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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보스의 은밀한 비밀: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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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주, 인님...!""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불러?"주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본가에 사는 사람은 도혁과 주하를 포함해서 총 55명. 기찬을 뺀 54명이 모두 모였다. 그러나 말하는 건 도혁과 주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하도 도혁도,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도혁은 그녀가 자신에게 다시 반말을 쓴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날 어찌나 시리게 존댓말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사실 이 공간에 다시 발을 디뎌주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에게는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주하의 시선이 짧게 아래로 향하자, 도혁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 내려갔다. 얼마 전에 마당에 신발을 놓고 가버린 탓인지, 주하의 발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낡은 슬리퍼가 걸려 있었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주하를 저런 꼴로 돌아다니게 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찔러댔다. "죄, 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제가..."주하는 사과하는 도혁을 그제야 쳐다보았다. 기찬이 말한 대로 도혁은 제대로 밥도 먹지 않은 얼굴이었다. 몇 주 만에 살이 제법 빠져서 안 그래도 날렵한 턱선이 날카롭게 보였다. 그렇다고 볼품없어진 건 아니었고 조금 사연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쩐지 처연해 보이기도 했다. 늘 능글맞던 얼굴에 한치의 웃음기도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반성은 좀 했고?"주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태연한지 가늠해 보며 물었다. 도혁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하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감히 단 한 걸음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네, 네... 많이, 많이 했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후회하고, 또, 주인... 아니, 그러니까..."도혁은 호칭을 고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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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두 사람은 어느새 도혁의 방으로 옮겼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무릎을 꿇고 앉은 도혁을 보며 주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은 제대로 잔 건지, 밥은 제대로 먹은 건지, 그를 꼼꼼히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혁은 살짝 눈을 내리깔고 그저 침묵하고 있었다. 눈 밑이 제법 거뭇했고, 눈 자체도 퀭하게 보였다. 그간 기찬이 보고해 준 것들이 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원래 하루에 운동 몇 시간씩 했어?" "네...? 아... 2시간 정도..." 뜬금없는 질문에도 도혁은 성실히 대답했다. 주하가 그런 걸 왜 물어보는지, 그는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물어보니까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아는 한 최대한 저자세로 임했다. 커다란 덩치를 구겨서 작아 보이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봤자 거구가 어딜 가는 것도 아닌데. "매일 2시간씩 운동해. 그 외에는 무조건 나 따라다녀. 등 뒤에서." "네, 감, 감사합니다. 따라다닐게요...!" 따라다니지 말라고 해도 감지덕지 감사하며 숨어서 얌전히 지낼 텐데, 따라다니라는 미션은 너무 쉬운 데다가 좋기만 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주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녀도 사실 알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두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건지 같은 건. 그저 한 달, 그 정도의 유예를 가져보기로 했을 뿐이었다. 마음을 접든, 아니든. "과제하러 갈 건데, 운동하러 갈래?"생각한 건 잠이라도 자라는 말이었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건 그런 말 뿐이었다. 도혁은 '아니요, 따라갈게요...'하고 대답하며 그녀가 나가길 가만히 기다렸다. 주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루에 그녀가 기찬을 통해 전달했던 신발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 신발을 신었다. 도혁은 내리깐 눈으로 그것을 가만히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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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다시 침묵이 흘렀다. 노트북 위로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주하의 머릿속은 온통 전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집에 다시 돌아온 건, 그런 비참한 이야기를 듣고도 여전히 도혁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들 하니까. 물론 그 바닥에는 나름의 계산도 깔려 있었다. 그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아닐지라도, 최소한 제 '몸'을 탐내고 있다는 것. 그걸 무기 삼아 어떻게든 그를 쥐고 흔들어보자고 다짐하며 들어온 길이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더 납작하게 엎드려 고분고분 구는 그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득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간절하게 원하는 건 '주하'라는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제게 명령을 내려주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간식 좀." "아, 그럼... 잠깐 자리 비워도 괜찮아요?" 별 걸 다 허락을 구한다 싶었다. 하지만 운동할 때 빼고 따라다니라고 한건 자기니까, 주하는 뭐라고 하지 않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 네...!" 도혁은 거절당했을 때보다 한결 편안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 후다닥 사라졌다. 뭘 저렇게까지 기뻐하면서 가는 건지, 주하는 알 수 없었다. 도혁은 그저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안도했다. 적어도 옆에 있는 배경 취급을 하지는 않는 거니까.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다는 뜻 같아서.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게 아무리 하찮은 일이어도 좋았다. 그는 곧장 식당으로 뛰어가듯 걸어서, 직원들을 닦달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거 위주로 준비해. 제일 빨리 되는 게 뭐야?" "아,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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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주하가 다시 집에 온 지 3일이 지났다. 둘 사이엔 여전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전엔 조용해도 편안한 공백의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굳이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는 불편한 공기였다. 주하가 가끔 말을 해도 대체로 변덕스러운 명령 정도일 뿐이었다. 주고받던 농담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도혁도 할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그야 조잘거리던 사람이 과제만 하니까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기껏 해봐야 심술맞게 굴며 그를 괴롭히는 게 전부고. 물론 그는 그 시간이 좋았다. 심술이든 괴롭힘이든 변덕이든. 그는 주하가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하루 종일이라도 서 있을 수 있었으니까."음. 햇빛 때문에 눈부셔.""블라인드 칠까요?""아니. 여기 와서 좀 서 봐."그를 햇빛 가리개로 쓰겠다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가리킨 곳에 서는 꼴을 보아하니 또 마음이 울컥거렸다. 왜 그가 자신의 명령을 들을수록 기분이 가라앉는지, 그녀는 이제 정확히 알았다. 시간이 지나니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명령을 다 듣고 있는 이유가."한걸음 뒤로 가.""네.""아니, 좀 왼쪽으로 더.""네."주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로봇을 조종하는 것처럼 명령했다. 물론 도혁은 철저하게 그 말에 따랐다. 창밖에서 그 모습을 보던 부하 둘이 조금 안타까워했지만, 그런 건 주하도 도혁도 몰랐다."......"어느새 햇빛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과제에 집중한 주하를 내려다보며 도혁은 등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날씨가 조금씩 선선해지고 있었는데, 가만히 한 자리에 검은색 옷을 입고 있자니 뜨거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해의 위치가 변하면 아주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그게 어떤 것이든 그녀를 방해하게 두진 않을 거니까. 주하는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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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베였어요?"주하는 손을 확인하기도 전에 물었다. 세 사람이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거짓말도 못 하면서 뭘 그렇게들 숨기려고 하는 건지."죄송, 죄송합니다. 피, 피, 피는 안 묻었습니다.""누가 그런 거 걱정한대요."주하는 팍 눈가를 찌푸렸다. 그녀는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팔을 휙 당겨 손을 확인했다. 제법 긴 상처가 나서인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왜 숨겨요.""아뇨, 그게, 그러니까..."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도움받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들은 어마어마한 명령을 받은 분위기였다. 그녀는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음을 깨달았다."이건 그냥 학교 과제예요. 부탁드리려고 부른 거고요.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람이 다치면 그게 제일 먼저예요, 상식적으로는."단호한 목소리에,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들에게는 왜인지 따뜻하게만 들렸다. "일단 지혈부터 해요. 구급상자 있으면 가져오고."주하의 지시에 다른 부하가 헐레벌떡 구급상자를 찾아왔다. 그러나 주하에게 내미는 것은 조금 망설이는 눈치였다. 도혁이 '주하가 직접 치료해 주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뒷감당이 무서웠던 탓이었다. "그, 저희가 알아서..."주하는 별말 없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그 시선을 받고선 얌전히 구급상자를 내려놓았다. 과연,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조직의 보스를 움직이는 사람다운 눈빛이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소독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며, 아직도 얼어 있는 험상궂은 남자들을 향해 나직하게 덧붙였다."이거 많이 날카로운 칼이라 조심해야 해요. 조금이라도 다치면 바로 말해요. 참지 말고. 피 같은 건 묻으면 다시 하면 되죠.""……감사합니다,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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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저..."어느새 주하가 집에 돌아온 지도 일주일째였다. 둘 사이에는 진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커피를 거절한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던 도혁이 입을 열자 주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기대감 같은 것이 퍼지니 스스로가 조금 한심했다. 무슨 말을 꺼낼지도 모르면서. 사실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차라리, 그가 이런 짓 못 하겠다고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왜?""...내일- 생일...이시잖아요."주하는 잠시 달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렇게 됐었나. 그녀는 예상치 못한 말에 다시 도혁 쪽을 돌아보았다. 요 며칠 거의 과제에 미친 사람처럼 집중하다 보니 날짜가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수업도 휴강이라 학교에 안 갔더니 요일 개념은 더 희미해져 있었다."음, 뭐... 그렇지.""......"도혁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것도 한참이나. 뭘 그렇게 조심하는 건지. 주하는 '말해.'하고 그를 재촉했다. 그녀의 재촉이 그를 조금 더 편하게 해줄 것이라는 것쯤은 그녀도 알았다. 그는 '명령'이 있는 쪽을 좋아했다. 아니, 적어도 그걸 더 편하게 생각하는 건 사실이었다."선물... 해도, 돼요?""아. 선물."주하는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주하는 그의 눈을 보지 않은 지 제법 되었다. 혹시나 눈이 마주치게 되더라도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피하곤 했다. 어색하게 굴고 싶지 않았는데,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도혁의 눈을 보고 있으면 꼭 좋아한다고 고백이라도 해버릴 것 같았다. 그도 쉽사리 주하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언제나 주하를 주시하던 습관을 고치는 것은 어려웠기에 몰래 가끔 보긴 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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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저, 안, 안가요... 안갈래요..."커다란 남자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작게 말했다. 주하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한 걸음이라도 물러가면 숨이 넘어갈 것처럼 절박해 보였다. 조금 전 선물을 받겠다는 말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환해졌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눈 밑에는 어느새 그늘이 져 있었다. 눈은 불안감으로 인해 제멋대로 떨리고 있었고. 그게 마치, 주하의 눈에는 억지로 꼬리를 내리는 짐승 같이 보였다."......"주하는 턱을 괴고 그를 유심하게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백' 같은 생각을 한 자신이 조금은 우스워졌다. 그는 그녀를 여자로 보기는커녕,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어쩌면 그는 자신을 만나면서 지배당하고 통제받는 상황을 즐기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태생적으로 있던 성향이 발현된 것인지도 몰랐다. 평소엔 보스로 있으며 안하무인이던 사람이라 몰랐을 뿐. 그런 사람이 제 말 한마디에 피가 마르고 안달이 나는 건 다 그런 이유일 터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표정을 짓든, 그는 충성으로 되돌려주었다. 그 복종 끝에 올 쾌락을 위해서.하긴, 그런 변태적인 성향이 아니고서야 이런 짓을 왜 견디겠어.주하는 도혁의 절박함을 스스로 해석해 보다가 마음이 시려 도혁을 보던 시선을 돌렸다. 그가 진짜 원하는 게 '사랑'이 아니라 그저 '주인'인 거라면, 다정하게 굴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았다. "가라고 하면 가, 서라고 하면 서고."서늘하고 낮은 명령조. 도혁은 숨을 삼켰다. 미칠 노릇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는데, 그 차가운 목소리가 그의 몸을 관통했다. 침대에서 서늘하게 명령하던 목소리를 떠올렸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는데 고작 그 기억 하나 때문에. 하지만 지금은 차라리 주하가 보고 있지 않은 게 더 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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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목걸이는 어떻습니까...?! 반지나...""액세서리는 안 해. 걸리적거린다고."주하는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귀찮아했다. 반지나 목걸이는 물론이고 팔찌, 귀걸이, 손목시계까지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몸에 존재하지 않았다."...그, 누님께 필요한 거 직접 물어보시는건..."다들 옳다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본인이 말해준다면, 그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아저씨끼리 모여서 머리 싸매며 끙끙 앓는 것보다 나아 보였다. 그러나 도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갖고 싶은 게 없다고 말했다. 물어봤자 대답하지 않을 터였다."안 돼.""넵..."그때, 내내 조용히 있던 기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좀 쓸만한 내용이길 도혁은 간절히 빌었다."한옥과 관련된 소품 같은 거... 알아보시면 어떨까요.""...계속 얘기해 봐.""인테리어 좋아하시고, 한옥도 좋아하시니까- 그런 쪽으로...?"도혁은 주하를 떠올렸다. 한옥을 볼 때면 눈을 반짝거리던, 그 얼굴을. 생일 선물로 주기에는 조금 낭만이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가 좋아하기만 한다면. 워낙 진심인 사람이니 조잡한 물건으로는 어림도 없을 터였다."제대로 된 걸로 알아봐. 흉내만 낸 거 말고.""넵, 알겠습니다."도혁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선물을 찾기 위해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주하가 허락해 준 이 귀한 시간 동안,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에 들 물건을 찾아내야만 했다. 감히 제 진심을, 이 선물에라도 담아내 볼 생각이었다.그는 물건을 정하자마자 주하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얌전히 자리를 지켰다. 주하는 잠시 힐끔 그를 보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질문도 없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훔쳐보았다. 눈은 조금 피하고 귀나 볼, 목,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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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운동 끝나면 바로 와."도혁은 확 고개를 들었다. 운동이 끝나면 돌아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주하가 오라고 말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고작 이 한마디가 이렇게 기쁠 일인지. 주하도, 도혁도 이해하지 못했다."네. 쉬세요, 주하 님.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주하의 방에는 내선 전화기가 있었다. 지금껏 거의 써보진 않았지만. 주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주하가 방에 들어가는 것을 다 보고 나서야 떠났다. 주하는 그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침대로 몸을 던졌다. 본채는 늘 그랬지만 오늘따라 방 안이 적막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좀 찾아봤냐?"도혁이 부하들과 다시 모인 곳은 체육관이었다. 그는 대충 아령을 한 손에 들고 부하들과 회의를 계속했다. 운동을 하러 가라고 보낸 거니까, 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사진 보내겠습니다, 대표님.""모조품은 다 걸렀지?""네, 대표님. 다 전문가들의 수집품이거나 실제 장인들이 만드는 물건들입니다."수집품? 도혁은 남은 한 손으로 핸드폰으로 전송된 사진을 휙휙 넘기며 확인해 보았다. 고미술품으로 보이는 것들도 꽤 있었다. 그가 전문적으로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20년 이상 봐온 것이 있었으니까. 한옥에도 한평생 살았고."마음에는 드는데... 가격이..."다들 표정이 미묘해지는 가운데, 기찬만이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들었다. 도혁은 절대 돈을 아끼려고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었다."넵. 누님이 부담스러워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방금 보신 건 수천만원짜리입니다.""......"주하가 그런 물건을 받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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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아니야, 엄마. 보내지마. 나 요즘 졸업 과제 때문에 집에 거의 있지도 않아. 먹지도 않고 버리면 아깝잖아."'그래? 그래도 생일인데... 미역국은 먹어야 하지 않아? 그렇게 바빠? 그럼 아빠랑 동생 데리고 올라갈까?'"아니! 올라오지마."주하는 태연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빠르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다시 숨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내가 곧 갈게. 진짜 너무 바빠서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못 볼까봐. 그러니까, 내가 좀 마무리 해놓고... 다음주 주말 쯤. 어때?"'얼마나 바쁘길래 그래. 너 제대로 밥도 못 먹을까봐 걱정이다, 얘.'다른건 몰라도 밥 하나는 삼시세끼 거른 적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고 시간이 되면 커피니 간식이니 야식이니 쏟아져 나오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엄마의 걱정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기에 주하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나 먹는거 좋아하잖아. 밥은 안 거르고 먹어."'그래도... 그럼 용돈이나 좀 보낼테니까 먹고 싶은거 사먹고 주말에 와. 뭐 해놓을까? 김밥?'"엄마 김밥 너무 좋지. 고마워."겨우 전화를 끝낸 주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요즘 너무 비현실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그런지, 엄마와의 통화가 그녀를 잠시 현실로 되돌려놓는 느낌을 주었다. 도혁의 집에 지내는게 얼마나 비정상적인 일인지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기말고사까지 한 달 남짓. 졸업 작품 전시도 그리 오래 남지는 않았으니 그 전에는 결론을 내야만 했다. 그게 어떤 결론이든.-똑똑. 작은 노크소리가 들린건 주하가 침대에 누워있다가 잠시 선잠이 든지 약 3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주하는 부스스 눈을 떴다가 문 밖으로 보이는 도혁의 실루엣에 몸을 일으켰다."...응.""아, 낮잠 주무셨어요? 얼른 주무세요. 저 운동 끝나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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