을 견제해 왔고, 그 모든 일은 진 어멈이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자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하지만 진짜 두려운 건 따로 있었다.바로 그해의 아이 바꿔치기 사건.노부인은 속이 뒤틀릴 만큼 후회스러웠다. 그때 왜 홀린 사람처럼 두 아이를 바꾸려 했단 말인가. 어느 쪽이든 제 핏줄인 손자들이었는데.만약 당초령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친정인 호국공부 사람들을 불러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도 남을 것이다!순간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무슨 수를 써서든 서운기를 하루빨리 당초령 곁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모자간의 정이 조금이라도 쌓여야, 훗날 당초령의 마음을 붙잡아 둘 여지라도 생길 테니까.그 생각에 이르자, 노부인이 서안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전보다 더 짙은 자애가 스며들었다.“안하야, 역시 네가 제일 속 깊고 생각이 깊구나. 정 안 되겠으면… 서운기를 아예 네 어머니 슬하에 들이는 것도 괜찮겠어.”“안 됩니다!”서안하와 온 소실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서안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운기 오라버니와 제 오라버니는 같은 날에 태어났어요. 지금 둘 다 열여섯이니 어머니와 정이 들기 쉽지 않을 거예요. 물론 운기 오라버니가 제 목숨을 구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온 소실도 급히 맞장구쳤다.“맞아요, 맞아요. 운기는 원래 말수도 적고 둔한 편이라 낯선 사람이랑 있으면 불편해해요. 저와 함께 있을 때만 그나마…”서안하의 눈빛 깊은 곳에 서늘한 냉기가 번졌다.“그러니까요. 앞으로는 온 소실께서 운기 오라버니를 좀 더 아껴주셔야겠어요. 그렇게 채찍으로 온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들다간, 정말 마음이 떠나버릴 테니까요.”오늘 하루 동안 연이어 충격을 받아온 노부인은, 그제야 완전히 정신이 들었다.이방이 후작부의 작위를 손에 넣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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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후작부의 안살림은 오랫동안 온 소실이 쥐고 있어 각 방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눈치를 봐야 했다.예전 노부인 역시 집안 살림을 당초령에게 맡겨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초령은 애초부터 그녀의 아들과의 혼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게다가 성정까지 예민하고 까다로워 시집온 뒤로는 걸핏하면 몸이 좋지 않다 핑계를 대며 제 처소에 틀어박혀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노부인으로서도 감히 당초령에게 시집 규율을 들이밀 수는 없었다.그녀 자신은 계실 출신이었고, 친정 역시 감주에서는 제법 체면이 있었으나 경성에서는 그저 변변찮은 가문에 불과했다. 그런 처지에 어찌 대놓고 며느리를 들볶아 호국공부의 미움을 사려 하겠는가.그래서 그동안 남의 아이를 바꿔치기해 놓고도, 그녀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속으로는 은근한 우월감마저 품고 있었다.호국공부의 적장녀면 뭐 한단 말인가. 결국 제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데.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작위 다툼이 코앞까지 다가온 이상, 명격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만이 판을 뒤집을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만약 진 어멈 같은 눈치 없는 것들이 이 중요한 시기에 입을 함부로 놀려, 후작부가 고작 이름뿐인 소실에게 살림을 맡기고 있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아들의 벼슬길에 영향이 가는 건 둘째치고, 후작부의 위신마저 곤두박질칠 게 뻔했다.무엇보다 더 두려운 건, 누군가 이를 빌미로 총애첩을 앞세워 정실을 억누른다며 탄핵상소를 올리는 일이었다. 지금 황제는 법도 중히 여기지만 예법 또한 엄격히 따지는 사람이었다.그러니 결과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노부인은 평소 존재감 없이 조용하기만 하던 손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 아이의 처신은 이상하리만치 제 마음에 들었다. 하는 일마다 그녀의 속마음을 대신 헤아려 주는 듯했다.그리하여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안하야. 어느새 네가 열넷이 되었구나. 내년이면 계례를 치르고 혼담이 오갈 나이도 되겠지. 그러니 당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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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노부인께서 방금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남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설마 이제 와서 말을 바꾸시진 않겠죠?”그러자 정 어멈이 웃으며 말했다.“너희 노부인 성정을 모르느냐? 순간 홧김에 내뱉은 말일 뿐이다. 그걸 진짜로 받아들이면 안 돼. 조금 지나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다시 여러 번 따져보실 게다. 어디 두고 보렴.”남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그래도 저는 우리 아가씨가 살림 맡는 게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요.”그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해당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오늘 서안하가 하안원에 온 것은 겉으로만 보면 한가로운 담소처럼 보였다.하지만 실상은 고요한 호수 위에 거대한 돌덩이 몇 개를 내리꽂은 것이나 다름없었다.이쯤 되면 반드시 평정을 잃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었다.그녀는 알지 못했다.바로 그 순간, 누군가 멀찍이서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는 사실을.그 사람의 눈동자 속에는 거센 파도가 미친 듯 뒤집혀 오르고 있었다.검은 여우털 망토를 걸친 가냘픈 그림자 하나가 해당원 모퉁이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그 사람은 늘 공기처럼 존재감 없던 서안유였다.그녀는 손톱으로 제 손바닥을 세게 짓눌렀다. 조금의 이상함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서안하를 향한 그녀의 두려움은 이미 뼛속 깊이 새겨져, 영혼에까지 각인된 듯했다.설마… 서안하 역시 자신처럼 회귀한 것일까?아니면 원래 이 시기의 서안하가 이렇게까지 치밀한 사람이었던 걸까?하지만 그렇다 해도, 서운기와 서운민이 뒤바뀌었다는 사실까지 알 리는 없지 않은가.만약 회귀가 아니라면, 어째서 이번 생은 전생과 완전히 달라진 걸까?분명 전생의 서안하는 물에 빠진 뒤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서안유의 마음속 불안은 점점 짙어져 갔다.보름 전, 그녀는 회귀했다.그리고 곧 친오라버니인 서운민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래서 즉시 편지 한 통을 써 온 소실에게 보냈다. 무슨 수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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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서안유는 생각했다.훗날 진왕이 영광제가 된 뒤, 자신이 서안하처럼 황후 자리까지 넘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귀비 자리 정도는 차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설령 귀비가 어렵다면 빈이라도 좋았다. 빈도 안 된다면, 적어도 소의 정도는 될 수 있지 않겠는가.어느 자리 하나 난침 시중 드는 몸종보다는 낫지 않은가.그녀는 회귀한 몸이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만큼, 무엇이든 선수를 칠 수 있었다.그러니 이번 생에서는 적어도 전생보다 훨씬 쉽게 진왕의 눈에 들 수 있을 터였다.결국 문제는 신분이었다. 하필 소실의 배 속에서 태어난 천한 출신.만약 자신에게도 서안하처럼 화려한 가문과 정당한 적녀의 신분이 있었다면, 황후 자리든, 태후 자리든 감히 꿈꾸지 못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여기서 멍하니 뭐 하고 있느냐?”온 소실의 못마땅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네 할머니가 내 손에서 살림 권한까지 거두려는 거 안 보이느냐? 머리 굴려볼 생각도 안 하고! 널 키워서 어디에 쓰겠다는 건지 모르겠다!”서안유의 눈빛이 한순간 음산하게 가라앉았다.그러나 고개를 들 때쯤엔 이미 순하고 얌전한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어머니, 안하는 열두 살이 되어서야 밖에서 돌아왔잖아요. 분명 모르는 것도 많을 거예요. 할머니께 슬쩍 말씀드려 보세요. 이렇게 큰 후작부를 괜히 어지럽혀 외부 사람들 웃음거리가 되면 안 된다고요.”그 말을 들은 온 소실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그래, 맞았다.서안하는 열두 살이 되어서야 후작부로 돌아왔다. 고작 두 해 만에 잃어버린 십 년 세월의 견문을 어찌 다 메울 수 있겠는가.게다가 그 아이는 서성일이 데려온 아이였다.온 소실은 딸을 한 번 힐끗 보는 것으로 끝내고, 곧장 몸을 돌려 다시 노부인을 찾아갔다.그녀는 비통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고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고모가 제 손에서 살림 권한을 거두시겠다면, 조카인 저는 감히 이의를 달지 않겠습니다. 헌데 어찌 이렇게 큰 집안을 안하 아가씨 손에 맡기시려 하십니까? 고모도 잊으신 건 아니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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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먹빛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뒤 백옥 관으로 가볍게 고정해 두었고, 이마에는 맑은 푸른빛 보석이 박힌 말액(抹額: 이마에 두르는 전통 장식 띠로, 옥이나 보석 등을 장식해 귀족들이 관 대신 착용하던 장신구)이 드리워져 있었다.그는 병든 달빛처럼 창백한 얼굴에, 먹으로 그린 듯 선명한 눈썹을 지니고 있었다.그의 온몸에서 안팎으로 은은히 배어 나오는 것은, 병색마저 품위로 바꾸어버릴 듯한 귀한 기품이었다..서운기는 태어나서 지금껏 이토록 화려한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부 당초령이 손수 골라준 것이었다.저 사람이 바로 자신의 친오라버니였다.어릴 적부터 온 소실에게 학대를 당하고, 짓눌린 채 살아오며, 맞고 또 맞아 겨우 목숨만 붙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뛰어난 풍모만은 끝내 감춰지지 않았다.서운민 그 인간이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한다 한들, 제 오라버니 발끝 하나 따라가지 못했다.서안하가 멀리서 서운기를 향해 웃어 보이자, 서운기 역시 조용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두 사람이 가까워진 건 최근 며칠 사이의 일이 아니었다.2년 전, 서안하가 처음 후작부로 돌아왔을 당시 많은 이들, 심지어 서운민조차 그녀를 얕보고 비웃었다.그 와중에도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선의를 보였다. 서운기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그는 몰래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었고, 후작부 안의 규율과 처신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덕분에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위태롭던 시간 속에서도, 서안하는 조금이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후작부 이방에는 모두 다섯 아들이 있었다.열여섯의 서운민과 서운기를 제외하면, 아래로 열세 살 서운재, 여덟 살 서운택, 그리고 가장 어린 서운율은 이제 겨우 돌이 지난 아이였다.그 시각, 여러 소실들은 아들들을 데리고 해당원의 만화청에 모여 있었다.모두 마음속이 불안으로 뒤숭숭했다.아침 일찍 서안하가 사람을 보내 해당원으로 오라 전했을 때부터, 다들 이미 눈치는 채고 있었다.정실부인이 적자를 하나 골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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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한 소실은 후작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초령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하지만 당초령은 지금껏 첩실인 자신들을 괴롭히거나 들볶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적어도 마음씨만큼은 선한 사람이라 여겨졌다.그렇다 해도 감히 아들을 적자로 올리겠다는 생각까지 품어본 적은 없었다.그런데 이번에는 당초령이 직접 입을 열었으니, 그녀로서는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그저 꿈만 같은 기분이었다.해당원에서 서운율을 적자로 들였다는 소식은 금세 하안원으로 전해졌다.소식을 들고 온 사람은 해당원의 엄 어멈이었다.그녀는 당초령이 후작부로 시집왔을 때, 노부인이 곁에 붙여 보낸 사람이었다.그 후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당초령의 신임을 얻었고, 이제는 많은 일들을 굳이 그녀에게 숨기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엄 어멈의 보고를 들은 노부인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뭐라고? 율이를 적자로 들였다고?”그건 안 될 일이었다. 율이는 아직 너무 어렸다.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하려면 앞으로도 십수 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무엇보다 바로 조금 전, 그녀는 직접 양현 선생을 찾아가 지금의 국면을 뒤집을 방법이 있는지 묻고 온 참이었다.양현 선생의 대답은 몹시 의미심장했다.“모든 것은 하늘의 뜻을 따라야 비로소 운이 열립니다. 억지로 하늘을 거스르면, 자연히 쇠락하게 되지요.”노부인은 평생 갈고닦은 꾀를 모두 짜내듯 물었다.“양현 선생께 여쭙겠습니다. 명격이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기울어진 운세도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양현 선생이 담담히 답했다.“하늘의 뜻을 따르는 일은 언제라도 늦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엔 스스로 영리하다 여기는 자들이 너무 많지요. 자업자득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보아라. 양현 선생조차 분명 말했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일은 언제든 늦지 않다고.결국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명격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었다. 절대로 당초령이 자신의 일을 망치게 둘 수는 없었다.예전에는 어떻게든 서운기를 밖으로 빼내고 싶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무슨 수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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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마음대로 고르게 두어라. 운기와 운율에게만 잘해준다면, 해당원 쪽부터 우선 챙겨주면 된다.”하지만 그녀는 다시 망설이기 시작했다.정말 서안하에게 집안 살림을 맡겨도 되는 걸까.주지 않자니 당씨 모녀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 같고, 그렇다고 넘겨주자니 혹시라도 서성일에게 홀린 서안하가 후작부 전체를 통째로 넘겨버리는 건 아닐까 싶었다.우선 조금 더 지켜보는 수밖에.*한편, 온 소실 역시 서운기가 해당원 동쪽 곁채로 옮겨갔다는 소식을 들었다.“저 역적 같은 놈! 해당원으로 들어간다 한들 내가 그 애 친어미인 건 변하지 않는다! 감히 제 어미를 박대하기라도 해봐라, 내가 밖에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만들어줄 것이다!”온 소실은 분에 못 이겨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내던져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러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지금 당장 가서 그 애를 데려와야겠다! 당초령이 감히 나를 어쩌겠다고!”서안유가 급히 앞을 막아섰다.“어머니, 지금은 함부로 움직일 때가 아니에요. 게다가 서자와 서녀들을 주모 슬하에 두는 건 원래 예법에도 맞는 일이잖아요. 그동안은 적모께서 거두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이제 직접 맡겠다고 하시는데 어머니께서 가서 소란 피우시면 도리어 명분이 없어져요. 게다가 서안하가…”온 소실은 딸을 거칠게 밀쳐냈다.“고작 어린 계집애 하나가 뭘 안다고! 내가 손 좀 봐주지 않으면 네 어미 머리 위에까지 올라타겠구나!”서안유는 속으로 비웃었다.며칠 동안 서안하에게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는지 벌써 잊은 모양이었다. 머리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고 있는데 말이다.하지만 온 소실은 오랫동안 후작부에서 거침없이 살아왔다.마치 아직도 예전처럼 마음대로 호령할 수 있는 날들이 계속되는 줄 아는 듯했다.서안유는 마음속 짜증을 억누른 채,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어머니, 이번 한 번만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적어도 제가 진왕부에 시집가기 전까지는 서안하를 건드리지 마세요. 훗날 제가 자리를 잡고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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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내가 바보인 줄 아니!” 온 소실은 서안유를 흘겨보며 손가락으로 딸의 이마를 콕 찔렀다. “우린 이제 제대로 머리를 굴려봐야 해. 어떻게든 진왕 전하께서 서둘러 널 들이실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지. 그렇게만 되면 넌 그 늙은 속물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보배가 될 거다. 그 사람이 널 보물처럼 감싸고 돌게 될 테니까.”서안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서안하가 훗날 진왕 측비가 되고, 영광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자 귀비가 되었으며, 끝내 경덕황후의 자리에 올라 훗날 유경제의 혜정황태후가 되었다는 사실을.서안유는 어려서부터 줄곧 서운민의 힘이 되어줄 존재로 길러졌다. 온 소실에게 이런 다정한 시선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온기를 더욱 놓고 싶지 않았다.사실 그녀 역시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서안하가 정말 자신처럼 회귀한 것인지.온 소실에게서 위씨 가문에서 벌어진 일을 듣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었다.애초에 서안하는 원래부터 판을 뒤흔드는 데 능한 사람이었으니까.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진왕 측비에서 시작해 태후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겠는가.모든 이들이 그녀가 끝장났다고 여길 때마다, 서안하는 또다시 살아남아 일어섰다.서안유는 본능적으로 서안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바라는 건 단 하나였다. 어떻게든 서안하와 진왕이 마주칠 가능성을 줄이는 것.만약 결국 실패해 서안하가 여전히 진왕에게 시집가게 된다면, 그때는 차라리 서안하의 비위를 맞추고 그녀의 편에 서는 편이 나았다.전생에 서안하 편에 섰던 후궁들 가운데 영화와 부귀를 누리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그렇게 속셈을 굴리고 있던 순간, 갑자기 온 소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헌데 말이다, 꿈속에서 서안하 그 계집은 비참하게 살지 않았느냐?”서안유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에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모, 못 봤어요. 서안하에 대한 건 꿈에 안 나왔어요.”온 소실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그녀는 딸 입에서 서안하가 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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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하지만 서안하와 노부인의 생각은 같았다. 먼저 조급하게 매달리는 쪽이 결국 불리한 법이다.천천히 시간을 끌면 그만이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앞으로 살아갈 날은 길고도 멀었으니까.서안하는 직접 신 의원을 모시고 하안원으로 가, 노부인과 노후작에게 평안맥을 짚어드리게 했다.이 한 수로 노부인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껄끄러운 감정도 제법 누그러졌다.신 의원은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지만, 처방만큼은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노부인은 몰래 서안하에게 물었다.“신 의원 진료비는 어떻게 계산하기로 했느냐?”서안하가 조용히 답했다.“할머니께서도 아시잖아요. 원래 신 의원 진료비는 비싼 데다, 돈이 있어도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걸요. 헌데 지금 이렇게 우리 후작부에 머물러 주신다는데, 얼마를 드려도 아깝지 않죠.”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그렇지.”서안하가 다시 말을 이었다.“원래 큰외숙모의 작은아버님께서 예전에 신 의원께 은혜를 베푸신 적이 있어서, 그 인연으로 겨우 체면을 봐주신 거래요. 신 의원께서 직접 말씀하시길, 석 달 동안 백 냥만 받으시겠다고 하셨어요. 대신 숙식은 우리 후작부에서 책임지기로 했고요.”백 냥이라는 말을 듣고도 놀라 숨을 들이켜기는커녕,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사실 평범한 의원 하나를 집에 들여 석 달 동안 머물게 한다 해도, 열 냥이면 충분한 일이었다.하지만 신 의원은 평범한 의원이 아니었다.돈이 있어도 좀처럼 모셔올 수 없는 사람 아닌가.게다가 후작부 사람이라면 누구든 진맥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이유가 없었다.서안하는 이미 노부인의 속셈을 훤히 읽고 있었다.“할머니, 병을 보는 일은 둘째치더라도, 신 의원께서 우리 후작부에 머무신다는 말만 퍼져도 사람들 청첩이며 명함이 끊이지 않을 거예요. 어느 집안인들 우리 후작부를 다시 보지 않겠어요?”노부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그래, 그래. 역시 안하야, 생각이 참 깊구나. 절대 신 의원을 소홀히 대해선 안 된다! 사람 몇 더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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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한참이 지나서야 한 사람이 느릿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아가씨, 제 가족은 모두 마님 손에 몸값 문서가 들어가 있습니다.”서안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말을 바꾸어 물었다.“그럼 새로 몸값 문서를 쓰고 싶은 사람은 없느냐? 한 사람당 삼십 냥에 문서를 사들이겠다. 게다가 이후 녹봉도 매달 다섯 냥으로 올려주마.”행수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삼십 냥이라는 값은 확실히 솔깃했다.아무리 그들이 점포를 맡고 있는 행수라 해도, 시세로 치면 몸값은 기껏해야 이십 냥 남짓이었다.게다가 녹봉 다섯 냥 역시 지금보다 두 배 넘게 오른 액수였다.현재 그들이 받는 녹봉은 고작 두 냥. 물론 그것만으로도 가족이 굶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충분했다.하지만 몸값 문서를 쓰는 순간 노비 신분이 되니 마음 한구석이 껄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지금처럼 지내도 괜찮은데, 누가 좋아서 스스로 몸을 팔아 노비가 되겠는가.더구나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생각하면, 삼십 냥이 아주 큰돈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결국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서안하는 그런 반응을 보고도 담담했다.“한 시진 주겠다. 생각이 바뀌면 찾아오거라. 헌데 내가 상자를 열고 장부를 확인한 뒤에는… 아마 지금 같은 값은 없을 것이다.”순간 행수들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담 어멈이 적당한 때를 골라 북희를 힐끗 바라봤다.북희는 곧바로 뜻을 알아차렸다.“행수들께서도 속으로는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여러분이 맡은 점포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지요. 이제 우리 아가씨께서 직접 손에 쥐신 이상, 당연히 다시 숨통을 틔울 방도를 찾으실 겁니다.”몇몇 행수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틀린 말은 아니었다.장사는 해마다 더 기울고 있었고, 지금은 간신히 본전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다.다행히 주인 쪽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에, 지금껏 아무 탈 없이 넘어갔을 뿐이었다.북희가 다시 말을 이었다.“우리 아가씨께서는 마음이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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